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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질병들을 겪어왔다
어떻게 치료하였을까?
불행하게도 역시 선조님들은 현명하구나 하는 치료법은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 지금 기준으로 보면 황당하고 위험한 방법들 뿐이다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지역에서 발굴되는 기원전 3000-4000여년 당시 점토판을 보면 돼지똥 소똥 썩은 고기 기름 돼지귓똥 동물피 곰팡이 등등이 당시 의약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아마 당시에는 질병의 원인을 악령같은 나쁜 것이 몸에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냄새나고 더러운 것을 환자 몸에 넣어야 악령이 쫓겨나온다고 믿었다 일종의 퇴마의식이다 이는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있다
비슷한 사례로 이집트문명이나 잉카문명에서 볼 수있는 두개골 수술 기록 역시 환자 머리에서 악령이 나가도록 구멍을 만든 작업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일종의 '쓰레기약'은 기원전 400년경 히포크라테스에 의해 일부 순화된다 '쓰레기약' 대신 꽃을 넣는다든지 그러나 퇴마식 '쓰레기약' 치료법은 중세시대까지 계속 된다
그중 당시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 병을 먼저 살펴보자
15세기경 유럽국가에서 시작한 대항해시대는 지구 전체를 무대로 한 거대한 문화 경제교류의 시작점이다
당시 선원들은 거친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뱃길을 찾아 아프리카를 거쳐 인도나 남미대륙 밀림을 헤쳐다녔다
이런 용감한 선원들이 두려워한 건 높은 풍랑이나 사나운 해적이 아니라 뱃사람만이 걸리는 이상한 병이었다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밀집해서 생활하다보면 전염병이 순식간에 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이상한 병은 페스트나 결핵같은 전염병하고 달랐다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빠른 쇠약 증세를 보였다 피부 탄력이 없어지고 입안에서 출혈이 생기며 결국 이빨도 빠져버렸다
이는 괴혈병 Scurvy, Scorbutus이었다
신석기시대 유적이나 바이킹족 십자군 기록에서도 종종 발견되기도 하나 대항해시대에는 대규모로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다
유럽인 최초로 인도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는 향신료를 싣고 돌아온다 그러나 2년전 출발했던 168명에서 55명만이 살아왔다 100명이상이 병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괴혈병으로 추정한다
당시는 선원들이 몰살한 채 홀로 떠다니는 유령선이 발견되기도 하던 때다
18세기 당시 잉글랜드해군의 기록에 의하면 4년동안 5명이 전투행위로 사망한 반면 1000명 이상의 선원이 괴혈병 증세로 사망하였다
이 이상한 병은 300년이상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정원 이상의
예비선원을 승선시키기도 했다
일부 경험많은 선원들은 나름 비법을 가지고 있었다
5세기경 일부 중국선원은 생강을 가지고 다녔고 17세기 동인도회사의 선박에서는 레몬즙을 섭취하게 하였다
그런데 왜 제대로 연구된 치료법이 나오지 않았을까?
선조들의 구전과 히포크라테스 이론의 영향으로 병은 나쁜 공기나 냄새 또는 나쁜 음식을 먹어서 생긴다는 믿음이 여전히 깊었기 때문이다
즉 신체에 뭔가가 부족해서 병이 생긴다는 생각은 하지않았다
괴혈병 증세는 당시 유행하던 매독과도 비슷했고 항해 조건도 열악하였기 때문에 전염병이라 생각하고 심지어 게으른 선원의 꾀병이라는 의심까지 하였다
1747년 잉글랜드 해군군의관 제임스 린드 James Lind 는 중요한 실험을 한다 12명의 괴혈병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을 2명씩 조를 나누어 당시 민간요법인 사과즙 황산염약 식초 바닷물 마늘 오렌지/레몬 등을 각각 섭취하게 하고 관찰을 했다
실험 결과 오렌지/레몬을 섭취한 환자는 6일만에 뚜렷한 회복을 보였고 사과즙 섭취는 경미한 회복 그리고 나머지는 효과가 없음을 확인하였다 이 실험 결과는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잉글랜드의 제임스쿡선장은 아프리카를 돌아 호주와 뉴질랜드를 발견하고 남아메리카를 거쳐 3년만에 잉글랜드로 돌아온다 놀라운 사실은 선원들 사이에 괴혈병 증세로 인한 사망자가 없었다 사우어크라우트 sauerkraut 라는 양배추절임을 섭취시켰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선원들이 이 이상한 냄새의 음식을 거부하였으나 간부 식단에 제공되는 걸 보고 자기들도 달라고 요구하면서 섭취하게 되었다
잉글랜드 선원들의 민간요법은 장거리 항해를 가능하게 하였고 많은 식민지를 개척하여 국력을 키운 공로자가 되었다
이즈음 잉글랜드 해군은 라임쥬스를 지참하고 다녔기 때문에 라이미 limey 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
20세기 초반에 들어와서야 비타민이 발견되고 순서대로 비타민 A와 B로 이름이 붙는다
1932년 헝가리의 알베르토 센트죄르지 Albert Szent-gyorgyi 가 파프리카에서 새로운 비타민을 발견하면서 비타민C라고 학술지에 보고한다
그러나 2주전에 이미 미국의 킹 King 박사가 비타민C를 발견하였다고 다른 학술지에 보고한 후였다
연구실적을 도둑 당했다는 센트죄르지의 항의에 1937년 노벨상위원회는 센트죄르지에게 비타민C 발견한 공로를 인정하면서 노벨 생리상과 의학상을 수여한다
영국의 월트 노먼 하워스는 경제적인 방법으로 비타민C 합성에 성공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다
한때 미국 관련학회에서는 노벨상위원회가 편파적이라고 항의하며 킹교수를 비타민C 발견자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미국의 라이너스 폴링 Linus Carl Pauling 은 노벨상을 2번이나 수상한 학자이다 그는 65세부터 갑자기 비타민C 연구에 몰두하더니 '매일 20배 정도로 많은 양의 비타민C를 섭취하면 무병장수하고 항암작용 등 모든 질병예방에 특효가 있다' 고 주장하며 다른 학자들과 설전을 벌였다
당시에는 '수용성비타민은 다량 섭취해도 필요량 이상은 몸밖으로 모두 배출'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이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라이너스 폴링 박사의 부인이 암으로 별세하고 본인도 93세의 나이에 역시 암으로 사망하였다
대체로 천재들은 한가지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작 뉴턴은 말년에 연금술에 심취하였고 또다른 유명 과학자은 심령연구나 순간이동을 연구하면서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비교적 간단한 구조의 비타민C의 추가 효과에 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이처럼 과거의 병치료법은 지금 우리가 볼 때 무척 원시적이고 비과학적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모습도 먼 미래 어느 시점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역사는 돈다
참고 :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 사토 겐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