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과 진화론 수업을 듣고..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한 수업을 원주교구에서 준비한 이유를 추측해 볼 필요가 있다. 무슨 목적이 있으니, 교구에서 교리교사 선생님들께 "의무 참석"이라는 강수를 두지 않았을까? 교리 선생님들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수업을 들으시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질문과 답 시간에 그 분들의 간절함이 느껴졌다.아내가 수업 신청을 했다고 했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나는 구지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는데.. 하고 교만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겸손하게 교구에서 이 수업을 작정하고 준비한 이유를 짧은 지식을 바탕으로 유추해 본다. .
인간이 하등한 생물로 부터 진화가 된 존재이므로, 창세기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존재는 이 과정에 없다. 그러므로 성경도 하느님도 믿을 필요가 없다. 하느님을 믿지 않거나, 믿기 싫은 사람들이 핑계로 가장 많이 제시하는 것이 구약성경의 첫 부분인 창세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도 가장 많은 청소년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교리 선생님들을 괴롭히지 않았을까? 청소년들에게 이 문제는 아마도 본인의 반항심을 짧은 시간에 드러내고, 우물쭈물하거나 명쾌하게 답변을 하지 못하는 선생님으로 부터 약간의 쾌감을 얻는 수단이 되지 않았을까? 어릴 땐 성당을 같이 다녔던,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 나이가 되어서는 성당을 가기 싫다고 하는 이유에도 이 부분이 살짝 포함되어 있었다. 설명을 해 주긴 했지만, 부끄럽게도 결과는 아직 이 아이들이 성당을 다니기 싫어 한다는 것이다.
이 논란의 시작은 창세기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된다. 창세기는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쓴 것이 아니다. 김도연 베드로 신부님께서는 창세기를 Who? 누가 세상을 창조하였는가?에 대한 부분이라고 구분하기 쉽게 설명을 하였지만.. 이 부분 역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반박의 근거로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창세기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다. 내 마음, 우리의 마음, 그리고 각자의 마음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짧은 지식으로 드러내 보일 수는 없지만, 성경을 쓰신 분들의 마음 속에 있는 하느님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창세기에 담으려고 했던 것 같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6일 동안 만드시고, 7일이 되는 날 쉬셨으니, 너희도 안식일에 쉬어야 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이므로, 하느님을 경건하게 대하듯 자신을 소중히해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불행해 졌으니, 너희는 불행해 지지 않으려면,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지켜야 한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에 따라 자식인 이사악을 바치는 그 마음을 배워라.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 부터 나왔으니,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맞다. 그러나, 하느님이 그렇게 불합리한 요구를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성경을 기록한 문자는 사람의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그 문자를 통해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보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이 기록된 배경 역시 알려고 노력한다. 창세기도 이런 자세로 읽어야 한다.
창세기에는 이렇게 하느님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부분도 있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근원... 즉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고.. 어떤 인물들이 어느 지역으로 이동을 했는지.. 지나온 역사에 대해 알리는 첫 부분이기도 해서... 창세기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사실에 대한 부분과 이스라엘 민족의 근원인 하느님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부분이 섞여있다. 그래서 창세기를 읽으면 오해를 하기 쉬운 것이다. 하느님에 의해 의해 창조된 아담과 하와의 자손이 카인과 아벨인데.. 아벨을 죽인 카인이 혼인을 했다. 누구와 혼인을 했을까? 이 부분은 나도 중학교 3학년 때 쯤..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만 만드셨고, 다른 민족들을 만든 신은 그 보다 먼저 존재했었나? 하는 의문을 품었다. 아직도 그런 의문은 명백하게 스스로 답을 할 수 없긴하지만.. 수업을 진행하신 신부님도 그러신 것 같아 약간 위안이 되었다고나 할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믿는 내 마음속의 기쁨이다.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신학적인 질문은 나를 성숙시킬 수는 있으나, 힘들고 괴로운 과정이 필요하다. 만약 내게 그런 것이 필요하다면, 하느님께서 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낼 뿐이다. 약간 이기적인 또는 자기 편의주의적인 판단인 것 같지만.. 스스로 터득한 생존방법(?)일 수도 있다고 위안을 해본다.
수업에서 아쉬웠던 점은 진화 이론의 부족한 부분이 너무 강조가 되었다는 점이다. 과학이라는 관점에서 진화론의 결점을 밝히는 데 걸린 시간이 90%, 신앙이라는 측면보다는 가톨릭 교회의 입장이라고, 못을 박는데 걸리는 시간이 10% 정도로 추정된다. 교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이유는 신앙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 지식은 신앙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즉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필요가 없어진다. 진화이론이라는 지식 그 자체에 대한 결함이나 그 배경을 밝히는 것, 즉 지식으로는 믿음이라는 신앙인이 가져야할 최소한도의 공통된 부분을 형성할 수 없다. 아는 것은 약한 믿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없는 믿음을 앎을 통해 만들기는 힘들다.
이 수업을 듣고 나서, 내가 만약 교리 선생님의 입장이라면 하는 약간 황당한 생각을 해 보았는데.. 그 결과는 창세기에 대한 오해를 풀어줄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되는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것은 하느님께서 채워주시리라 믿는다.
교리 선생님들의 식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가 참 맛있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김정호 토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