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첫 수확이라며 싱싱한 복숭아를 원두막 올려 줄 때 오빠는 풋풋한 청년이었다. 친구가 중학교 졸업 할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빠는 동생들을 위해 대학진학을 포기한 채 복숭아밭을 시작했다. 생각만큼 복숭아 재배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발효퇴비는 언제쯤 주어야 할지, 가지치기는 언제 하는지, 잎마름병은 어떻게 물리쳐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높은 당도가 스미는지, 알아야 할 것도 해줄 것도 많았다. 이만하면 되겠지 싶으면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수없이 교차한 시행착오 끝에 해마다 밭은 환하게 봄을 지피고 당도 높은 여름에는 마지막 맛을 익혀가는 복숭아를 볼 수 있었다. 그 수고로 대학까지 오게 된 친구는 보답으로 오빠를 축제에 초대했다. 오빠 짝이 되어 쌍쌍파티에 함께 갔고 복숭아 수확 철이 되자 시골 친구네로 따라 나섰다. 오빠는 비타민과 수분이 풍부해 피로 회복에 효과적이며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베타카로틴이 있어 미용과 노화방지에도 좋다며 복숭아 예찬을 한참이나 했다. 털이 고르게 나있으며 흠집이 없고 꼭지 부분에 틈 없이 안쪽까지 노르스름한 색을 띠는 단단한 황도와 전체적으로 붉은 색으로 모양이 좌우대칭이 고른 상큼하고 달달한 향기가 진한 백도를 고르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흠 있는 복숭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온전한 복숭아만 골라서 땄다. 일하는 것도 잠시 시끄럽게 수다만 떨다가 오빠가 골라준 먹음직스러운 복숭아를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갑자기 부자가 된 것처럼 행복했었다.
제법 이름 있는 회사에 입사하던 날 부모로서의 할 일은 다 끝날 줄 알았다. 아들이 받은 월급에서 주는 용돈을 받으며 남들처럼 자식자랑하며 여행이나 다닐 줄 알았다. 몇 년 만 알뜰히 모으면 아들도 결혼하고 나도 평범한 할머니들처럼 손자 재롱에 세상 근심 잊으며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좀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고 싶다는 몸부림에 새롭게 공부를 시작한 아들, 세상은 생각만치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학력은 높아졌고 스팩은 다양했지만 재취업의 문은 생각보다 좁았다. 연이어지는 실패에 아들은 말 수가 줄어들었고 든든하던 등은 점점 휘어지고 약해져 갔다.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 했건만 아들은 어미의 희망대로 되지 못했다. 열심히 공부했고 어른들 말씀 거스르지 않던 모범생이 부르기조차 싫은 백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아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아들은 내 가슴에 대못 하나 깊숙이 박아놓고 그 대못에 찔린 나는 빼지도 못하고 그 저린 아픔에 오래도록 울기만 했다.
더운 날씨인데도 몸에서는 한기가 돌았다. 며칠 씩 불면의 밤을 보내는 증세가 점점 심해져갔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친구가 불렀다. 터미널로 마중 나온 친구 차를 타고 복숭아밭으로 들어 설 때는 나도 모르게 가슴 설레었다. 좁았던 농로는 예전 보다 넓고 반듯해졌다. 복숭아나무는 훨씬 굵어졌고 입구에는 커다란 정자가 고풍스런 모습으로 새로 지어져있었다. 원두막은 빛바래졌지만 아련한 옛 추억을 회상케 했다. 수확을 마친 복숭아들이 크기와 품종별로 나란히 분류되어 있었다. 시간이 나를 변하게 한 걸까. 비좁은 틈새에 갖가지 다른 흉터를 간직한 채 플라스틱 통에 빼곡히 들어 있는 복숭아를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들의 삶을 보는 것 같았다. 연이은 실패에 빛도 보지 못한 채 흠 있는 인생이 되어 가는 아들, 멍들고 찍힌 상처들이 애처로운 복숭아. 한참동안 흠 있는 복숭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가 쉬기 편한 정자로 가자고 했지만 원두막으로 올라갔다. 좁고 불편해도 그 곳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잠시 쉬라며 친구가 주는 목침을 베고 눕자 온 몸의 통증이 사라진 듯 편안해진다.
“너는 하나도 안 변했네.”
꿈결처럼 들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얼굴 가득 잔주름에 머리마저 희끗했지만 여전히 선한 모습의 오빠가 복숭아 한 바구니를 올려주며 환하게 웃는다. 삼십년이 넘어가는 세월동안 오빠는 묵묵히 복숭아밭을 지키고 있었다. 반가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예년에 비해 올해는 복숭아 농사가 잘 안됐다고 한다. 안 되는 날이 있으면 잘 되는 날도 있는 거라며 인생사랑 똑같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아까부터 마음에 쓰였던 흠 있는 복숭아를 가르키며 버려지냐고 물었다. 흠이 있다고 다 버려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향과 맛이 강해 잼, 주스, 조림 등으로 만들어 진다고 한다. 복숭아도 예전과 많이 달라져 특화된 상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품종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단다.
뭐든 빨라지는 세상,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하면 낙오자 취급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한 그루 복숭아나무에서 흠 하나 없이 온전한 복숭아가 수확 되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혹여 흠 없이 수확된 그 복숭아의 맛이 다 달콤할까. 더러는 열매를 맺어 보지도 못하고 져 버리는 꽃도 있으리라. 세상에 태어난 인간 역시 모두가 완벽하지는 않을 것인데 유독 내 아들만큼만 잘 나기를 바라며 살았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오만 속에 흠 없이 키우려 노력했다. 가끔씩은 부족한 면이 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때늦은 반성에 이제라도 마음을 내려놓으려 노력중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기다려보리라 마음먹는다. 비바람 속에서도 꽃 피고 열매 맺어 기어이 여물은 복숭아를 수확 해 내듯, 상처 나고 실패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단련되는 것 또한 아들의 몫일 것이다. 벌레에 먹히고 여기저기에 찍혀 상처 뿐은 복숭아도 많은 가공식품으로 새로이 태어나는 것처럼 아들도 좌절하지 않고 또 다른 모습으로 일어서길 빌어본다. 그 기다림이 길어 진만큼 누릴 수 있는 기쁨도 더 커지리라. 오빠가 오래 쉬었다며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복숭아 밭 속으로 들어간다. 어느 틈에 친구가 복숭아 한 쪽을 입속으로 넣어준다. 눈은 희뿌옇게 흐려오는데 입안에는 달콤함이 가득히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