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포산)곽씨의 족보이야기
시조
현풍(포산)곽씨의 시조는 郭鏡(곽경)으로 처음 이름은 若魯(약로), 字(자)는 魯以(노이), 號(호)는 巖谷(암곡), 또는 撚喪(초수)이며, 謚號(시호)는 正懿(정의)이시다.
(宋徽宗政和七年丁酉誕生.高麗明宗九年己亥十月十五日에逝去)
1117년(고려 예종 12년)에 誕生, 1179년(고려 명종 9년)에 逝去
시조할아버지는 본래 중국 宋(송)나라 분으로 文淵閣(문연각) 翰林學士(한림학사)가 되시었고, 고려平章事(평장사), 종1품 門하侍中(문하시중)을 지내셨고, 金紫光祿大夫(금자광록대부)에 올라 苞山君(포산군)에 봉해지셨다.
그런데 시조 郭鏡(곽경)에 관한 사정을 알 수 없어 舊世譜(구세보)에는 생존연대 등의 기록을 빼놓았었다.
그러던 것을 1930년 시조의 墓(묘)에서 나온 誌石(지석)이 발견되었고 거기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게 되었다.그 내용에 의하면 그는 중국 關西(관서)의 弘農(홍농)사람이라는 것과 고려 명종 9년에 세상을 떠신 사실 등이 추가로 밝혀졌다. 苞山郭氏 중에는 한때 本貫(본관)을 善山(선산), 海美(해미), 江陵(강릉)들 別貫(별관)을 써온 때가 있었으나 그들의 族譜(족보) 첫머리에 으레 苞山郭氏(시조 郭鏡)의 후예라 써왔기에 1976년『丙辰大同譜』(병진대동보)때 大宗會 議決로 본관을 苞山으로 통일 하였다.
苞山郭氏 후손들은 시조 苞山君의 봉호(封號)를 소중히 여겨 族譜의 表題(표제)나 碑銘(비명)의 題面(제면)등에는 대체로 苞山郭氏라 쓰였었다. 따라서 종친회의 모든 공식행사는 '포산(현풍)곽씨' 라고 표기를 하였었는데, 이는 시조 苞山君의 봉호(封號)를 소중히 여긴 이유이다.
현풍곽씨 대종회에서는 1995년 3월 본관 현풍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됨에, 본향화수회의 위상을 대폭 격상시켰는데, 2005년 대구화수회는 本鄕大宗會로 그 명칭을 바꾸었고, 본관명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2006년부터 공식적으로 玄風郭氏 또는 玄風(苞山)郭氏로 고쳐 칭하고 있다.
시조단소는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무건리에 있으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1981년 건립된 대덕사는 2006년 새로이 중건되어, 매년 양력 5월 첫째 일요일 향사(享祀)를 지내고 있다.
한편 2005년부터 매년 4월 본향 현풍 소례에서 전국의 일족들의 단합을 위해 한마음체육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하고 있다. 족보간행 : 丁亥譜(선조20년.1587) 癸亥譜(영조19년.1743년) 甲子譜(1924) 丙辰譜(1976년)
현풍(포산)곽씨의 본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성씨가 점차 확대되면서 같은 성씨라 하더라도 계통에 달라, 그 근본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려웠으므로 동족(同族)여부를 가리기 위해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된것이 본관(本貫)이다. 본적(本籍)이란 뜻(本貫鄕籍)으로 사용됨.
이는 시조(始祖)나 중시조(中始祖)의 출신지 혹은 정착세거지를 근거로 호칭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봉군(封君)칭호를 따라 정하는 경우와 임금이 공신이나 귀화인들에게 특별히 하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사관(賜貫)이라 한다.
현풍곽씨는 경(鏡)자 할아버지가 苞山君임에 따라 後자에 속한다
아래 해미곽, 봉산곽, 선산곽씨는 시조가 곽경의 후손으로 각각 분적하였었으나 1976년 포산(현풍)으로 다시 합본되었다.
苞山은 본래 신라의 推良火縣(추양화현)인데 경덕왕이 玄驍(현효)로 고쳐 火旺郡(화왕군)의 嶺縣(영현)으로 만들었고, 고려초에 지금의 地名(지명)인 玄風으로 고쳤다.
현종때 密城郡(밀성군)에 소속되었고, 공양왕은 監務(감무)를 두었으며 조선조에 와서는 縣監(현감)으로 고쳤다. 1895년 昌寧(창녕)에 소속되었다가 복구, 郡이 되었고, 1914년에는 達城郡(달성군)에 병합되었다.
1995년 3월 1일에는 (달성군)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세거지
始祖 郭鏡 이래 고려말까지 11세 전후에 걸쳐 開城(개성)을 중심으로 京畿 일원에 散居(산거) 하였다.
조선초부터 宗派(종파)인 5세 郭基正(곽기정)의 후손들은 中部. 湖南. 西北지역으로 世居地를 개척하였고, 次孫(차손)인 5세 郭漢正(곽한정)의 후손들은 貫鄕地(관향지)인 玄風을 중심으로 영남일대에 世居地를 확대함으로써 苞山郭氏를 크게 畿湖系(기호계)와 嶺南系(영남계)로 나뉘게 되었다.
『丙辰大同譜』(병진대동보)에 나타난 玄風郭氏(현풍곽씨)의 구성을 보면 畿湖系 45派, 嶺南系 33派로 되어있다.
畿湖系는 주로 京畿道 利川. 坡州. 始興, 黃海道 長淵. 全羅道 任實의 酒泉. 井邑. 靈岩. 務安, 忠淸道 錦山. 報恩. 淸州, 慶尙道 奉化. 尙州. 陜川 등지에 世居 하였으며, 嶺南系는 慶尙道 玄風. 高靈. 永川. 淸道. 昌寧. 昌原. 南海(西面), 全羅道 錦山(南一面). 珍島(郡內面). 完州, 黃海道 鳳山(楚臥面), 平安道 龍岡(多美面) 등지에 世居 하였다.
오늘날 代表的인 集姓村(집성촌)이 되고 있는 大邱廣域市 達城郡 玄風面 大里 率禮(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대리 소례마을은 12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으며, 隣接(인접)한 求智, 瑜伽, 論工面과 高靈郡까지 합치면 1천여 가구에 달한다.
率禮는 始祖 郭鏡이 苞山君의 封邑(봉읍)을 받음으로써 玄風과 연고를 맺게 되었으며, 14세기초부터 率禮를 중심으로 600여년간 살아 오고 있다.
첫댓글 이번에 우리 법인의 전문대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햑력위조를 다시 조사했습니다.이번이 다섯번째 정도 되는데 할때마다 몇명씩 나오는데 여기서는 신분세탁도 쉬운문제라 학력세탁 정도는 아주 정교하게 기발한 방법으로 하기때문에 여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적발하기가 어렵습니다.결국 5명이 최종 적발되어 집에 보낼라고 합니다.우리의 자랑스런 윤지할아버지가 어찌하여 현풍곽씨와 어울리게 되었는지.....참 거시기 합니다.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요?우리나라에 시조로 모시는 분중 문연각학사가 두분 있는데 보성선씨 갈몰계와 현풍곽씨라.
윤지할아버지가 중국에서 오셨다는 증거로 내놓은 정여창님의 저서가 현풍곽씨 곽효근의 집에서 나온 문서를 근거로 하였다니....260년이상 차이가 나는 두분이 동문회를 했을리도 없고.....원나라에서는 문연각이 없었을텐데....시간되면 현풍곽씨 문중에 확인을 좀 해야겠습니다.ㅎㅎ
두환이 성님.
加油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