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엔 집 단장하고, 가을엔 집수리를 한다. 꽃피는 새봄이 집 단장하기에 제격이라면, 긴 여름 장마와 태풍이 지난 후 차가운 북서풍이 불어닥치기 전의 가을은 집을 수리하기에 제격이다. 오래된 시골집에 사는 농부나 헌 집을 구해 귀농하는 이라면 빗물에 훑여 무너진 흙벽과 치받이 흙 떨어진 처마, 연기 새는 방구들을 수리할 손재주는 있어야 한다. 집수리에 어찌 한두 가지 손재주만 필요할까? 하지만 그중에서도 알아두면 요긴하게 써먹을 강화 미장법 3가지를 소개한다.
균열 없는 석고석회 강화 미장
한옥이나 흙집은 나무와 흙이 주재료. 그러나 흙과 모래, 볏짚을 섞는 전통적인 흙 반죽 미장은 마를 때 수축과 균열이 일어난다. 특히 흙 미장은 방수나 발수성이 낮아 빗물에 약하다. 전통적인 흙 미장 반죽에 석회를 5% 이내로 섞어주면 ‘석회강화 흙’이 되는데 방수와 발수력, 압축강도가 높아진다. 또 빨리 마른다. 여전히 석회강화 흙 미장은 수축하면서 발생하는 균열을 완전히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석고를 더하는 ‘앨커(Alker) 흙 강화 기법’은 이러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다.
1978년 이스탄불기술대학은 앨커라는 흙 강화 기법을 개발했다. 모래를 충분히 섞은 흙에 소석고와 석회를 섞어 강화하는 방법이다. 이스탄불기술대학이 밝힌 앨커 기법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아래와 같은 비율로 재료들을 혼합한다.
-흙 100 % (손수레 가득 2분량)
-석고 10% (4 삽)
-석회 2% (1 삽)
-물 18~20% (1 양동이)
작업 순서는 ① 물 2%에 흙을 섞어서 먼저 흙 반죽을 만든 후 ② 물 18%, 석고 10%, 석회 2%를 섞고 석회 반죽을 만든다. 흙 반죽과 석고석회 반죽을 혼합해 사용한다. 이스탄불기술대학에서 사용한 흙은 점토 성분이 10% 이하이고 모래와 자갈 함량이 높았다. 아마도 한국의 마사토에 가까운 흙인 것 같다. 점토 성분이 많은 흙을 사용할 경우엔 모래를 추가해야 한다. 흙 1과 모래 2.5~3 비율로 섞고 여기에 석고 10%, 석회 2%를 혼합하여 사용한다. 단 한꺼번에 많이 반죽해두면 너무 빨리 건조되기 때문에 낭패를 본다. 조금씩 반죽한다. 이와 같은 석고석회 흙 강화 기법은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
- 석고 덕분에 단단하게 마르는 데 단 20분이면 충분하고 접착성이 높아진다.
- 마르면서 균열이 발생하지 않는다. 석고는 물과 반응해서 팽창하지만, 석회나 흙은 수분과 반응한 후 건조되면서 수축한다. 이러한 상반된 반응 때문에 균열, 수축 현상이 해소되어 균열이 안 생긴다.
- 석고의 기공성 때문에 단열 성능이 높아진다.
- 석회와 석고의 견출성이 높아 깔끔한 표면을 만들 수 있다.
- 발수, 방수성이 높아져서 빗물에 쉽게 훑어 내리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방법도 우리나라와 같은 장마철의 강한 비바람에서는 습기나 수분을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한다.
헌집을 고칠 때 석고석회 흙 강화 기법은 어느 곳보다도 지붕 서까래 사이 치받이 흙이나 처마 밑을 보수할 때 안성맞춤이다. 흙손으로 얇게 펴 바른 후 붓질을 하면 접착성이 높은 데다 빨리 굳고 균열이나 수축이 생기지 않고 습기에도 강해 다시 보수할 필요가 없다. 단 석고 함량이 높아지면 강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재를 사용한 천연 지오폴리머 시멘트
시멘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흙과 석회, 나무 재로만 천연 시멘트를 만들 수 있다. 시멘트와 같이 균열 없이 신속하게 굳고 발수성이 높은 지오폴리머(geopolymer)라는 천연 시멘트다.
재 섞인 지오폴리머 시멘트로 방바닥을 타설하고 있는 모습
지난해 가을 장흥에서 집을 수리하다가 우연히 오래된 구들장 밑에서 파낸 재 섞인 흙, 석회, 모래, 석고를 혼합하여 반죽했다. 홍어 냄새가 나는데 굳은 후에는 전혀 균열이 없고 시멘트처럼 반들거리며 단단하게 굳고 발수성이 매우 높았다. 재 섞인 아궁이 흙 20%, 모래 60%, 석고 10%, 석회 10%를 섞어서 사용했다.
몇 달 후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전통 가마토 화덕을 보니 잿빛으로 검게 미장되어 있었다. 일본 전통 미장법 중 하나인데 불에 강하고 물에 강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한국에서 시멘트가 흔하지 않던 때에도 시골 장인들은 광택이 있고 물에 강한 부뚜막을 만들 수 있었다. 아마도 아궁이에서 나온 나뭇재 섞인 흙을 주재료로 미장했나 보다. 올해 8월 목포대 건축과의 황혜주 교수에게 물어보니 나뭇재 섞인 흙 미장을 얇게 바른 후 기름칠을 하고 다시 재 섞인 흙미장과 기름칠을 여러 번 반복하는 방식의 일본 전통 미장법이라 했다.
일본 전통 미장법으로 만든 ‘가마토’
재 섞은 천연 미장법에 부쩍 관심이 생겨 이러저리 찾아보니 튀니지안 시멘트라는 천연 미장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멘트 대용으로 사용되는데 견고하고 발수성이 높다. 튀니지안 시멘트는 모래 1, 석회 3, 나무재 2 그리고 물과 기름을 혼합하여 만든다. 특징은 흙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도 튀니지가 모래가 많기 때문인 것 같다. 또 다른 재를 혼합한 천연 미장 또는 천연 시멘트 제조법을 찾아보니 혼합비율이 제각각이다. 각 지역의 흙이 어느 정도 모래를 포함하고 있는 지는 불분명하다. 지역마다 흙의 구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가. 흙 5, 석회 ½, 왕겨 재 ½, 물
나. 흙 5, 석회 ½, 나무 재 ½, 물
다. 흙 2½, 모래 2½, 석회 ½, 나무 재 ½, 물
혼합비율이 제각각이지만 나뭇재나 규사 성분이 많은 왕겨 재, 석회, 물과 흙, 모래가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서 고강도의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분명하다. 단지 미장반죽뿐 아니라 고강도 벽돌을 만들 때에도 활용한다. 종종 분쇄한 유리조각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예술적인 벽돌이나 바닥을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균열이 생기기 쉬운 방바닥 미장에 제격이다. 화학적으로 개발하는 지오폴리머시멘트는 공항 활주로의 급보수용으로도 사용한다.
천연 방수 석회 미장법-타데락트
모로코 왕궁에서 볼 수 있는 세면대. 타데락트 기법으로 만들었다.
화학방수재나 시멘트가 없던 시절 모로코 왕궁의 욕조와 세면대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모로코인들은 우선 흙과 모래를 섞은 반죽으로 욕조를 만들고 이 위에 타데락트(Tadelakt)라는 전통적인 천연방수법으로 마감했다. 타데락트 미장은 마치 대리석과 같은 광택과 방수가 특징이고 안료를 섞어 다양한 색상을 낼 수 있다. 타데락트 미장재의 주재료는 석회, 물, 천연 올리브비누(또는 검은 비누, 속칭 양잿물)다. 이러한 천연 재료로 멋진 욕조와 세면기, 싱크대, 목욕실의 벽면과 바닥을 대리석처럼 만들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타데락트 기법은 최고의 고급 미장기술로 각광받고 있어, 직업적인 전문 시공자들과 회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별다른 자본이 필요없으니 도전해 보면 어떨까? 타데락트 세면대를 만드는 법을 살펴보자.
① 황토 1과 모래 2.5~3에 약간의 물을 넣고 된 반죽으로 세면대나 욕조, 욕탕 바닥을 만든다. 시멘트로 만들 때에는 표면이 거칠어야 한다. 며칠 건조되도록 말려둔다.
② 석회에 물을 넣어 걸쭉한 우유처럼 만들어 하루 이상 재어, 12시간 전에 토성안료를 혼합해 붓으로 5차례 이상 미장한다.
③ 살짝 말린 후 압력을 주면서 누르고 흙손으로 반질반질하게 문질러댄다.
④ 어느 정도 말라 약간 꾸둑꾸둑해졌을 때 바닥을 편편하게 간 조약돌이나 반들반들한 차돌로 힘주어 눌러 문지른다. 이렇게 하면 석회 미장면에 광택이 난다. 요즘엔 연마기로 돌려 광택을 내기도 한다.
⑤ 딱딱한 검은 비누(Black Soap)나 천연 올리브비누로 역시 힘주어 문지르며 바른다. 이때 작은 붓으로 살짝 살짝 비눗물을 먼저 발라준 후 딱딱한 비누와 자갈로 강하게 압력을 주어 문지른다. 비누를 바르면 급속하게 탄산화작용이 일어나 방수효과가 높아진다.
↘ 김성원 님은
전환기술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이며,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cafe.naver.com/earthbaghouse) 대표로, 나누며 가꾸는 자급자족 마을, 더불어 만드는 생활기술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