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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 신의 한 수는 없다
새로운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다.
사드 배치 재협상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적인 청산은 한반도만이 아니라 동북아 평화와 직결되어 있으며 보수사대주의와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관점에서도 새 정부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정치적인 문제다.
개성공단 재개와 통일문제에 대한 기대도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바라는 가장 큰 기대는 각자 자신들이 직면해 있는 경제 문제 해결에 있다.
실업 문제, 부채 문제, 경제 정의 실현 문제, 노년 세대의 생활비 문제 등등.
국민들은 새 대통령에게 신의 한 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신의 한 수는 결코 있을 수 없다.
경제학자를 등용하고 전문가를 요직에 등용한다고 해도 당장에 원하는 취업과 부를 이룰 수 있는 해법은 없다.
물론 구조조정을 하는 만큼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본다.
권력층의 뇌물 비리가 사라지고 정경유착이 극복되는 만큼 나이질 것이다.(정경유착근절)
수입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을 바르게 적용하는 만큼 나아질 것이다.(바른 세법 적용, 경제 정의 실현))
사회복지와 창업지원 등등에 낭비되고 있는 국가예산을 바로 잡는 만큼 나아질 것이다.(방만한 예산 삭감,)
국방비에 관련된 철저한 예산과 결산에 대한 검증을 하는 만큼 나아질 것이다. (국방비 관련 비리 근절)
대기업, 중소기업의 법을 바로 잡고 철저하게 시행하는 만큼 나아질 것이다.(재벌 기업에 대한 사업항목 제한)
2차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을 하는 만큼 나아질 것이다. (2차 산업에 대한 장,단기 투자)
1차 산업 즉 생명산업, 안보산업에 대한 바른 인식과 대책을 세우는 만큼 나아질 것이다.
(생명 안보산업에 대한 바른 정책)
이상은 흔히 말하는 구조조정을 뜻한다. 나쁜 구조(독점 구조)를 선한 구조(열린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나라 살림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이 정도의 문제 해법에 대한 지식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문제는 해법, 경제 지식으로 개선과 개혁을 이루어갈 의지가 정부와 국민, 기업에게 있는가의 문제다. 모든 개선과 개혁, 변화와 전환에는 고통과 불편이 수반된다. 과연 우리 정부와 국민이 함께 불편과 고통을 감수하며 새로운 대한민국 경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쓸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할 때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한국사회에 나쁜 경제구조가 뿌리를 내렸으며 그 뿌리가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에 나쁜 경제생활이 뿌리를 내렸고 정신세계 또한 물질중심의 나쁜 가치관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인도에 처음 갔을 때 철저하게 카스트에 근거된 인도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혔었다. 달릿과 아디바시를 사회 구성원에서 아웃시키고 4번째 계급을 사회 밑바닥에 깔아서 적당히 이용하는 그 사회의 악한 구조와 조직은 그야말로 악과 폭력의 정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스트는 그것으로 혜택을 입는 자들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 교육, 언론, 사회 활동에 의하여 인도 수 천 년 역사 속에서 전생의 죄값이라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세뇌시키며 카르마와 다르마를 마치 진리인것처럼 확대 재생산에 성공하여 절대 권력이 되어 버렸다.
나쁜 구조와 조직 아래서 달릿과 아디바시는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비인간화되었고 상위 카스트에 속한 자들 또한 신의 자리에 앉아 비인간화되었다. 결국 나쁜 구조로 말미암아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그들은 악한 구조의 피해자들에게 세상을 망상으로 보도록 가르쳤다.
맨 처음에 카스트 상위 계급이 권력과 힘으로 사회에 자기들 중심의 나쁜 구조를 만들었고 다음에 악한 구조를 통해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장악하였고 지배를 합리화하였다. 3000여 세월 동안, 종교와 철학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영혼까지 좀먹어버린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불평등과 차별을 요가와 해탈, 신비와 업으로 미화시키고 세계를 향해서 악한 구조를 선한 것처럼 과대포장을 해서 선전하고 있으며 여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사회의 나쁜 구조는 인도처럼 악하지도 않고 뿌리도 깊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가면서 저절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은 가벼운 증세는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는 바야흐로 빚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우리의 생활이 빚으로 사는 악순화의 구조에 갇혀버린 것다.
우리 사회가 “빚도 능력이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빚을 서로 권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가 되어버렸다.
TV 광고에 돈 빌려준다는 광고가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
한국 사회 전체가 빚의 늪에 빠져서 빚으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빚을 진다는 것은 내일의 것을 앞당겨서 오늘 사용하는 것으로 아주 나쁜 경영이다. 이렇게 빚으로 사는 바람직하지 않은 존재방식이 특별한 사정에 의해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이고 그것을 해결할 대책이 있으면 이해가 가능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심각하다. 빚의 일상화는 심각한 질병이다. 병으로 치자면 혈액 투석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지방정부는 빚의 행진은 멈출 기미가 없다.
기업은 기업대로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가정은 가정대로 빚에 허덕이고 있다.
국가, 기업, 개인 모두가 함께 빚에 허덕인다는 사실이 석연하지 않다. 누가 국가, 기업, 개인에게 빚을 주는 것일까? 빚을 주는 자의 정체는 국가의 통계, 회사의 통계를 살펴 보면 나온다. 나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개인들의 빚이다. 개인들의 빚은 그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20년, 30년 전만해도 빚을 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는데 지금은 빚을 지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친구들을 만나면 답이 나온다.
주택 융자금이 가장 큰 빚이다.
고급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은 집을 사기 위해서 은행에 진 빚을 빚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내가 볼 때 가계 부채의 가장 큰 원인은 주택 구입 융자금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원금과 이자 상환에 허덕거린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대충 빚을 갚을 만하면 평수를 늘리거나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빚을 지고 다람쥐 체 바퀴 돌리듯이 빚을 갚기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맨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은행 빚을 갚다가 조금 여유가 생기면 자녀들의 아파트 마련에 또 다시 빚을 진다. 중산층 서민들이 빚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다.
주택은 그렇다 치더라도 승용차는 더 큰 문제다.
빚으로 산 외제 또는 고급 승용차 한 대로 부족해서 남편용, 아내용이 따로 있으며 자녀가 취업을 하면 1,2년 후에 한 대가 더 추가된다. 게다가 차에 투자된 비용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3~5년 마다 새 차로 바꾼다. 이 모든 것을 서슴없이 생각 없이 자행하는 것이 오늘 우리 중산층의 실태이다.
주택과 승용차는 가격대가 높으므로 현금을 가지고 일시불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에 빚을 안고 사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문제는 옷을 비롯한 날마다 사용하는 생필품까지도 3개월, 6개월, 1년 카드 할부로 구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월부로 사는 것, 전자제품이나 기타 등등의 것을 구매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모든 구매 시 카드와 은행돈을 선사용하고 후 지불하는 제도로 정착된 사회, 당장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물건 구입이 마으만 먹으면 가능한 사회에 익숙해 있어서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도 모른다.
이제는 해외여행마저도 먼저 다녀오고 후지불하는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빚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미래가 은행이나 카드사에 잡히게 될것이다. 미래의 삶은 카드 빚과 은행 빚을 갚아가는 고통스런 노동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 융자, 결혼 비용 융자로 말미암아 은퇴를 해도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새로운 미래를 정리해볼 겨를도 없이 과거에 진 빚이 남겨준 원리금과 이자 상환을 위해 거리로 나가야 하는 것이 정년 중산층, 서민 퇴직자들의 현실이다.
우리 사회가 빚으로 휘청거리면서도 편리와 편안, 사치의 풍조에 빠져있다.
시내버스를 비롯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한 집 2, 3대의 승용차가 대세다. 입버릇처럼 힘들어 못살겠다고 하면서 외제 고급 승용차나 대형 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닌다. 농촌도 농업용 차량 따로 있고 승용차를 따로 구입해서 지출의 많은 부분이 차량 관련으로 나간다.
식사도 마찬가지다. 80년 때까지만 해도 외식이 특별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외식이 일상이 되었다. 반찬도 집에서 만드는 것보다 사먹는 것으로 바뀌어서 반찬가게가 성업 중이다. 집에서 가정주부로 일하면서도 3,4세 자녀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에 보낸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든 고학년이든 하교 후에 집에 오면 보살필 염두를 두지 않고 저녁 늦게 까지 학원으로 돌린다.
어르신 수발이 조금이라도 힘들면 양로원으로 요양원으로 모신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1년에 한 두 차례 해외여행은 관행처럼 되었고 가족여행도 비행기 타고 외국으로, 제주도로 간다. 골프여행이라는 것이 일반화되어서 관광지로 가는 비행기 수하물에 골프 가방이 참으로 많다.
애완용 개를 개유치원에 보내는 등 수발드는데 1달에 50,60 만 원 정도를 지출한다는 말을 듣고 기아로 영양실조에 빠진 아프리카 아동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애완용 개나 고양이를 위한 우유를 선전하는 광고에 기분이 묘해졌다.
월부금에 쫓기면서도 화장품이나, 옷이나, 가방이나, 구두나 소위 명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사용하며 옛날에는 연예인이나 했던 미용을 위한 성형수술이나 주름살 제거수술 등등이 일반화되어 누구나 다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빚을 갚기 위해서 허리를 졸라매는, 고통과 불편을 감수하려고 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부모들조차도 가난한 사람과 결혼하느니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편히 사는 것이 낫다고 자녀에게 충고하고 있고 작은 수입으로 자기 몸 하나에 돈을 다써버리는 남자들은 결혼해서 고생하느니 미혼상태로 부모를 의지하며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결혼을 해서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고 생활이 힘들면 쉽게 이혼하는 풍조는 우리 사회가 안일의 늪에 빠져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불안을 이용한 비즈니스의 천국이다.
불안 비즈니스는 신문, 라디오, TV와 인터넷방송, 광고 등을 통해서 준비하면 행복해진다는 주문, 남편이 죽어도 보험금을 타면 문제 없다는 주문, 사고가 나도 보험금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주문을 걸었고 한국 사회는 아무 저항없이 그 주문에 맞춤형 사회로 재편성되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본주위 사회의 꽃인 보험과 연금으로 다양한 종류의 불행에 대한 준비를 하느라 오늘을 살지 못하고 있으며 비인간화되는 것이다. 물화되는 것이다. 보험금과 연금에 집중한 나머지 모든 관계를, 생명을 이해타산으로 보고, 부와 풍요를 선으로 인식하고 가난과 빈곤을 악으로 인식하면서 세상을 적자생존의 전쟁터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수많은 보험광고대로 유비무환, 준비라는 것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준비 때문에 삶이 지옥이 되어가고 있다면, 매월 붓는 돈 마련에 삶의 여유와 인간미를 상실하고 있다면 우리는 과감히 연금과 보험 납입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러나 백세 시대라는 말이 주는 위압감과 시대의 흐름에 빠져 있어서 또한 중도 해약을 하면 원금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삶을 쥐어짜서 납입을 한다. 신생아의 교육보험을 필두로 해서 노년층의 백세보험에 이르기까지 모든 보험이 미래를 위한 현명한 준비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두, 세 개 일 때야 편안한 마음으로 부을 수 있지만 주택 융자금, 승용차 융자금, 기타 융자금이 줄줄이 이어지게 되면 미래 준비를 위한 돈이 사람을 우울증과 죽음으로 이끌 수 있다.
은퇴, 명퇴, 백세 시대라는 말이 주는 불안의 늪에 빠져서 각종 자격증 비즈니스가 성업 중이다. 다양한 자격증을 갖추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내고 공부를 하고 훈련을 받지만 그 자격증으로 취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청이나, 시청, 각대학교 산하의 평생교육원이 제공하는 자격증 교육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은퇴 전후의 대부분의 사람 치고 자격증을 3,4개씩 안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보험과 자격증으로 백세를 준비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세뇌시키고 있는
매스컴의 광고를 비판할 능력이 우리에게 없고
매스컴의 의도대로 따라 사라다보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자로서만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게 되어 있다.
보다 많이 소유하고
보다 많이 소비하고
보다 값 비싼 것을 소비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느끼게 된다.
불안의식에 빠진 인간은 소비를 통해서 자기를 과시하고
자기 스스로 자기의 구세주가 되어 돈의 확보, 힘의 확보를 통해서 평화와 안전을 구가하려고 한다.
불안과 준비의 늪에 빠진 한국사회는 100여 년 전 유럽사회, 80여 년 전 미국 사회. 2,30년 일본 사회의 모습이다.
우리 보다 앞서 풍요를 경험했던 나라들이 우리의 거울이다. 거울을 바라보면 희미하지만 길이 보일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 앞에 서있는 그 어떤 경제전문가도 ,
대경제학자도 한국의 경제 문제를 단시일에 해결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를 둘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혹시 신의 한 수를 두는 사람이 나타난다할지라도
빚의 늪의 빠진 사회,
안일과 편리의 타성에 젖은 사회,
미래 준비를 위해 인생을 물화 시킨 사람들이 그 신의 한 수를 무력화시킬 것이다.
신의 한 수는 없다!
구조 조정이 성공적이려면 삶과 경제에 대한 인간의 인식 , 가치관이 달라져야 한다.
정신의 개혁이 없는 구조와 조직의 개편은 인간을 물질로 취급한 것으로 실패로 나간다.
신의 한 수가 여기 있다.
경제 정의를 구현하는,
공생공존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가는 길이 있다.
국민들이 치열하게 노력하여 빚의 늪에서 빠져 나오게 하는 것!
국민들이 쉽게 살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
국민들이 불안과 준비의 늪에서 벗어나도록 하면
신의 한 수가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