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 : 원불교 함라교당
이름 : 이인중 (평구)
제목 : 선 정진 사례담
1, 좌선을 시작한 계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내용은 선정진 실천 사례담입니다.
저희 집 부처님(아내:인덕)이 먼저 교당에 다니면서 교전을 가져와 살펴보다가 “좌선법을 발견합니다. 좌선법을 발견한 순간 저는 상당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왜냐 하면 제가 중학교 시절 기술시간에 선생님께서 정신통일이 이루어지면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좌선이 정신통일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한한 능력으로 세상을 좌지 우지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저녁 퇴근 후 시간만 나면 방석을 들고 한쪽으로 가서 좌선을
시작했습니다, (선을 지도 받은 바는 없지만 교전의 좌선방법, 좌산상사님의 소책자 내용을 바탕으로) 그러던 중 라디오에서 길도훈교무님의 좌선에 대한 방송시간이 있었습니다. 만사를 제치고 그 시간은 부처님(인덕)과 함께 청취했고, 주파수가 잡히지 않아 잘 안 나오면 안테나를 손으로 잡으면서 들었습니다. (손으로 잡으면 조금 잘 들림)
그렇게까지 하면서 듣기를 원했고, 좌선에 관계된 책도 여러 권 사서 보기도 했으며, 인터넷자료, 카페자료 등 닥치는 대로 보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 새벽4시면 일어나서 세면하고 준비하여 108배가 끝나면 심고 드리고 기도문 읽고 좌선하고 독경하고 교전보고 하면 6시경 됩니다. 그렇게 하루 일과가 진행되면서 선을 하게 된 것입니다.
2, 교당에서 좌선 하게 된 계기
교단 정기인사로 상동교당에 이지연 교무님이 새로 부임하셔서 새벽에 좌선과 요가를 활성화 시키던 중 저에게도 한번 나와 보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교당에서 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외부 출장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좌선을 나갔으며 출장을 가서도 인근교당을 찾아 좌선을 하러 갔습니다.
좌선이 끝나면 선요가 하고 집에 오는 시간에 오늘 좌선이 제대로 되었는지
안되었는지를 평가해봅니다. 걸음이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사뿐 사뿐하면 오늘은 제대로 되었고 걸음이 무거우면 오늘은 별로였구나 하는 평가를 내리면서 선을 계속했습니다.
3, 방황 의 세월
새벽좌선20~30분, 저녁 심고 후 한 10~20분 그렇게 매일 좌선을 했으니
확실히 달라진 무엇인가를 느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영계가 보이지도 않고 전생도 보이지 않고 이적을 나투지도 못하자 내가 하는 방법이 틀린 것인가 하는 조급함이 앞서기 시작 했습니다.
좌선하면 단전호흡이라는 생각에 가득 차 잠자기 전이나 시간이 나는 대로
단전 촛점 잡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반창고도 붙여보고 단추도 붙여보고 하다 보니 어느덧 단전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단전 촛점이 잘 잡히면 기분이 좋고 잡히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좌선에서 가장 신뢰하던 교무님께서 좌선 호흡에 결론은 자연호흡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하시는 내용을 접하였고, 다산종사님 책에서는 초점만을 통한 단전호흡으로는 호흡을 오래 할 수 없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초점은 사라지고 맙니다.
단전호흡이 선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하고 정신통일이 되면 무한한 능력을 가진다고 했는데 그런 것도 없고 과연 선을 어떻게 하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급증만 들었습니다. 이 때 부터는 단전호흡도 되지 않고 그렇다고 특별한 방법도 모르겠고 얼마나 방황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부교무님이나 예비교무님을 보면 선에 대하여 물어 보았습니다. 대학원 대학교에서는 좌선을 어떻게 가르치시냐고 물으면 조심스러워 하시면서 어떻게 표현하시기가 어려운 것 같았습니다. 교무훈련에 선정진 10일 훈련을 다녀오신 교무님께도 여쭤 보았습니다. 중도훈련원에서는 선정진을 어떻게 하시는가요?
상당한 수준급 교무님들이시라 그러신지 몰라도 자신의 수련 시간을 늘려서
수행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별한 것은 역시 없는 것 같았습니다.
호흡이 어떻게 단전까지 내려 가냐고 반문하시면서 공기가 단전으로 내려
가면 죽어요 라고 말씀하신 우교무님이 생각났습니다.
4, 좌선의 재발견(재정립)
그리하여 다시 교전에 좌선의 방법을 살펴봅니다. 대범, 좌선이라 함은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며 수기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니, 망념이 쉰즉 수기가 오르고 수기가 오른즉 망념이 쉬어서 몸과 마음이 한결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리라. 또한 대종사님은 단전주 라고는 했어도 단전호흡이라는 표현을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단전주는 호흡을 단전으로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의식을 단전에 주하고 다른 곳으로 흐르지 마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함라교당에 서광덕교무님이 부임해 오셨습니다. 단장 단회시간에 교무님께서 속 시원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단전호흡은 단전에 주하는 의식을 잊지 않기 위해 하는 한 방법이라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듣기까지 10년이상이 걸린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의두로 간직하다가 의심이 풀린 것 같은 고마운 말씀이었습니다. 단전에 의식을 주하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 오릅니다. 그것은 저장된 식심의 발현이니 그 생각을 따르지 말고 잡초라고 하고보면 자연히 단전주가 되었습니다. 단전주가 되면 자연히 수승화강이 되고 상쾌해 지니 대종사님의 선법에 일치를 하였습니다. 저만 이렇게 어리석게 힘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좌선을 독공하는 상당수가 단전호흡으로 기의 순환에 관심을 두거나 무조건 오래만 앉아 있으면 선이라고 하는 생각, 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 특별한 공부로 일취월장 해보겠다고 한 어리석은 생각,
좌선만이 공부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한 것, 독공으로 단번에 깨우치기를 바랬던 것, 좌선을 하여 이적을 나투어보겠다는 것이 선의 진면목이 아니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렸습니다.
어느 날 교무님이 또 다시 명쾌한 설법을 해주십니다.
선이란 섬과 감이다. 섬이란 마음을 멈추는 것이고 감이란 비운 마음을 가지고 경계를 당해 심신작용을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세우면 분별성과 주착심을 찾게 되고 분별성과 주착심을 정리하여 빈 마음을 이루는 것이고
빈 마음이 초롱초롱하게 되면 일심이요 정신이라고 하셨습니다. 섬은 좌선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이란 일심이 동하여 가는 것입니다.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일심이 동하면 정의요 바르게 보고 바르게 행하니 정각정행이 되는 것입니다. 감은 무시선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차를 세우는 방법을 알고 차를 잘 가게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듯이 우리가 심신을 운전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섬과 감이라고 생각합니다.
5, 결 론
선은 좌선이 기초가 되고 무시선은 그 활용이라고 정의를 하였습니다. 경계가 없을 땐 섬을 하고 경계가 있으면 감을 표준합니다.
그리하여 매일 새벽4시반에 일어나 섬 훈련을 합니다. 20~30분 좌선으로 부동심을(섬) 양성하고, 독경하고 교전보고 절 수행으로 정리된 마음을 실생활에 적용시키는(감) 무시선으로 일과에서 득력하는 낙생활로 유도해 가고 있습니다. 새벽에 좌선을 하면 상쾌하여 정신을 차리게 되고 직장에 출근하여 경계를 당하면 정신을 차린 마음으로 그 일을 하니 일이 잘 됩니다.
정리해 보면 첫째 한 단어(말)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헤매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 선은 끊임(간단)없는 노력이 필요 합니다.
점이모여 선이 되고 ,선이모여 면이 되는 이치를 생각해야 합니다.
셋째 선은 삼학으로 쇠스랑 같다고 생각 합니다.
일분선, 좌선, 무시선, 무처선도 근원에서 하나라고 생각 합니다.
즉 일상생활을 잘하는 것이 선입니다.
아침에 좌선해서 떠도는 마음을 정리하여 마음을 비우고 비운 마음으로 일과를 시작하면 만사형통하여 반드시 일과에서 득력 할 것을 확신합니다.」
선정진 사례담 (이인중).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