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복지의 그늘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의 경제 사례는 정치적 포퓰리즘(populism) 때문인가
나종혁
진로정책상담연구소 소장 겸 연구 교수
2023년 지금 우리나라는 국가발전의 방향을 설정함에 있어서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 있는 것 같다. 경제 개발의 지속성 보장과 사회 복지의 균형 사이에서 국가 정책이 혼란을 빚고 있다. 이러다간 경제 개발과 사회 복지 양자 어디에도 발을 붙이기 어려운 처지가 될지도 모를 지경이다.
과거 미국에서 경제학(經濟學)을 공부한 한국의 경제학 전문가들이 모델로 삼은 나라는 일본과 호주의 국민소득 3만 불 경제학이었다. 일본의 경제 개발과 호주의 농업 생산을 기본 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의 선택은 일본과 호주 그 사이에서 경제 개발과 자원 및 농업 생산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더 복잡한 문제는 일본이 오랜 기간의 경제 조정기를 거치면서 과도한 일본 정부의 부채 문제, 인구 노령화와 사회 복지의 부담 등 문제점 또한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호주는 어느새 국민소득 6만 불 시대로 접어들었고, 우리와 많은 격차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우리의 관심은 어느새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옮겨가고 있다.
선진국에 진입했거나 선진국 문턱에서 아쉽게 탈락했던 세계의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우리가 어떤 진로를 택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에 진입했었거나 선진국 문턱에게 아깝게 탈락한 국가들에는 세계 5위 선진국에 들었던 세계 최대 쇠고기 생산국 아르헨티나와 석유 부국을 꿈꾸었던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 베네수엘라가 있다. 세계 최대 쇠고기 생산국과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인 이들 남미 2개 국가의 경제적 몰락에 대해서 한국의 날카로운 경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정치적 포퓰리즘이 직접적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좌파 정권을 “희대의 포퓰리스트”라고까지 말하는 한국의 보수계 정치인들도 있다. 그들은 아르헨티나가 무너진 것은 군사 정권의 외환 위기와 과도한 외채 이전에 이미 페로니즘(Peronism)의 무분별한 사회 복지 포퓰리즘에서 비롯했다고 지적하며, 베네수엘라가 남미 최악의 지옥의 경제로 추락한 것도 두말할 것도 없이 좌파 정권의 사회 복지 포퓰리즘과 석유 산업 정책의 실패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노동 복지는 정치적 신포퓰리즘(neopopulism)에 불과한 것인가? 근본적으로 복지 정책은 정치적 입장이 상이하다는 주장도 있으며, 오랜 기간 가능한 정책으로 존속하거나 다음 정권으로 정책이 지속되면서 국가 경제를 사회 복지의 망(網)으로 밀어넣거나 확대하게 된다. 사회 복지나 기타의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이유는 populism이 대중영합주의로 번역되는 것처럼, 이러한 정책들은 통상 여론 정치의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여론 정치 자체가 이미 이러한 정치의 배경이 될 만큼 정치적 파장이 깊다는 반증이다. 또한 선진국 진입 단계에서 파생되는 소득 격차, 소득 불균형과 고물가,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발생하는 노동 정책과 복지 정책의 대두는 이러한 정치를 구축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 전문가들이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의 경제 파탄의 원인이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복지 정책과 노동 정책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포퓰리즘 때문이라고 지적했지만, 그들은 현재 한국에서 최저 임금과 기본 소득을 둘러싼 유사한 정책적 갈등과 과제에 발목이 잡힌 지 오래이다. 남북한의 경제 격차와 개인 간의 소득 격차를 목도한 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새로운 노동 정책과 복지 정책으로 불균형을 보완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믿음이 팽배해져 여론의 저변에 쌓이게 된다.
그러나 대안이나 해결책은 그렇게 단순하지만도 않다. 독일식 경제를 포기하고 베트남식 균형 경제로 고개를 돌려도 들려오는 소리는 녹록치 않다. 한국 경제에의 적응에 실패하고 북한 경제로 밀려가는 것에 비유할 만한 난센스이고 난센스 수준의 정책 전환이다. 개발과 노동 복지 그 사이에서 제3의 경제학이 긴요한 시점이다. 제한 성장에 합의해야 하고, 정책적 갈등에 선을 긋는 선명한 정책의 전환에 대비해야 한다.
왜 우리는 무제한의 개발 경쟁을 뒤로 하고 노동 복지로 균형을 하는 데서 한계에 직면하는 것일까? 그것은 정치적 수용력(受容力)의 문제이며, 노동 복지 정책을 우리 사회가 수용할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노동 복지가 가능하더라도, 실제로 적용하기 전까지는 단순한 정책에 불과하다. 그냥 간단하게, 그런 정책은 남미 국가들에서 이미 검증된 정책적 오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제한의 개발 정책이나 마찬가지로 노동 복지 정책도 무제한의 사회 정책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 여건은 이건 정치적 선택이거나 정치적 오류일 뿐이지 정책적 대안도 아니다. 그럼에도 남미의 경제적 결과는 정책적 오류가 명백하다. 남미와 우리나라는 경제가 다르다고 기대하는 건 너무도 무책임하고 무사안일(無事安逸)한 태도이다. 그것은 중국과 베트남의 개발 정책 이전의 사회적 여건과 비교해도 그렇다. 오늘도 베네수엘라의 파탄 경제는 상점들에 침입해 약탈하는 강도들과 도둑들이 당연하고, 수십 %에서 100%를 상회하는 아르헨티나의 고물가 상승 행진은 시민들을 경제적 불행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것은 정치적 포용력이나 포퓰리즘적 여론 정치를 훨씬 능가하는 경제 정책의 오류로 인한 잘못된 결과이다.
대안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비록 인종 갈등이 악화되고 있고, 인간이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찾는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프랑스와 영국 등 선진국의 바람직한 사례들도 있다. 이들 선진국들의 성공적인 소득 격차 해소와 고비용 고물가의 극복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바로 제한 성장이란 개인 간의 소득 격차와 소득 불균형의 해소이며, 또한 선진 경제나 개발 경제의 고비용 고물가를 극복한 저비용 저물가 정책의 성공이다. 덧붙여, 경제에 저해되지 않는 노동 복지 정책의 수용도 가능하다. 관건(關鍵)은 제한 성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적 포용력이다. 이것이 여론의 능력이며, 여론 정치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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