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제4회 천강문학상 시조부문 대상]
만복열쇠점 / 박해성
척하면 열려라 뚝딱
천국 문도 연다는
우리 동네 공인 9단 열쇠 장인 김만복 씨
꽉 잠긴 생의 비상구, 정작 열 줄 모르면서
헌 잡지처럼 찢어버린 과거는 묻지 마라,
기꺼이 갇혀 사는 반 평 독방 컨테이너
탈옥은 꿈꾼 적 없다
반가부좌 부처인 듯
호적조차 말소 당한 애물단지 스쿠터는
꽃을 받고 훌쩍이던 다 늙은 아내인지
이따금 딸꾹질하는 빗장뼈가 수상한데
온 세상 잠긴 문은 노다지, 노다지라
불러줍서예,
집집마다 전화번호 붙여놓고
萬 가지 福 중에 하나
느긋이 찻물 우린다
제4회「천강문학상」시조부문 심사평
독도,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일본 관료들의 망언이 우리 국민들을 분노케 하는 이 시기에 천강문학상 응모작을 살피는 심사위원들의 마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예심을 통과한 시인은 총 20명 이었다. 수차례 반복해 읽고 결국 박해성(대상), 최영효(우수상), 이하림(우수상) 시인의 작품을 뽑았다. 박해성의 작품 중에서 우리는 「만복열쇠점」, 「날아라, 돌고래」, 「장어구이」에 특히 매력을 느꼈다.
「만복열쇠점」은 우선 생경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읽혔다. 그 자연스러움은 가락과 그 가락에 실린 의미가 마치 강물이 흐르듯 흘러간다는 뜻이다. 아울러 그 흐름 속엔 약간의 익살과 페이소스를 깔아 놓았다. 그러나 전연 작위적이지 않다. 그리고 ‘공인 9단 김만복씨’, ‘헌 잡지처럼 잃어버린 과거’, ‘꽃을 받고 훌쩍이던 다 늙은 아내’ 등은 새롭지 않은 표현이었지만 이 작품 속에는 참으로 적확하고 새로웠다. 간 맞은 음식처럼 이 작품을 맛있게 읽다가 문득 눈을 감아보면 착실하지만 가난한, 그러나 불평 없이 사는 한 생활인을 만난다. 「날아라, 돌고래」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 어느 삶의 계단에서 실족해서 재기하기 어려운 노숙자를 그리며 그의 재활을 기원하는 작품이다. 깔린 복선이 너무 선명한 것이 흠이라면 흠일 수 있겠지만 ‘하이힐 소리 꽃잎인양 흩날린다’나 ‘뼈만 남은 생선처럼 비릿한 그믐달, 등의 시구를 만나면 감동에 젖게 된다. 「장어구이」 역시 일상에서 쉽게 접하게 되는 그림이지만 각박한 우리 삶의 음영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분명 박해성은 좋은 시인이다. 이번의 영광이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되어 한국 시조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영효의 작품 중 「나목시대」, 「큰 종은 한 번 운다」, 「지리산 수목상생화법」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 읽었다. 긴장감 있고 섬짓한 일상의 알레고리가 「나목시대」, 「큰 종은 한 번 운다」의 매력이라면 핏빛 조각이 아니라 상생의 덕목으로 지리산을 빌려 세상의 이치를 그려내는 「지리산 수묵상생화법」의 호방하고 자상한 필치는 또 다른 매력이다. 대상으로 뽑힌 박해성 시인의 작품과 이 작품들을 비교할 때, 과연 우열의 차이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문학이란 면에서 그런 질문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지만 이번 심사과정에서 특히 고민스러웠다. 오늘의 불황을 「나목시대」만큼 그려내기 어렵고, 민초들의 고통을 「큰 종은 한 번 운다」만큼 그려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런 류의 각박한 그림이 환기하는 처절함이 깊은 감동으로 오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작품 자체가 다 말하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오래 생각하게 하지 않았고, 오늘의 현실을 그려낸 기존의 작품들과 다른 미덕을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울러 「큰 종은 한 번 운다」의 그림은 비록 알레고리라 해도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느껴졌다. 물론 대상과의 차이를 설명하는 심사위원들의 궁색한 변명일 뿐, 이 작품들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점에서는 변함없다. 우리 시조문학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시인이라 생각한다.
이하림 시인의 경우 「독서」, 「소나무 가계」,「남해시편」을 주의 깊게 읽었다. 「독서」는 새로운 소재를 새롭게 노래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여행시지만 이런 발랄한 상상력을 접하면 신비하고 흥겹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소나무 가계」는 조금 무겁지만 억지로 세상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소나무를 성실히 그려 보여준다. 독자의 경우 그 얘기와 연관해서 세상을 상상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남해시편」도 그렇다. 묘사력도 있고 시적 구성력도 있다. 오히려 각박한 세상얘기를 너무 많이 하는 시조를 읽다가 이하림씨의 시조를 읽으면 끝없이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소중한 개성이다. 그러나 대상작으로는 좀 가볍다고 생각했다.
이상 세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한국시조의 내일을 염려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신뢰는 수상자는 물론이거니와 수상하지 못한 모든 분이 함께 보여준 열정 때문이기도 하다. 천강문학상을 제정해주신 의령군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 본심 : 유자효(시조시인), 이우걸(시조시인-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