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신앙의 선배 김원철 장로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장 3절)
우리 교회에는 한국교계에서도 유명한 선배 김원철 장로님이 계셨다. 1956년도에 예수를 처음 믿게 된 김원철 장로님은 성결교단 남전도회 운동의 창설자로 우리 교회는 물론이고 교계에도 널리 알려진 분이다. 김 장로님은 부인인 이한옥 권사가 부흥 강사인 미국인 짤비스 목사를 접대하면서 신앙을 갖게 됐다. 짤비스 목사는 비신자인 김원철 장로님을 보자 “당신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무엇 때문에 살며, 장차 어디로 갈 것인지 알고 있느냐?”고 신앙적 도전을 주었다. 그리고 “당신은 거듭 났느냐?”며 올바른 신앙을 가질 것을 권면했다. 김 장로님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묻는 짤비스 목사의 질문에 답변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짤비스 목사는 김 장로에게 로마서 8장 5절 이하의 말씀을 전하였다고 한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 말씀을 듣고 김원철 장로님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쓰러져 대성통곡하고 일어난 후 온전히 거듭난 삶을 살게 되었다. 거듭남에 대한 이러한 간증을 수천 번이나 하면서 전도와 교회 일에 생애를 바치신 평신도 전도자가 바로 김원철 장로님이었다.
사업을 하였던 김 장로님은 장충단교회에 출석하면서 교회 건축비 80%에 가까운 건축헌금을 하셨다. 그리고 휴전 이후 폐허가 된 교회가 속속 복구되자 무려 33개의 교회에 도움을 주었다. 이 외에도 미국에까지 전도여행을 가서 모금을 하여 우리 교단의 서울신학대학 기숙사를 세웠고 집사 시절 대한성서공회의 자립대책위원회에서도 일을 하셨다. 대내적으로 시간이 나는 대로 우리 교회 성도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병들고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을 위로하고 기도하였으며 우리 집에도 자주 오셔서 신앙의 지도와 기도를 해 주시곤 했다. 김원철 장로님은 일주일에 4, 5일을 기도원에서 기도하며 밤을 새우는 기도의 용사였다. 김 장로님은 자주 가방을 둘러메고 우리 집에 오셔서 시간이 있으면 기도원에 가자고 권하곤 하였다. 나는 감히 거절할 수 없어 피곤하지만 방석을 들고 북악터널을 지나서 있는 감람산기도원이나 워커힐 부근의 서울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곤 하였다. 그때 김원철 장로님은 산의 바위 위에 앉아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였다. 나를 비롯해서 마지못해 따라간 집사 몇 사람은 때로는 기도의 제목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춥거나 덥다는 핑계로 기도는 하지 않고 김원철 장로님이 내려오기만 기다리던 적도 있다.
하지만 김 장로님은 이렇게 못난 후배들을 위하여 솔선수범하며 신앙의 본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내가 신앙을 지키고 장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김 장로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원철 장로님은 한국의 바울이라고 주위에서 이야기할 정도로 기도의 대장이었다. 김 장로님의 간증에 따르면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선교사가 처음 대면하는 김원철 성도에게 “김 선생님, 기도하세요” 하고 권할 때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황당했으며 온몸에 땀이 흠뻑 나는데 한 몇 분이 지나도 입이 열리지 않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선교사님이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할 때 성령의 체험을 하였다고 한다.
나는 기도하면서 성령의 체험을 받지 못하여 늘 냉랭하였다. 그러던 중 1977년 장로 피택을 받고 교회 지하실에서 몇 분이 철야기도회를 하는데 새벽 3시경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면서 성령도 받지 못하고 장로가 되겠느냐 하는 가책을 받으면서 엉엉 울고 회개하는 체험을 하였다. 그때 나는 너무 돈만 알고 사업하는 데만 열심이었으며 신앙생활은 의무적으로 한 것을 회개하였다. 또 인간적으로 인색하였으며 비교적 눈물이 없는 냉정한 사람이었음을 회개하였다. 비교적 이해 관계는 밝은 편이나 봉사와 나누는 데는 인색하였다. 이때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회개한 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우리 후배들을 이끌어주셨던 김원철 장로님은 말년에 사업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갑자기 심장마비로 소천하게 되어 더 많은 신앙의 경륜을 펼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하나님의 섭리로 믿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