노랑붓꽃
남상숙
천변에 노랑붓꽃이 청초하다. 호위하는 창에 둘러싸인 여린 봉오리들이 긴장한 듯 일제히 기립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조짐인가. 소리쟁이 덩달아 얼굴 붉히고, 봄비에 몸피 늘린 냇물이 저들끼리 종알거리다가 고개를갸웃했다. 팽팽한 햇살에 봉오리가 시위를 놓쳤다. 무르익은 봄이 그만 터져버렸다. 시냇물이 뒤떨며 흐르고 지나던 물새도 물었던 먹이를 떨어뜨렸다.
생의 정점에서 크게 한번 웃을 일 있지. 눈부시게 찬란한 날도 있지. 들판을 달려온 명지바람이 노랑붓꽃을 힘껏 안아주었다. 영문 모르던 어린 붓꽃 더욱 영채를 띠고 끔벅이던 징검돌도 눈망울 휘둥그렇다. 기우는 봄날에 몸을 푼 천변이 노랑으로 해사하다. 시나브로 꽃송이 이울고 굳건한 약속처럼 새 계절이 올 것이다. 기점이 되는 것은 둥지 속 파랑새의 이소만큼 황홀하다.
노랑붓꽃을 보자, 잊었던 기억력이 돌아오듯 노란색이 귀환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색이었던가. 세월이 더할수록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둘 아닌데 대단한 발견인 듯 눈부시다. 팔레트에 노랑색 유화 물감을 쿡, 짜놓은 듯 인심 써서 캔버스에 붓질 한번 호기롭게 한 듯 광휘롭다.
밝고 환한 노란 빛깔은 안정감이 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자존감이어진 자에게 자신감을 준다. 빨강처럼 강렬하지도, 초록처럼 조촐하지도 않은 노랑의 확장성은 세상을 안을 듯 두름성 있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명확성이 어느 색과도 잘 어울려서 활력을 준다. 굳이 황금빛과 견주어 말하지 않아도 독자적으로 자체 발광한다. 자주 바라보고 즐겨 사용하면 두뇌활동을 자극하여 사고력을 키운다니 자라는 아이들이나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 매력적이다. 노랑은 예닐곱 살 총명한 아이처럼 명랑해서 명절에 아이들 복색으로 즐겨 썼는지 모른다.
엄마는 내게 설에는 꽃분홍 뉴똥치마에 색동저고리나 빨간 치마에 노란 반회장저고리를, 추석에는 빨강 갑사 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만들어 입혔다. 하얀 속치마까지 받쳐 입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나붓이 절을 하면 말씀이 별로 없던 할아버지께서도 햇솜 이불 안 듯 덥석 나를 품에 안았다. 치마말기에 매달았던 복주머니에서는 삼촌이 넣어 준 동전이 딸랑거렸다. 안방 개다리소반 위에는 식혜와 곶감, 노란 송화다식이 양양하고 분홍저고리 고모가 고름을 다시 매주고 나서 내 손잡고 집을 나서면 동네 고샅길이 환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색의 호불호가 분명했다. 고운 색을 좋아해서 값나가고 좋다는 학용품이나 옷도 색깔이나 모양이 마음에 안 들면 갖지도 입지도 않았다. "애가 꽤 까탈스럽구나." 한마디 하면서도 엄마는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젊어서는 옷을 양장점에서 맞춰 입었다. 어느 해 샛노란 셔츠와 남색 나팔바지를 맞췄다. 노랑붓꽃 빛깔이었다. “야, 대단하다." 친구 눈이 동그랬다. 그 봄, 노랑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했을까. 남 앞에 드러나는 것을 싫어 하면서도 눈에 잘 띄는 원색의 옷을 보란 듯이 입었던 것은 아이러니었다.
어려서부터 조용하고 다소곳했어도 어느 면으로 기민한 과단성이 있었으니 선호하는 색깔에서 그랬다. 남색이나 보라색, 연두와 주황, 밝고 선명한 색이 마음을 휘저어 놓으면 무모하리만치 막무가내였다. 고집이랄까. 개성이랄까. 나도 모르는 내가 불쑥 튀어나와 아연했어도 이런 추동력이 지금의 나를 형성한 것인지 모른다. 어떤 계기로 드러나는 색깔에 대한 추억과 상념, 계절의 순환에서 비롯한 원초적 현상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자연의 아름다운 색채를 즉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고 누릴 수 있으므로 세상은 살만하다.
세월은 성실한 가장처럼 차질없이 오고 간다. 꽃이 피고 지듯 달이 뜨고 이울듯 여일하다. 개인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인류사도 눈금자처럼 섬세하고 또렷하게 이어졌다. 비록 내가 강변의 조약돌처럼 미미한 존재라 하더라도 인류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은 메숲진 곳의 한 그루 나무처럼 꼿꼿한 자존이다. 위축될 필요는 없다. 유년의 기억은 따뜻하고 정다워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사는 동안 형성된 다채로운 추억은 노년의 예금잔고처럼 위안이 된다.
진노랑 셔츠나 샛노란 실크 블라우스를 맞춰 입고 노랑붓꽃 싱그러운 천변을 걷고 싶다. 온몸을 노랑으로 뒤발하면 창의력 충천하여 발화하지 못한 언어들이 구슬처럼 쏟아져 나올까. 구슬을 꿰듯 문자들을 조합하면 사리가 명백하고 뜻이 분명한 글이 두더지처럼 튀어나올까. 그때, 보는 이마다 고개 끄덕이면 제 그림자에 놀라는 아이처럼 화들짝 놀랄까. 길고 긴 여름날의 초입에서 하릴없는 나는 엉뚱 발랄한 상상에 즐거워하며 노랑붓꽃에 눈 맞춤 한다.
봄이 터져버린 풀꽃 진 자리에는 저만 이는 비밀처럼 까만 웃음 동그랗다. 짝자그르, 오월의 천변에는 쾌활한 노랑이 제격이다. 사무실이나 집안 일만 일이겠는가. 철 따라 다른 정서를 마련하는 계절 맞이에 나서는 것도 자신의 생에 대한 예의다. 첫여름의 증언처럼 노랑붓꽃이 함초롬하다.
남상숙
『시와 의식」 등단(1988년),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 한국가톨릭문인협회 · 국제 한국본부 · 창
작산맥 회원 작품집 : 『아름다움은 필경 선과 통한다』 『남빛 사유』 『빛나는 수고』 『하현달의 묵시』
첫댓글 월간 한국수필 2024년 3월호
천변에 노랑붓꽃이 청초하다. 호위하는 창에 둘러싸인 여린 봉오리들이 긴장한 듯 일제히 기립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조짐인가...무르익은 봄이 그만 터져버렸다.... 들판을 달려온 명지바람이 노랑붓꽃을 힘껏 안아주었다. 영문 모르던 어린 붓꽃 더욱 영채를 띠고 끔벅이던 징검돌도 눈망울 휘둥그렇다. 기우는 봄날에 몸을 푼 천변이 노랑으로 해사하다...진노랑 셔츠나 샛노란 실크 블라우스를 맞춰 입고 노랑붓꽃 싱그러운 천변을 걷고 싶다. 온몸을 노랑으로 뒤발하면 창의력 충천하여 발화하지 못한 언어들이 구슬처럼 쏟아져 나올까.
(본문 부분 발췌)
도발하는 노랑으로 물든 천변이 눈에 그려지는 수필이네요.... 진노랑 셔츠, 노란 실크블라우스... 노랑 붓꽃 싱그러운 천변....노랑이 유난히 좋아지는 때가 있는 듯 합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