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4월 23일
與 예외적 압승 아닌 구조적 변동… 진보 우위 ‘정치 재편성’ 본격화
민주당 ‘20대 총선-대선-지방선거-21대 총선’ 4연속 승리로 유권자 지지연합 재구성 확인… ‘1.5정당 체제’ 장기화 노려
‘親文 vs 非文’ 갈등하고 강력한 대안 야당 나오면 ‘진보 장기 집권’ 도루묵 가능성… 주류세력 교체도 未完에 그칠 것
4·15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압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 승리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전국 규모 선거에서 네 번 연속(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1대 총선) 승리한 첫 정당이 됐다. 이번 총선이 던지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집권 후반기 치러진 선거에서의 유례없는 여당의 압승을 ‘예외적 현상’으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정치 재편성(political realignment)’이라는 구조적 변동으로 봐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취임 전부터 공언해온 ‘주류 세력 교체’가 잠재적 형태로 이뤄진 것인지 혹은 완성된 형태를 보이는 것인지와도 관련이 있다. 분명한 것은 여당이 코로나 사태로 이득을 봤다는 점을 넘어 유권자 지지 연합의 변화를 확인했고, 정치 재편성을 동반하는 구조적 정치 변동을 일으켰으며, 이에 따른 대한민국 주류세력 교체의 단초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집권세력이 국정 운영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강력한 대안 정당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면 진보 우위의 정치 재편성이 ‘해체(dealignment)’될 수도 있다.
◇ 여당의 예외적 압승이라는 시각
여당의 압승을 예외적인 현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정권 심판론’을 삼켜 버렸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유권자로 하여금 집권 후반기에 치러지는 총선을 회고적(retrospective) 투표가 아닌 전망적(prospective) 투표로 흐름을 바꾸게 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코로나 사태가 몰고 온 미증유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정부의 지난 3년간 평가보다는 국난 극복을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주게 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코로나19가 팬데믹 단계에 이르고 미국과 유럽 선진국의 방역 실패가 두드러지면서 한국의 초기 방역 실패가 가려지고 방역 모범 국가로 재평가받게 된 건 사실이다. 선거 일주일 전에 실시한 한국갤럽의 4월 2주차(7∼8일) 조사에서 문 대통령 국정 운영 긍정 평가는 57%, 부정 평가는 35%였는데 긍정 평가의 가장 많은 이유가 ‘코로나19 대처’(59%)였다. 이 같은 흐름은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이어졌다.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안정론이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견제론을 눌렀다. 더욱이 미래통합당 지도부의 공천 번복 파동, 선거 막판에 불거진 후보들의 막말,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말 바꾸기 등으로 중도층이 통합당을 외면했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결이 보인다. 전국 253개 지역구에서 얻은 정당별 득표율이 민주당 49.9%, 통합당 41.5%로 8.4%포인트 차에 불과했지만, 의석수는 민주당 163석, 통합당 84석으로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박빙의 승부였더라도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승자 독식’ 소선거구제 때문이었다. 비례대표 득표율에서도 미래한국당(33.8%)이 더불어시민당(33.4%)을 간발의 차이로 앞섰다. 즉 민주당 지역구 압승은 예외적 현상이며, 일종의 착시 효과라는 것이다.
◇ 구조적인 정치 변동으로 보는 시각
이 같은 앞의 분석과는 달리 이번 선거 결과를 ‘정치 재편성’의 관점, 즉 구조적인 정치 변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진보 정당인 민주당의 유례를 찾기 힘든 4연속 선거 승리는 기존의 ‘보수·진보 양당 체제’가 무너지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진보 좌파 1.5 정당 체제’의 구축을 알린다는 시각이다. 국회에서 민주당이 차지하는 의석이 ‘1’이라면 그 외 정당들이 모두 합쳐도 ‘0.5’밖에 되지 않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키(V O Key)에 따르면 미국 정치사에서 선거연합이 주기적으로 재구성된다. 그는 정치 재편성이 일어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정당 간에 입장을 달리하는 중요한 쟁점의 등장으로 이념적인 분극화가 초래되고, 이에 따라 중요 정당의 지지 기반 또는 유권자 지지 연합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며, 이러한 지지기반의 이동으로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에서 새로운 다수당이 등장한다.” 키는 이런 변화를 가져오는 선거를 ‘재편성 선거(realigning election)’ 혹은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라고 규정했고, 통상 재편성이 일어나면 30년 정도 지속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1932년 미국 대선에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뉴딜 정책을 제시한 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 후보가 승리한 후 ‘민주당 우위의 정당 체제’가 1960년대까지 계속됐다.
‘박근혜 탄핵’으로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적폐청산·한반도평화체제 구축 등 정책들로 인해 우리 사회엔 보수·진보 간의 이념적 분극화가 발생했다. 게다가 오랫동안 보수 성향을 보였던 50대가 진보 세례를 받은 세력으로 교체되면서 유권자 지지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했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에서 이런 경향이 드러났다. 이번 총선에서 50대나 60대의 사전 투표율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압승한 것은 30∼40대뿐 아니라 50∼60대에서도 상당한 지지를 얻었기 때문으로 읽힌다. 이는 곧 유권자 지지 연합의 변화이며, 정치 재편성을 동반하는 구조적인 정치 변동이자, 주류세력 교체의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 文의 국정운영과 정치권의 미래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에도 불구, 21대 총선을 통해 주류세력 교체나 정치 재편성의 단초가 마련된 건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정권은 주류세력 교체와 체제 변혁을 돌이킬 수 없는 목표로 삼고 출범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2018년 8월 5일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국 순회 연설회에서 “2020년 압도적 총선 승리와 2022년 재집권을 통해 앞으로 20∼30년은 집권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힌 적이 있다. 이후 여권 내에서 ‘진보 장기집권 플랜’이 쏟아져나왔고 50년 집권론, 100년 집권론도 나왔다. 총선 승리 후 집권세력의 국정 운영 초점이 주류세력 교체 완성과 체제 변혁에 맞춰질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진보 진영의 장기집권이 가능해진 걸까. 이를 예측하는 것은 아직은 이르다. 이는 2년 앞으로 다가올 2022년 대선에서 판명될 것으로 보인다.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향후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차기 대선에서 또다시 승리하면 이번 총선에서 시작된 정치 재편성과 주류세력 교체가 완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집권당이 새로운 정책 의제를 제시하지 못해 국정 운영에 실패하면 ‘정치 재편성’은 언제든 ‘정치 편성 해체’로 이행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1930년대에 민주당 주도의 뉴딜 정당체제가 형성됐지만 1960년대에 들어 인종 문제 등 새로운 쟁점이 등장하면서 이념적 분극화에 따른 지지 기반의 변화가 생겼고 결국 민주당 우위 체제의 약화로 이어졌다. 우리의 경우도 집권세력이 새로운 정책 의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청와대·운동권 출신 친문(親文) 세력과 이낙연 전 총리 등 비문(非文) 세력 간의 권력투쟁이 첨예화하면 50대와 중도층 및 호남 지지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게다가 보수 야권이 새로운 인물과 정책으로 무장해 강력한 대안세력으로 등장한다면 이번 총선으로 만들어진 진보 우위 체제가 와해하고 정치적 재편성의 동력은 소멸할 수도 있다.
김형준 / 명지대 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문화일보
■ 세줄 요약
與의 예외적 압승이란 시각 : ‘코로나19 사태’가 ‘정권 심판론’을 삼키고 국난 극복에 힘을 싣게 했다는 시각임. 미래통합당이 더불어민주당에 비해 정당득표율 등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의석수에서 참패했으므로 민주당 압승은 예외적 현상이라는 것.
구조적인 정치 변동이라는 시각 : 이에 대해 민주당의 유례없는 4연속 선거 승리는 유권자 지지 연합의 변화이며 구조적인 정치 재편성이자 주류세력 교체의 과정이라는 시각도 설득력 있게 나옴. 양당 체제가 무너지고 ‘진보 1.5 정당 체제’가 본격화한다는 것.
與 국정운영과 정치권의 미래 : 문재인 정권의 국정 운영은 주류세력 교체 완성과 체제 변혁에 맞춰질 것으로 전망됨. 그러나 국정 운영에 실패하고 강력한 대안 야당이 등장하면 진보 우위 체제는 다시 와해하고 정치적 재편성의 동력은 소멸하게 될 것.
■ 용어 설명
‘정치 재편성’이란 선거를 통해 정당의 이념, 지도자, 지역·인구 기반, 유권자 지지 연합 등 정치 제도와 규범에 변화가 생기는 것. 정치 재편성이 일어나면 수십 년 지속하는 새 정치 구조가 만들어짐.
‘1.5정당 체제’란 지배 정당의 총 의석이 1이고 그 외 다른 정당들의 모든 의석을 합해도 0.5밖에 되지 않는 체제. 로버트 스칼라피노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전후 일본의 정당체제를 연구하면서 밝힌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