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1)/ 다윗 : 오후에 침대에서 일어난 자의 비극
사무엘하 11-12장에 보면 오후에 침대에서 일어난 자의 비극이 기록되어 있다. 그 비극의 주인공은 다윗 왕이다. 죄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적인 생물이다. 왜 죄가 존재하는지 만족할 만한 설명을 하기는 어렵지만, 죄가 어떻게 작동하고, 확장하며,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고 이웃을 파괴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사람은 스스로 이 죄를 멸할 수는 없지만 죄에서 돌이켜 죄를 멸하시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는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죄를 마침내 멸하실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장인인 사울 왕에게 쫓겨 광야에서 고생했던 다윗은 천신만고 끝에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왕이 되었다. 나라는 강력해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다윗을 축복하셨고 다윗의 선정(善政)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평안하고 부강해지고 있었다. 평안의 때가 지속되면서 다윗은 권력을 즐기기 시작했다. 영적 삶에 있어서는 평안의 시대가 위기의 때인 경우가 많다. 광야에서 고생할 때 찾았던 하나님도 멀리하면서 다윗의 평안의 시간은 방심의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평안의 날들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마음의 빗장이 풀려져 가는 날들이었다. 사무엘하 11장 1절에 보면 다윗의 장수들과 군대들이 전장에 나가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한 사건이 다윗에게 발생한다.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게 하고… 그 여인은 다윗의 장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고…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데려오게 하고… 밧세바와 동침하였더라”(삼하 11:2-4).
왜 다윗 왕은 그런 무서운 죄를 범하였을까? 그가 그런 죄를 짓게 된 것은 그가 “저녁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저녁은 지금의 오후 3-5시 사이를 가리킨다. 장수들은 전장에 나가 있는데 마음이라도 군사들과 전쟁터에 있어야 할 다윗은 게으름을 피우다 오후가 되어서야 침상에서 일어났다. 게으름은 큰 저주이다.
게으름을 통하여 수많은 위험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죄를 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방심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마음의 빗장이 완전히 내려진 무방비의 상태인 다윗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다. 광야에서 쫓겨다니던 다윗은 오후에 일어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윗이 쓴 많은 시편에 아침에 하나님을 찾고 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윗이 빈둥거리며 오후에 일어났던 것은 그가 매일매일 무너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광야에서처럼 매일 아침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다윗이었다면 죄를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장벽이 무너지면 죄가 반드시 틈을 타게 되어 있다.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어떤 순간도 안전하지 않다.
누가 그것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6:41)고 하신 것은 참으로 귀한 말씀이다. 죄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본질을 지니고 있다. 다윗은 밧세바와 동침했는데 “밧세바가 임신을 하였다”(삼하11:5). 그 다음의 성경의 기록들은 죄가 어떻게 다윗을 파괴해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밧세바의 임신은 다윗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악이 승리한 양심에서는 악의 지배와 통치가 시작된다. 다윗의 선택은 자신이 보기에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죄가 주인이 되어 다윗을 파멸로 이끌어가기 시작한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숨기기 위하여 날을 새면서 죄를 도모한다. 밤을 새면서 기도하던 다윗은 날을 새면서 죄를 도모하는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의 마음의 평화는 없다. 다윗의 나날들은 지옥같은 삶이었다. 마음이 지옥이요 주위가 지옥으로 변한다. 죄를 도모하던 다윗은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아를 불러들인다. 밧세바와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전쟁 중에 갑작스런 휴가를 장수에게 준 것이다. 다윗은 돌아온 우리아에게 싸움의 상황을 물어보고 칭찬하고 집에 가도록 종용한다.
왕이 먹는 음식으로 우리아를 대접하면서 집에 가서 쉬라하고 상을 내린다. 얼마나 가증한가! 얼마나 비참한가! 죄는 사람을 비참하고 처참하게 만든다. 죄는 죄를 낳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아는 너무 충성스런 장수였던 것이다. 왕의 배려하심에 감읍한 우리아는 집에 가지 않고 성문에서 머물렀다.
다윗은 크게 당황하였다. “왜 집에 가서 아내와 지내지 않느냐?” 다윗의 물음에 우리아는 대답한다. “왕이시여, 하나님의 언약궤와 장군들과 동료들이 전장에 있는데 어찌 제가 집에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자리이까”(삼하11:11). 다윗은 충성스러운 우리아를 기만하기 위해 애를 쓴다. 죄짓기도 참 힘들다. 그 다음 날 다윗은 우리아를 술에 취하게 한다.
그래도 우리아는 성문에서 군사들과 잠을 자고 밧세바에게 가지 않았다. 다윗은 모든 사악한 계획이 실패하자 우리아의 손에 편지를 써서 군대장관 요압에게 보낸다.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맞아 죽게 하라.”(삼하 11:15). 우리아는 자신의 사형편지를 지니고 전장터로 간 것이다.
우리아가 다윗의 웃음과 호의 뒤에 그런 무서운 사악함이 숨어 있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요압은 왕의 명령에 따라 우리아를 전장의 맨 앞에 두고 뒤로 군사를 빼 버린다. 우리아는 다른 몇 군사들과 함께 죽었다. 죄는 독버섯처럼 자라나 그것을 먹는 자를 서서히 그러나 완전히 파괴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고 짐승의 형상을 새겨 넣는다.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 그래서 영원히 사망시키는 것, 그것이 죄의 목적이다. “우리아의 장사가 마치매 다윗이 밧세바를 데려오고 아들을 낳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보시기에 악하였다”(삼하 11:27).
다윗은 그 악한 일을 어떻게 멈추지도 않고 계속하였을까? 그만큼 죄가 무서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기까지 열 달 동안 한 일이라고는 죄를 도모하고, 한 가정을 파괴하고, 충신을 비참하게 죽이며, 자신의 죄를 가리기 위해 자신을 죄의 요새로 보호하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한탄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3-24). 바울의 울부짖음은 우리의 것이다. 죄는 괴물이 되어 다윗의 지배자가 되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 평안은 없다. 죄의 문제가 공정하게 처리되지 않는 한 정의는 없다. 이제 다윗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참으로 암담한 상황이 아닌가! 이제 공은 사람의 손을 떠나 인간들의 장막 뒤로 옮겨 간다. 다윗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다윗은 영원한 사망을 피할 수 없다.
다윗의 영원한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성경은 더 깊은 곳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 혐오스러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하셨는가?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하나님은 어떻게 다루시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신다.
세밀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윗이 듣지 않으므로 비밀스런 죄는 공적인 죄로 드러난다. 나단은 다윗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왕이시여 한 성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소와 양이 풍족한 부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작은 암 양 새끼 한 마리만 키우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자집에 손님이 찾아왔는데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왕이시여,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은 크게 분노했다. “다윗이 …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삼하12:5-6).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입에 올리고 무엇이 옳은지를 알고 있다.
그 선고가 자신을 향함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다윗은 그 사람이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으로 사형을 선고했다. 듣고 있던 나단이 다윗을 향하여 말하였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하나님이 이처럼 이르시기를…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악을 행하고, 우리아를 죽이고, 처를 빼앗았느니라... 너는 이 일을 은밀히 행하였으나 네 처들은 백주 대낮에 이런 치욕을 당하리라”(삼하 12:11-12). 다윗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님과 신하들 앞에 적나라하게 밝혀진 자신의 죄악을 인하여 공포에 떨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불타는 눈동자 앞에 자신이 서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심판정 앞에 자신이 서 있음을 보았다. 자신의 영원한 운명이 경각에 달렸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다윗은 죄를 인정하고 고백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
다윗의 훌륭한 점이 여기에 있다. 그는 그의 죄를 핑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했다. 온 나라가 알고 손가락질 할 일이었으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하였다. 누가 하나님 앞에 무엇인들 숨길 수 있으랴!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나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삼하 12:13-14).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항상 깨어있어야 함을!!!
평안하다 할 때에 더욱 하나님과 동행해야 함을♡♡♡
사랑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