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29.
선거법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패스트트랙에 오른 지 8개월만이다. 당초 원안은 현행 지역구 의석(253석)을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의석을 75석으로 늘리기로 했다. 지역구에서 1명만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개정안은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다만 기존 47석의 비례대표 중 30석을 각 당의 지역구 당선자 수와 정당 지지율 등에 따라 배분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했다. 이 과정에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배제되고 더불어민주당과 4개의 군소정당이 힘을 더한 이른바 '4+1(민주당·바른미래당 통합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모든 논의를 주도했다.
선거법개정안 통과 과정은 제1야당의 정치력 부재를 그대로 보여줬다. 512조 3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역시 이들 4+1 협의체에 의해 합의되어 지난 10일 통과되었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108석(전체 295석중 36.61%)을 갖고 있지만 예산안 심의과정 및 주요 입법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사실 2019년 한국당의 의정활동 중에 기억나는 장면이 거의 없다. 4월 국회선진화법을 어기면서 패스트트랙을 반대했던 모습과 황교안 대표의 뜬금없는 단식 등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지난 10월 조국 법무부장관의 사퇴 국면과 최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의 지지도는 민주당을 앞서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및 외교정책의 실패에도 국민들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2017년 2월 박근혜 정부의 탄핵 정국에서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했지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을 담지 못한 고루한 정당, 그대로다.
민주당은 군소정당의 힘을 빌려 민주당 뜻대로 할 수 있는 4+1협의체 구도를 만들었다. 민주당의 의석수는 129석(43.73%). 야당이 반대하면 단독으로 법안 통과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비를 거는 한국당을 그냥 배제했다. 4+1협의체를 통해 2020년 예산안과 선거법개정안을 이미 통과시켰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의 통과를 목전에 앞두고 있다. 4+1협의체에서는 과거 존재감이 없었던 원내 비교섭단체의 영향력이 커진 것이 특징이다. 일례로 국회 6석(2.03%)을 가진 정의당은 선거법 개정과정에서는 지역구의원 축소, 비례대표 확대, 연동형 비례율 제정 등에서 목소리를 높여 왔다. 전통적인 양당체제의 제1야당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그동안 국내 정당정치에서 소외돼왔던 3당, 4당, 5당의 힘이 커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보자면 4+1협의체는 한국형 다당제의 실험인 셈이다.
4+1협의체는 유럽의 다당제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의원내각제를 기반으로, 의회 다수당을 중심으로 총리를 배출하고 내각을 구성해왔다. 그 과정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한 경우에는 다른 정당과의 연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다. 집권당이 과반수를 얻지 못한 경우, 의원 빼오기나 정당 간의 합당을 통해 권력을 유지해왔다. 두 번째 차이는 유럽의 각 정당들은 서로 구별되는 선명한 가치들을 내걸고 있다는 점이다. 정당들의 가치와 이념에 따른 유권자의 투표가 이뤄지기 때문에 선거 이후 정당간의 합당은 표심을 배반하는 행위가 된다. 그렇기에 양보와 타협에 바탕을 둔 연정의 전통이 형성되었다.
4+1협의체가 내년에도 힘을 모으기는 쉽지않아 보인다. 내년 4·15 총선에서 협의체 참여정당들도 서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은 호남에서 민주당과의 대격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번 4+1협의체 경험은 향후 국내 정당정치가 다당제로 전환되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군소정당의 비례의석 확보에 청신호가 켜졌다. 집권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을 경우, 다른 정당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 제1야당은 이들의 독주를 어떻게 견제할지 등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0년에는 각 정당들이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책집단으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내년 총선에서는 지역감정이 아니라 선명한 정책과 가치로 서로 경쟁하길 바란다.
홍성철 /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