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대단한 작업을 하시는군요. 답변하기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질문을 하겼네요^^ 그래도 태풍 덕분에 오늘 쉬니까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겠습니다.
1. 교과서 집필 과정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간단하게 답하기는 좀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도 간단하게 설명해 보죠.
1) 저자 6명과 편집자가 모여 교육과정의 집필 기준안을 분석합니다.
2) 필요한 경우 집필 계획서를 간단히 작성하죠. 전제적인 단원 구성과 핵심 내용 요소 등을 적습니다.
3) 교과서를 어떤 체제로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많이 해서 기본 체제를 구성합니다. 체제는 어떻게 주제에 접근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집필 중에도 필요하면 수정합니다. 미래엔 한국사 교과서가 다른 교과서와 달리 <주제열기>라는 독특한 도입 체제를 갖춘 것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교과서 집필 때 <주제열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거의 집필회의의 절반을 소모합니다.
대개 그 단원 부분의 저자가 의견을 내면, 그것을 가지고 다른 저자들이 비평하고 토론하고, 다른 대안을 생각하고 하면서 최종안을 만들게 되죠.
4) 기본 체제가 완성되면 그에 따라 집필을 본격화합니다. 그 때까지가 거의 집필 기간의 절반 정도??
5) 집필이 본격화되면 거의 매주에 1회 정도 모여 각 저자들이 쓴 내용을 검토하고, 토론합니다. 잘못된 내용은 없는지, 서술은 논리적으로 적절한지, 불필요한 내용은 없는지, 고등 과정에 적합한지, 경우에 따라 수능시험 등의 대비에 유효한지도...
6) 그래서 어느정도 정리된 내용을 가지고 편집을 해서 교과서를 내는 것이죠. 인쇄본은 두, 세차례 만들어 보는데 그 때마다 내용 검토 또하고 오탈자, 어색만 문맥 바로잡고.....
대충 정리가 되었나요? 이 정도로만 설명할께요. 아마 당시 편집자가 이 내용을 정리해서 발표한 글이 있을 것 같은데 원하면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2. 교과서 본문을 작성하실 때 참고하시는 문헌에 기준이 있으신가요? 간단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참고 문헌에는 특별한 기준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근거가 불분명한 자료는 물론 사용하지 않고요. 그 내용이 보편성이 있는지, 학계에 다른 의견은 없는지, 이러한 내용들은 저자의 양식에 따라 검증이 되는 것이죠.
참고문헌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게 봅니다. 저자가 모든 내용을 잘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 그것에 대한 공부를 며칠이고 하면서 집필하게 되죠. 그렇지만 저자들이 오랫동안 공부해 온 내용들이 있으니까 기본적인 사실 관계들은 대충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요.
3. 특정 주제에 대한 그림이나 통계자료를 인용하실 때 자료 선정 기준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예_출처)
중학교에서는 삽화를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고등에서는 삽화보다는 사진자료를 많이 이용하죠. 통계 자료는 필요한 경우 학술 논문이나 통계청 등 국가 기관의 자료를 가져다 씁니다. 공인되지 않은 통계자료는 당연히 배제해야죠. 가령 인터넷 등을 검색헤서 나오는 것들을 무조건 가져다 쓰지는 않습니다. 그림, 사진은 우선 선명도가 높아야 가능하고요. 교과서의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을 쓰는 거죠. 주제 설명에 좋은 사진도 선명도가 낮으면 못쓰고요, 선명도가 높아도 주제와 거리가 멀면 배제해야죠. 사진 찾기는 저자도 하지만 주로 편집자가 큰 역할을 했답니다.
4. 상반된 참고문헌 및 자료가 있을 시에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어떻게 반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확히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네요. 고등학교 과정에서 상반된다고 할 정도로 자료검토에 문제가 된 적은 없는 것 같네요. 다만 역사서술에는 일정한 역사 인식 내지는 사관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 미래엔 한국사 교과서도 물론 그러한 일관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썼습니다. 특히 근현대사 부분은 그렇죠. 그런데 흔히 말하는 뉴라이트 사관, 일제의 식민사관을 합리화하는 자료를 교과서에 인용하거나 활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물론 그것을 비판하기 위한 경우라면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요. 식민사관의 정체성론, 타율성론 관련 사료 등이 그런 경우죠.
5. 4.19 혁명이나 5.18 민주화 운동에 비해 6월 민주 항쟁에 관한 내용(의의)의 비중이 작은 것으로 보이는데, 특별히 의도하신 바가 있으신가요?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교육과정과 교과서 집필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본래 "역사"라는 과목에서 "한국사"로 바뀐 것이죠. 그과정에서 현대사 부분이 3단원에서 2단원으로 축소되었고, 내용도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이 내용은 메뉴의 <교과서 이야기>로 들어가 보세요. 그런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실상은 5.18도 크게 축소되었습니다. 원래 처음썼던 "역사" 교과서도 메뉴의 <한국사 교과서>에 들어가시면 수정 이전의 교과서 pdf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현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것이죠. 단 20일만에 급작스럽게 교과서를 수정해야 했기 때문에 현대사 서술은 지금봐도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원래 "역사"교과서가 훨씬 좋다고 봅니다.
6. (교과부 선정 집필기준에는 없었던) 친일파에 관한 내용을 독립적으로 넣음으로써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바가 있으신가요?
당연히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를 청산하는 문제가 현재 우리 세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역사의 정의를 바로세우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사실은 더욱 자세히 깊이있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분량면에서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서 교사와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탐구 과제로 제시한 것이지요. 저의 책임을 교사와 학생 몫으로 떠 넘긴 것이랍니다. 관련 자료들은 요즘에는 인터넷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거든요. 교과서에 친일 문제를 크게 다루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집단들이 한국 사회에 아직도 많다는 것이 친일 반민족 행위를 교과서에 써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주제가 서술된 교과서 쪽에 친일조각가 김경승의 작품인 김구 동상(남산) 사진이 실렸습니다. 김구 동상을 친일 조각가가 만들었다는 설명과 함께 당시 검정 위원은 대부분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었는데, 그 사진을 빼라는 검정 지시가 있었습니다. 특정 개인을 비난할 우려가 있다는 명목으로요. 좀 치사하죠? 역설적으로 친일반민족 문제를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이런 부분에 있습니다.
7. 6.25 전쟁의 피해로 노근리 사건을 언급하셨는데, 미군이 주체임을 명시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피카소 그림을 실었다고 조중동에서 난리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아니면 한국근현대사(금성) 서술 문제로 사회가 떠들썩했던 것을 기억합니까? 피카소가 공산주의자였다는 이유로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을 교과서에 실었으니 빨갱이 교과서다 종북이다 하고 난리가 한 번 났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죠. 양민 학살은 매우 민감한 문제입니다. 현재의 서술 가지고도 시비가 무척 많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게 민감한 문제를 교사의 몫으로 남겨두고 비껴간 것입니다. 사실만 기록해 놓으면 생각있는 교사, 학생이라면 알아서 공부할 것이다... 너무 솔직했나요? 현대사의 서술은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 구조 속에서 매우 어렵고 민감한 부분입니다. 거대 언론과 소모적인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는 것이죠.
8. 유독 미래엔 한국사 교과서에는 타 교과서와는 다르게 '역사 논쟁' 부분이 많이 실려 있는데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바가 있으신가요?
간단히 말씀드려서,, 그것이야말고 역사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에 대한 의미나 역사적 사고력을 키우는데 의미있는 활동이겠죠?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느껴 볼 수도 있고요.
.
그리고 논문 제목에서 '한반도 근현대사'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응당 '한국 근현대사'라고 해야죠. 해방후 남북이 나뉘었다고 해도 역사는 한국의 역사이지 한반도의 역사는 아니거든요. 런던 올림픽에서 태극기 대신 인공기를 걸고, 인공기 대신 태극기 거는 것 보셨죠? 외국인들 보기에는 우리가 분단되었어도 다같은 코리아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지요. 무슨 의도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남북으로 나뉘어 있으니 '한국사'가 아니라 '한반도사'라고 한다면 이는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한반도라는 땅덩어리가 어떻게 역사를 가질 수 있죠? 역사는 그 땅에 살아가는 주민(민족)이 주체이고 그럴 경우 대체적으로 그들이 세운 나라의 이름을 따서 붙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미국인의 역사는 미국사, 영국인의 역사는 영국사, 한국인의 역사는 한국사,,, 이런 식으로요.
아무튼 대단한 작업 잘 마무리하시고요. 혹시 논문이 완성되면 저에게도 하나 보내주시든지 아니면, 여기 카페에 올려주실 수 있나요?
행운을 빌며...
(급히 적느라 좀 문맥이 안맞아도 이해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