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안동국제탈춤 페스티벌>을 다녀오다
늦은 여름의 열기가 한반도를 여전히 지배하던 9월말 안동으로 내려갔다. <안동국제탈춤 페스티벌(9,27-10.6)>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작년에는 양평 숙소에서 3일 정도 이동하면서 보았지만, 올해는 안동에 숙소를 얻고 집중적으로 참가하기로 했다. 축제의 분위기에 빠져 좀 더 깊은 이해와 영감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축제 참가에는 M도 같이 할 예정이라 남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2024년 탈춤축제는 작년에 비한다면 엄청난 호황이었다. 축제가 끝나기 3일전에 벌써 88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찾은 이유에는 여행의 욕구와 오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회복에 대한 기대도 한몫했겠지만, 더 큰 이유는 백종원이 주도한 먹거리 장터가 언론에 주목을 받아서인 듯하다. ‘먹거리’는 이제 여행을 가야하는 최고의 이유로 등장하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 수많은 축제가 먹을 것으로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5일간의 참가를 통해 얻은 몇 가지 단상을 기록한다.
1. 세계 민속무용 및 탈춤
탈춤 축제의 핵심 행사 중 하나는 전 세계에서 참가한 각국의 민속무용과 탈춤 그리고 음악공연이다. 올해에는 더 많은 국가가 참여하여 자신들의 대표적인 음악과 춤을 선보였다.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는 전 세계의 전통문화를 한 번에 만끽할 수 있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뉴질랜드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동적이고 강렬한 전사들의 춤이나 남아메리카의 매혹적이고 화려한 움직임은 새로운 세계로 관객을 안내한다. 아시아의 정적이면서도 신비스런 분위기 또한 특별한 의미 속에서 펼쳐진다. 이번 공연에는 특히 인도네시아 공연단이 여러 팀 참가하여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문화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춤과 음악은 각국의 문화적 정수가 녹아있는 영역이다. 그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호흡하면서 만들어낸 독특하면서도 개성적인 인간의 움직임이 농축되어 있는 것이다.
세계민속공연을 보면 인간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인식하게 만든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이동한 이후 각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은 인간들이 지닌 보편적 공통점을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동작과 음악 속에서도 표현되는 핵심적 내용은 결국 남녀의 사랑, 전사들의 용기, 가족들의 따뜻함과 같은 인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한 공통점은 때론 격렬하게 때론 부드럽게 각각의 리듬과 선율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 세계민속공연은 세계를 경험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그 나라를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아니 방문하여도 쉽게 만나기 어려운 문화적 토대를 발견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인 것이다.
2. 한국의 탈춤 공연
‘안동 탈춤축제’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한국에 남아있는 전통 탈춤(가면극)을 한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탈춤은 정월 대보름이나 단오와 같은 명절 또는 마을 행사나 장날에 펼쳐지던 일상의 무대였다. 하지만 탈춤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소수의 보존단체에 의해서만 명맥이 어렵게 지탱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기공연 자체도 쉽게 만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탈춤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안동탈춤축제가 만들어낸 특별한 기회에 참여해야 한다. 황해도의 탈춤, 중부지방의 산대(별산대)놀이, 경남지역의 야류와 오광대, 그리고 농촌탈춤의 대표적인 작품인 ‘강릉관노가면극, ’하회별신굿놀이‘, ’북청사자놀이‘가 한 무대에서 공연되는 행복한 경험을 이때에만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공연시간의 제약이나 관람객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기본공연 시간을 줄이거나 작품의 얼개를 편집하는 경우가 많아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이또한 탈춤의 변화하는 과정일 것이다. 과거의 채록된 작품들도 그 시대의 변화에 맞춰 만들어졌고 수정되었고 전승되었다. 절대적인 원형은 없다. 시간의 변화 속에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작품의 이어짐이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상업화의 요구에 종속되거나 작품의 본질을 해치는 변화는 분명 경계할 내용이다. 관객들은 그저 신나고 즐거우면 그만이겠지만 탈춤이 만들어지고 번성하던 시기에 가졌던 문제의식과 공연형식은 충분히 보존되고 계승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작품을 보면서 들었던 짧은 생각 중에는 <강릉관노극>에서 악역을 담당한 ‘시시딱딱이’가 상당히 매력적인 얼굴과 이미지 그리고 행동패턴을 보이다는 점에서 이를 현대적으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작업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과 <수영야류>에서 등장하는 독특한 동물(영노, 사자, 범)들의 성격을 환타지적으로 구성한다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들도 포함된다. 또한 배우의 능력이 작품의 성격까지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가령 <강령탈춤>에서 할미역을 맡은 배우는 노래와 춤 그리고 대사구사력이 탁월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그에 대한 비중이 높아졌고 그를 중심으로 극이 재구성되어 원래 있던 ‘중마당’은 보여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각각의 탈춤 공연을 보면서 작품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고민이 읽혀진다. 좀 더 역동적이고, 좀 더 관객친화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한 변화의 몸부림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공연무대의 한계와 방송설비의 문제 때문에 양반과 중에 대한 풍자와 처첩간의 갈등을 묘사한 생생한 대사를 좀 더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의 부재는 못내 아쉬었다. ‘탈춤’의 공연이 점점 대사보다는 춤과 음악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대사’의 내용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생생함과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점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재미’와 ‘흥미’에 대한 비중이 높아질수록 ‘탈춤’의 핵심적인 가치인 특정 시대 특정 사람들과 공유했던 강렬한 풍자의 언어는 점차 핵심적인 가치를 상실할 수 있다. 탈춤의 언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 그리고 단지 시대에 낙후됐다고 손쉽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게 효과적으로 핵심을 전달할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탈춤의 본질은 ‘시대에 대한 저항’이자 ‘민중과의 연대’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 탈춤의 본질은 ‘시대에 대한 저항’이자 ‘민중과의 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