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회사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에 내려왔다.
일탈 혹은 도피 아니면 새로운 시작
그것도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인생의 한 일부분이겠지.
3개월의 제주 여정
혹은 더 오래 머물 수도 있을 제주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으려한다.
첫 번째 이야기 : 제주의 탄생은 어디서?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단 한 번도 제주의 기원을 궁금해했던 적은 없다. 짧은 여행 기간 동안 예쁘고 아름다운 곳만 가도 모자랄 판에 그곳의 뿌리와 역사까지 알아야 하나라는 마음이 컸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제주의 아름다움만 쫓았다.
그랬던 내게 3개월, 그 이상의 시간이 생겼다.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였을까? 문득 제주가 궁금해졌다. 어떻게 제주가 생겨났는지 알고 싶어졌다.
삼성혈과 삼성신화
날이 좋은 날, 시원한 바람이 조금씩 불던 날, 제주의 탄생이 시작된 삼성혈을 직접 가보았다. 삼성혈을 향해 가는 길에 보이던 나무들은 이곳이 제주의 시작이라는 곳을 알리는 듯 비범한 기운을 내뿜었다. 물론 이것 또한 주관적으로 받는 기운이지만, 적어도 내 마음가짐을 조금 더 무겁게 갖기에 충분했다. 조금은 차분히 삼성혈을 향해 가니 정말 3개의 구멍이 깊이를 알 수 없게 일정한 간격으로 뚫려있었다.
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세 개의 구멍이 곧 제주의 탄생이고 시작이었다. 이 이야기는 제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삼성신화이기도 하다.
탐라에는 태초에 사람이 없었는데 세 신인이 한라산 북녘 기슭의 모흥혈(삼성혈)에서 솟아나 가장 먼저 태어난 맏이를 양을나, 둘째를 고을나, 막내를 부을나라 하였다. (서적마다 차이가 있어 다른 서적에는 고을나,양을나,부을나 순서로 태어났다고 한다.)
세 신인이 사냥을 하던 어느 날 흙으로 봉해진 나무 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 오는 것을 보고 가보니 돌함이 있었고, 그 함에는 세 처녀와 사자가 있었다.
사자가 말하길 "저는 일본국의 사자입니다. 우리 임금이 서쪽 바다에 있는 산에 신자 셋이 태어나시어(한라산의 정기를 받아 모흥혈에서 태어난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를 말함)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으시다 하시어 세 딸을 보냈습니다. 세 따님을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라고 말했다.
그 후 세 사람은 나이순으로 차례대로 장가를 가고, 물 좋고 땅이 기름진 곳으로 나아가 활을 쏘아 거처할 땅을 정하였다. 그렇게 양을나가 거처한 곳을 제일도라 하고, 고을나가 거처한 곳은 제이도, 부을나가 거처한 곳은 제삼도라 칭했다.
그런 다음 비로소 오곡의 씨를 뿌리고 소와 말을 기르니 날로 살림이 풍요로워졌다.
삼성신화를 통해 제주의 탄생을 알 수 있었고, 모흥혈은 현재 제주시 이도동에 있는 삼성혈로서 여전히 구멍이 남아있으며, 세 신인이 거주하였던 제일도, 제이도, 제삼도는 제주시의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으로 제주시의 중심지로 남아있다.
또한, 온평리에는 세 처녀가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찍혔다는 말 발자국이 바닷가 바위에 남아있으며, 세 신인이 혼인한 곳이 그 유명한 '혼인지'로 남아있다. 또, 세 신인이 거쳐를 정할 때 쏜 화살이 박혔다는 돌은 제주시 화북동에 삼사석으로 남아있다.
제주의 기원은 삼성혈에서 시작되었고, 삼성혈의 삼성인 부,고,양씨의 기원도 알 수 있었으며, 일도동,이도동,삼도동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
모든 신화나, 전설은 어찌 보면 현재 살아가는 우리의 터전과 연계하여 재밌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나무들이 삼성혈을 향해 절하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 모습이 삼성혈을 더 비범하게 만들었다.>
<삼성문 안의 삼성전: 제주도 삼성시조의 위패가 봉인된 사당>
<삼성혈만큼이나 역사가 긴 나무들이 그늘 막이 돼주어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두 번째 이야기 : 돌하르방은 47개
어느 유적지와 다를 것 없는 평화로운 삼성혈에는 신화가 시작된 세 개의 깊은 구멍만큼이나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더 존재했다.
'돌하르방' 이야기
제주엔 수많은 돌하르방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돌하르방들이 레플리카(단순한 복제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없다. 돌하르방은 주로 성문 앞에 세워져 성을 지키는 수호 역할을 했던 문지기였고, 이 돌하르방은 기록으로만 보면 총 48개의 돌하르방만이 존재했다. 현재는 행방이 묘연한 1개의 돌하르방을 제외한 47개의 돌하르방만 남아 있다. 그중 2개는 서울국립박물관에, 나머지 45개는 제주 전역에 흩어져있다. 나머지 수많은 돌하르방은 결국 레플리카라는 사실이다.
신기하게도 삼성혈에는 47개 중에 4개의 오리지널 돌하르방이 존재했다. 제주가 탄생된 이곳을 지키려는 의지가 충분히 보였다.
네 개의 돌하르방 중 두 개는 홍살문 앞에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2-7호, 2-8호), 나머지 두 개는 건시문 앞에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2-9호, 2-10호)이 서있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에는 건시문 앞의 돌하르방 한 쌍을 "제주의 오리지널 돌하르방 47기 중 가장 의젓하게 잘생긴 작품"(207쪽)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주관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얼핏 봐도 뚜렷한 이목구비에 올곧은 모습이 왜 그런 평가를 했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건시문 앞 돌하르방 : 유홍준 교수가 말한 잘생긴 돌하르방,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 이야기 : 요정이 살 것만 같은 안돌오름 비밀의 숲
바깥쪽에 있는 밧돌오름 안으로 조그맣게 안돌오름이 존재한다. 이 안돌오름 안에는 요정이 살 것만 같은 숲이 존재하는데 그 숲을 비밀의 숲이라 부른다. 비밀의 숲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이 숲은 신비스러운 편백나무와 유채꽃이 즐비해 있었고, 길에는 화산송이가 붉게 깔려있어 걷는 맛을 더해주었다.
안돌오름을 가는 길
월정리 해변에서 안돌오름을 향해 가는 길은 내가 여행자임을 실감 나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시원하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와 낮은 돌담들, 그리고 보이는 푸른 바다가 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해주었다.
<창밖에 보이는 월정리 에메랄드 빛 바다>
<안돌오름을 향해 가는 길에 여러 오름들을 눈으로 만날 수 있었다.>
창밖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이동하니 30분이라는 시간이 쉽게, 빠르게 지나갔다. 안돌오름에 도착하니 입구엔 푸른 트레일러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판타지 소설에 나올 법한 이 트레일러는 우리를 비밀의 숲으로 이끌어 줄 문지기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안돌오름 '비밀의 숲'을 입장하기 위해서는 3천 원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후에 비밀의 숲을 여행하고 나서 3천 원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숲을 경험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비밀의 숲 문지기 트레일러>
비밀의 숲에는 숲을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여러 개 있는데 그중 가장 먼저 소개할 것이 편백나무 숲이다. 높게 올곧게 뻗은 나무들을 보니 곶자왈 '환상의 숲'과 비교 되었다. 곶자왈은 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나무들의 흔적이 보이는데, 대부분 햇빛을 보기 위해 나무들이 휘어져있었고, 덩굴식물들도 살기 위해 나무들을 휘감고 있는 모습이 꼭 상처 많은 전쟁터와 같았다. 하지만, 이곳의 나무들은 평화롭게 싸움 없이 다 같이 자란 동일하게 자란 느낌을 주었다.
<곧게 뻗은 편백나무 : 비밀의 숲은 비밀의 숲대로, 환상의 숲은 환상의 숲대로 묘한 매력이 있다.>
편백나무를 지나면 넓은 초원이 나오고, 그 초원을 지나면 유채꽃 밭이 나온다. 그 사이사이의 숲길은 제주도에서 가히 가장 아름다운 숲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넓은 초원엔 여러 사람들이 스냅 촬영을 하고 있었고, 유채꽃 밭에는 예쁜 커플들이 평생의 추억을 간직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비밀의 숲은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추억을 만들어 줄 장소임에 틀림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쁘게 옷을 입고 스냅사진을 찍고 있었다.>
<유채꽃이 비밀의 숲의 자랑이라는 듯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구석구석 아름다운 숲길이 비밀의 숲의 가치를 높였다.>
안돌오름 비밀의 숲을 나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곳에서의 감정이 그대로 남아있어 하루 종일 행복할 수 있었다. 따뜻하고, 아름답던 안돌오름 비밀의 숲에서의 추억을 가슴 깊이 오랫동안 간직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 또한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