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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진사와 며느리의 한 판 맞장뜨기
새 가치관과 옛 가치관의 거리 좁히기
이원걸(문학박사)
(목차)
1. 머리말
2. 내용과 인물 형상화
3. 두 가치관의 거리 좁히기
4. 마무리
1. 머리말
18세기를 중심으로 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변모 양상을 보여주는 [이조한문단편집]이 학계에 소개됨으로써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가치관이 특정 계층 지향이 아니라, 보편적이며 역동적임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야담은 주제와 사상적 측면에서 같은 시대에 창작된 연암 박지원이나 문무자 이옥의 한문단편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같은 시대에 이루어진 연암이나 문무자의 한문단편은 정밀한 개별 연구의 성과로 작품의 내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반면에 이러한 야담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여전히 유보 상태이다. 이러한 야담이 조선 후기 소설사에서 그 위상과 의의를 획득하기 위해 개별 작품 연구의 추진과 함께 전체 야담 작품과의 유기적 해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작업의 일환으로 「고담」을 택했다. 이러한 제목을 삼은 이유는 친구들이 권생이 겪었던 일을 옛날이야기처럼 꾸며 권생의 부친 권진사에게 들려준 데서 비롯되었다. 이 작품이 창작될 18세기는 새로운 가치관과 기존의 가치나 규범을 굳게 지키려는 구 가치관이 공존하며 갈등을 노출하던 시기였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가치관과 기존 가치관의 갈등 양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양반 댁에서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딸을 개가시키는 과정에 드러난 인물의 갈등 양상에 주목했다. 이러한 인물 형상화를 통해 새 가치관이 어떠한 모습으로 기존 가치관에 접근하며, 기존 가치관이 이를 어떤 양상으로 수용하는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2. 내용과 인물 형상화
작품에 나타난 개별 인물의 성격을 검토하기 위해 내용을 요약하고 각 인물의 형상화 양상을 검토한다.
「고담(古談)」
① 안동 권진사는 성품이 준엄하고 집안을 다스리는데 법도가 있었으며, 외아들을 두었는데 며느리는 성깔이 사 납고 투기가 심했다.
② 권생이 이웃 고을의 장인 장모를 뵙고 돌아오다가 비를 피해서 주막에 들렀다.
③ 젊은 청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며 서로 주소․성명을 밝히나, 그 청년은 성만 알렸고 권생은 먼저 취해 쓰러져 잤다.
④ 깨어나니 18~19세쯤 되어 보이는 소복 차림의 여인이 앉았는데 이유를 물었더니 그녀는 한참 뒤에 사연을 설명했다.
⑤ 그녀는 본래 서울의 벼슬아치 딸로 14세에 시집을 갔다가 15세에 남편을 잃고 부친도 죽어 오빠에게 의지해 살다가 오라버니의 계책으로 개가할 대상을 찾아다니다 여기에 이르렀다는 고백을 듣고 동침했다.
⑥ 권생은 엄한 부친과 투기가 심한 아내 때문에 이 일을 부친에게 아뢰지 못한 채 고민을 하다가, 지혜가 많은 친구의 집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니, 친구가 술자리를 마련해 권생을 초대했고, 권생도 부친의 허락을 받아 친구들을 초대해 대접하려고 술자리를 마련했다.
⑦ 친구들은 술자리에 권진사를 초대하여 아들이 겪은 이야기를 ‘고담’으로 엮어 들려준 뒤에 그 주인공이 외 아들 권생이라고 알려 준다.
⑧ 권진사는 마당에 자리를 벌이고 작도 판 위에 권생의 목을 올려놓게 하고 엄히 꾸짖으며 작도를 밟으라고 재촉했다.
⑨ 권생의 모친과 아내가 용서를 빌었는데, 며느리는 마당에 머리를 박아 피를 흘리며 간청했고, 모친은 겁을 먹고 그 자리를 피했다.
⑩ 권진사는 ‘만약 그 여자를 받아들이더라도 며느리의 투기가 심해 집안이 화목하지 못할 것이므로 절대 용서 할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⑪ 며느리는 남편을 살려만 준다면 평생 투기를 안 부리겠다는 약속의 맹세문을 쓰고 권생은 풀려났으며 그녀 를 작은 부인으로 맞아
평생 투기를 부리지 않고 함께 지냈다.
이 사건에서 본격적 전개 부분은 권생과 소복녀의 동침에서 시작된다. 이로부터 다양한 인물의 역할과 심리전이 전개된다. 기이한 인연을 맺은 권생은 전후 상황을 판단한다. 그러나 미인과의 기이한 만남이 도리어 근심거리로 떠오른다. 첫째, 부친의 성품이 너무 엄하다는 점이다. 권 진사가 화를 내면, 대청에 자리를 깔고 앉아 종을 때려죽이게 하거나 피를 보고 그만 둔다.
이 때문에 겁을 먹은 권생은 자신의 잘못을 부친에게 아뢸 수가 없다. 게다가 그의 아내 역시 성질이 사납고 투기가 심해 그는 아주 어려운 입장에 처한다. 이런 점에서 작품 서두에 소개된 권 진사의 엄격한 성품과 며느리의 별난 투기심은 복선 작용을 한다.
그런데 권생은 첫째 어려움을 친구의 지혜를 빌려서 해결하고, 두 번째 어려움은 권 진사의 기지를 거쳐 해결된다. 그런데 이 작품이 두 가지 난관이 극복되면서 해피엔딩으로 처리되어 구성상 뛰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그리고 갈등 극복 과정에 드러난 인물 형상은 당대 세태를 잘 묘사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작중 핵심 인물 가운데 한 명인 소복한 여인의 오라버니는 여동생이 당시 풍속을 따라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수절 당하는 것을 거부한다. 오라버니는 여동생의 새로운 삶을 위해 편법을 써서 시대적 제약을 극복한 인물 형상이다. 그를 중심으로 하여 어려움을 해결 과정에 드러난 주변 인물의 성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복녀 오라버니)
그의 인물 형상은 누이동생의 해명에서 드러난다. 삼강오륜을 신봉하던 봉건 사회의 절대적 가부장제 아래 개인의 자유 의지는 구속당했다. 이러한 상황 아래 개인의 감정 표현이나 자유 의지의 감행은 매우 어려웠다. 특히, 문벌을 중시하던 당대에 여성이 개가를 하게 되면, 당사자의 가문에 폐를 끼칠 뿐만 아니라 자손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는 편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에 그는 누이동생의 개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알고 인습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행동을 감행한다. 그는 주도면밀하게 가마와 말을 준비하고 성문을 나와 정처 없이 다니다가 적당한 남자를 만나면 동생을 맡기고 자신은 집안의 이목을 피하려고 계획한다. 그는 이처럼 계산적인 의도로 권생을 만나게 된다. 이즈음 그는 이미 권생의 차림새나 행동 등을 눈 여겨 봐두었을 것이다. 그가 누이동생을 책임질 적임자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그는 주막에 비를 피해 들어온 권생에게 술을 주고받으면서 그의 신분을 확인한 뒤 계획적으로 권생을 술에 취해 정신을 잃도록 유인한다. 이어 그는 그를 누이동생이 머무는 방으로 그를 옮기게 한 후에 여종 두 명과 은 오~육백 냥을 남겨 의식의 밑천을 삼게 하고 떠난다. 말하자면, 결혼 지참금을 남겨 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오라버니의 역할은 남성에 의해 자각된 인간성 긍정 의식이 봉건 윤리의 규범을 깨트리고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주는 것이다. 그는 체제의 가치관과 규범의 구속을 벗어난 인물이다. 누이동생은 이 오라버니에 의해 새로운 삶을 얻는다. 이와 함께 그는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인물이다. 누이동생의 장래 경제적 문제에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의식의 밑천을 대어 준 것에서 그러한 면모를 느낀다.
이제 소복녀 오라버니의 인물 형상을 정리하면, 그는 당시 문벌을 소중히 여기던 사회의 굴레에 의해 누이동생의 삶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도주의 의식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그는 누이동생의 인간적 삶의 권리가 남의 뜻에 따라 좌우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와 함께 그는 인간의 애정 문제는 도덕적 규범으로 억누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 누이동생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이를 과감히 실천한 인간 유형이다.
(소복녀)
이 여인은 사건 발단의 장본인이다. 그녀 자신이 직접 사건에 개입하여 적극적인 행동을 전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오라버니의 개가 실천 안에 동조하고 나선 자체가 이미 새로운 가치관에 협력한 인물이라고 보아진다.
조선 시대 여성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역사적 측면에서 전통적 여성형과 진보적 여성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여성형의 외적인 분류다. 이들의 중간형으로 전통적 여성형이지만 내적으로 진보 성향을 내포한 부류와 진보적 여성형이지만 내적으로는 전통성을 내포한 유형이 있는데, 이 여인은 중간형에 속한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의 문제에 직접 대응하여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청춘을 당대 가치관과 체제의 질곡 속으로 매몰 당하는 것을 거부하는 오라버니의 체제 반항적 창안에 음성적 호응을 한다.
이러한 경우를 「상녀(孀女)」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갓 시집을 가서 홀로 된 딸을 둔 양반이 가문의 체통을 유지하면서 딸의 개가를 성사시키기 위해 트릭을 구사한다. 양반은 딸이 죽은 것으로 위장해 장례를 치르고 개가에 성공시킨다.
그리고 나서 자기 혼자 이불을 싸서 묶어서 시체 모양을 꾸며서 홑이불로 덮어둔 다음 비로소 사돈댁에 알 리고 입관하여 그 시댁의 선산에 장례를 치렀다.
당시 일반적 사회 통념에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청상 과부의 아버지는 새로운 대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는 딸이 자결했다고 속이는 행각을 벌인다. 그는 딸이 갑자기 목숨을 끊었다고 가족에게 알린다. 그리고 딸아이가 평소 자신의 몸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했다고 말한 뒤에 자신이 직접 염습을 하겠다고 우긴다.
그는 이렇게 하여 철저히 남의 이목을 속인 뒤, 이불을 묶어 시체처럼 둘둘 말아 사돈댁에 알리고 입관해 사돈댁의 선산에 장사지낸다. 그리고 그는 적당한 남자를 골라 딸을 먼 지방으로 떠나보내 살도록 주선한다. 이 과정에서 고도의 트릭이 이루어진다. 그녀의 죽음은 가족과 시댁 모든 식구들에게는 영구 비밀로 파묻힌다.
동류형 작품으로, 「태학귀로(太學歸路)」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딸이 병으로 죽었다는 위장 수법을 쓴다.
드디어 딸이 병으로 죽었다고 사돈댁에 부고를 전하고 사돈댁 산 아래에 거짓 장례를 치렀다. 그녀들은 거짓 죽음을 연출하고 주변 인물의 기발한 도움에 의해 인간적 삶을 얻는다.
부친의 명령과 계획에 순순히 응하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조선 후기 변모된 여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야담에는 여성의 다양한 활동 영역과 그에 따른 의식 세계가 표출되어 있다. 종래의 숙명적 삶에 대해 순응하고 체념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현실 문제에 대응하여 정면 대결을 시도하는 작품도 있다.
예를 들면, 주인집을 망하게 한 권문세가에 철저히 보복을 하며, 소응천(蘇凝天)과 같이 그릇이 작고 잡술에만 능한 인물에게 몸을 의지하기를 거부하고 날렵한 칼춤을 추고 떠나가는 「검녀(劍女)」를 들 수 있다.
그리고 부모를 여의고 삼촌에게 의탁해 사는 여성에게 당숙이 운산원(雲山員)의 소실로 앉히려는 의도를 무시하고, 식칼로 당숙 식구를 닥치는 대로 찌르고 운산원을 위협하고 꾸짖는 「길녀(吉女)」는 권력의 횡포에 첨예하게 저항하는 전투적 여성이며, 자신의 뜻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하고 헤어지는 자유분방한 여성 형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본고에 나타난 그녀에게서 이처럼 적극적인 면모는 발견할 수 없다. 그녀의 인물유형은 체제와 규범에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자신의 힘의 한계를 오라버니에게 의지해 해결한다. 이는 당대의 통념이 새로운 가치관을 만나 일정한 충격이 가해지면서 여성의 의식 세계가 조금씩 변모해 가는 양상을 반영한 것이다. 즉, 그녀는 체제 반항적 세력에 의지해 자신의 개가를 성취한 인물로, 그러한 가치관에 음성적으로 동조한 인물 형상이라 하겠다.
(권생)
권생은 부친의 가부장 권위 아래 엄격한 훈계를 받고 자라난 인물이다. 그는 뜻하지 않던 미인과의 기이한 인연으로 인해 이중의 난관에 부닥친다. 첫 번째 난관은 부친께 사실을 아뢰는 것이다. 그러나 자타가 공인하는 부친의 엄격한 성품에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친구의 지혜를 이용한다. 친구의 계책은 매우 합리적이다. 먼저 친구가 공식으로 심부름꾼을 보내어 권생을 초청했는데, 권생은 부친에게 아뢰고 참석한다.
이에 권생은 이튿날 다시 부친께 자신이 초대를 받아 대접을 받았으니 답례로 친구들을 초대해 약간의 주연을 베풀기를 청해 부친도 허락한다. 이로써 그는 권진사와 친구가 대면하는 자리를 마련하는데 성공한다. 이어 친구는 권생의 기이한 만남을 부친에게 알리는 방법을 모색한다.
이러한 권생의 행위는 자신의 행각에 절대 책임을 져야한다는 굳은 심성의 내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권생이 자신의 비행을 바로 부친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소극성을 보인다. 이는 가부장 권위가 지배적이던 당대의 시대적 제약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권생은 「방맹(方盟)」과 「이정(離情)」의 남 주인공보다는 용기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비교를 위해 두 작품을 정리한다.
「방맹」
① 곤륜 최창대는 문장과 풍채가 뛰어난 인물로 임금이 참석해서 치르는 과거인 알성시에 응했다.
② 시내를 지나다가 종이 가게 상인의 안내로 그의 집에 이르게 되었다.
③ 그 상인의 딸은 16세 나이로 얼굴도 곱고 글재주도 있었다.
④ 그런데 그녀는 지난 밤 꿈에 정초지 한 장이 날아와 용이 되어 오르는 꿈을 꾸었다며 작은 부인이 되기 를 스스로 청하며 그를 기다렸다고 했다.
⑤ 최창대는 기뻐하며 그렇게 하겠다고 굳게 약속하고 그 정초지를 받아 장원 급제를 했다.
⑥ 그러다가 부친에게 그 사정을 아뢰지 못했는데 그녀는 하루를 기다리지 못한 채 자살하고 말았다.
⑦ 최창대는 부친에게 깊은 꾸지람을 듣고 그녀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주어 원혼을 위로한 뒤 벼슬이 부제학에 올랐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최창대는 서울 시전 상인의 딸이 길몽으로 얻은 정초지로 장원급제의 영광을 얻는다. 그는 전날 그녀와 맺은 약속을 저버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위기에 직면하여 주도면밀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부친께 사정도 아뢰지 못한 채 머뭇거리기만 했다. 게다가 그에게는 이 어려움을 해결해 줄 사람도 없어 한숨만 쉬다가 결국 그녀를 자살하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작중 주인공 최창대가 그녀와의 언약을 잊거나 고의로 배신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감히 부친께 아뢰지 못한 채 비극적 결말을 낳게 했는데, 그는 다른 방도의 모색을 포기한 것이다. 「이정」 역시 동류형의 작품이다.
「이정」
① 서울 선비가 어린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해 삼촌과 함께 남쪽 지방에 외직 근무를 하는 부친에게 인사를 올리려고 갔다.
② 그는 어느 시골집에 묵게 되었는데 삼촌은 피곤해 잠에 빠졌으나 그는 취흥을 못 이겨 뜰을 거닐었다.
③ 뒤뜰을 돌아가다가 여자의 시 읊는 소리에 이끌려 처녀의 방으로 다가가 처녀에게 뒷날 반드시 첩으로 맞아 들이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 동침했다.
④ 그는 처녀가 써 준 이별시를 품에 넣고 부친의 부임지에 이르렀지만 부친의 엄한 성품 탓에 있었던 일을 아뢰지 못해 결국 그녀와의 약속을 저버렸다.
⑤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집에 들렀더니 그녀는 이미 자살한 뒤였다.
⑥ 그는 삼촌의 엄한 책망을 듣고 병이 심해져서 결국 죽고 말았다.
서울의 나이 어린 한 선비가 진사시에 합격해 삼촌과 함께 임지에 계신 부친께 영광을 아뢰러 가다가 시골집에 묵는다. 그는 밤에 취흥을 이기지 못해 뜰을 거닌다. 그는 뒤뜰에서 들려오는 시 읊는 소리에 이끌려 처녀가 자는 방까지 발길이 옮겨져 결국 그녀와 인연을 맺는다. 그는 그녀를 소실로 맞아들이기로 굳게 약속하고 부친의 임지에 이르렀으나, 부친의 엄한 성품 때문에 망설이다가 그녀를 맞겠다던 약속 기한을 넘기고 만 것이다.
그는 상경하는 길에 그 시골집에 다시 들렀으나 그녀는 언약을 져버린 그를 원망하다가 자결하고 말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두 주인공은 자신의 행각 해결을 모색하거나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은 가졌지만 해결을 시도하지 못한 소극적 인물이다.
반면에 권생은 편법이지만 자신이 벌여놓은 행각을 해결하여 한 여성의 좌절된 삶을 구제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해결책을 모색해 결국 성사시킨 적극적 면모를 발견한다. 그러므로 권생은 위 두 인물과는 다른 유형으로 부각된다.
(권진사)
작중 권진사는 다른 야담집에 등장하는 몰락 양반과는 달리 살림살이가 넉넉하고 성품이 준엄하다. 그리고 그는 집안을 법도 있게 다스리며 경제력을 지닌 인물이다. 권진사는 아들 친구 놈들이 주선한 술자리에서 기이한 인연을 고담으로 듣는 동안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 사건의 주인공이 자신의 외아들 권생이라는 예측은 전혀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아들의 친구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듣고 새로운 국면에 접한다. 권진사는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정색을 하고 아들 친구 놈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대청마루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작두를 대령하라고 고함친다. 서두에 소개된 그의 모진 성격이 급기야 표출된다. 평소 그의 엄준한 성품을 익히 알고 있는 온 집안 식구는 누구의 죄를 다스리는가에 대해 주목하는데, 그 장본인이 권생이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는 작두판 위에 아들의 목을 올려놓으라고 명한다. 이어, 권생에게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 제 멋대로 첩을 삼은 패륜아를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머리를 베어 후환을 없애는 게 좋겠다고 꾸짖고 작두질을 명한다. 이에 부인과 며느리가 피를 흘리며 아들의 비리를 용서해 달라고 간곡히 청한다. 며느리의 변호는 권진사의 노기를 다소 늦추는데 기여한다.
연소한 사람이 방자히 행동하여 죄를 죄었사오나, 아버님의 피붙이는 단지 이뿐인데, 어찌 잔혹한 일을 행 하시어 조상의 제사 모시는 것을 단번에 끊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저를 대신 죽게 해 주소서.
이는 결국 권진사와 며느리의 대결 구도를 형성하여 며느리의 질투를 좌절시키는 것으로 종결된다. 이러한 며느리의 급박한 심정에서 내뱉은 말은 권진사에게 또 다른 해결책을 제공한다. 사건이 이렇게 전개되는 동안 권진사는 이미 며느리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게 되었고 이야기의 초점을 며느리의 투기를 굴복시키기 위한 것으로 모아지게 유도한다.
네 성질이 거세고 투기가 심하여 소실을 결코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정이 날마다 시끄러울 것이다.……이런 망조는 미리 제거하는 것이 현명하다.
권진사는 이렇게 함으로써 그녀를 아들의 후실로 맞아들이되, 며느리가 절대 투기를 부리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아낸다. 권진사는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가부장의 권위를 유지시키는 한편 권생의 비리도 동시에 해결한다.
권진사는 극적 연출은 식구들의 시선을 돌리게 하는 한편 며느리의 투기를 자연스럽게 굴복시킨다. 그러면서 자신의 위상에는 전혀 손상을 입지 않는다. 그러므로 권진사는 엄격한 가풍을 고수하고 가부장 권위를 유지하는 깐깐하고 철두철미한 인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며느리)
작중의 며느리는 남편이 시퍼런 작두의 칼날 아래 목이 놓인 절박한 상황에서 남편에 대한 애정이 첩과 공유되기를 강요당한다. 그녀에게 투기는 남편에 대한 애정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여성의 본능인 투기마저 포기하며 남편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을 토로한다.
그녀는 권진사에게 비록 남편이 죽을 만한 죄를 지었지만, 두 가지 명분상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변론한다. 첫째는 남편이 대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조상 제사를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외아들 권생이 가문을 이어가며 번성시켜야 할 주요 인물임을 강조하여 권진사의 마음을 돌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다음으로 그녀가 제시한 조상 제사를 받드는 문제는 당대 사회에서 부녀자들이 시댁에서 맡은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제수 준비에 있어 청결히 함은 물론 몸가짐도 단정히 하여 매사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녀는 그것을 대행할 인물이 권생이란 점을 거듭 강조한다.
이상 유교 사회의 규범에 의해 철저히 교육된 그녀의 의식 세계가 극적인 상황에서 이처럼 표현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녀의 투기는 이미 서두에서 복선으로 제시된 바 있다. 권진사도 우려했을 정도다. 그녀는 남편을 위기의 사태에서 구출하기 위해 한 여인의 본성인 투기마저 버리기를 요구 당했다.
이어 그녀는 이를 문서화하여 남기기를 강요당한다. 그녀는 이후,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투기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한다. 그녀의 인물 형상은 기존 사회 통념에 의해 자신의 본능과 감정을 억제 당한 유형이다.
(권생 친구)
권생의 친구는 권생의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권생의 첫째 난관 통과에 지대한 공을 세운다. 그는 권진사와 자신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계책을 꾸민다.
“자네가 귀가한 며칠 후 내가 주연을 베풀고 친구를 청할 테니, 자네는 그 다음에 자리를 마련하고 우리를 청하게.”
그는 이유 없이 권진사와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술자리에서 그와 만나고자 계획한다. 그가 정식으로 권생을 초대하게 되었으니, 권생도 친구들을 초대해 주연을 가질 명분이 서게 만든다. 이에 권생은 부친에게 친구들을 초대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다. 이로써 그는 권진사와 자연스럽게 대면한다.
그는 술자리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권진사의 내심을 은밀히 살펴 ‘고담’으로 권생의 행각을 들려준다. 이어 그는 권진사의 심리 상태를 재확인하는데, 이 과정에 드러난 그의 치밀한 대화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차)
【문】권진사께서 그 지경에 이르렀다면 어찌 할 것이며, 이미 가까이 했다면 어찌 하겠는가?
【답】․기왕 동침했으면 데리고 살아야 한다.
․버려서 악을 쌓을 수 없다.
(2차)
【문】권진사께서는 그런 경우에도 결코 인연을 맺지 않을 것이다.
【답】․규방에 간 것은 본의가 아니고, 속임을 당한 것이다.
․젊은 사람이 미색에 혈기가 동함을 당연하다.
․양반 집안의 딸이 그런 일을 한 것은 사정과 처지가 딱한 것이다.
․버림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
(3차)
【문】인정 사리가 과연 그렇겠는가?
【답】․여부가 없다.
․그래야 한다.
․사람이 야박해서는 안 된다.
친구는 권진사에게 권생의 비리를 간접적으로 전해 놓고, 세 차례에 걸친 심문을 거쳐 권진사가 이 사건의 당위성을 스스로 인정하도록 유도한다. 이어 그는 사건의 앞뒤를 구체적으로 털어놓는다. 권진사는 아들 놈 친구의 유도 심문에 말려들어 기이한 인연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답변한다. 그제야 그는 권진사께서 그 일이 사리에 합당함을 거듭 말씀했으니, 권생의 죄를 면하게 해달라고 웃으며 아뢴다. 이로써 그는 그에게 맡겨진 소임을 다한다.
그는 뛰어난 계략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권진사와 자연스러운 대면을 술자리를 빌어 해결했으며, 권생의 행각을 고담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권생의 행각은 부득이한 행위였음을 권지사로 하여금 스스로 인정하게 유도한다.
권생의 친구는 권생의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 계책을 썼다. 그는 기존 가부장의 권위에 직접 도전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권진사의 입을 봉쇄했고, 새로운 대처안을 구상하도록 조처했다.
(권진사 부인)
권진사 부인의 역할은 돋보이지 않는다. 권진사가 대청에서 모두 물러가라고 불호령을 내리자, 부인은 그 위험한 지경에서 피하는 정도이다. 부인은 권진사의 가부장 권위에 철저히 순종하는데 길들여진 여인이다.
이상에서 표출된 인물 형상을 도표로 요약하기로 한다.
난관에 직면한 인물 형상
(A) 소복녀 ―――가문(개가를 용납하지 않는 기존 가치관)…(개가) (B) 권생 ―――권진사(엄준한 가부장의 권위)…(권생의 비행) (C) 권생 ―――아내(투기가 심함)…(아내의 용납) |
난관을 해결해 준 인물 형상
구분 | 인 물 | 난 관 | 대 책 | 수 단 | 결 과 |
(A) | 오라버니 | 가문․사회 | 편법 | 가문의 눈길 피함 | 권생과 누이동생의 결합을 성취시킴 |
(B) | 친구 | 가부장의 권위 | 지혜 | 술자리․고담 | 아들의 비행을 전달함 |
(C) | 권진사 | 며느리의 질투 | 기지 | 작두․성격표출 | ‘금수지맹’을 받고 며느리의 투기를 안 부리겠다는 다짐받음 |
3. 두 가치관의 거리 좁히기
위에서 검토한 인물형상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이 어떠한 양상으로 기존 가치관에 접근하며, 기존 가치관이 이에 대응하여 어떤 방식으로 수용하는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와 함께 이 과정에 쓰인 소도구도 함께 정리한다. 당대 현실은 체면과 전통을 고수하려는 축과 이에 맞서 변화를 모색하는 축이 상호 대립해 가는 과정에 있었다. 본 작품은 이러한 시대 분위기의 반영이 충실한 편이다.
새로운 가치관의 접근 양상
이는 위의 (A)와 (B)에 해당된다. 먼저 (A)의 경우, 소복녀를 중심으로 하여 그녀의 인간적 삶을 모색한 오라버니에 의해 기존의 가치관에 접근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라버니는 누이동생의 개가를 문중에 직접 제시하는 과감한 인물이었으나, 그 제안은 여지없이 묵살된다. 따라서 그는 정면으로 기존의 고정 관념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편법으로 누이동생과 권생의 결합을 이루어 줌으로써 그의 역할은 종결된다.
다음 (B)의 경우, 소복녀 오라버니에 의해 창안된 새 가치관은 권생에게 전달된다. 권생도 (A)와 같이, 그것을 받아 정면으로 전달하지 못하지만 친구를 통해 간접 전달한다. 신흥 가치관이 기존 통념과 가치관에 직접 대응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 전달 경로를 정리하면, 소복녀 오라버니에 의해 각성된 가치관이 권생에게 넘겨졌고, 이어 권생 친구를 통해 권진사에게 간접 전달된 것이다.
구 가치관의 수용 양상
권진사는 아들놈 친구의 교묘한 수법에 의해 가부장의 권위에 도전해 오는 새 가치관에 의해 자신의 권위에 도전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외면으로 전혀 동요되지 않으면서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다. 그는 이미 아들놈의 친구가 들려주는 고담의 당위성을 여러 번 인정한 바 있다. 여기서 그는 한 개체의 인간성이 절대 규범에 의해 지배되어선 안 된다는 긍정의 의미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남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인 만큼 신중히 대처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권위에 정면 도전하는 신흥 가치관의 대처 방안을 모색해야만 하는데, 공인된 성깔로 위기를 극복한다.
그는 소도구인 작도를 동원하여 권생의 목을 거기에 올려놓게 함으로써 신․구치관의 대결 구도를 주목하는 시선들에게 그의 가부장 권위가 여전히 견고함을 확인시킨다. 그리고 그는 이 기회에 늘 문제의 소지가 있던 며느리의 질투까지 완전히 굴복시켜 소복녀의 인간적 호소를 무리 없이 수용한다.
이로써 그에게 전달된 신 가치관이 가부장 권위를 내세워 자기방어를 유지하면서도 이면적으로 수긍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측근을 통해 간접 전달된 새 가치관이 가부장 권위 체계에 자기 방어 형태를 취하는 동시에 수용된 것이다.
접근 양상에 동원된 소도구
(A)의 경우, 소복녀 오라버니는 가문의 눈길을 피해 다른 지방으로 옮겨왔고, 비가 내렸기 때문에 권생을 만난다. 그는 권생에게 속임수를 쓴다. 자신이 사는 곳과 가문 등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권생의 신분을 충분히 확인한다. 이어 권생으로 하여금 술에 취하게 하여 누이동생과 결합을 주선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B)의 경우, 권생의 친구가 권진사와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술자리를 벌인 것이다. 그는 합리적 계획을 구상했고, 이어 권생의 비행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고담을 사용한다. 이는 권진사로 하여금 그 사건의 당위성을 스스로 인정하게 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한다.
(C)의 경우는 긴장감과 현장감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작도라는 소도구를 동원하여 보는 이들을 두렵게 한다. 이는 결국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며느리의 투기를 포기시키는 장치로 작용된다. 아들놈의 목을 베려고 대령시킨 작도가 며느리의 투기를 포기시키는 전시 효과의 방편으로 역이용된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신 가치관이 구 가치관에 접근하는데 쓰인 소도구는 속임수․술자리․고담이다. 구 가치관이 이를 수용하는데 쓰인 소도구는 작도였다. 이것은 기존의 가치관에 직접 전달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는데 주요한 기능을 하였다. 위기 극복 방편의 소도구로 제 기능을 발휘한 것이다.
이상에서 한 여인의 인간성을 긍정하는 새 가치관이 기존가치관에 간접적이면서 측근을 통해 전달되고 해결되어지는 과정을 보았다. 이러한 도전을 받은 구 가치관은 이를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면서 이면적으로 수긍하는 과정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접근과 수용의 과정에서 쓰인 소도구는 우회적 접근에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확인했다.
위에서 논의한 바에 의하면 아직 기존의 가치관이 새로운 가치관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이는 근대로 이행해 가는 과정에 드러난 일면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기존 가치관은 점차 도전을 받고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에 드러난 것은 그러한 도정의 한 양상이었다.
4. 마무리
위에서 살펴본 인물 형상은 기존 규범 체제의 구속을 거부하고 한 여인의 인간적 삶을 찾아 주는데 적극적인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논의한 인물 형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복녀 오라버니 : 저항적이고 적극적 사고를 지니고 중세의 규범 질서를 이탈하고 거부한 인간유형.
소복녀 : 기존 사회의 통념을 거부한 오라버니의 창안에 음성적으로 동조하여 인간적 삶을 찾은 여성형.
권생 : 가부장 권위에 우회적 접근을 시도한 다소 적극적 인물.
권진사 : 전형적 가부장 권위를 지녔지만 내심에 인간미를 지닌 인물.
며느리 : 유교적 질서관이 투철하며 투기가 심하나, 그것마저 가부장 권위에 억압 당 한 여인.
권생 친구 : 엄격한 가부장 권위에 우회적 접근을 감행한 재치 있는 인간.
권진사 부인 : 유교적 고정 관념에 적응되고 순종된 여인.
이러한 인물 형상을 통해, 소복녀의 인간적 삶을 찾아 주기 위해 편법으로 개가를 주선한 오라버니는 역동하는 시대의 새로운 인간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인간성을 긍정한 새 가치관이 권생에게 넘겨졌고, 그 다음 권생 친구를 통해 기존 가치관을 고수하는 권진사에게 우회적으로 전달되었다. 권진사에게 접수된 신 가치관은 권진사의 수완으로 해결되었다. 권진사는 자신의 권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이를 수긍하는 양면의 자세를 취했다.
이처럼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작중 인물은 현실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속임수․술자리․고담․작두 등의 소도구를 이용하여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 이로써 새 가치관이 기존 가치관에 점진적으로 접근함에 따라 구 가치관도 이에 적절히 대응했음을 파악했다.
신․구 가치관이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접근․수용에 응해야 했던 것은 과도기의 특징이다. 이러한 과정과 진통을 거쳐 두 가치관은 거리 좁히기를 모색한다. 이 거리 좁히기는 아주 짧은 시간에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양반 집안 출신 소복녀의 개가는 허용하지 않으면서 양반들의 축첩 행위는 허용했던 당대의 모순은 결국 남성 대 여성의 대결 구도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논의에서 다루기로 한다.
출처 : 이원걸, 「漢文短篇 古談의 新舊 價値觀 接近 受容 樣相」, [安東漢文學論集] 第1輯, 安東漢文學會, 1990.
이원걸, [조선후기 야담의 풍경, 도서출판 파미르,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