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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제19대 숙종(이순)의 여자들 ㅡ
희빈 장씨!
본명은 장옥정이다.
조선 최고의 미인이다.
Miss Chosun 眞善美(진선미)였다.
*극중 장나인, 김혜수씨
만약에 조선에 장희빈이 없었다면 현대 사극 만드는 사람들의 밥줄에 많은 타격을 입혔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을 많이 우려먹었기 때문이다.
장옥정!
효종 10년(1659년) 8월에 인동 장씨인 장형과 어머니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에 의해 궁에 들어왔고 숙종 27년 10월에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혐의로 취선당에서 사사되었다.
''때~~앵'' 끝이다!
이렇게 쉽게 끝날 일생인데 그 속에는 무수한 이야기 거리가 있다.
팜 파탈!
장옥정의 삶이다.
(* 앞으로 장희빈으로 용어를 통일함)
* 팜 파탈
팜 파탈(프랑스어: femme fatale)은 '파멸로 이끄는', '숙명적', '치명적'인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파탈(여성형 fatale)과 '여성'을 의미하는 팜(femme)의 합성어이다. 19세기 유럽의 문학에서 사용을 시작하였고, 주로 남성을 파멸적인 상황으로 이끄는 매력적인 여자의 뜻으로 쓰인다. 영어로는 the fatal woman 이다.
<naver>
* 마타하리 모습!
오늘은 특별히
리크라테스가 장희빈과 인터뷰한 내용을 올린다.
진짜 인터뷰를 했냐고 따지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이 글을 읽을 정도면 그런 것을 따질 나이는 아닐 것이다.^^
*
나는 장옥정(張玉貞)이다!
구슬 옥(玉)에 곧을 정(貞)자를 쓴다.
옥같이 귀하고 곧게 살으라고 내 아버지 장형이 붙여준 이름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런 삶을 살지 못했다. 안타깝다.
왜 그렇게 됐을까?
리크라테스가 앞에서 소개한 대로
1659년(효종 10년) 음력 9월 19일에 태어났고,
1701년(숙종 27년) 음력 10월 8일에 취선당에서 남편 숙종이 주는 사약을 먹고 죽었다.
내 나이 한창 무르익을 마흔 세 살에...
나는 죽어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했다.
왠지 아는가?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 2021년까지 320년간 나를 제대로 알아주고 이해해 준 사람은 없었다.
저 역사를 가지고 먹고 사는 사학자들이나..
역사를 가지고 영화를 찍고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나..
그리고,
이것들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진면목을 보고 나를 평가했는가?하는 말이다.
나, 장옥정도 할 말이 많다!
오늘 리크라테스를 만나 그를 통하여 내 삶의 전부를 공개하겠다.
혹시 실록이나 사료에 있지 않다고 나의 말을 글로 대신 적는 리크라테스를 너무 타박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는 300여년 전 나를 인터뷰하러 올 정도로 생각이 기발한 사람이다.^^
내 죽어서 저승에 있다보니 저 서쪽나라 영국에서 E.H.Caar
라는 역사학자가 왔길래 그에게 역사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
영어로 물어본 것은 아니다.
내 살던 시절에는 아직 영어가 조선에 들어오지 않았던 시대라 난 영어를 모른다.
여기 영혼들이 있는 영계에서는 각국 말을 쓰지 않고 통일된 언어를 쓴다.
그러니..
쓸데없이 어렵게 외국어 공부한다고 스트레스 너무 받지 말아라.
세월이 바뀌어 조기영어교육인지 뭔지 한다고 아이들 혀수술도 시키고, 색시와 애들 미국에 보내고 홀로 외롭게 살고 있는 너희들을 볼 때 참 안타깝다.
리크라테스란 친구도 몇 개 외국어 하느라 고생 바가지로 했다고 하는데 다 쓰잘 데 없는 짓이다.^^
Caar라는 친구가 그러더라.
''역사는 과거의 사실과 역사학자간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처음에는 '무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알았다.
그런데 그가 쓴 책 ''역사란 무엇인가?''에 이야기를 듣고나니 그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는 원문에 이렇게 썼다고 하더라.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History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이해가 되는가?
이 말의 뜻은..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과정일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 양자를 더 깊게 이해시키려는 데 있다.
따라서 역사가의 지식은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사람들이 여러 나라에서 그 축적에 참가해온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즉, 그 행위를 연구하는 당사자들만 하더라도 진공 속에서 행위한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과거 어느 사회의 문맥 속에서, 또 그것에 충동을 받으면서 행위하고 있는 것이다.
참 똑똑한 친구였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당신들이 역사가 과연 무엇인지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어떨까해서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했으니 양해를 바란다.
리크라테스도 그러더라.
''지도자들은 역사의식과 시대정신(zeitgeist)를 꼭 가져야 하고 그 바탕 위에 부국강병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사는 비록 과거의 행적이지만 현재와 미래를 밝혀주는 거울이다. 지도자는 역사를 공부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을 깨닫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먼저 나의 주요 이력, 발자취이다.
1686년~1688년(후궁:숙원)
1688년~1689년(후궁:소의)
1689년(후궁:빈)
1689년~1694년(왕비)
1694년~1701년(후궁:빈)
그 누가, 어느 왕비가 나처럼 살았겠는가?
연산군 엄니인 폐비 윤씨가 좀 맞짱을 뜨자고 하는데 나와는 적수(?)가 되지 않는다. 질투에서는 조금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줄 모르지만 치밀하고 정치적인 머리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단연 내가 우위다.
난 중인 출신이다.
사농공상인지 뭔지 인간을 차별하는 계층화 된 시대에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나는 왕비가 되었다.
저 밑바닥에서 여자로서는 No.1인 왕비가 되었으니 그 얼마나 입지전적인 인물이냐?
하느님이 인간을 최초 창조할 때 부귀빈천이 어디 있었고, 사농공상이 어디 있었으며 인간 종자를 그렇게 차별하며 만들었겠는가?
다 인간들이 만든 것이다.
가진자들(the Haves), 지들이 편하게 살려고 그런 것이다.
성리학이란 것을 조선에 도입한 것도 난 지들이 남들 잘 부려먹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내 편협된 생각일 수도 있다.^^
좀 의아한 생각이 들면,
최근 리크라테스가 쓴 '<총ㆍ균ㆍ쇠> 요약 1~22편'을 잘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법이 왜 만들어졌는지도...
내가 중인으로 태어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사주팔자에 보면, 자신이 직접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기의 부모를 선택한다는 말도 하는데, 그것이 나의 전생의 능력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나의 라이방(rival)이었던 저 인경왕후나 인현왕후는 사대부라는 집안에서 태어나고 나는 중인 집안에서 태어나야 했는가?
어느 정도 일리(one two)가 있기도 하다.
그렇다손치더라도 열 받는다.
''돈도 실력이야!
돈 없으면 니 부모를 원망해!''
지난번에 정유라 공주가 말했다는데 우리 왕가에서는 그런 공주를 둔 적이 없다.
아마 사이비 공주일게다.^^
중인!
절대 그런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다행히도 잘 태어났다.
이유는 세가지 이다.
궁금한가?
그래 궁금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 말을 엄지 손꾸락으로 대신 적을 리크라테스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다.
우리는 영靈으로 되어 있어 피로를 못느끼는데 육체라는 것을 가진 리크라테스는 손꾸락과 눈의 피로를 많이 느끼는 모양이다.
이거 약을 가져다 줄 수도 없고...
인간 세계에서는 뮈니뭐니해도 money 가 아니고 건강이 최고다.
건강하게 다시 보자!
장희빈으로부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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