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2)
대하 25:7-20 ; 26:4-5, 16
❚대하 25:7-20 ☞ 7.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를 왕과 함께 가게 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나니 8.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적군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하니...14.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15.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시니 그가 이르되 저 백성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16.선지자가 아직 그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하니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19.네가 에돔 사람들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20.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
❚역대하 26:4-5, 16 ☞ 4.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5.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16.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시작은 좋았지만 나중이 좋지 않은 왕이 있습니다. 교만 때문입니다. 유다 왕 아마샤와 그의 아들 웃시야가 바로 그들입니다.
1. 아마샤(유대 9대 왕)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적군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8절).
아마샤가 유대를 통치하던 시기에 에돔과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때 한 선지자(7절, 어떤 하나님의 사람)가 아마샤를 찾아와 에돔과의 전쟁은 유대의 승리로 끝이 날 것이라는 예언을 해주었습니다. 결국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전쟁은 아마샤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이렇게 아마샤의 시작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이 문제였습니다. 아마샤가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세일 자손의 우상”을 가지고와 자기 신으로 세우고 경배하며 분향한 것입니다(14절).
그럼에도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아마샤의 잘못을 깨우쳐 주려 하였지만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16절)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를 향해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대하 25:16)라며 위협했습니다. 이 말은 ‘닥치라 널 죽이기 전에’, ‘그치라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교만에 빠진 아마샤가 이제는 이스라엘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줄도 모르고, 에돔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북이스라엘을 정벌하고자 나선 것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왕이 아마샤에게 한 말은 마치 하나님이 하시는 말과 같았습니다. “네가 에돔 사람들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19절). ‘자긍’(自矜)이란 '스스로 긍지를 가짐' 또는 '자기 스스로 하는 자랑'이라는 뜻입니다. 아마샤가 에돔과의 전쟁을 자기 능력으로 승리한 양 마음이 교만해져 이스라엘을 정복하려 들자 이스라엘 왕이 화를 부르는 일이라며 아마샤의 어리석음을 꼬집으며 비웃는 말입니다. 아마샤는 이스라엘 왕의 경고를 들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20절)라는 말씀처럼 듣지를 않았습니다.
교만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성격이 교만해서가 아니라 교만한 마귀의 영향력으로 교만하다는 뜻입니다. 다음은 교만한 바벨론 왕을 가리키지만 실제로는 타락한 마귀를 묘사한 말입니다.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사 14:12-14).
‘계명성’이란 새벽별(샛별)이란 뜻으로 바벨론 왕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라는 말은 세상의 모든 군왕보다 높아지겠다는 뜻으로 하나님같이 높이겠다는 뜻입니다.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라는 말도 여호와께서 앉으시는 증거산(예루살렘 성전산)에 앉으리라는 뜻으로 자기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교만을 뜻하는 말입니다. 교부시대의 교부는 ‘계명성’(영어 성경에는 ‘루시퍼’로 번역함)에 대해 본래 천사장으로 교만에 빠져 하나님을 반역했다가 하늘에서 쫓겨난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교만한 이유는 아담이 타락하게 된 배후에 마귀가 있었던 것처럼, 교만한 마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시골교회 여 권사가 예배만 끝나면 목사님의 설교가 틀렸다며 메모지에 적어 강대상에 올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전도사로 사역하기를 원했지만 채용하지 않자 이런 행태로 목사님을 괴롭힌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자기가 하는 짓이 마귀의 사주라는 생각을 죽었다 깨어나도 깨닫지 못하고 마귀 앞잡이 짓을 행하는 것입니다.
아마샤의 최후
아마샤는 결국 자기 백성의 손에 죽고 말았습니다(대하 25:27). 하지만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라는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말처럼 자초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벧전 5:5). 또한 미워하십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잠 16:5).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일컫는 것입니다(잠 16:18).
2. 웃시야(유대 10대 왕)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4절). 웃시야도 자기 아버지 아마샤처럼 시작은 좋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동안은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대하 26:5). 그런데 웃시야도 나중이 문제였습니다. 성소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웃시야가 강성해지자 자신이 제사장이라도 되는 양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대하 26:16). ‘강성하여지매’란 그의 교만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잘 설명해 주는 말입니다. 웃시야가 자기 명성이 원방에 퍼지고 나라가 부강하게 되자 자기 노력과 훌륭한 정책으로 나라가 부강하게 된 줄로 알고 종교적인 면까지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에 제사장이 만류하자 자기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대하 26:19). 웃시야가 화를 낸 이유는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화를 내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기자가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잠 9:8). 그래서 교만한 자는 멀리하는 게 상책입니다. 잘못을 지적해 준다고 해서 고마워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웃시야의 최후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대하 26:19).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나병은 저주와 심판의 상징으로 하나님의 유기(遺棄)를 상징합니다. 그렇게 나병에 걸린 웃시야는 즉시 궁에서 쫓겨나 죽는 날까지 별궁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왕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곁에 장사되었습니다.그러므로 잘되기를 소원하기보다는 교만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다가 기도와 간구로 15년을 연장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광도 누렸습니다. 그 후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의 완쾌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지 않고, 왕궁과 나라 안에 있는 보물과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교만을 뉘우쳤습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대하 32:26). 히스기야가 교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지만 뉘우치자 그의 생전에는 진노를 내리지 않기로 철회했습니다.
교만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는 회개로서 철회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식, 부, 명예, 권세 등으로 교만했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철회되기를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렘 13:15)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화를 부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주야로기도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