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 이론에 따라 조후용신/억부용신/격국용신을 뽑아내는 법은 쉽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주팔자는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어서
용신이 여러개로 갈릴 때 어느 하나를 특정하여 제1용신으로 집어내기가 쉽지 않다.
결국 어떤 용신을 쓰느냐는 일간의 마음에 달린 듯 하다.
일간의 마음에 달렸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일전에 <용신 잡는 원칙>편에서 대략적인 우선순위는 알려드렸다.
1. 사주에 병이 있으면 그 병을 치료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조후가 깨진 사주는 조후용신을 같은 개념으로 적용한다. 억부가 깨진 사주도 마찬가지다.
2. 사주에 병이 없다면 다음 순위로 격국 용신을 적용한다.
3. 격국 용신이 없는 사주(특히 편인격, 비겁격)는 전체적인 구조를 보아 흉신을 극설하는 것을 용신으로 한다.
※ 특수 구조로 이루어진 사주는 앞의 1,2,3 을 무시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을 용신으로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글을 보면 된다.)
그런데 일간의 마음에 따라서는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일간의 마음은 항상 용신을 탐하지도 않고, 용신과 연결되어 있지도 않다. 그것은 단정할 수 없다.
일간의 마음은 가변적이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매커니즘은 매우 복잡하고 불규칙적이다.
마치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에게 첫눈에 반하는 상황과 같다.
당신은 어떤 여자에게 첫눈에 반할지 스스로 아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마음의 작용은 우연적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가령 학창 시절 인성 운에서 큰 행복을 경험했던 사람은
인성이 그의 사주팔자 내에서 제1용신이 아니라 할지라도
인성 운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돌고 돌아 바라던 인성 운이 다시 도래했을 때
과연 그가 애타게 갈구했던 행복의 파랑새는 다시 찾아올 것인가? 모를 일이다.
사주명리에서 말하는 용신, 기신, 한신, 희신, 구신은 반드시 행복과 직접 연관되어 있지 않다.
행복은 마음의 작용일 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용신 운에도 불행할 수 있고
기신 운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용신 운과 기신 운은 그 마음의 작용과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운에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포기하고
가질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가질 수 없는 것에는 집착하고 이미 가진 것의 가치는 잊어버린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도록 조물주가 만들어 놓았다. 여기에서 모든 불행은 시작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