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과 강물과 긴 세월의 앙상블, 주상절리를 걷다
1. 일자: 2025. 1. 18 (토)
2. 장소: 한탄강 주상절리, 얼음 트레킹
3. 행로와 시간
[드르니매표소(09:00) ~ (주상절리길) ~ 순담매표소(10:30) ~ 고석바위(11:14) ~ 승일교/얼음축제장(11:45) ~ (점심) ~ 은하수교(13:00) ~ (~13:55, 카페) ~ 고석정 주차장(14:25) / 13.95km]
친구와 한탄강 트레킹에 다녀왔다.
10여년 전, 꽁꽁 언 강 위를 걸으며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주상절리를 보며, 그 특이한 모양의 지형에 감탄했던 기억에 새 추억을 더하려 한다.
복정에서 한탄강까지는 채 90분도 걸리지 않았다. 드르니(들르다) 매표소 앞에서 주상절리길 오픈 시간을 기다리며 바라본 풍경에는 금학산이 있었다. 유순하게 흐르는 산의 골격이 선명하다.
< 한탄강 주상절리길 >
09:00, 문이 열린다. 잠시 바닥이 언 계단을 내려서자 한탄강계곡이 흐르는 풍경이 펼쳐진다. 시작부터 감동이다. 눈 덮인 강 위로 굽이쳐 맑디 맑은 시린 물이 흐르고, 그 너머에는 한탄강의 명물 주상절리 절벽이 펼쳐진다. '기둥 형상으로 갈라진 틈' , 현무암질 용암이 땅 위를 꿀물처럼 흐르다가 차가운 환경과 만나게 되면 용암 표면이 냉각되어 단단하게 굳어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육각형, 다각형 모양으로 갈라진 지질이 바로 주상절리이다. 옛 기억이 되살아나며 깊은 감동이 몰려온다. 예전과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감동의 깊이는 더 깊다.
전국에서 제일 춥다는 철원 땅, 볼이 얼얼한 추위 속, 언 강의 습기가 만든 살얼음을 이겨내며 조심스레 발길을 옮긴다. 시간이 일러 지나는 이는 산악회 일행 뿐이다. 독점의 행운까지...
보이는 풍경 모두가 예술이다. 잘 닦여진 데크가 절벽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구름다리와 스카이전망대를 지난다. 다른 곳에서는 하나하나가 명소일 듯한 긴 현수교를 몇 개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순삭이란 말이 실감난다. 시간이 잊혀질 만큼 공간이 주는 감동은 압권이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순담계곡 쉼터에서 걸음을 멈춘다. 마치 기분 좋은 꿈을 꾼 것 같다.
입장료 1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 한탄강 얼음 트레킹 >
3.5km, 9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강아래로 내려와 새로 매표를 하고 부교 위에 선다. 주상절리길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한탄강은 걷는 길 옆을 흘러가고 있다. 공중에 떠서 데크를 걸으며 바라보는 강이 먼 그대였다면, 흔들리는 부교 위에서 바라보는 강은 현장감이 돋보인다. 빠르게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니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장면이 떠오른다.
합수점을 지나고 고석바위와 고석정 밑을 지나
승일교를 돌아드니 커다란 얼음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 축제장이 등장한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 오뎅과 감자전을 먹었다. 씹히는 맛이 아주 좋은 두툼한 감자전은 일품이었다.
따스해지는 겨울 햇살을 맞으며 강가를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행복이란 주관적 안녕감이다. 나는 이곳 한탄강 물가를 친구와 함께 걸으며 더 없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길은 어느덧 마당바위와 은하수교가 올려다 보이는 송소대 옆을 지난다. 걸은 지 4시간 만에 산 비탈을 올라 은하수교를 건넌다.
축제에 초대된 젊은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한참 동안 감상했다. 무명의 노래 잘하는 젊은 여성과 4명의 남자들이 펼치는 무대에 빠져든다. 흔해빠진 싸구려 상품 찍듯이 노래하는 축제장 트로트 가수보다 훨씬 좋았다. 신선했다.
카페 2층 창가에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사진을 정리한다. 지나온 꿈 같은 시간의 기록이 소중히 간직되어 있다. 잠시의 휴식은 힘이 되어준다.
다시 30분 도로를 걸어, 고석정 주차장에서 오늘 트레킹의 마지막 걸음을 멈춘다.
< 에필로그 >
서울행 버스가 출발한다. 새로 생긴 고속도로가 시원하다. 노곤한 졸음이 몰려든다. 기대 이상의 경험이었다.
뜨거운 용암과 차가운 강물과 긴 세월이 만들어 놓은 주상절리와 얼음 강변을 맘 맞는 친구와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다.
한겨울 철원에서, 혼돈스럽고 분노가 치미는 시절의 우울을 이기고, 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은 친구도 같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