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 굉장히 재밌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이틀 만에 완독했는데, 이는 내가 매우 흡인력 있는 장편소설을 읽는 속도다.
사실 읽은 건 올해 1월인데 당시 뭔가 자잘하게 정신없고 바쁜 일들이 있어서 미처 기록을 남기지 못해 오늘이라도 생각난 김에 메모 수준으로라도 감상을 남겨볼까 한다.
이 책의 저자 조장훈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1990년대 후반 논술 강사로, 사교육계에 발을 들인 후 2020년까지 대치동에서 학원장으로 근무하며 논술·구술 강의와 입시 컨설팅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만났다. 2020년 마지막 날을 끝으로 대치동과 학원 판을 떠났다.”
그가 풀어낸 대치동 이야기는 마치 필드워크를 수행하는 인류학자가 소설가 수준의 필력을 갖고 있을 때 나올 수 있는 결과물 같다. (알고 보니 저자의 학부 전공이 인류학!ㅎㅎ)
특히 ‘3부 대치동 사람들’은 일단 시청하면 중간에 끊을 수 없는 영상물만큼 흥미진진한데, 여기엔 학부모뿐 아니라 학원장과 강사, 상담실장까지 등장한다.
대체로 공감하며 읽긴 했으나 저자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른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수시 전형 중 학종에는 나보다 비판적이고 논술에는 나보다 우호적이다. (적어도 그렇게 읽힌다.)
그렇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저자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므로 굳이 여기서 상세하게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안이 그렇듯이 어떤 측면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가치평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이 책에서 인상적이고 호감을 느꼈던 부분은 저자의 ‘태도’이다.
마침 이 책에 추천사를 쓴 장정아 교수도 이 태도를 언급해서 인용해 본다.
“이 책은 무언가를 폭로하는 책이 아니다. 냉소적이지도 관조적이지도 않다. 자신이 분석하는 욕망과 일체가 되어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 욕망을 가볍게 비난해 버리는 쉬운 방식을 택하지 않으려는 저자의 분투가 이 책에 녹아 있다.”
나에게 연구자나 작가의 태도 중 가장 나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냉소’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고 관찰한 바에 따르면 냉소는 깊이와 반비례한다.
학문적 수준이 깊지 않고 필력이 어설플수록 쉽게 냉소적인 상태가 된다.
자신의 연구 대상을 쉽사리 대상화하고(대상을 대상화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그 정도를 말하는 거다), 나아가 희화화하고 멸시하는 태도로 대체 무슨 연구를 하겠다는 말인가.
비슷한 맥락으로 내가 보기에 최악의 교수/교사는 학생들에게 냉소적이고 학생들을 희화화하는 사람이다.
학기말마다 페북에서도 (주로) 시험과 과제물 가지고 이런 태도의 기미와 징조들이 좀 보이는데 그때마다 보는 내가 화가 날 지경이다!
이 책엔 냉소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냉소하기 쉬운 대상인 ‘욕망’을 다루는 책인데도.
냉소를 버린 자리엔 대신 치열함이 있다.
그런 이유로 끝까지 흥미롭게 읽힌다.
<김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