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태조 = 왕위 1392-1398(57-63세) 사망 73세(1408) 중풍=동구릉의 건원릉 /자녀 13명 //원나라 대신 고려를 접수하여 조선을 세웠으나 아들 등쌀에 임금 물려주고 쫓겨 남
2대 정종 = 왕위 1399-1400(42-43세) 사망 62세(1419) 노환=후릉(유일하게 북한지역) /자녀 23명 //동생 덕분에 임금 자리 올랐으나 1년 만에 다시 야인이 되어 열심히 아가들만 생산함
3대 태종 = 왕위 1401-1418(34-51세) 사망 55세(1422) 폐렴=헌릉 /자녀 29명 //조선의 실질적인 건국자. 혈육상쟁으로 평가는 나쁘지만 죽기 전에 스스로 물러난 최초의 왕.
4대 세종 = 왕위 1418-1450(21-53세) 승하 53세 당뇨비만 등 복합질환=영릉(최초 부부합장) /자녀 22명 //골육상쟁 기피증 형님들의 양보로 갑자기 임금이 된 사나이 /18남 4녀를 낳아 득남 최다 신기록 수립 /말년에 훈민정음 만들어 각종 책자 만드느라 바쁘시다가 승하.
◎처음으로 임금 자리 현직에서 돌아가신 분임. 그래서 “승하”라고 표시했음
5대 문종 = 왕위 1450-1452(36-38세) 승하 38세 등창=현릉 /자녀 3명 //조선의 장남 출신 첫 임금. 바람둥이 세자 시절 세자빈 여럿 괴롭혔음. 동성 연애하다가 쫓겨난 세자빈도 있음.
6대 단종 = 왕위 1452-1455(11-14세) 사망 16세(1457) 영월 청령포에서 사약=장릉, 자녀 없음 //어린 왕이 중요문서 결재 시 대신들이 노란 점을 찍어주면 빨간 색으로 덧칠 결재했음. 화가 난 종친 어르신 양녕대군이 이씨 왕조가 벌써 끝났다고 한탄하였음. 수양대군에게 양위 후 "노산군“으로 강등됨. 한참 후 250년 뒤에야 숙종이 ”단종“으로 뜬금없이 복위시켜 줌
7대 세조 = 왕위 1455-1468(38-51세) 승하 51세 문둥병과 불면증=광릉 /자녀 5명 //세종이 못다 한 고서의 훈민정음 번역작업 거의 마무리 /말년에 과거를 반성하며 사찰들을 순회함
8대 예종 = 왕위 1468-1469(18-19세) 승하 19세, 안순왕후 한씨와 자다가 복상사=창릉 / 자녀 3명 //주요 업적이라고는 유자광에 꾀여 남이장군을 죽인 일 정도밖에 없음
9대 성종 = 왕위 1469-1494(12-37세) 승하 37세, 등창과 폐병=선릉 / 자녀 28명(비공식 기록은 100명이 넘는다고 함) //인수대비가 정치를 다해 주어 임금은 할 일이 없어서 이런저런 여자들만 좋아했음. 여자들 분쟁에 휘말려 왕비 윤씨를 폐비하고 사약까지 내린 일이 있음.
10대 연산군 = 왕위 1494-1506(18-30세) 사망 30세, 강화도 유배 중 괴질=서울 방학동에 산소(아직도 서인 신분임) / 자녀 5명 //처음에는 성군이었으나 신하들끼리 싸우다가 누군가가 폐비 윤씨 사건을 일러 바친 후 미친 듯이 어머니 복수를 하고서는 정치에 싫증이 났음. 때마침 반정으로 쫓겨나게 됨. 강화 교동도에 유배 가서 그 해를 못 넘기고 사망한 사나이.
11대 중종 = 왕위 1506-1544(18-56세) 승하 56세, 거머리로 등창 치료 중 울화병으로 승하=정릉 /자녀 20명 //처음에는 반정공신들에게, 나중에는 외갓집 식구들에게 휘둘림 당함. 젊은 조광조를 너무 믿었다가 너무 급진파라 다시 쫓아낸 적이 있음.
12대 인종 = 왕위 1544-1545(29-30세) 승하 30세, 이질=효릉 /자녀 없음 //계모 문정왕후가 자기의 친아들을 즉위시킬 욕심으로 전실 소생인 임금을 독살시켰다는 설도 있음.
13대 명종 = 왕위 1545-1567(11-33세) 승하 33세, 무수리 장씨와 지나친 색정으로 승하=강릉 /자녀 1명 //여자에게 너무 빠져서 친엄마 문정왕후에게 회초리도 맞았다고 하지만...
14대 선조 = 왕위 1597-1608(15-56세) 승하 56세, 중풍=목릉 /자녀 25명 //임진왜란 때 피난 다니는 와중에 아기들만 많이 만들었음 /후궁 소생 차남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으나 나중에 정실부인으로 온 왕비가 득남하여 세자를 바꿀까 말까 갈등하던 와중에 승하함.
15대 광해군 = 왕위 1608-1623(33-48세) 사망 66세(1641), 제주도에서 노환으로=제주도에 산소(아직도 서인 신분임) / 자녀 2명 //세자 시절 임진왜란 임시정부 수반으로 위기를 잘 넘겼고, 임금 시절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줄다리기 외교 정책을 잘 하였음.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인 일로 결국 쫓겨 남. 제주도에서 마음을 비우고 편안히 잘 살다가 노환으로 사망함
16대 인조 = 왕위 1623-1649(28-54세) 승하 54세, 홧병=장릉 /자녀 8명 //반정세력의 정치 논리에 휘말려 국방정책을 소홀히 하다가 “황제의 나라로 발전한 청나라”의 병자호란까지 두 번이나 혼나면서 청나라 황제에게 이마에 피를 내면서까지 몇 번이나 큰절을 해야 했음. 심양에 인질로 잡혀간 장남 소현세자가 천주교 신자가 되어서 돌아오자 독살했다는 설도 있음.
17대 효종 = 왕위 1649-1659(30-40세) 승하 40세, 어의의 의료사고로 출혈사=영릉 / 자녀 8명 //형님과 함께 인질로 잡혀 갔다 와서 임금 된 후로 북벌론을 엄청 강조한 임금임. 수전증 걸린 어의의 실수로 의료사고가 발생하여 과다출혈로 승하한 임금
18대 현종 = 왕위 1659-1674(18-33세) 승하 33세, 학질과 과로=숭릉 / 자녀 4명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 중국 심양에 인질로 있을 때 태어 난 사나이
19대 숙종 = 왕위 1674-1720(13-59세) 승하 59세, 등창과 스트레스=명릉 /자녀 8명 //인현왕후와 장희빈 팀의 당쟁 도중에 갑자기 노산군을 단종으로 복위하자는 제안을 해 버린 임금
20대 경종 = 왕위 1720-1724(32-36세) 승하 36세, 게장과 상극인 생감을 같이 먹다가 급사=의릉 /자녀 없음 //숙종과 장희빈 아들로 태어나 당파싸움 와중에 독살되었다는 설도 있음.
21대 영조 = 왕위 1724-1776(30-82세) 승하 82세, 치매=원릉 /자녀 14명 //신하들 당쟁과 임금의 치매가 세자를 죽게 함. 뒤늦게 슬퍼하며 죽은 아들을 “思悼世子(사도세자)”라 작명함 / 조선 임금 중 제일 장수한 임금임
22대 정조 = 왕위 1776-1800(24-48세) 승하 48세, 등창=건릉 /자녀 4명 //안경을 쓴 최초의 임금. 아버지 사도세자를 “장조”라 추존함. 해마다 아버님 제사 지낸다며 수원까지 행차함. 아버지 복수를 할까 말까 갈등하던 중 독살 당했다는 설도 있음
23대 순조 = 왕위 1800-1834(10-44세) 승하 44세, 매독 3기=인릉 /자녀 6명 //김조순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며 안동김씨의 세도 정치가 시작됨. 근데 누가 전하에게 매독을 옮겼을까요?
24대 헌종 = 왕위 1834-1849(7-22세) 승하 22세, 폐결핵=경릉 /자녀 1명 //술과 여자로만 세월을 보내다가 요절한 임금임. 누가 술과 여자 들여보냈어? 건강 악화가 결국 폐결핵으로..
25대 철종 = 왕위 1849-1863(18-32세) 승하 32세, 폐결핵=예릉 /자녀 11명 //강화도에서 끌려와 임금이 된 사나이. 누가 술과 여자 또 시켰어? 결국엔 또 임금님이 폐결핵으로...
26대 고종 = 왕위 1863-1897(11-45세), 황위1897-1907(45-55세) 사망 67세(1919), 일본에 의한 독살=홍릉 /자녀 14명 //아버지 대원군, 왕비 민씨, 일본인 등이 번갈아 정치를 대신 다해 주었다는 말도 있음. / 일본이 조선을 “독립된 황제의 나라”로 승격시켜 주고 죽은 왕비 민씨를 명성황후로 추존시켜 준 일도 있었음 /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황제에서 쫓겨나 李太王(이태왕)으로 격하된 후 1919년에 독살 당함. /李太王 장례식을 보려고 서울에 모인 사람들이 “황제폐하만세” 라고 외쳐 주었는데, 예로부터 명실상부한 진짜 황제에게만 “萬歲(만년 동안 사세요)”라 불러 주었던 것임. 죽은 옛 황제 위로하며 “만세”라 불러준 것이 3.1 독립만세운동으로 크게 확대됨.
27대 순종 = 황위 1907-1910(34-37세) 사망 53세(1926), 라디오 청취 중 심장마비=유릉 / 자녀 없음 //쫓겨난 고종황제 대신 황제 자리에 앉았지만 정치는 일본인이 다 했음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 병합되자 순종 황제도 “李王(이왕)”으로 격하되고 데라우치 통감이 조선 총독으로 승격되어 한반도를 대신 통치해 줌. /李王 장례식 때 사람들이 “황제폐하만세”를 또 외쳐 주는 것으로 옛 황제에 대한 예우를 다 해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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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황재순. 문학박사. 인천에서 장학사와 교장을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