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기로운 노후생활 --
34년간 일하던 일터에서 나이 먹었다고 쫓겨나 1년간 월급만 타먹으며 빈둥거리며 지내는 생활이 몇 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서유석 씨의 노래 〈너 늙어봤냐〉를 시시때때로 읊조리며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
‘30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튕겨 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람들은 나를 백수라 부르지’라는 노래 가사가 나같은 퇴직 예정자 또는 퇴직자들의 심정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다.
반(半) 백수로 지내고 있지만 막걸리값이라도 충당하려고 시간 나는 대로 알바 뛰고 있다. 하루 일 나가면 14~15만 원씩 벌어오는, 비교적 고수익 알바를 뛰고 있다.
가까이 사시는 부모님께 자주 들러 밥도 해드리고 있다. 나의 부친은, 내가 해드리는 밥이 엄마가 해주시는 밥보다 더 맛있다고 평가하신다. 엄마가 고령으로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고 기력도 떨어지셔서 예전처럼 밥을 맛있게 못 하시니 나의 부친께서 식사 때마다 고생이 많으신데, 밥 잘하는 내가 들르기만을 학수고대하시는 모양이다. 내가 진주에서 유배살면서 요리를 배워둔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나는 거듭 강조하고 싶다. 남자들은 정말이지 요리를 배워두면 나중에 요긴하게 써먹을 수가 있고 노후생활에 두려움이 없게 된다. 따라서 남정네들은 시간 나는 대로 요리를 배울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기도 한다. 나의 모친께서 여러 가지 질병으로 수시로 병원에 가시는데, 특히 이빨에서 침이 끊임없이 나온다고 하여 논산의 여러 병원, 대전의 충남대병원에다가 서울 삼성병원까지 전국의 여러 병원을 가봤지만 차도가 없어서 나중에는 익산 원광대학교 치과대학 병원까지 가게 되었다. 이유미 교수가 원광대학교 치과대학 의사였는데 나는 이유미 교수를 명의라고 소개하고 싶다. 이유미 교수는 보통의 그저 그런 불친절하고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의사들과는 달리 환자인 나의 모친과 가족들에게 어쩜 그리 친절하고 알기 쉽게 조근조근 설명을 잘 해주는지 우리 가족들은 다 감동을 받았다. 환자들이 병원 가면 이것저것 검사를 하는 것이 흔한 일인데, 검사 결과가 이상이 없다면 대개의 의사들은 “이상 없으니 그리 알아요”라는 투로 아주 짤막하게 말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이유미 교수는 달랐다. 이유미 교수는 “어머니 이빨에서 물(침) 나오는 것은 나이 들어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사람이 늙으면 얼굴에 주름이 끼지요. 그런데 그걸 질병이라고 안 하잖아요. 어머니 증상도 그런 거예요. 나이 들어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이니 질병이 아닙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면 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물(침)이 나오면 뱉지 말고 삼키면 돼요. 물(침)이 안 나와서 병원 오는 사람보다 어머니처럼 물 나오는 분이 백 배는 더 나은 거예요. 불면 증세로 불편하시면 수면제 처방받아 드세요. 수면제가 나쁜 게 아니에요”라고 말해주었다. 적절하게 비유법을 써가며 다른 환자들 사례를 들어가며 친절하게, 알기 쉽게,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이유미 교수에게 나는 그만 홀딱 반해버렸다. 진료 잘하고 수술 잘한다고 명의가 아니다. 환자나 그 가족에게 알아듣기 쉽게 잘 설명해주는 의사가 명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의사가 자기딴에는 충분히 설명해주었다고 생각해도 환자나 가족이 잘 이해를 못하면 의사도 절반의 책임은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내 말이 틀렸나? 그런 점에서 원광대학교 치과병원 이유미 교수는 ‘현대판 화타 또는 편작’이라고 나는 감히 주장한다.
나도 요즘 자주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다리 근육 통증이 심해서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도수치료도 받아보고 주사도 맞아보고 소염진통제도 먹어보고 물리치료도 받는데 별 차도가 없어서 결국 대전에 있는 한의원 가서 추나치료를 받게 되었다.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나에게 “허리 협착증 같다”라고 하면서 일단 영상의학병원에 가서 CT.X레이를 찍어오라고 한다. MRI 찍으면 더 좋겠지만 비용이 비쌀테니 CT.X레이만 찍어오라고 한다. 한의원에서 시키는 대로 영상의학병원 가서 사진을 찍은 후 영상의학의사가 나의 CT.X레이 필름을 보여주며 뭔가 설명을 하는데 어려운 의학 용어를 써가며 설명을 하니 내가 잘 이해가 안 되어 “다시 설명 부탁합니다”라고 했더니 이 의사라는 자가 버럭 화를 내며 “그러니까 설명을 잘 들으셔야죠” 라고 질책하듯 내뱉는 게 아닌가. 이에 격분한 내가 “당신, 제대로 된 의사가 아닌 돌팔이로군. 친절하게 한번 더 설명해주면 되지, 어따 대고 노인네한테 싸가지 없이 지랄이여. 당신 말이야, 원광대학교병원 이유미 교수 똥이나 빨아먹으라구. 알겠어?”라고 퍼부어 주려다가 꾸욱 참았다.
그 의사가 보내준 필름하고 의견서를 전달받은 한의원 한의사가 나에게 허리 상태를 설명해준다. 퇴행성이 심하고 신경이 많이 눌렸다는 등의 어려운 이야기인데, 쉽게 말해 허리가 작살났다는 말이다. 허리가 작살났으니 다리가 아픈 것이라는 설명이다. 내가 진주에서 4년 전에도 허리가 작살난 적이 있었는데, 다시 허리 부상이 재발하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하다. 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달리기를 하면 허리에 충격이 가니 앞으로는 달리기 끊고 수영을 하라고 한의사는 말한다. 4년 전 진주에 있는 한의사도 나한테 똑같은 말을 했었다. 달리기 하지 말고 수영을 하라고. 이제 나는 마라톤하고 이별을 고해야 한단 말인가. 울고 싶어진다.
나의 가족들도 나한테 제발 마라톤 그만하고 수영하라고 강권하고 있다. 나는 지금 핀치에 몰렸다. 빠져나갈 구멍이 아직은 안 보인다. 수영장에서 나같은 늙은이가, 더군다나 똥배 나온 몸으로, 어슬렁거린다면 아줌마.할머니들이 옆에서 킥킥 웃어댈 텐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죽으면 죽었지 수영은 하기 싫다. 그런데 가족들은 내 하소연은 철저히 외면하고 수영만 강요하고 있다. 나는 어쩌란 말인가. 일단, 허리부터 고친 다음에 생각하자. 뭔가 방법이 있겠지.
며칠 전에는 부친하고 부친 친구분들을 모시고 서천 수산물특화시장에 가서 주꾸미를 먹고 왔다. 부친께서 초등학교 동창회 회장을 하신 지가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이제는 생존 회원이 몇 안 되니 이번 모임에서 남은 회비 다 써버리고 모임 해체를 선언하신다는 것이다.
이번 서천 나들이에 아버지하고 친구 두 분이 나오셨다. 차량 운전은 내가 맡았다. 아버지하고 친구분들 모시고 하는 여행도 나로서는 특별한 경험이다. 아버지가, 고령이시지만, 아직 바깥 나들이에는 지장 없을 정도로 건강이 그럭저럭 괜찮으시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작년 마라톤 칠마회 어르신들이 공동으로 쓴 『너, 아직도 뛰냐』라는 책 출판기념회에 나의 부친과 동갑이신 김진환 어르신도 참석하셨다고 하는데, 환갑 나이의 아들이 부친 김진환 어르신을 모시고 참석했다고 한다. 나도 환갑의 나이에 부친을 모시고 부친이 주관하시는 나들이 행사에 수행원으로 참석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내가 운전하는 차량에 올라타자마자 어르신들의 대화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코로나로 못 모이다가 3년 만에 모였구나”
“이제 (다 죽거나 병들어 꼼짝 못하고) 우리 셋만 남았구나”
“우리가 환갑잔치한 지가 엊그제 같은디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70대 중반 이후에 친구들이 많이 죽었지”
“너희 집사람은 어떠시냐?”
“내 집사람은 치매가 심해서 주간보호센터 보내고 있다. 전혀 기억을 못햐. 내가 밥해주고 집사람 병원 데리고 다닌다. 내 아내는 나 아녔으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그려, 네가 많이 욕보는구나”
“나도 집사람이 치매가 있어서 내가 애로가 많다”
“친구 아무개 녀석은 며칠 전 전화했더니 목소리가 다 죽어가더구나. 그 녀석 재산은 논산에서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많은디 지금까지 친구들에게 막걸리 한번 산 적이 없지. 예전에 활발하게 모임할 때도 꼭 비용을 뿜빠이하자고 주장한 놈 아니냐. 그렇게 돈 많은 녀석이. 그 녀석 그렇게 지독하게 살더니 돈 한 푼 써보지도 못하고 죽게 됐구나”
“우리 친구 중에 아무개가 제일 건강해서 제일 오래 살 줄 알었는디, 그렇게 먼저 가게 될 줄이야”
“오늘 회비 다 쓰고 몇만 원 남으면 시장에서 반찬거리 사서 셋이 똑같이 나누자”
“아녀. 그러지 마. 오늘 남 회장 자제분이 일부러 시간 내서 운전해주는디 기름값으로 줘라”
“아녀. 그러지 마. 반찬 사서 셋이 나눌 테니 그리 알어”
“남 회장이 오랫동안 동창회 회장 하느라 고생 많았다”
“혹시 말이여. 만약 나중에 누군가가 우리 회비 가지고 시비를 걸면 내가 증인 신청을 할 테니 너희 둘이 증인을 서 줘”
“에이, 그럴 일 없을겨”
여기서 결국 나도 참전했다. “어르신들, 동창회는 오늘 끝나더라도 종종 세 분이 서천으로 나들이 하시면 좋겠군요. 제가 그때도 운전할 테니 저를 꼭 불러주세요. 올 가을에 전어 잡수러 서천 나들이 또 하시죠”
“아, 그려. 그려. 고맙네. 꼭 부를께”
서천 수산물특화시장에서 주꾸미.광어회 실컷 먹고 남은 회비 몇만 원으로 반건조식품인 박대를 사서 세 분이 공평하게 몇 마리씩 나누는 것으로 회비 정리를 깔끔하게 했다.
부친 친구분들하고 하루 동행하면서 나는 몇십 년 후의 인생을 미리 경험한 셈이다. 나는 이렇게 부친과 같이 늙어가면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슬기로운 노후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2023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