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병 孝道
글 淑川 강 동 구
카투사로 미군 부대에 배속된 지 10개월 정도 지났다.
말로만 듣던 추수감사절(Thanks giving day)이 다가온다. 장교식당은 추수감사절 준비로 분주하였다. 통닭보다 서 네 배는 더 큰 칠면조를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미국인들의 추수감사절 명절은 우리 추석 명절과 다를 바 없다. 다름이 있다면 우리는 한해 농사를 잘 지어 감사의 표시를 조상님께 하지만, 미국인들은 하나님께 한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하늘이 도와주어야 모든 농사가 잘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풍년이 들면 조상님의 은덕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으며 이야기꽃을 피우지만, 미국인들은 칠면조를 오븐에 구어 놓고 식탁에 모여앉아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리고 추수감사절 명절을 즐긴다.
추수감사절은 공휴일이다. 미군 부대는 공휴일과 휴일에는 식당이 온종일 열려있다. 아침 6시에서 저녁 6시까지 언제라도 원하는 시간에 식사할 수 있다. 미군 부대의 법과 제도는 군인을 위한 것이기에 모든 것이 군인 위주로 되어있다. 휴일은 말 그대로 쉬는 날이기에 늦잠을 자고 편히 쉬다가 먹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먹으라는 배려다. 언제나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미군 부대에 배속되어 생전에 구경도 못 해본 진귀한 음식을 배불리 먹고 있지만, 부모님과 형제들을 생각하면 목이 멜 때도 있다. 이 맛있는 양식을 부모님과 형제들과 함께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이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모든 것이 풍족하지만, 70년대 우리나라는 지금과 같은 풍요를 누리지 못하였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이다.
장교식당은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 차 있다. 양식을 맛있게 드시는 부모님과 형제들을 상상해 보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밑져야 본전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말처럼 용기를 얻어 식당 책임자에게 진정성있게 디가 섰다. 부모님과 형제들을 장교식당에 초대하고 싶다는 말을 겸허히 손짓과 발짓으로 전했다. 내 영어 실력이 오죽했으만 미군 책임자는 내 말을 끝까지 경청하는 게 아닌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나이 지긋한 미군 책임자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떠올리는지 잠시 허공을 바라보면서 아무 말이 없더니 ‘오케이’ 하고 단번에 허락해 주시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부랴부랴 고향 집에 연락하여 부모 형제들을 장교식당에 초대하여 평생 잊을 수 없는 만찬을 즐기게 되었다.
울타리 밖에서만 볼 수 있었던 미군 부대를 온 식구가 초대되었다. 사병 식당도 아닌 장교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드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니 기쁨의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누님과 동생들도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먹지 않아도 배가 절로 불렀다.
칠면조보다 닭고기가 더 식성에 맞을 것 같다. 모처럼 식구들이 행복해 한다. 어머니의 상기된 표정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 역시 작은아들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런 효도를 받은 것이 내내 조금은 미안해하시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칠 무렵이었다. 아니 미군 책임자는 언제 준비하였는지 커다란 칠면조 통 구이 두 마리와 열대 과일 통조림 등을 푸짐히 큰 상자에 넣어 선물로 부모님께 안겨 드리는 게 아닌가! 실로 감동이었다. 후일담으로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생소한 칠면조 구이와 열대과일 등을 대접하시며 미군 부대 탐방기를 다큐멘터리로 생방송을 하셨다고 한다.
그때 그 미군 책임자는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은인이다. 그의 후덕한 사랑은 어찌 은혜를 입은 인간이 잊을 수가 있겠는가! 아직 생존하신다면 극진히 초대하고 싶다.
어머니는 잊을 만하면 그때 일을 떠올리시며 평생에 처음 잡수어 보신 양식 맛을 잊지 못하신다. 웨이트리스 아가씨가 마치 중국 코스 요리처럼 먹고 나면 또 가져온다고 그때의 추억을 두고두고 음미하셨다.
작은아들 군대에 보내놓고 어머니는 6.25 전쟁 때 태어나 젖배를 곯아서 배고픔을 못 참는 작은아들이 오매불망 걱정이셨는데, 아니 미군 부대에서 매일 양식을 배불리 먹고 부모 형제까지 초대하여 만찬까지 베풀었으니 일등병이 이런 효도를 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당시 규제되던 양담배나 양주 또한 구해다 드리면 아버지는 그렇게 좋아 이웃집들과 나누며 즐거워하셨다.
효도가 무엇인가?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다. 효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신 것이 분명하다. 부모는 자식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만 지니면 효자대열에 든다.
반포지효(反哺之孝)란 말이 있다. 까마귀가 자라서 늙은 부모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성 지극한 새를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까마귀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군대 생활하는 일등병도 간절한 소원을 품으니 효도할 길이 열린다. 미군 부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우리의 전통인 효를 몸으로 보여주었으니 그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자랑스럽던 나의 카투사 시절이었다.(끝) 13.2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