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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감사] 3·15 부정선거 - 4할 사전투표,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투표, 완장부대 활용, 야당참관인 축출
자유당정권은 산업금융채권 발행 및 은행융자에 따르는 뇌물과 대기업으로부터의 강제헌금 등으로 선거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선거관리부서인 내무부를 통해
첫째, 4할 사전투표,
둘째,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투표,
셋째, 완장부대 활용,
넷째, 야당참관인 축출 등
온갖 부정선거 방법을 준비했다.
이러한 사전음모에 따라 공권력과 관료조직을 총동원하여 매수·폭력 및 각종 부정개표를 자행했다.
선거 결과를 집계하자, 자유당 후보의 득표율은 95~99%에 육박할 정도로 높게 나타났다.
이에 당황한 자유당정권은 득표율을 하향조정하여 이승만 963만 3,376표(85%), 이기붕 833만 7,059표(73%)를 득표한 것으로 발표했으나,
이미 부정선거의 양상은 전 국민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된 상황이었다.
이러한 공개적인 부정행위는 곧바로 국민의 필사적인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마산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독재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개되었다.
자유당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시위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마산 시위 당시에 실종되었던 학생 김주열 군의 사체가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되자
이에 흥분한 시민들의 시위가 격렬하게 발전했고,
전국의 학생들도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 실시를 주장하는 시위에 나서게 되었다.
4월 18일 시위를 마치고 귀교하던 고려대 학생들을 정치 폭력배들에게 피습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4월 19일에는 경찰이 경무대를 향한 시위대에 발포하면서 학생 뿐 아니라 전국민적인 저항으로 발전했다.
시위를 진압하라는 지시에 군부가 대응하지 않고,
4월 25일에는 학생들의 시위를 지지하며 부정선거를 반대하는 교수들의 가두 시위가 진행되었다.
미국 정부도 이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권유하면서
결국 26일 이승만은 대통령 직을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3·15 부정선거는 결국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의 몰락을 자초한 계기가 되었으며,
이날 일어난 국민적 저항을 뜻하는 3·15 의거는 2010년 3월 국무회의 의결에 따라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3·15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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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감사] 3·15 부정선거 - 4할 사전투표,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투표, 완장부대 활용, 야당참관인 축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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