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5장을 묵상할 때 보아야 할 핵심 포인트가 있습니다: ‘1. 요한계시록 5장의 환상은 역사의 절대적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며, 박해와 역경 속에서도 주님의 보살핌을 신뢰하고 복종할 것을 격려한다. 2. 성도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삶을 본받아 세상의 방식이 아닌 십자가적 삶의 양식과 기도로써 이미 동참하게 된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드러내야 한다. 3. 참된 예배는 인간 중심의 재미나 세상 문화에 타협하지 않고, 만물의 궁극적 목표이자 본질인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온전히 영화롭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구분선 아래에서 『그레고리 빌 요한계시록 주석』의 안내를 받으면 더 효과적인 묵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계5:1.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8.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
5:1-14 묵상 제안
인간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5:1-14의 환상은 다니엘서의 다양한 본문 인유로 가득 차 있다. 다니엘 4장의 천사와 5:1-14의 천사는 궁극적으로 역사에 대한 권능을 홀로 갖고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나온 메시지를 선언한다. 다니엘의 환상 경험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불의한 나라들에 대한 자신의 주권을 예증하시는지, 그리고 자기 종들에게 그들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곤경 속에 있을 때에도 자신에게 복종할 것을 요청하시는지를 증명한다. 오늘날 많은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한 선택에 직면해 있다. 요한계시록 5장의 천사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가? 하나님의 종들이 때때로 역경을 거치고 심지어 죽음까지 무릅써야 할 때, 하나님의 주권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천상의 궁정에 관한 환상은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제공하는가? 우리는 예정된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으로 묘사된 6-22장의 환난 가운데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보살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삶의 의미:
본서의 주석은 완료 분사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지속적인 실제나 상태를 표상하는)는 말이, 현재 하늘에서 아버지와 함께 다스리시는 분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라는 사실을 표현한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십자가에 의해 형성된 삶을 사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가?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승리(이김) 개념은 통상적인 의미를 어떻게 뒤집는가? 그리스도인이 어린양의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삶의 양식을 본받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가 이 삶의 패턴을 도외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이것은 적대적인 정부 아래 있는 교회의 태도에 어떤 함축성을 갖는가? 교회가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유혹을 받는가? 사회 속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것과 우리가 속한 문화에서 우리의 도덕 견해를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것 사이의 균형은 무엇인가? 정치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이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삶의 본보기가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의 현재 통치:
본서의 주석이 암시하는 것처럼 성도들이 이미 나라가 되었다면,계 1:6, 5:9 그들은 어떤 형태의 천국의 권세 속에 이미 들어간 것이다. 이 권세는 어떻게 행사되는가? 이 권세의 행사는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삶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이 점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강력한 천사들을 통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8절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통치가 현재 이 세상 속에 침투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공동 예배:
만일 5장의 환상과 또 이 환상이 묘사하는 천상의 예배의 주된 요점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에 있다면, 이 영광은 우리의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공동적인 예배에서 어떻게 실행되어야 하는가? 우리의 공동 예배의 초점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 예배가 때때로 체험을 추구하거나 재미의 한 형태로 전락하는 것은 왜 그러한가? 우리는 예배를 이해할 때 5장의 환상 속에 묘사된 하나님 나라의 문화에 영향을 받는가, 아니면 우리 주변의 세상 문화에 영향을 받는가? 어떻게 해야 예배가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제공하면서 또한 비신자들에게 예배의 성경적 규범을 무시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호소할 수 있겠는가? 명백히 하나님의 기준에서 멀리 벗어난 교회 속에서 예배의 참된 의미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
만물 속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주된 목표는 자기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요한계시록 4-5장의 주안점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영광받으심을 즐거워하고 바라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범사에 우리의 주된 목표가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다른 어떤 것 심지어는 우리 자신을 예배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고린도전서 13:5에서 "참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신이 영광을 받고 모든 것이 자신과 자신의 관심사를 중심에 두고 펼쳐지기를 바라신다고 우리가 이해할 때 거기에 신학적인 문제가 있는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주제, 우리가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기를 바라는 것과 그 함축적인 의미, 그리고 그것과 관련해 일어날 수 있는 신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존 파이퍼(John Piper)의 『하나님을 기뻐하라』(Desiring God)를 보라.
그레고리 K. 빌 등, 『그레고리 빌 요한계시록 주석』(복 있는 사람), pp.208-210.
첫댓글 요약:
요한계시록 5장의 천상 환상은 역사의 궁극적인 주권과 모든 권능이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있음을 선포합니다.
이 환상은 성도가 박해와 환난의 역경을 지나갈 때에도 하나님의 예정된 계획과 보살핌을 신뢰하며 끝까지 복종할 것을 격려합니다.
하늘 보좌에서 아버지와 함께 다스리시는 분은 다름 아닌 일찍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십니다.
성도는 세상의 힘의 지배 논리를 따르지 않고 어린양의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십자가적 삶의 양식을 철저히 본받아야 합니다.
성도들의 온전한 복종과 향연처럼 올려드리는 강력한 기도는 이미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드러내는 방편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이미 이 세상 속에 침투해 있으며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진 존재들입니다.
교회는 세상적인 영향력이나 정치적 힘을 얻으려는 유혹을 물리치고 사회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서의 균형을 지켜야 합니다.
참된 예배의 본질이자 주된 요점은 인간 중심의 재미나 체험을 추구하는 세상 문화에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배는 온 피조물의 목적이자 중심이신 하나님과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영광을 온전히 영화롭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만물 안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주된 목표는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성도 역시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아멘!
그레고리 빌의 주석 내용을 보니, 깊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신뢰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묵상하게 됩니다.
세상의 힘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십자가적 삶을 본받으라는 도전이 마음에 큰 울림을 줍니다.
우리의 기도가 결코 무의미하지 않으며, 이미 이 땅에 침투한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권세라는 사실에 큰 위로를 얻습니다.
인간의 재미나 체험을 좇는 예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온전히 높이는 참된 예배의 본질을 돌아보게 됩니다.
박해와 유혹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내며,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신뢰하며, 성도들이 어떤 환난 중에도 어린양의 십자가 길을 걷도록 바르게 인도하는 목회자가 되게 하소서.
예배가 인간의 재미나 체험을 구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온전히 높이는 제단이 되게 하소서.
말씀을 맡은 자로서 세상의 유혹과 타협하지 않으며, 성도들의 기도를 모아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이 땅에 드러내는 신실한 종이 되게 하소서.
아멘!
<호크마 주석: 계시록>
=====5: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 '오른손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 텐 뎌시안'(* )은 문자적으로 '오른손 위에'라는 의미로(1:16) 권능과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열려진 손바닥을 의미한다. 이는 세상에 대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시사한다(Mounce). 한편 '책'으로 번역된 헬라어 '비블리온'(* )의 모양에 관한 주장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양피지 같은 곳에 한장씩 기록한 일반적인 책의 형태(codex)로 본다(Zahn). (2)혹자는 고대에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던 '두루마리'(scrooll)로 본다(사34:4; 렘36:2; 히10:7, Charles, Ladd, Beasley-Murray, Walvoord, Rist).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안팎으로 썼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그람메논 에소덴 카이 오피스덴'(* )은 문자적으로 '안쪽과 뒷면에 썼고'라는 의미로 이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용의 비밀성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로는 한 면만 기록한 것이라고
(2)혹자는 공적인 내용을 양면에 기록한 사실은 내용의 양면에 완전히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Vincent). 이 가운데서 문법적인 면이나 내용면에서 후자가 더 타당하다(겔2:10). 안팎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하에 이루어진 선포가 시사한다(Mounce).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 '봉하였더라'의 헬라어 '카테스프라기스메논'(* )은 '위 아래로 봉하였다'는 의미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의 의미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로마법에 따라 유언장에 일곱 명의 증인들이 봉인한 사실을 들어 본문이 '증거나 확증'을 강조한다고 주장한다(Charles, Zahn, Weiss). (2)혹자는 일곱 인을 일곱 교회와 일곱 영과 관련하여 해석한다(Milig- an). (3)혹자는 일곱이 완전 수를 상징하므로 책의 내용이 완전하며 어떤 인간에 의해서도 알 수 없는 비밀스런 내용이어서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밝히 보이실 수 있음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Alford, Barclay, 롬16:25; 고전4:1; 엡3:3). 세 가지 해석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한편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의 내용에 관한 견해는 다양하다.
(1)혹자는 고대 로마의 유서 인봉 풍습과 관련하여 이를 하나님 나라에 관한 상속 유서로 해석한다(Zahn). (2)혹자는 세상 끝에 이루어질 심판의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본다(겔2:9,10, Walvoord). (3)혹자는 두루마리가 일곱 부분으로 인봉된 사실을 중시하고 한 부분을 개봉할 때마다 각기 다른 의미들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여 그 내용을 세계 역사의 점진적인 전개로 본다(Weiss, Ellicott). (4)혹자는 매매 증서에 관한 내용으로 이해하여(렘32:10-14) 창세기에서 죄로 인해 상실된 창조물을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다시 찾았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
다(Seiss). (5)혹자는 구약의 율법을 기록한 것으로 본다(L.Mowry). (6)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종말 즉, 악인들에 대한 심판과 성도들의 구원 그리고 만물의 비밀의 완성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6:4,6,8,10; 7:3-17, Ladd, Johnson). 여러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5: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
'힘있는 천사'에 대해서 혹자는 천사장 가운데 하나로(Clark, De Wette) 해석하며, 혹자는 가브리엘로 해석하기도 하나(Ford) 분명하지 않다. 한편 본문의 '합당하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앝시오스'(* )는 능력이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함이나 의로움과 같은 적합성(適合性)을 나타내는 것으로 봉인된 책을 열 수 있는 의로운 자격을 가진 자가 누구인가를 묻는 수사학적 질문이다(Greijdanus).
=====5: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는 빌 2:10과 병행을 이루는 표현으로 혹자는 '하늘 위'는 천사들과 죽은 성도들이 거하는 곳을, '땅 위'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이 거하는 곳을, '땅 아래'는 악한 영들이 거하는 음부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하나 전 우주와 모든 피조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출20:4, Mounce). 창조물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비밀을 밝혀낼 수 없음을 시사한다.
=====5:4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렸더니 - '울었더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클라이온'(* )은 미완료 능동태 시제로 계속 울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직업적으로 애곡하는 자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으나(요11:33,35) 구약성경에서는 비참함을 선포할 때 사용되었다(왕상13:30; 렘22:18). 본절에서 요한의 울음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1)마땅히 보여줄 것을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4:1) 더 이상 볼 수 없음으로 인해 생긴 두려움의 울음을 의미한다(Alford, Morris). (2)계시의 내용 가운데 구체적으로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 수 없음으로 인해 계시를 알고자 하는 열정의 울음을 의미한다(Bengel).
=====5: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 본문은 요한이 책을 열기에 합당한 자가 없어서 울 때 장로 중 하나가 위로하며 한 선포이다. 인봉된 책을 열기에 합당한 자에 대한 칭호는 두 가지이다. 이 두 가지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1)유대 지파의 사자. 이것은 야곱이 유대 지파(the tribe of Judah)를 향해 했던 축복의 예언을
반영한 것이다(창49:1-28). 야곱은 유다를 가리켜 '사자 새끼'라고 하였으며 '실로가 오시기까지 홀이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창49:9,10). 이 약속은 승리하신 메시야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용되었으며(IV Ezra 11:37; 12:31, Testament of Judah 24:5), 신약성경에서는 '이기는 자' 혹은 '메시야의 특징'으로 나타난다(히7:14). 이 칭호는 고난당하는 메시야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시며 지배하시는 왕으로서의 메시야를 지칭한다. (2)다윗의 뿌리. 이 칭호는 사11:1을 반영한다. 이사야서에서 메시야는 악을 징계하고 평화로운 이상 국가를 이루시며 다스리시는 왕으로 나타난다(사11:1-10). 이 메시야 칭호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더욱이 '뿌리'는 예수께서 비록 다윗의 인간적 혈통을 통해 오셨으나 그 근본 본체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시사한다(사11:1,10; 마1:1). 한편 '이기었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두 에
니케센'(* )은 문자적으로 '보라'는 의미의 감탄사 '이두'와 단회적으로 '이기었다'를 의미하는 부정 과거 시제의 '에니케센'으로 이루어져
'단번에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한 것'을 시사한다. 이는 곧 승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켜 미래에도 그러할 것임을 암시한다(Swete). 실제로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승리를 약속하셨고 최후에 두루마리의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이며 온전한 승리를 성취하실 자이다(1:18; 눅10:18; 요14:30; 16:33).
=====5:6
내가 또 보니...어린양이 섰는데 - '어린양'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르니온'(* )은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사용된 '암노스'(* , '어린양')와는 달리(요1:29,36; 행8:32; 벧전1:19) 갓난 어린양을 표현하는 것으로 본서에서 29회 사용되었다. 이는 곧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온유하심과 희생을 시사한다(사1-3장, Johnson, Greijdanus). '사이에'는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한 위치르 가리키기보다는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구속받은 성도들의 중보자임을 암시하는 표현이라 추측한다(4:2,4,6).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에스파그메논'(* )은 완료 수동태 서술 분사 구문으로 과거에 십자가에 죽었으나 지금은 살아계신 것을
시사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보기도 하며(Minear), 혹자는 그리스도의 몸에 이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흔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묘사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Charles, Mounce). 이러한 사실을 종합할 때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을 구원하며,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현재는 중보자로서 계셔서 십자가의 대속 사역의 효력을 영원토록 발휘하심을 나타낸다(5:9,12; 6:4,9; 13:3; 18:24, Hughes, Ironside).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 '일곱 뿔'에서 '뿔'은 힘을 상징하며, '일곱'은 '완전'을 상징하기에 어린양이 소유한 '일곱 뿔'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완전 무결하신 권세와 능력을 시사한다(민23:22; 신33:17; 삼상2:1; 왕상22:11; 시75:4; 빌2:9-11). 앞서 언급된 죽음을 당한 적이 있는 어린양과는 달리 '일곱 뿔'을 가진 어린양에 대해 혹자는 묵시적 개념에서 도입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에녹1서 90:37; the Testament if Judah 19:8ff.
Charles, Mounce, Beasley-Murray). 한편 '일곱 눈'은 성령을 상징한다(1:4; 4:5). '눈'은 지혜와 통찰력을 상징하는 것으로(슥3:9; 4:10) 성령께서 특수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여(행2장)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와 일체된 사역을 행하심을 시사한다(요14:26; 15:26; 16:8,13-15).
=====5:7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 '취하시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일레펜'(* )은 생생하고도 극적인 장면을 묘사하며(Vincent) 동시에 세상의 모든 통치가 어린양을 통해 성취됨을 시사한다. 이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성취시킬 권위와 권한을 부여 받으셨음을 암시한다(사9:6,7; 슥9:10, Johnson, Ford, Plummer).
=====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 어린양이 세상의 구속을 위한 왕권을 위임받자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일제히 어린양 앞에 순복하였으며 그의 권위와 능력을 찬양하고 경배 자세를 갖춘다. 여기서 '각각'이 누구를 한정하는가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혹자는 경배와 찬양은 생물 보다는 인간이 해야 할 직무임을 강조하여 이십 사 장로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한다(Alford, Charles, Vincent). (2)혹자는 이십 사 장로들과 네 생물 모두를 수식하는 것으로 해석한다(Spitta, Clarke). 본서에서 네 생물의 경배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후자가 타당하다.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 '거문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사용하는 몇개의 현이 달린 전통적인 악기로서(14:2; 15:2; 시33:2; 98:5; 147:7) 일반적으로 찬송을 가리킨다. 이는 어린양이 하나님과 함께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심을 시사한다. 한편 금대접에 담긴 '향'은 성도들이 기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혹자는 이것이 교회가 오랫동안 해 온 기도라고 해석하기도 한다(Ladd). 본절에서 기도를 어린양께 바치는 것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중보자가 되심을 시사한다(Mounce).
=====5:9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 '새 노래'는 시편에서 자주 나타나는 표현이다(시33:3; 40:3; 96:1; 98:1). 여기서 '새'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넨'(* )은 '시간적이며 근원적인 면'에서 새로움을 나타내는 '네오스'(* , '새로운')와는 달리 '질적인 면'에서 새로운 것을 나타낸다. 그러기에 '새 노래'는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룩된 구원의 새로운 완성에 대한 노래이다. 앞장에서 하나님이 창조 역사로 인해 찬양받으셨던 것과는 달리 본절에서 어린양은 구속의 역사로 인해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을 받는다(Lenski, Ladd, Morris). 한편 '노래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두신'(* )은 현재 시상으로 계속적으로 노래하고 있음을 나타낸다(Alford).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 '합당하시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앝시오스'(* )는 부정 과거 시상으로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역이 인봉을 떼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음을 시사한다(2절). 즉 일찍이 역사 가운데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이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영원한 조건을 갖추었음을 시사한다(Morris, Hughes).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 요한은 예수의 죽음이 인류 구원을 위한 대속적 죽음임을 나타낸다.
'죽임을 당하사'의 헬라어 '에스파게스'(* )가 부정 과거 수동태이며(고전6:20; 7:23; 갈3:13; 벧후1:21) '피로 사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고라사스...엔 토 하이마티'(* )가 대가를 나타내는 전치사 '엔'과 '구속하다'는 의미를 가진 '아고라조'(* )의 부정 과거인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희생과 죽음으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택한 자들을 사신 것을 나타낸다(Johnson, Vincent, Morris). 한편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라는 표현은 인종적, 집단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보편적인 인류를 나타낸다. 이는 그리스도의 구원이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됨을 시사한다(12절; 1:5; 7:14; 12:11; 13:18; 14:4; 15:3; 19:7; 21:9; 22:3, Johnson, Mounce, Ladd). 그러나 '가운데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 )는 민족이나 인종의 차별이 없는 보편 구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엡1:5) 선택한 사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 드리시고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희생을 통해 죄인들을 구속하신 목적이다.
그것은 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백성이 되게 하며 그에게 순종하게 하기 위함이다(고전6:19,20).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된 성도들은 하나님께 소속된 백성이며 하나님의 소유이다.
=====5: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 '나라'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할 집합적인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가리킨다(1:6; 20:6). 또한 '제사장을 삼으셨다'는 말은 옛 언약 하에서 특별히 선택된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제 새 언약 하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개인이 직접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며, 섬기고 찬양함을 시사한다(히13:15,16, Swete, Mounce, Johnson).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 '땅'은 종말론적 성취 즉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온전히 왕 노릇할 것을 의미함은 물론 현재에 그리스도인이 왕 노릇하는 것도 내포한다(Johnson). 한편 '왕 노릇하리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바실류슈신'(* )에 대해서 미래형으로 취한 사본도 있으며(* , P, Nestle 26 ed),
'바실류우신'(* )으로 현재형을 취한 사본도 있다(A, Q). 미래형을 취할 경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종말에 세사을 통치하고 다스릴 것을 기대하면서 구원받는 자들이 함께 그 통치의 기쁨을 누릴 것을 대망하는 것을 나타내며(2:26,27; 20:4; 22:5) 현재형을 취할 경우 그것은 현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왕적 통치를 나타낸다. 두 가지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요컨대 '왕 노릇하리로다'는 말은 '미래적 현재'로 온전한 왕 노릇을 기대하면서 현재에 참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Johnson, Mounce).
=====5: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 본절에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찬양하는 이들은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에서 많은 천사들로 확대된다. '만만이요 천천이라'는 말은 단7:10을 반영한 것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무리를 묘사한다. 이는 이 무리들 가운데 계신 자의 무한한 영광과 권능을 암시하며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천사에게도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시사한다(시68:17; 히12:22, Johnson, Morris).
=====5: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 본절은 수많은 천사들의 찬양 내용으로 7:12과 유사하다. 이 찬양의 내용이 13절과 7:12에서는 하나님께 돌려지고 있으나 본절에서는 어린양께 돌려지고 있다. 이는 곧 하나님과 어린양이 동일(同一)함을 나타낸다. 한편 찬양의 내용은 일곱 가지이며 이것들이 하나의 관사 '텐'(* )으로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완전하시고 충만하신 속성을 시사해 준다(대상29:10-12, Johnson, Mounce).
능력 - 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으로 그리스도께도 속해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이시다(고전1:24).
부 - 이것은 하나님의 충만하신 상태를 나타낸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약1:11), 또한 그리스도께 속한 것으로(고후8:9; 엡3:8) 믿는 자들에게 나누어진 것이다(요1:16).
지혜 -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지혜로서(고전1:24) 모든 지혜를 소유하시고 계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나누어 주신다(고전1:30; 골1:9).
힘 - 이것은 '능력'이 외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악이나 대적자를 멸망시키심을
시사한다(눅11:22).
존귀와 영광 - 그리스도께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으로 존귀와 영광을 소유하신 분이었으나 세상에 종의 형체로 오셔서 낮은 자리에 임하셨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존귀와 영광을 입으셨다(요1:14; 빌2:1-11; 히2:9).
찬송 - 앞서 언급된 여섯 가지가 그리스도의 속성과 본질을 잘 나타내는 반면 본문은 천사들과 성도들의 고백을 나타낸다(벧전1:3). 이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같이 동일하게 모든 피조물의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시사한다.
=====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 본절은 앞절의 찬송에 대한 모든 피조물들의 화답송으로 만물이 속한 전우주의 구속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이다(Swete, Caird). 여기서 '만물이 가로되'는 창조주와 창조물이 구분되지 않는 범신론적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적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우주에 속한 만물의 반응을 나타낸다(롬8:19).
=====5:14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 피조물의 찬송에 호응하여 네 생물과 장로들이 아멘과 경배로 하늘의 찬송을 끝맺는다. '가로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레곤'(* )은 네 생물이 12절의 일곱 가지 찬송과 13절의 네 가지 찬송에 모두 아멘이라고 화답하였음을 시사한다(Mounce).
<호크마 주석: 계시록>
상세한 설명 잘 훑어 보았습니다.
포스팅 해주신 요한계시록 5장의 깊이 있는 강해와 성경적 통찰을 읽고 깊이 공감합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인류 역사의 두루마리를 쥐고 계신 분이 세상 권력이 아닌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박해 속에서도 주님의 완전한 보살핌을 신뢰하게 됩니다.
영광의 보좌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이 다름 아닌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심을 묵상하며, 힘과 지배의 세상 논리를 거부하고 십자가의 낮아짐과 이김의 길을 걷기로 다짐합니다.
우리가 이미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음을 기억하며, 성도의 기도가 천상 보좌에 상달되어 세상을 움직이는 우주적 통로가 된다는 진리에 깊은 위로와 사명을 얻습니다.
인간의 만족과 재미를 구하는 세속적 인본주의 예배를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임재의 영광만을 높이는 성경적인 천상 예배의 원리를 지상 교회 안에서 온전히 회복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구하심은 피조물의 것을 빼앗는 이기심이 아니라 만물에 모든 생명과 은혜를 베푸시는 자비의 근원이기에, 제 삶의 최고 목표 역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역사의 주관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 인간 중심의 세속화된 예배를 회개하오니 오직 주님의 엄위한 임재와 영광만을 높이는 참된 예배자로 서게 하시고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본을 따라 십자가의 낮아짐과 인내로 세상을 이기게 하시고, 나라와 제사장 삼아주신 신령한 권세로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왕 되심을 선포하게 하소서. 아멘!
아멘!
하나님의 주권은 세상의 혼란과 고난을 넘어 여전히 역사를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다시 붙들게 합니다. 어린양의 길이야말로 참된 승리라는 메시지가 깊이 와닿습니다.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의 모습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이라는 점이 큰 도전이 됩니다. 힘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과 순종으로 이기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천상의 예배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에 집중되어 있듯, 우리의 예배와 삶도 하나님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각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귀한 묵상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