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6
“신부님, 저희 알아보겠어요?”
“뉘시더라? 아......하!”
“네, 네. 15년 전 중국 무석 공소요!”
하도 반가운 나머지 막 오십 줄에 들었을 남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입에서는 벌써 노래 한 가락이 절로 나온다.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
양업고등학교에서 지내던 광복절의 저녁이었다. (교장 선생님인) 동창 신부가 식사 약속이 있다고 나간 바람에 라면이나 먹고 교정에서 실컷 산보를 할 참이었다. 얼마 후 되돌아온 교장은 학부모 부부를 데려왔는데, 어쩌다 중국 얘기 중에 차쿠 신부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그럴 때 부부의 눈이 반짝반짝하면서
“어머, 저희도 그 신부님 알아요!”
해서, 식사를 초대하러 온 것이었다. 그 광복이자 말복의 저녁에 우리 넷은 흐르던 여울의 물이 잠시 멈춰선 소沼가 보이는 식당까지 이동해서 웃음꽃을 피웠다. 15년 전 무석 공소의 총무를 맡아달랐다는 둥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추가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 무렵 동창 신부도 나를 보기 위해 중국에 왔고, 우리 넷이 한 연회장에 있었다는 거였다. 교장과 학부모로 처음 만난 줄 알았는데 이미 여러 해 전에 이국에서의 성탄예술제에 함께한 것이다. 찰나와 같은 인연이 가물가물 떠오르자 세상이 참 좁고, 그 세상으로 난 길을 가다가 잠시 멈춰선 자리에 걸터앉은 기분이 되었다. 그 저녁 그 길목에서 우린 “이렇듯 오래된, 이렇듯 새로운” 길손들이나 다름없었다. 동창이 나를 보고 짓궂게 웃으며
“친하지는 않지만 평생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라고 하자 부부가 동시에 손뼉을 치며
“어, 그건 바로 저희도 마찬가지인데요!”
하며 노을처럼 웃어젖힌다. 왁자지껄한 그 모든 말들은 내 귀에 ‘길동무’라는 세 글자로만 들렸다. 기왕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날지 모를 길손이라면 언제든지 “다시 보고 싶은” 사이여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중국인들은 만나면 “니하오”라고 한다. 헤어지면서는 “짜이찌엔! 再見!”이라 한다. 직역하면 “다시(再) 보자(見)!”라는 뜻이다. 이보다 정중하게는 “훠후이요치后會有期”가 있는데 “후일을 기약합시다.”이니 “다시 보자!”와 다르지 않다. 어쨌든 헤어지는 섭섭한 마음도 “다시 보자!”고 인사하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다.
<천국에서 다시 보고 싶은 사람 3명>
실은 이 소재를 이용해서 쓰고 싶은 소설의 한 장면이 있다. 소설의 배경은 160년 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산중에 마을을 꾸린 어느 교우촌이 될 거다. (어차피 소설에서 작가는 전지전능하니까 마음대로 하면) 가령, 교우촌에서 매년 연말에 실시하는 이 무기명 투표를, 잔치마당처럼 그려놓고 싶은 거다. 최다득표자가 (나이와 건강상 문제없다면) 새해의 공소회장직을 맡는다. 투표 과정은 여기서 끝나질 않으니, 신임 회장은 기표용지를 비밀처럼 보관하다가, 일 년에 한 번 오는 최양업 신부께만 보이는 거다. 그렇다면 자기 가족한테마저 적게 선택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사제만은 은근히 알게 될 것이 아닌가? 이런 부끄러운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가족 간에 밀렸던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하는 흐뭇한 정경을, 그저 따뜻하게 그려보자는 게 목적이다. 나부터 그리 살아보자는 의도이기도 하다.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오늘의 인연이 내일의 길 위에서 어떻게 만나질지 알 수가 없다. 기왕이면 다시 만나고 싶은 사이로 남고픈 이유이다. 이것은 하느님 나라도 마찬가지이겠다. 하느님은 장차 모든 것을 해 주실 분이다. 우리의 허물을 덮어 주시고, 잘못은 용서해 주시며, 크신 자비로서 악연을 선연으로까지 바꾸어 주시겠다. 그런 하느님께서도 하실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가 천국에서 영원히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을 이 지상에서 만들어 놓은 일일 거다. 도대체 자기가 보고 싶어야 보고픈 대상이 되질 않겠는가?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야말로 스스로 만들어야지 그 누가 대신해 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