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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1. 개요
우리 인생길의 한중앙, 올바른 길을 잃고서 어두운 숲을 헤매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무서움으로 적셨던, 골짜기가 끝나는 어느 언덕 기슭에 이르렀을 때
나는 위를 바라보았고, 이미 별의 빛줄기에 휘감긴 산 꼭대기가 보였다.
사람들이 자기 길을 올바로 걷도록 이끄는 별이었다.
단테 신곡 지옥편 첫 구절
이탈리아의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가 1308년부터 쓰고 죽기 1년 전인 1320년에 완성한 대표 서사시이다. 신곡은 이탈리아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자 인류 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으로 널리 평가받는다. 원 제목은 《LA COMMEDIA DI DANTE ALIGHIERI》로 한국어로 번역하면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미디(희극)'가 된다. 신곡(神曲)이라는 번역명은 일본의 작가 모리 오가이가 새로 만들어낸 단어이다.[1] 한자 그대로 '신성스런(神) 노래(曲)'라는 뜻. 노래(曲)라고 한 것은 이유가 있는데, 행의 마지막 음절이 맞춰지는 압운이 계속해서 3번씩 반복되며, 한 행은 전부 11음절로 구성되어 마치 판소리처럼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2. 상세
왜 당신은 신곡을 읽어야만 하는가?
단테의 신곡은 하느님의 섭리와 구원, 그리고 그를 대하는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를 중심으로 서구의 기독교 문명을 집대성한 문학작품이다. 다루는 범위는 예술과 문학, 역사, 전설, 종교, 철학, 정치학, 천문학, 자연 과학 등 인간의 삶과 지식에 관계되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신곡은 균형과 절제를 통하여 문학작품이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업적을 이루어냈다. 수많은 비평가들은 단테를 우주의 보편성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했고, 뛰어난 문학적 장치의 설계자로 인정했다. 신곡과 함께 단테는 호메로스,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양 문학사 최고의 위치에 있다.
단테는 고대 로마 최고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젊은 시절 짝사랑했던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아 사후세계인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신화 혹은 역사의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이를 통해 당시 기독교 신앙과 윤리 및 철학을 고찰하는 내용이다.
영어로 하면 Divine Comedy다. 본래 고전 시대 그리스에서 Comoidia(코미디의 어원)라는 말은 희극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서, 비극과는 반대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극 장르를 의미했다. 극중의 단테가 천국에 이르게 되므로 해피 엔딩이기 때문이다. 또 당대에 진지한 책은 전부 라틴어로 쓰였고 각 나라의 방언으로 적힌 것은 진지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당시 단테가 이탈리아 피렌체 방언을 섞어서 만든 이탈리아어로 쓴 이 책은 commedia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또한 특히 지옥편에서는 악인들과 사회를 조롱하는 풍자에 가까운 장면이 많다.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점에서 단테는 <희곡(La Commedia)>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1555년 베니스판 이래 희곡 앞에 "Divinia"가 추가되어 < La Divina Commedia Di Dante>가 되었다.[2]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나뉘는데 지옥편이 가장 잘 알려졌다. 각 33곡인데 서곡을 더해[3] 총 100곡으로 이루어졌다.
이 작품은 당시의 문어인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 방언으로 저술되어 이탈리아어의 생성과 발전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근대까지 유명한 저작들은 모두 라틴어로 저술되었으므로 매우 특이한 작품이다. 당대에 당시의 지역 언어로 작품을 쓴 덕에 이탈리아어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실제로 당대의 이탈리아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지옥에서의 형벌은 대부분 자신이 저질렀던 죄를 다시 되돌려받는 형식이다. 바람을 피우면 바람에 날아다니고, 과하게 탐식하면 괴물에게 먹히고, 인색하거나 낭비하면 돈주머니 같은 돌을 굴리는 형벌을 받는다. 이를 지상에서의 악행과 똑같이 대응하는 지옥의 형벌이라고 해서 '콘트라파소(Contrapasso)'라고 한다. 예를 들어 앞을 내다보는 점술가들은 더 이상을 앞을 내다보지 말라는 뜻으로 머리를 180도 뒤로 돌리는 형벌을 받으며[4], 위선자들은 겉은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고통스러운 금빛의 납 망토를 입는 형벌을 받는다.
특이하게도 배신과 배반의 죄보다 이단이나 신성모독의 죄가 더 낮은 죄로 분류된다. 단테가 살았던 중세시대는 신에게 이르는 길이 구원이자 행복이었기에, 가장 큰 죄는 신을 어기는 일이 되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5] 따라서 신성모독자를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두어야하는데, 단테는 그러지 않았다. 이는 정치가로서의 단테가, '신'의 입장에서 보다는 어느 정도 '인간'을 기준으로 죄의 경중을 살폈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차용한 인물이나 요소들도 많은데, 미노타우르스나 케르베로스 등이 지옥의 악마로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웬만한 고어물 저리 가라할 정도의 잔인한 묘사로 인해 말이 많다. 또한 무함마드와 그의 사위 알리가 기독교의 분열을 조장한 죄로 지옥에 있다는 설정 때문에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취급이 안 좋다.[6] 미국의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는 종교 차별, 기독교 우월주의로 점철된 구역질 나는 시를 명작이라고 언급하는 것이 어이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현대의 잣대를 들이댄 것이라 좋은 비평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아는 고대 신화와 고전 명작들 상당수는 '구역질 나는 작품'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타락한 성직자들도 지옥에 있다고 대놓고 묘사한 것 때문에 곳곳에서 금서로 지정할 때도 있었을 정도로 파격적이고 시대를 앞서간 면모도 있다.
특이한 점은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가 대접받는 데서 추측할 수 있듯이 트로이 전쟁에 대해 호메로스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것이다. 길잡이인 베르길리우스가 원래 트로이 옹호론자였으므로 거기에 영향받은 듯하다. 단테는 정치가이기도 했는데 로마의 제정과 기독교의 이상이 절대적으로 조화되기를 꿈꾸었다. 로마의 시조인 아이네이아스의 고향인 트로이를 옹호하고 베르길리우스를 길잡이로 삼은 것은 어느 것을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고 보아야 적절하다. 또한 카이사르는 고통 없는 림보에서 편히 지내고,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와 롱기누스가 예수를 배반한 유다와 동급의 처벌을 받는 등, 로마 제정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들 유다, 브루투스, 롱기누스는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얼음지옥에서, 그 정가운데 존재하는 3개의 얼굴을 가진 루시퍼의 거대한 입에 각각 반쯤 물려져 있다. [7]
다양한 국적의 인물들이 언급되지만 단테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인물은 대다수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토스카나 지방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다. 극중에서 단테가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을 찾기 보다는 자기 고향 사람이 있는지부터 우선적으로 살피는데다 나누는 대화도 타지에서 우연히 만난 고향 사람들과 대화 나누듯 하기에 제3자가 듣기에는 도대체 이게 뭔 소리인지 난해한게 많다. 13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사는 세계사에서 비중이 너무나 작아 이탈리아사를 집중적으로 파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헤맬 수 밖에 없기에 배경지식을 알려주는 주석의 필요성이 급증한다.
지옥편에 비해 연옥편과 천국편은 내용이 난해해서 상대적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천국편은 특히 수비학적, 신비주의적 묘사, 신학적 관점이 잔뜩 들어가서 혼란스럽게 하고, 특히 3주덕(믿음 소망 사랑)이 나오면 미친다. 심지어 단테 본인도 천국편의 서문에서 천국편은 '좀 되는' 사람만 읽으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Comedia Divina라고 해서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을 따로 분리해서 팔기도 한다.
3. 줄거리
신곡
La Divina Commedia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단테가 35세 때 밤날에 길을 걷다 산짐승들에게 위협당할 때 베르길리우스(로마의 시인, 영어로는 버질)가 내려와 지옥, 연옥을 안내하고, 이후 베아트리체가 그를 이끌어 천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4. 기타
이탈리아어로 된 최초의 기록으로 인정받는다. 그 이전까지 이탈리아에서는 라틴어로만 기록해왔다.
서로 다른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최소 문자적, 알레고리, 도덕적, 신비적의 네 가지 방법론으로 읽을 수 있다.
묘사가 굉장히 생생하다. 특히 지옥의 묘사는 매우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하다.
교양과 지식을 넓힐 수 있다. 중세에 살던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종교관, 역사관 등을 알 수 있고, 당시의 신학, 지리학, 천문학 등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으면 어디서 아는 척 좀 할 만하다. 그런데 신곡을 완전히 마스터할 정도면 아는 척 정도가 아니라 진짜 지식인이 된다.
죄인들과 선인들의 모습은 일종의 사회적 풍자라고 볼 수 있기도 해서, 단테 본인의 정치관을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다.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이탈리아에서 아예 단테학(學)이라고, 특정 인물의 문학적 업적을 다룬 학문 분야가 따로 존재할 정도다. 당시 언어, 문학의 특징과 단테의 불우한 인생, 당시 피렌체의 정치적 상황, 단테 이전의 고전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이것을 계기로 폭넓은 교양을 기를 수 있지만 난이도가 너무나도 높다.
등장인물들의 다양성과 복잡성 - 무려 1,0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나와 단테를 화나게 하기도 하고 기쁘게도 한다. 이러니 일반적으로 등장 인물을 물으면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정도만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 및 고전 작품들의 인용 - 위에 언급된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언급은 물론이요 베르길리우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에 대한 단테의 평론이 나온다.
서사시의 전통 - 굳이 어렵게 설명할 필요 없이 호메로스만 생각해보자.
미주의 압박 - 예전의 번역본은 한 곡이 끝나면 주석이 마지막에 몰아서 기재되있어서 한 구절 읽고 주석을 읽는 과정을 반복해야 됐었지만 요즘의 번역본은 본문 아래에 깔끔하게 표시되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본문을 읽는 건지 주석을 읽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지옥편의 묘사는 머리에 촥촥 들어오는데 연옥편과 천국편의 묘사는 뭔가 두루뭉술하며 이해가 안 되고 애매하기 짝이 없는 이유를 '현실이 지옥과 같기 때문'이라 했다고 한다.
한국의 '새벗'이란 출판사[8]에서 아동용으로 이 책을 번안한 적이 있다. 제목은 '낮도 밤도 없는 곳'. 주인공은 한국인 소년으로, 원작에서는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을 인도하는데 한국판에서는 김삿갓이 길을 인도한다. 대체 조선의 김삿갓과 기독교의 지옥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겠지만, 아마도 저자가 신비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인을 꼽느라고 그랬던 것으로 추측한다. 지옥편에서는 원서를 그대로 따르는 편이지만, 한국인 독자에게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원작에는 없는 한국인 죄인(주인공의 옆집 아저씨)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김삿갓이 지옥과 연옥[9]을 안내하고 천국편은 주인공의 어릴 적 담임 선생님이 인도하는데, 원서든 한국판이든 연옥편과 천국편은 재미가 덜하다. 삽화가 옛날식이라 붓과 먹을 사용해 아동이 보기에 무리가 없지만, 삽화가의 필력이 상당한 수준이라 겉보기에 엉성해 보여도 굉장히 그로테스크해서 무섭다. 특히 얼굴이 돌아간 죄수들의 모습은 삽화와 소설을 같이 읽어보면 소름이 돋을 지경.
미국의 어느 대학에선 지옥편 하나만 연구하는 학과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서양 학계에서 인정받는 대작이다. 단테의 신곡이 이처럼 대작으로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이 서양문화의 두 원류인 그리스, 로마 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하나로 통합한 고전작품이기 때문이다.
단테의 신곡에서 나온다며 흔히 인용하는 문구가 있다. 바로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보통 정치적 무관심이나 잘못된 형태의 양비론을 비판할 때 인용한다. 그런데 정작 신곡에서는 이런 문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비슷한 문구를 찾자면 지옥편에서 베르길리우스가 '하느님에게 순종하지 않았지만 반항하지도 않은, 불쌍한 영혼과 천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언급하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은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이 아니라 연옥에 가깝다. 위치도 림보보다 오히려 더 위에 있다. 이렇게 왜곡된 이유에 대해선 존 F. 케네디에게 책임이 있다는 해석이 있다. 케네디는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및 1963년 평화봉사단 연설에서 단테의 신곡을 인용한 형태로 저 문구를 언급하였다. 케네디가 단순히 신곡의 구절을 잘못 읽었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문맥을 무시한 인용인지는 명확하지 않는다.
한편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출판되는 성경 또한 각 나라마다 그 나라에 존재하는 단어를 이용하여 해석을 하고, 그것이 다시 전해지고 전해지며 조금씩 해석이 달라지는 양상을 보였듯이, 고대 문학 중 하나인 신곡 또한 그러한 부분이 없을 수는 없기에, "선과 악 중 어느 편도 들지 못하고 자기의 앞가람에만 치중한 비열한 사람들은 지옥과 천국 모두에게 버림을 받아 저승 언저리를 떠돌며 한탄하게 되리라" 라는 문장을 문맥적으로 이해해 보아야 한다는 의견 또한 있다.
아일랜드 태생 프랑스 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무신론자였지만 죽을 때까지 『신곡』을 머리맡에 두고 애독했다.
단테와 신곡에 대해 설명해주는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원제: Reading Dante)"라는 책이 나왔다. 관심있는 사람은 읽어볼 것.
제임스 조이스는 이걸로 이탈리아어를 공부해서 이탈리아어가 조금 이상하다고 들었던 일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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