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년대 원맨쇼의 일인자 이셨던 남보원 선생님,
80 년대 제 5 공화국의 산파이시자 정권의 충신 이셨던 장세동 안기부장님,
2000년대 금강산 관광을 현실로 가능케 물밑 작업을 하셨던 현대아산의 김윤규 사장님,,, 우리들의 선배님들 이셨다.
-- 이영택 교장 선생님의 전공은 지질학 이셨다.
-- 이영택 교장 선생님 께서 부임 하신후 학교 교훈이 <참되고 쓸모있는 기능인이되자> 에서 "운동장을 횡단하지말자"로 바꼈다.
--교가 " 여기는 거룩한 진리의동산, 나날이 높아가는 학문의세계,,큰포부 큰희망 한가슴 안고~" 는
" 여기는 거칠은 공돌이 동산, 나날이 저하되는 학문의 세계,, 큰 실패 큰 좌절 한가슴 안고 ~ " 로 바꿔 불렀다.
-- 매년 심사를 받는 학도호국단 교련 검열에서 등급 판정관은 해마다, 3년 내내 "매우우수" 판정만 때렸다.
-- 시대를 잘 못 태어난 우린 학창시절 추억인 수학여행을 가질 못했다. 난, 중학교(성수중)도 안가는 학교를 다녔다.
-- 동 으론 동구릉, 서 로는 서오릉, 남 으론 헌인릉, 북 으론 정릉, 3 년 내내 소풍이라곤 "릉"만 찿아 다녔다.
-- 1 학년때 새로 산 모자를 뜻어 챙을 새로 달아 꿰매고,볼펜심을 엮어 모자안에 둥근 테 를 둘렀더니 지켜보시던 어머니 께서
" 뭐 하냐, 모자가 작아 " 하시며 묻길래 " 저도 몰라요, 이렇게 하래요" 하였다
-- 교련복은 ROTC 디자인이 가장 멋 져 보였다. 학교에서 지정한 디자인은 학도호국단 무늬 였는데 기지가 나일론이 80%는
됨 직 했다. 추운 겨울날 난로 옆에 갔더니 바지가 타질않고 우그러들었다.
-- 체육 시간엔 색상에 관계없이 공 놀이에 편한 츄리닝 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신 체육선생님의 배려를 망각해선 안된다.
-- 6시30분에 등교를 하였는데 머리를 깍였다.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 선생님 몇 시에 출근 하셔요"
나,,, "중앙시장 상인들 문 열때 학교문 같이 열어 "
-- 서울공고,성동공고,용산공고,,, 서울여상,성동여실,동구여상,,,, "성동"은 남녀모두 2등 이었다.
-- 신당동 사거리의 주도권 싸움에서 인근 한양공고,배명고, 학생들과 붙으면 성동여실 학생들은 항상 우리편 이었다.
-- 금속과는 2 학년때 홍익대 4학년 재학중이시던 여자 교생선생님이 오셨다. 화학과목을 지도하셨는데 날씬하시며 미모도 출중 하셨다. 교실이 난리 부르스가 터졌다. 우리들에겐 일생동안 가장 짧았던 보름간이 흘러 버렸다.
-- 아침조회시간 담임선생님께선 책가방을 책상위에 올려놓으라고 지시하시곤 우릴 복도 쪽으로 몰아내셨다.
긴장의 30 여분이 흘렀어도 발각되는 우리 동무들은 없었다.
-- 알 몸 으로 남대문 시장을 한바퀴돌면 완전군장을 꾸리고 나오는데, 중앙시장은 2시간만 돌면 전축 한대를 조립하였다.
-- 성동공고는 51년 전쟁통에 1 회 졸업생이 배출되었는데 1.4 후퇴로 인하여 텅빈서울엔 과연 졸업식장에 몇 명이 참석 하였을지 궁금하다.
-- 30회 졸업생들이 졸업30 주년을 맞는것은 타 회 졸업생들 보다 각별한 의미를 두고싶다.
-- 우리는 대학선배들은 깍듯이 선배님이라며 존칭을 하지만 고교 선배들은 대충 "형" 이라고 한다.
과연, 당신이 선배라면 누구에게 손 을 내밀어 줄 텐가.
첫댓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네...ㅋ
두명다..손이 다행히 양손이니..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