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도
2. 8세기의 논쟁들
이제 티송데첸왕의 시대로 되돌아가 보자. 티베트에 불교가 처음 전파될 때 왕과 힘있는
귀족들 사이의 정치적 적대관계가 있었다. 불교 내부에도 적대관계가 있었다.
송첸감포왕에게는 두 명의 아내, 즉 네팔에서 온 아내와 중국에서 온 아내가 있었다. 중국
출신의 왕비들은 중국 승려들과 결탁하였고, 마찬가지로 인도의 왕비들도 인도 승려들과
결탁하였던 것 같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다른 내용의 불교가 티베트에 함께 소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티송데첸왕의 시대에 다른 전통을 가진 이 집단들은 서로 상대 집단의 기세를 꺾으려는
위협적인 주장을 하는 등 공공연하게 적대감을 드러낸 듯하다(Houston 1980: 32). 이러한
서로 다른 집단은 마하연(摩訶衍)으로 대표되는 중국 승려들과 적호와 그의 제자인 연화계
(蓮華戒, Kamala??la)의 집단으로 나뉘어졌다.
이 중국 승려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선(禪)의 추종자였던 것 같다.
적호는 논쟁(혹은 논쟁들; 실제 일련의 논쟁들은 적어도 몇 년 동안 지속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에 사망했으므로 연화계가 적호진영을 대표하였다. 후대 문헌들은 연화계 쪽의
인원이 대단히 적었다고 전한다.
이 논쟁은 (삼예사에서 단지 한번만 행해 졌다면 797년경일 것이다) 후대의 티베트 사상과
그 이전의 발달 과정을 살펴보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에 대한 설명이 후대의 많은 저작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 비록 이 저작들 모두가 동일한 원전을 근거로 하 기 때문에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핵심은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이 논쟁에 대한 중국 측의 언급도 있다.
논쟁은 왕 앞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마하연은 먼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그대가 (극락이나 지옥 때문에) 선한 행위나 악한 행위를 한다면 (당신은 아직) 윤회에서
해탈한 것이 아니다. 성불의 길에 장애가 있다. …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심사숙고하지 않는
사람이 윤회로 부터 완전히 해탈할 것이다. … 그는 즉시 깨닫는다[돈오]. 그는 십지(十地)를
통달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 깨달음은 계율과 전혀 무관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는 중생들을 극락과 지옥으로 인도할 뿐이고, 윤회속에 여전히 속박시키는 장애이다.
깨달음은 모든 사고와 정신적 행위의 단절 속에 있다. 그래서 깨달음은 필연적으로 돈오
(혹은‘동시적’ - 여기에 해석과 번역의 문제가 있다)이다. 거기에는 (보살지의) 단계도 없고,
분별지(分別智)에서 무분별지로 갈 필요도 없다.
티베트의 부톤(Bu ston, 1290-1364)에 따른다면 연화계는 마하연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만약 그대가 옳다면 개념적 행위를 통해서 얻어지는 지혜는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해탈을
얻게 하는 지혜는 엄밀하게 개념적 행위의 결과이고, 실체에 자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밝히는
분석의 결과이다. 무념(無念)의 상태에서 어떻게 관(觀)이 가능한가?
만일 정견(正見)을 얻지못한다면 어떻게 사견(邪見)을 버릴 수 있겠는가?
더 나아가 연화계의 추종자들은 돈오를 얻는다는 것은 보시(布施), 지계 등의 육바라밀을 통한
점수(漸修)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수행할 필요가 없는 돈오를 받아
들인다면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결국 종교적 수행은 전혀 있을 수 없다. 마하연의 방법은
경전에 모순되는 것이며 계율과 자비를 파괴하고 실제 관법을 행할 필요도 없게 되는 것이다.
왕은 이 논쟁에 설득되어 연화계 측의 승리를 선언했다. 왕은 이때부터 모든 사람들은 용수의
가르침에 따라야 하며 계율과 바라밀을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고 포고하였다. 마하연과
그의 제자들은 티베트에서 추방되었다. 그들 중의 몇몇은 자살했다고 한다.
티손데첸왕은 조금 야만스러운 국민들에게 계율의 정신을 심어 주기를 원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화계와 그 추종자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이다(Houston 1980: 9).
왕은 선한 행위의 가치를 부정하고 영적 수행자를 계율의 (그리고 법률의) 통제권 밖에
두는 견해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그는 중국불교와 너무 가까워지는 데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티베트는
여전히 중국과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티베트인들의 마하연에 대한 견해는 ‘틀린
견해들’의 전형으로 흔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하연의 입장은 위험하고 잘못된 해석의
예로 본다.
총카파는 반대론자들이 공(空)에 대한 통찰력을 발생시키는 지적 분석의 역할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종종 이 이단에 빠진다고 비난한다. 두 접근 사이의 긴장감의 일부는
분명히 분석을 하면 대상 안에 자성이 없다는 중관학의 공에 대한 보편적 견해와 공에 대한
여래장의 관점 사이에 하나의 대립을 확인할 수 있다.
선(禪)을 포함한 중국불교에 깊이 영향을 끼쳐서, 여래장에서는 공을 개념적 집착들이 없는
순수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파악한다. 이 두 번째 접근 방식에서는 개념들과 또한 필연적으로
개념적일 수밖에 없는 정신의 행위를 순수한 내적 광명을 가리는 장애이자 구름으로 본다
(부톤에 따르면 이것은 마하연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계속 언급한 영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첫 번째 접근 방식은 개념 적인 행위를 유익한 것과 무익한 것으로 구분한다.
공의 적절한 이해를 위해 유익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것으로서의 무엇이 자성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관하는 분석과 함께 개념적 행위를 구분한다.
최근에 학자들은 중앙아시아의 돈황(燉煌) 유적에서 아주 초기에 쓰여진 다량의 단편적인
저작들을 접하였다. 돈황은 한동안 티베트 왕조 아래 있었기 때문에 티베트어로 쓰인 이
저작들에서는 마하연의 실제 견해가 무엇이었는지를 좀 더 명확하게 밝혀 주고 있다. 사실
마하연은 계율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출가의 서원(誓願)을 시행하려고 준비하였다.
이 단편들 가운데 하나에 의하면 비록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초월할지라도 수행자는 공덕과
바라밀을 쌓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Gómez 1983: 118, 127). 이 단편들에 따르면
마하연은 윤회의 근본 원인을 분별(vikalpa 앞의 책: 107)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분별하는 마음을 끊음으로써 온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사고들을 끊으려는 노력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집착이기 때문이다.
깊은 사마디에 들어갈 때 수행자는 자신의 마음을 관하게 된다. 무심의 상태라면 그는
생각에 몰두하지 않을 것이고 분별의 생각들이 일어난다면 그것들을 자각할 것이다. …
생각들이 일어날지라도 그는 그것들을 관찰하지 않는다. … 그는 어떠한 법(法)도 관찰하지
않는다. 만일 그가 이렇게 생각들이 일어나는 것을 자각한다면 독립적인 존재가 없음을
(알 것이다). …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좌선한 후에 마음은 길들여지게 될 것이고, 이 자각도
분별심임을 알게 될 것이다. … 깨달음 자체에는 이름이나 형태가 없다. … 깨달음과 그것이
일어나는 곳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인식할 수도 없는 것을 생각 할 수는 없다.
이렇게 생각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조차 집착하지 않는 것이 여래(에 곧바로 도달하는 길)이다.
(Gómez 1983: 108-9)
이처럼 상념의 순간마다 해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수행자가 무분별을 경험하거나, 이
개념들을 따라 행동하지 않거나,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집착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
순간에 해탈이 이루어진다’(앞의 책: 125). 이러한 수행을 대바라밀(大波羅蜜)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티베트 닝마파의 족첸(rDzogs chen)이나 선불교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수행이다.
이들은 확실히 마하연의 견해에 대한 전통적인 티베트 해설보다는 훨씬 정밀하다. 그러나
계율과 바라밀들에 대한 마하연의 태도는 어떤가? 그는 사실 보시나 지계 등의 바라밀들이
자신의 명상 수행과 조화를 이루도록 재해석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무분별에 들어갈 때
수행자는 위대한 지계바라밀을 얻는다. 왜냐하면 몸·입·뜻의 세곳 가운데 어디에서도 전혀
잘못을 범하지 않기 때문이다”(Gómez 1983: 122)라는 것을 모든 개념화 작용을 끊는
직접적인 관찰을 얻은 후 에야 지계 등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은
또한 선과 유사하다. 예를 들면 도원도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였다.
티베트의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연화계는 누가 살해했는지 불명확하지만 살해되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에 쓴 세편의 『수습차제론(修 習次第論, Bh?van?krama)』에서 자신이
이해하고 가르친 도를 요약하고 마하연 화상의 수행 방식을 비판하였다. 연화계는 마하연의
수행방식은 깨달음으로 이끄는 올바른 분석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였다. 깨달음 없이 계율을
지킬 수는 없다. 더욱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공덕과 지혜 두 가지를 완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공덕은 보시나 지계 등의 방편을 통해 이루어진다. 티베트인들은 마하연을 내몰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에 지나치게 탐닉하여 현자를 존경하지도 않았고 붓다의 말을
무시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파멸로 이끌면서 다른 이들도 파괴하려고 하였다. 그들의
말은 모순이라는 독에 오염되었으며, 논리와 경전의 전통에서 어긋났다. 그래서 현자가
그들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적정(寂定)주의와 계율 폐기론에 대한 연화계의 견해는 때로 선정과 결합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티베트에서 인도 출신 스승과 중국의 스승들 사이에 정확히 성불의 도를
어떻게 따라 갔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에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특히 『수습차제론』 제1편에서 연화계는 자신이 이해한 도의 단계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이를 옹호하였다. 아티샤의 『보리도등론』과 이에 대한 아티샤의 주석서와 함께
『수습차제론』은 티베트에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단계들을 밝혀 주는 가장 중요한 인도
원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도(道)는 자비심과 함께 대승의 출발점이다. 왜냐하면 연화계는
“자비심만이 붓다의 모든 속성들 가운데 근본 원인이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히 자비심이 이 도를 위한 것이므로 이제 자비심을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