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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2군단 예하 보병사단. 총 18회의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한 메이커 사단으로, 정식 명칭은 싸우면 항상 이긴다는 의미의 '상승칠성부대'이다. 경례구호는 단결, 할 수 있습니다.
칠성부대의 상징은 북두칠성이며, 북두칠성은 예로부터 우주를 다스리는 별, 동이족의 나라를 다스리는 별로 우리 민족이 숭상해 온 별자리로써, 그 중에서도 일곱 번째 별은 하늘의 법을 집행하는 '요광성'(瑤光星)이라 해 파군검봉(破軍劍棒), 즉 어떠한 적군도 격파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같은 의미에 따라 우리 조상들은 '선봉'의 군대 기(旗)와 지휘관의 칼·봉 등에 북두칠성을 그리거나 새겨넣었다. 조선시대 때 북두칠성이 그려진 깃발은 지휘관의 지휘기로서 '초요기'(招搖旗)라고 불렀고, 북두칠성이 금이나 은으로 상감된 칼(寅劍)을 쓰는 장수는 곧 하늘 칠성님의 장수로 여겼다. 푸른 바탕에 북두칠성이 그려진 휘장을 사용하고 있는 '칠성부대'는 이런 점에서 우리 민족을 지켜온 군의 정통성을 가장 정확히 계승하고 있는 '상승'의 부대임을 자부하고 있다.
1949년 6월 20일에 창설되었고, 한국전쟁 당시 총 28회의 전투에 참전하여 사살 2만 3천 명, 포로 6400여 명, 장비노획 2만 9천여 점의 전과를 올렸다. 특히 낙동강방어전을 수행하던 중, 영천대회전에서 적 2개 사단을 섬멸하여 6사단과 함께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45회의 대침투 작전을 수행, 무장공비 31명을 사살하고 3명을 생포하였으며, 1963년부터 강원도 화천군과 철원군 일대에 주둔했으며, 현재도 15사단과 함께 화천군과 철원군 일부(옛 김화군 지역)에 주둔하고 있다.
이상하게 사단장의 진급이 안 되는 곳이다. 현재까지 서정열 사단장 이후 중장 진급자가 나오지 않고 있으며 2023년 사단장 직을 수행하고 있는 김진호 소장(학군 31기) 역시 짬소장이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승격되었다.
2. 역사
1949년 1월 7일, '제7여단'으로 창설되었고, 2월 1일 '수도여단'으로 개칭. 1949년 5월 12일 '(구)수도사단'으로 승격한 뒤, 1949년 6월 20일 용산에서 이준식 대령을 초대 사단장으로, 1, 9, 19연대를 근간으로 정식 창설되었다.
6.25 전쟁 발발 이전까지는 후방에서 빨치산 소탕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 50년대에 동두천과 포천 경계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는데, 이 와중에 후방 3연대가 (구)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고 충청남도 온양에 주둔 중인 2사단 25연대가 예속되어 6월 15일까지 후방인 의정부로 이동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나 이 연대는 병영 문제로 제때 올라오지 못했고, 그 상태로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 남침을 맞이해 동두천 전투, 포천 전투를 치르게 된다. 그러나 전력의 격차와 예비대가 없어 동두천의 1연대, 포천의 9연대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밀려났고, 의정부 전투에서조차 밀려나고 말았다. 북한군 주공이 동두천 포천지역에 집중되었고 북한군 전차 240여대중 150대가 7사단 방어지역으로 집중되어 대전차 방어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게 된다. 참고로 당시 사단장은 후일 영천 전투와 현리 전투로 좋은 쪽과 안 좋은 쪽 양극단의 유명세를 날리게 된 유재흥 장군이다.
게다가 한강 방어선 전투를 치르는 과정에서 1/3까지 줄어버리는 바람에 병력과 장비들을 아직 건재하던 다른 부대들에게 넘기고 7월 5일 해산되었다가 전주에서 잔류병력을 기간으로 학도의용군, 지원병들을 모집하여 재편 중 북한군이 전라도에 진입하자 목총으로 제식훈련 중이었던 보충병들을 대구로 보내고, 한강 북쪽 전투에 투입되었다가 서해안을 통해 기적적으로 귀환한 보병학교 교도대대를 중심으로 민부대를 만들어서 지연전을 담당한다. 왜 하필 '민부대'였냐면 당시 재편성을 맡은 지휘관이 민기식 대령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낙동강 전선 안강-기계 전투가 한창인 8월 20일 대구에서 3, 5, 8연대로 재창설 후 영천·신녕전투에서 1군단 예비사단으로 8, 6사단에게 예하 부대들을 보내 도움을 주다 인천상륙작전을 전후로 상황이 역전되자 8사단과 함께 잔적들을 소탕하며 북진했다. 이후 서울을 탈환하고 북진하는 과정에서 누가 먼저 평양 탈환작전을 치르고 평양에 입성할지를 두고 경쟁이 일었는데,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서울 선봉 입성을 미 해병대에게 뺏긴 트라우마가 있어 미 1기병사단과 평양 돌입을 다투는 국군 1사단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고 정일권 참모총장에게 말해 결국 유재흥 2군단장을 거쳐 평양에 가장 근접한 황해도 수안까지 진격해있던 7사단에게 평양으로 방향 전환하라는 특명이 하달된다. 3연대장 이기건 중령 증언 이에 8연대 9중대가 차량화보병 상태로 신나게 달려 18일 오후 대동강을 도하해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그러나 1사단의 영역을 멋대로 침범한 것이었기에 이후 모란봉을 점령하고 북한군과 교전 중 1사단 11연대로부터 57mm 대전차포로 공격당하는 참사도 벌어졌다.
하여간 1사단의 영역을 멋대로 침범했기에 대외적으로는 1사단이 입성 부대로 지정되었지만 7사단 역시 대통령의 명령과 육본과 2군단의 지원 속에 평양에 입성한 건 사실이라 지금도 양 사단에선 각각 자신들이 평양을 최선두로 입성했다고 주장하며 7사단은 18일, 1사단은 19일에 각자 평양 최선두입성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자세한 건 평양 탈환작전 문서로. 이후 다른 부대들과 함께 계속 북진했으나 중공군이 가세하면서 개천과 비호산에서 분투하다 청천강 전투 2차전에서 8사단과 함께 전멸당하고 두 사단장이 빤스런하는 굴욕을 겪고 서부전선이 붕괴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게다가 유명한 참패인 현리 전투에서도 미10군단에 배속돼 3군단의 유일한 병참선인 오마치(=오미재) 고개 일대를 사수하다 중공군에게 밀려 퇴각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7사단장 김형일과 그 수뇌부는 퇴각하는 와중에도 중공군이 고개를 피탈했단 사실을 3군단에게 알리지 않아 3군단 와해의 단초를 제공했다. 물론 3군단도 오마치 고개의 중요성을 그 전부터 인지해 초병을 배치하려 했으나 문제는 그곳이 미10군단 예하의 7사단 영역이었고, 급기야 이를 알게 된 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는 무슨 깡으로 월권하냐며 아주 강경하게 막아 사실상 무주공산으로 만든 것도 이유다.
하여간 3군단장 유재흥은 이후 벌어진 군단 와해와 무질서한 패주의 책임을 지고 후방으로 경질되지만, 7사단장 김형일은 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가 워낙 별종인데다 앞서 초병 배치 건으로 이미 3군단과 사이가 안 좋았는데, 그런 상관을 무시하고 직접 옆 군단에게 알려야 할 의무나 깡이 없었기에 현리 전투의 패배를 다룬 글에서 크게 비난받지 않거나 아예 그 이름이 언급되는 일도 드물다.
이후 강원도 양구군에서 고지전을 치열하게 반복하다 1953년 7월 20일부터 종전 당일인 7월 27일까지 벌어진 한국전쟁의 마지막 전투, 425고지-406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해 주변의 백암산, 적근산, 삼천봉을 끼고 군사분계선을 38km 정도 끌어올려 철원 김화군 일부와 화천댐을 대한민국 영토로 확정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전협상 과정에서 군사분계선이 고지 한가운데를 관통해 이곳을 사수하던 장병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내려와야 했다.
참고로 이영선 국방일보 기자에 따르면 영화 고지전은 425고지-406고지 전투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상당 부분이 각색되었는데, 일례로 악어중대는 3연대 1중대이나 국군에 존재하지 않는 10사단 예속이다. 또한 중공군 대신 북한군을 자주 상대한다. 게다가 현실에선 악착같이 사수하다 정전 협정 결과에 피눈물을 쏟으며 내려와야 했으나, 영화에선 정전 협정 때 한 명을 빼면 모두 사망한다.
한국전쟁 중 7사단이 참전한 전투는 다음과 같다.
1950년
동두천 전투
포천 전투
의정부 전투
내촌-태릉 전투
한강 방어선 전투
영천 전투
경주-서울 진격전
평양 탈환작전
개천-비호산 전투
청천강 전투 (2차)
1951년
매봉·한석산 전투
현리 전투
피의 능선 전투 (대전차대대 한정)
송현리-송정동 전투 ~ 백석산 전투 (중간에 8사단과 임무교대)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1차)
1952년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2,3차)
1953년
M-1고지 전투 (+선우고지 전투)
425고지-406고지 전투
휴전 이후 현재까지 중동부 전선을 담당하고 있으며, GOP 작전&근무환경은 21사단과 함께 국내에서 손꼽히는 험지라 힘든 편이다. 특히 8여단 우선에서 21사단 좌선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극심한데, 7사단이 절벽이나 다름없는 산비탈과 계곡을 까서 호러스러운 섹터를 만들었다면 21사단쪽 섹터는 그보다는 좀 낫지만 섹터의 길이가 양구군 만큼 호러다. 참고로 원빈이 7사단 우선 중에서도 최우선 구역에서 섹터 돌다가 무릎이 아작나서 의병 제대했다.
칠성부대는 155마일 휴전선 경계부대 중 가장 좁은 방어정면을 가지고 있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가장 험준하고, 가장 중요한 축선에 부대가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또한 부대 전투력에 대한 신뢰의 증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967년 4월 12일에는 7사단 관할의 DMZ 남방에서 40~60명 규모의 북한군 침투 병력과 2시간 동안 교전이 벌어졌고, 이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수백발 규모의 포격까지 동반되기도 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휴전 이래 최대 규모 침투로 기록되어 있다. 이때 사단장은 본래 북한군 중좌이다가 다부동 전투 때 국군으로 귀순해 국군 장교가 된 정봉욱 소장이었는데, 그는 즉시 제7보병사단 휘하의 포병연대를 동원하여 포격으로 침투하는 북한군을 격멸하고, 다음날 직접 사단 GP로 직접 올라가 방송을 통해 북한군 사단장 및 연대장 이름을 부르면서 만일 여기로 다시 침투하면 그때는 직접 북한군 진지에 포격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호명한 북한군 지휘관들은 과거 그가 귀순하기 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사건 이후 문책을 요구하는 미국 측에 의해 제3사관학교장으로 보직 변경을 당했다.
박정희가 사단장을 역임한 부대라서 5.16 쿠데타 당시 동원되었다는 오해도 있다. 그러나 쿠데타 당시 박정희는 2군 부사령관이었으며, 동원된 부대는 해병여단과 공수특전단 및 수도권의 예비사단 중에서도 소수병력 약 3,000명이었다. 게다가 당시 제7보병사단은 휴전 이후 강원도 최전방에 계속 주둔하고 있는 상태로서 거리상으로도, 안보적으로도 쉽사리 동원시킬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시절 보급은 매우 열악해서 겨울에 동사자가 속출했다. 7사단은 다른 사단과 달리 동사자가 적었다고 박정희가 상부에 표창을 받았다.
참고로 주둔지 대부분이 화천군에 있으나, 전방 GOP여단들은 옛 김화군 금성지역인 3개면에 상당수가 주둔중이다. 현재 저 세 곳은 주소상으로는 철원군이나, 지뢰가 산재한 민통선 지역이라 철원에서 직접 가는 길이 없기에 군의 협조 하에 화천군을 경유해야 갈 수 있는 월경지다.
기타 사항으로 역대 육군 보병사단장들중 예비역 육군대장(13명)을 가장 많이 배출했으며, 6.25.전쟁 중 태극무공훈장 서훈도 많은 편이다.
3. 신병교육대
본래는 제7보병사단 예하 직속대대였다가 제3보병여단에서 3대대를 전환해 만든 신병교육대로, 공식 명칭은 제7보병사단 신병교육대 혹은 제3보병여단 3대대다.
3.1. 상세
후술할 신막사가 완공되기 전까지 산비탈 위로 조성된 샌드위치 패널 생활관들은 훈련병들이, 산비탈 아래 벽돌 생활관은 조교가 포함된 기간병들이 썼으며, 병사식당 근처에 목욕탕도 있었으나 관리와 혼잡함 때문에 어지간해선 훈련병들에게 개방하지는 않았다.
또한 대대 내 부지가 제한된 관계로 화랑 57포병대대 포대 너머에 만든 훈련장에서 사격 및 수류탄 투척, 각개전투 등을 실시하며, 나머지 교육훈련인 제식, 화생방 등은 대대 연병장에서, 그리고 실내 강연 및 (우천시) 수료식은 대대 구석에 있는 대강당이나 다메섹 교회에서 실시한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 복층 신막사를 신축했는데, 상당히 깔끔하고 온수도 잘 나오지만 밥맛은 예나저나 크게 바뀐 건 없다. 건물 바뀐다고 대량조리의 한계도 개선되는 건 아니다.
3.2. 찾아가는 길
오는 길은 산양리나 화천읍에서 풍산리 쪽으로 가다 해산휴게소 삼거리에서 평화의 댐 방향인 오른쪽으로 꺾지 말고 계속 직진하다 보면 왼편에 36XX부대 301 간판이 써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사실 군사시설임에도 입영자들 편의를 위해 화천읍내부터 도로교통표지판에 신교대 방향이 쓰여있고 그게 없더라도 풍산리 방면 도로를 타고 오면 되니 크게 헤멜 일은 없다.
또한 화천 버스 2, 화천 버스 13가 부대 앞을 지나나 인근 정류장이 화랑 포병대대 앞에만 있고, 시간대에 따라 평화의 댐으로 가버릴 수도 있으니 초행길이라면 기사분께 "신교대 지나가요?" 라고 묻거나 입소자나 그 가족/지인이라고 밝혀줘야 향후가 편하다.
4. 예하부대
특이점으로 낙동강 전선에서 재창설될 때 단대호가 한 자릿수인 보병연대들을 모아 재창설됐고 이는 국방개혁 2.0 기본계획에 의거, 상비사단과 지역방위사단이 개편돼 예하 연대들이 각각 여단으로 격상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각 여단별로 별명이 하나씩 있다. 또한 전방 5여단, 8여단의 GOP는 손에 꼽을 정도로 험준하고 후방 3여단도 짐승처럼 구르기에 우스갯소리로 전생에 7가지 죄를 지으면 7사단으로 오고, 여기에 엄청나게 악질적인 죄 하나를 더 저지르면 8여단으로 끌려간다는 얘기가 돌 정도다. 게다가 5여단에서 8여단 사이 접경 지역을 '신조차도 버릴 것 같은 땅'이라고 하는데, 이는 8여단은 이미 버린 땅이고 접경 지역은 버릴까 말까 고민하는 땅이라는 뜻이다.
4.1. 사단 직할대
본부근무대
사단 사령부와 길 하나를 두고 붙어있는 부대로 사령부 업무지원을 담당하는 부대다. 경비, 수송, 본부, 참모 그리고 군악대가 소속되어 있다. 참고로 군악대는 사단급에선 53사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렇게 본부대에 소속되어 운용된다 (53사단은 직할대대로 운용).
제1전차대대
2019년 2군단에서 이 사단으로 예속 변경. 후방 예비사단인 27사단이 해체되면 지금의 6사단처럼 전방을 타 부대(옆의 15,21사단이나 재편 혹은 신설될 경비여단 등)에게 맡기고 후방 예비사단이 되기 위한 밑작업이란 소리도 있다. 육군 최초 전차대대이기도 하다.[26] 2021년 4월 K1 전차가 배치되었다.
수색대대
흉장의 디자인이 멋이 있어 흉장보고 지원한 병들이 가끔 있다. 참고로 과거 육군에서 흉장 디자인 콘테스트를 진행했을 때 우승했다.
육군 정예화 추진으로 간부가 대대인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많다. 1개 중대에 보통 3개의 소대 그리고 각각 4개의 분대로 편제되는데 간부가 분대에 분대장(부사관),부소대장,소대장으로 중대편제 간부가 기본 5명정도 편제 되어있다. (용사는 보통 분대마다 배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7~9명 소대본부는 3~5 사이로 편제 된다.) 간부가 많은만큼 용사들과 간부들이 친근하게 지내며 간부와 용사간 PX내기를 하거나 체단이나 풋살, 족구를 함께 하거나 소대 자체적으로 화천 외출을 하거나 배달음식을 주문해 회식을 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
DMZ 작전 및 적 국지도발시 초동조치와 강상수색, 대침투임무를 수행하며 2개의 중대가 6개월 단위로 5, 8여단 민통선 이북지역에 각각 1개 중대씩 주둔하다가 대대 본부로 투입순서대로 교대로 내려와 3개월간의 재정비후 반대 축선으로 또다시 6개월을 올라가 주둔한다. 그만큼 시간은 잘가는 부대 최근엔 27사단 해체로 인하여 27사단 수색인원들도 다수 합류했다. 과거에는 대대가 북진령을 넘어 밤나무골 GOP지역에 주둔하다가 내려와 민통선 부근인 57포병대대와 같은지역에 주둔하던 중 부대개편으로 사단 본부근무대 건물로 이전했다. 화천에 좀더 가까워졌다. 더군다나 대대에 있을땐 영외제설도 안한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2014년도까지는 눈이 많이 오면 수색대대가 있는 앞쪽 보급선으로 향하는 언덕까지 제설작업을 실시했다. 키로수로는 3~4km라서 오전에 한번,오후에 한번씩 다녀왔다.)
여담으로 랩퍼 넉살이 복무한 부대였다.
공병대대
건물이 T자 모양인 신기한 부대. 공병이란 이름이 어울리게 수많은 불도저,크레인, 수많은 덤프트럭 등과 폭파•지뢰등과 관련된 수많은 장비들을 보유하고 있다. 읍내까지 택시타고 5분안에 갈 정도로 가깝다. 탄약고 근무 서다 보면 저 멀리 정비대대가 보이는데 멀리서 봐도 저긴 좋다는게 느껴진다. 그래도 인공잔디로 만든 풋살장이 있다. 또한 시설이 좋은 면회실이 존재한다.
또한 영선반이라는 군무원들과 같이 일과를 하는 꿀보직들이 있는데 공사감독병, 보일러병, 전기설비병, 목공병 등이 존재한다.
PX 및 사지방등이 있고 공병대대 전용 사격장으로 항햐는 산이 있는데 거의 경사가 80도 이상이니 기대해도 좋다.
정보대대
2022년 12월 01일 창설되었다. 기존 제2군단 예하 142정보대대 편제와 27사단 소속 병력들로 구성되었다. 건물은 공병대대와 같이 사용하고 있다.
군수지원대대
7사단 전체를 통틀어서 시설 좋기로 손꼽히는 부대이다. 읍내에서도 택시로 3분정도면 갈 정도로 비교적 가깝다. 기존 정비대대였으나 2022년 12월 01일부터 보급수송대대와 통합, 군수지원대대로 개편되었다.
보급수송대대
대대본부 및 보급중대와 수송중대(독립중대)는 떨어져 있으며, 수송중대는 대대본부로 부터 약 3KM 정도 떨어져 있다. 사단 내에서 시설이 굉장히 열악하기로 유명하며, 읍내까지 택시로 5분이면 접근이 가능한 곳으로 유명하다. 22년 12월 01일부 군수지원대대로 개편되면서 해체되었다
정보통신대대
사단 사령부와 300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직할대. 사령부의 통신지원 /통신시설 경비 지원과 사단 내 통신 시설의 정비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통신지원으로는 가설 / 교환 / 무선 / 정보보호 측면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다양한 상급 부대의 방문이 전방 부대만큼 잦다.
군사경찰대대
화천군에 소재한 모든 부대를 통틀어서 읍내에서 가장 가까운 부대였으나 2018년 8월 경 의무대 옆으로 이전하였고 근처에 예비군 훈련장이 있다.
의무대대
PX가 없어서 이동식 PX인 황금마차를 이용해야 하고 그 황금마차도 매주 수요일(상신날)에만 온다. 만약 밥을 먹으러 왔는데 밥이 없다면 민간조리원[27]에게 밥이 없다고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부탁을 하면 만약 인원이 별로 없다면 부식으로 나오는 라면을 줄 수도 있다.
외진환자는 너무나도 지루해서 지옥이 따로 없다. 실제로 의무대를 방문하면 정자등에서 베게를 가져와서 누워있는 병사들을 볼 수 있는데, 죄다 진료받으러 오는 타 부대 병사들이다. 만약 자신이 칠성부대 소속이고, 외진을 갈 일이 있다면 미리 PX를 방문해서 주전부리랑 읽을 책이라도 가져오자. 2019년부터 국방부가 병사의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적으로 허가하면서 배게나 주전부리는 다 사라지고 스마트폰만 남았다.
화생방대대
중대 이하급인데다 구막사임에도 PX, 사지방, 제독 등등으로 있는 급수탑과 목욕탕까지 어지간한건 다 있다. 게다가 사단내 내무실 분위기가 좋기로 2위이고 여타 부대보다 널널한 편이다. 물론 단점도 있는데 대대급 규모의 부대 토지와 2군단 창설기념비와 활주로다. 덕분에 사단시찰이나 군단기념행사 때 이곳으로 별들이 헬기를 타고 내려온다.
방공중대
주둔지 인원들은 본부근무대와 막사를 같이 쓴다. 방공진지가 따로 있다. 로테이션으로 방공진지에서 방공작전을 한다. 훈련할때 발칸포나 신궁이 보인다면 방공중대 인원들이다.
보충중대
강변에 위치한 작은 중대였으나 본부근무대와 같은 막사를 22년 상반기까지 사용하다 군수지원대대 안으로 이전했다. 주로 집체교육, 후반기 교육 이후 자대 배치 전 대기 등의 업무를 본다
5. 장교/부사관
채명신
초급 간부 시절 전북에 있던 3연대에서 훈련받았으며, 한국전 당시 5연대 부연대장으로 발령받았는데 연대장 전사 후 다들 이 자리를 기피해 별수 없이 후임 연대장이 되어 백석산 전투의 일익을 담당했다. 이후 파월 한국군 지휘관, 제12대 제2작전사령관을 역임했다.
백선엽
중위 시절 5연대에 임관하여 중령 시절 연대장을 맡았었다. 이후 초대 제1야전군사령관, 제10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제4대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했다.
송요찬
1946년 부산에서 5연대 창설요원으로 활동하다 그해 9월 5일, 5연대의 일부 병력을 차출해 신생 8연대로 보낼 때 강릉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강릉에서 대위로 진급, 1947년 3월 1일부로 8연대 3대대장이 되었다.
선우기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49년 12월 4일 수도사단 소속으로 지리산 공비토벌을 수행하던 중 전사.
함준호
6.25 전쟁 초기 1연대장으로 동두천~의정부에서 전력차로 속절없이 밀려 내려오다 서울 우이동 부근에서 전사.
이의명
광복군출신의 독립운동가. 6.25 전쟁 당시 1연대 2대대장을 역임하였다. 동두천 전투에서 북한군 4사단의 진격을 막다가 전사하였다.
강홍모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54년 제5보병연대 연대장을 맡았었다. 1956년 김창룡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강제 예편했다.
김장수
육군사관학교 27기 예비역 육군대장.
대령시절 5연대장을 맡았었다. 이후 제17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제37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제40대국방장관을 역임했다. 전역 후 국회의원, 국가안보실장 이후 현재는 주중한국대사로 내정되었다. 아울러 아들인 김용우(육사 62기) 또한 칠성부대에 있으며, 부자(父子)가 모두 칠성부대에 있었던 기록이 있다.
한신
8연대가 춘천에 주둔하던 초창기 때 소대장~중대장을 지냈다.
한명희
학군사관 졸업 후 백암산부대 소대장으로 백암 OP에 근무하였고,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비목 작사를 했다.
남재준
육군사관학교 25기 예비역 육군대장.
대령 시절 3연대장을 맡았었다. 이후 제6보병사단장,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제15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제36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전역 이후 박근혜의 안보특별보좌관, 제31대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했다.
이순진
3사관학교 14기 예비역 육군대장.
준장 시절 작전부사단장을 맡았었다. 이후 제40대 제2작전사령관, 2015년 10월에 합동참모의장으로 근무 한 뒤 전역하였다.
천용택
육군사관학교 16기 예비역 육군중장. 중령 시절 57포병대대장을 맡았었다. 이후 12보병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장을 역임했다. 예편 이후 문민정부에서 비상기획위원장에 임명됐고, 국민의 정부에서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국가정보원장, 대한민국 국회국방위원장을 역임했다.
김관진
육군사관학교 28기 예비역 육군대장. 준장시절 작전부사단장을 맡았었다. 이후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대한민국국가안보실장을 역임했다.
이상의
육군사관학교 30기 예비역 육군대장.
중령 시절 사단 3연대3대대장/전초대대장/작전참모를 맡았었다. 이후 육사 참모장, 제39보병사단장, 제1야전군사령부 참모장, 제8군단장,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했다.
이홍기
육군사관학교 33기 예비역 육군대장.
대령 시절 3연대장을 맡았었다.
최병혁
육군사관학교 41기 예비역 육군대장.
대위 시절 5연대에서 GOP중대장을 맡았었다.
유욱상
대위 시절 중대장을, 중령 시절 3연대 2대대장을 맡았었다.
강신철
중령 시절 8연대 2대대장과 작전참모를 맡았다.
김용배
육사 1기 예비역 준장. 한국전쟁 당시 대령으로 5연대장을 역임했다. 양구군 토평리지구 전투에서 중공군 5군단과의 고지쟁탈전을 지휘하다 적 포탄을 맞고 전사했다.
김민수
학군사관 41기로 임관해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고창준
대령 시절 5연대장을 맡았었다.
5.3. 병[편집]
감우성 - 배우
3연대 정훈병 출신이다.
강민규 - MC
8연대 1대대 방송병으로 복무했다.
고인빈 - 프로게이머
권성주 - 정치인
김경모
스트리머 오킹의 매니저로 전역복을 입고 오킹 방송에 나왔는데 그의 군복의 부대마크에 7사단 마크가 박혀있다.
김사율 - 야구선수
김성주 - 방송인
조리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김생못 - 유튜버
김용진 - 가수, '아이' 멤버
군악대에서 복무. 노래 외에 수자폰 연주 임무를 수행.
넉살 - 래퍼
수색대대 출신.
류근지 - 코미디언
사단 직할대 보수대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했다. 타 방송사 선배 황제성과는 단 1개월 차이의 선후임 관계.
미노 - 가수, 프리스타일 멤버
진짜사나이 중년특집에서 7사단을 제대했다고 말했다.
박기선 - 프로게이머
현재 5여단 2대대 GOP에서 복무중이다.
박성민 - 야구선수
서사무엘 - 가수
넉살과 같은 OP에서 지냈다고 한다. 다만 그 때는 서로 잘 몰랐다고 한다.
손성희 - 버즈 멤버
군악대에서 소조밴드 임무를 중심으로 타악기 연주병으로 복무
손호준 - 배우
5연대 2대대에서 PX병으로 복무했다. 당시 늦은 나이에 입대하여 나이짬 대우를 어느정도 받았고, 새치기하는 간부들에게 줄 서라고 화낸 적이 많아 간부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안좋기도 했다고 한다. 손호준이 근무하던 PX는 가벽으로 분리되어 현재는 인사과와 체력단련실로 쓰이고 있다. 마지막 휴가 복귀 보고시 '응답하라 1994' 오디션을 보고 왔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송강호 - 배우
이 때문에 택시운전사 검문소 통과 장면에서 애드립으로 스스로를 7사단 출신이라며 충성을 외친다.
신유 - 가수
사단장 차량 운전병으로 복무했다.
심승보 - 네이버 베스트도전 마지막 휴가의 작가
3연대 1대대 4중대에서 복무했다.
원빈 - 배우
8연대 GOP 복무 중 무릎 부상으로 의병 전역.
유시민 - 정치인
1980~1983년간 5연대 4대대 복무.
윤지성 - 가수
본부대 군악대로 복무.
이석훈 - 가수, SG워너비 멤버
연예병사로 복무 중이었으나 세븐과 상추의 안마시술소 출입 사건이 터지면서 연예병사가 폐지돼 제7보병사단 제3보병연대으로 배치되었다.
이승희 - 인터넷 방송인 신태일의 친동생
자대로 전입오고 1달도 안되고 그린캠프로 떠나 현부심으로 일병 전역했다.
임윤택 - 가수
임종찬 - 야구선수
칠성부대에서 조교로 복무했다.
임플란티드 키드 - 래퍼
양기웅 - 코미디언
코미디빅리그 단역으로 출연하는 개그맨으로 5연대 2대대에서 복무 후 전역했다.
전강인 - 카트라이더 前 프로게이머
3연대 수색중대 출신이다.
정가람 - 배우
제12보병사단으로 입대 후 제7보병사단으로 자대배치 받아 복무 후 전역했다.
정대현 - 가수, B.A.P 멤버
2020년 11월 17일에 입대하여 복무 후 전역했다.
조양호 - 한진그룹 회장, 대한항공 대표이사.
수색대대에 있으면서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진온 - 포커즈 멤버
차선우 - 배우, 래퍼
2019년 7월 30일에 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했으며 신병교육대 조교로 복무했다.
천재민 - 前 농구선수, 現 서울 삼성 썬더스 매니저
군사경찰대대 특수임무대 출신.
최문순 - 前 강원도지사
최민용 - 배우
포병연대 16포병대대 출신.
픽보이 - 가수.
황제성 - 코미디언
라디오에서 7사단 출신임을 밝혔다. 사단 직할대 보수대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했다. 타 방송사 후배인 류근지와는 맞선임과 맞후임
10. 여담
둥근 원 안에 별이 7개가 그려진 사단 마크 덕에 드래곤볼 사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때 5, 8연대가 53~59년 사이 존재하던 제29보병사단 소속으로 있기도 했는데, 다만 해당 연대들은 낙동강 전선부터 현 편제로 죽 이어져 왔기에 임시 배속되었거나 임시로 붙인 번호일 수도 있다.
맥심(잡지)에서 명품 부대 목록에 해당 사단이 누락되어 항의한 사람이 있었다. 비슷한 사례로 DC인사이드에서도 2군단 하위 갤러리 위치가 27사단보다 앞에 있다. 또한 군수지원부대인 육군군수사령부의 애칭이 '칠성대'라 '칠성부대'란 별명을 가진 해당 사단과 혼동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기도 하다. 게다가 칠성부대 7사단은 전방 전투부대, 칠성대 군수사는 후방 기행부대라는 엄청난 갭이 있다.
가수 박효신이 군복무시절 부른 '나를 넘는다'란 군가가 있는데 이 노래에 맞춰 추는 춤이 있다.안무영상 이걸 신병 수료식 때 군무로 추고 대대마다 다르지만 아침 점호 시간에 도수체조와 함께 이 춤을 춘다.
'칠성'이란 단어가 들어가서인지 2005년경 롯데칠성음료와 결연을 맺기 이전부터 사단장 이, 취임식에 롯데칠성음료에서 보낸 화환을 볼 수 있었고, 휘하 연대들에도 이를 기념하는 현판들이 뿌려졌다. 물론 십여년도 더 지난 현재는 지휘관 성격에 따라 연대 본부 동상이나 기념비, 나무 뒤켠에 짬시킨 곳도 있다.
민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78년에 '새둔지 사건'으로 인해 사단장, 3연대장, 대대장을 포함해 7명이 이등병으로 강등 후 불명예 제대를 당했다. 당시 GOP를 담당하던 3연대 1대대 중 3중대가 경계하던 73통문 좌측이 뚫려 공비가 한묵령까지 내려와 많은 아군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결국 복귀하는 공비를 하나도 잡지 못했다. 사건 전까지 GOP를 3개 연대가 번갈아 담당했으나 이후 3연대는 철책 근무에서 제외되어 FEBA 고정으로 밀려났고, 사건이 발생한 1대대는 해체 후 2, 3, 4대대 병력을 차출 후 재편성 되었다.
1999년 8월 23일 TV 내무반 신고합니다 제7보병사단 수색대대 편이 소개되었다.
티빙 드라마 방과 후 전쟁활동에서 1화 중 최초로 낙하한 구체가 이 부대가 관할하는 화천군 지역에 떨어졌기에 잠시 등장했다. 이때 사단장이 로켓으로 구체를 사격했다가 이춘호를 제외한 구체 낙하 현장의 인원 전원이 전멸했다는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