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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 돌아와 부르짖으면 회복시켜 주시리라
성경 본문 : 이사야 30장 18절-26절
설교 자 : 지 명숙 목사 <2023년 4월12일 수요일>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본문 <이사야> 30장 18절-26절 말씀을 통해
돌아와 부르짖으면 회복시켜 주시리라 ,
이러한 제목으로 말씀이 선포될 때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말씀은 화와 복의 노래 중의 일부로써
(참고 성경<이사야>28장-35장)말씀 여기서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으로 <애굽>과 동맹관계를 체결한
<유다>를 향한 심판을 예언하고 있는 앞 단락
<이사야>30장1절-17절 말씀과 달리
<유다>의 회복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징계 중에 있는 <유다>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징계 중에 하나님께 돌아와 부르짖으면 응답하실 줄 믿습니까?
징계한 <유다>에게 다시 선지자를 보내 계시의 말씀을 가르치실까요?
계시의 말씀을 가르침 받고 <유다> 백성이 회복하게 될까요?
여호와 신앙을 회복한 <유다>를 축복하여 물질적 영적으로 회복될까요?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다음 세 가지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첫째로) 자비와 용서로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18절-19절)
둘째로) 계시의 말씀을 가르침 받아 성령에 민감하게 반응하라. (20절-21절)
셋째로) 회개한 자를 위해 큰 축복을 예비해 두고 계십니다. (23절-26절)
첫째로) 자비와 용서로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18절-19절)
18절 말씀은 하나님은 <탕자>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며
끝까지 긍휼이 여기시는 분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기다리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거부하며 그것을 자신들의 방법으로 피하려고 한 <유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다리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간 패역한 자식인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 사람들에 대해 은혜와 긍휼을
예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 사랑을 가지고 계신지
재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유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고 오늘날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쉽사리 하나님을
배반하는 우리를 향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크신 사랑과 자비를 잘 표현해준 말씀이
<누가복음>15장11절-32절 말씀의 <탕자>의 비유입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는 이곳에서 <유다>를 기다리는
하나님 마음 바로 그것입니다.
<탕자>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그는 아버지집의 풍성함을 생각하며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회개하고 집 가까이 도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아직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자기 아들임을
주야장천 기다리던 아버지 눈에 뜨여 달려가 그를 기쁘게 맞아줍니다.
<탕자>가 집을 떠난 후 아버지는 그 자식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넝마가 된 그의 옷을 보지 않고, 맨발의
그를 보지 않고 그 아들을 끌어안고 웁니다.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신을 신기고 아들의 상징인 가락지를 끼워주어
그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물론 그를 위하여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유다>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 <탕자>의 마음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호세아>12장6절 말씀에
6절 그런즉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넓은 사랑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하였어도 아무리 오랫동안 그릇 행하였어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줄 믿습니다.
죄인이라도 돌이켜 회개하기만 하면 천국에서 천사들과 더불어 기뻐하시며
그에게 용서와 사랑의 옷으로 감싸주시고 은혜와 축복의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합니다.
하나님의 기다림이 인간의 기다림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다림이 <유다>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것이라면 , 인간의 기다림은 <유다>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구원의 은혜를 사모한다는 것은 회개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다림이나 인간의 기다림이나 회개를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은 회개를 기다리시고, 인간은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용서 하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적진 선봉에 배치하여
죽게 한 후 그 죄가 하나님의 선지자 <나단>에 의해 지적되었을 때
<다윗>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다윗>은 죄를 지적 받자마자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였습니다.
<시편>51편17절 말씀에
17절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 하시리 이다. 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범한 중대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사유와 회복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흉악한 강도가 죄를 고백하며 은혜를 구하였을 때도
우리 주님은 <누가복음>23장43절 말씀에
43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는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불순종함으로써 온 나라가
황폐화되고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멸망직전까지 갔다가 늦게라도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앗수르 군을 격퇴하고
회복하는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죄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이나 ,
연약함으로 순간적인 실수나 미혹으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회개라는 은혜로운 통로, 회복의 기회가 있음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진실로 회개하는 자를 멸시하거나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를 용서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둘째로) 계시의 말씀을 가르침 받아 성령에 민감하게 반응하라. (20절-21절)
성도들에게도 환난의 떡 고생의 물을 먹고 마셔야 할 때가 있습니다.
20절에서 <너희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회복될 선민을 말합니다.
이들에 대해 다시는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 합니다.
그런데 본 절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히 멸망하는
일은 없지만, 그들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 거하는 성도들도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난을 주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고난이 성도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고난을 피하여 가진 못합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 신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세상에서 고난 없는 삶, 평강과 기쁨,
형통만이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오게 되면, 예수 잘 믿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 하며
시험에 들어 신앙생활 하는 것 헛것이라고 믿음의 길을 떠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빛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은 악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여러 가지 미혹과 시험을 당하기에 환난의 떡, 고생의 물을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난의 떡 고생의 물을 마시게 하시는 이유는
성도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인 줄 믿습니다.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죄를 짓기도 하고 악한 자들의 자리에
앉기도 하기에 이런 모습으로 결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들이
될 수 없음으로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게 함으로 연단하여
악한 본성들을 하나씩 제거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5장 3절-4절 말씀에
3절 ...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절 인내는 연단을 ,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오는 불 시험은 연단을 위한 것이므로 그것을 비굴하게
피하려 하지 말고 ,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도리어
이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21절 말씀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성령의 인도함에 민감할 때
우리는 항상 바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바른 길로 행하지 아니하고
그릇 행하게 되면 그들의 스승이 되는 선지자들이 책망이나 권고를 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바른 길로 행하도록 가르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성도들의 영원한 스승이 되시는 성령께서
바른길로 가실 수 있도록 가르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의의 길로 가지 못하고
좌우로 치우쳐 악을 행하였던 것처럼, 우리 신약성도들도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라고는 하나 완전히 거룩하게 되지 아니하고, 아직은 거룩하게
되어가는 성화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좌우로 치우쳐 그릇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릇된 길로 접어들 때 구약에서 선지자를 통해 책망과 권고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치신 것처럼, 신약 성도들의 영원한
스승이 되시는 성령께서 책망과 권고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바른 길로
가르칩니다.
우리 성도들이 그릇된 길로 행하다가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돌이킬 수 있는 것은 다 이러한 성령의 사역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의 심령 속에 거합니다.
성령께서 성도들의 마음까지도 아시며 , 우리가 마음속에 나쁜 마음을
품을 때부터 우리를 책망하시며 바른 길로 가도록 가르치십니다.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을 때나 실제로 악을 행하였을 때
마음에 가책과 고통이 임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죄를 고백하지 아니하고 계속 죄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 불안해지고
마음의 평강을 상실한 경험이 있으시죠? 바로 이것이 성령의 가르침입니다.
인간의 양심은 온전히 바른 길로 가게 하지는 못해서
언제든 불의, 죄악과 타협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선과 악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게 하시고
악을 행하면 회개할 때까지 책망하고 마침내 회개에 이르게 하십니다.
<요한복음>14장 26절 말씀에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하시고
<고린도전서>2장12절 말씀에
12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구속을 체험한 백성입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죄된 본성, 악한 생각, 악을 저지르고 악으로
치우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때그때 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울리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외면치 않고 집중한다면 우리는 더욱 견고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며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셋째로) 회개한 자를 위해 큰 축복을 예비해 두고 계십니다. (23절-26절)
23절-26절 말씀은 신앙이 회복된 <유다>에 대해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스승을 통하여 그들을 가르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회개하고 죄와 단절할 때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3절-24절 말씀은 충분한 비와 비옥한 땅으로 풍성한 소출을 얻게 되고
가축까지도 목장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을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한가롭고 풍요한 농촌의 풍경을 한폭의 그림으로 그리듯
하나님의 그림 언어로 말합니다.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게 한다는 말입니다.
25절 말씀에서 개울과 시냇물이 흘러 즉 생명의 젖줄인 물이 충족히 공급되는
상황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는 곳,
하나님 백성들의 심령과 삶을 충족히 적신다는 의미입니다.
26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처가 싸매지며 맞은 자리가
고침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제시됩니다.
달빛은 햇빛 같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빛 가운데 , 찬란한 광명 가운데 거하며 영광스런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들은 그야말로 땅에서부터 하늘, 사람의 내면에서부터 외면에
이르기까지 아우르는 풍성하고 완전한 축복의 단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담이 무너지고 , 토기가 깨져 산산 조각이 나며, 대적에게 쫓기며 도망하던
앞 단락과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러한 변화, 이러한 축복을 <유다>가 누리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인해 도래된 것입니다.
진실한 회개가 영육 간에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임하게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이러한 축복을 저해하는 요인은 없으신지요?
<사도행전>3장19절 말씀에
19절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생각나게 하시고 , 깨닫게 하시고,
책망하실 때에 회개하기를 주저하지 맙시다.
우리를 회개하기 위한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때 그것으로 인하여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고 그것이 결국 축복의
통로임을 깨닫고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를 받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 속에서 범한 죄 때문에 괴롭거나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겹지는 않으신지요? 그렇다면 더 이상 힘겨워하지 말고 속히 죄를
회개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회개의 모습을 보이기만
하여도 아무리 견고한 대적의 진이라 할지라도 물거품처럼 파멸시켜
버릴 줄 믿습니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다가 어려운 문제에 닥쳤을 때
우리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연약한 존재에 불과 합니다.
정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우리는 살아가는 주변의 환경을 오염시키고,
더럽히고 파괴시킬 뿐 회복시킬 능력, 소생시킬 능력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힘만 의지하고 살아간다면 죽음과 저주 온갖 질고뿐입니다.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그렇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죽기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가
목숨까지 버리신 분이십니다.
축복과 능력의 하나님, 치료의 하나님, 회복의 하나님, 빛의 하나님으로
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통로로 회개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치유하시며 회복시키시며 복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가꾸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문제를 정직하게 고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사 온전하며
완전한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