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옥목인원”이 열리고, 선생님과 그 공간에서의 공부가 낯설지 않다.
선생님 : 이 사람들 여기 왜 온 거야? (웃음)
학생 : 매월 셋째주 일요일 열시에 선생님과 만나왔잖아요. 그 날이 오늘입니다.
선생님 : 그 날이 오늘이라는 얘기를 들으니까, 옛날에 내가 읽었던 우스개 소리가 생각난다. 남자들이 모여 가지고 각자 자기 아내하고 잠자리를 한 달에 몇 번 하냐. 남자들이 모이면 그런 쓸데없는 얘기를 해. (웃음) 한 사람이 풀이 팍 죽어 가지고 “나는 석 달에 한 번밖에 안 돼.” “그래?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사냐?” 그러니, 한 녀석이 “나는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한다.” 그렇게 얘기 해. 한 녀석이 싱글 싱글거리면서 얘기 해. “넌 뭐가 좋아서 웃냐?” “나는 일 년에 한 번이야.” (웃음) “왜 그렇게 신나서 웃어?” “오늘이 그 날이야.” (웃음)
학생 : 저희도 오늘이 그 날이예요. (웃음) 선생님은 어떠세요?
선생님 : 나는 매일 오늘이 그 날이야. (웃음)
학생 : “관옥목인원” 여기, 선생님 글씨 전시 한다고 하고, 책도 나오고, 선생님, 괜찮으시죠?
선생님 : 괜찮아. 나하고 연관이 있지만,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 중에 하나니까, 구태여. 그렇게 봐. 세상은 맨날 일들이 일어나잖아. 몇 년전만 해도 내가 못 하게 했을 거다.
학생 : 저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결국 선생님이 떠나시고 나면, 좀 더 가까이 더 만날 걸. 그런 마음들이, 회심의 마음이 안 생기려고 이런 일들을 추진하려고 하니까, 선생님과는 상관이 없겠죠. 이런 페스티벌이 없으면 모일 수가 없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다녀가요. 목인원이라는 공간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선생님과 좋은 추억들을 담아가는 곳으로요.
선생님 : 기분 좋고 행복했던 추억은 손해를 보거나 상처를 보진 않아. 그런 건 괜찮아. 깨끗한 음식은 먹으면 몸에 좋잖아. 독성이 있는 음식을 내가 먹으면 다치잖아. 과거도 먹어도, 기억해도 괜찮은 것이 있고 하면 할수록 내가 힘든 것이 있고. 톨레같은 사람이 권하는 것이 힘든 때, 행복했을 때의 그림을 떠올르라는 거야. 엄마하고 어디 갔을 때라든가, 사랑하는 사람과 좋았던 시절을 머리 속으로 회상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학생 : 행복이 뭐예요?
선생님 : 아까 다나라고 했잖아. 이미 다나라고, 그것을 기억하면 좋다고. 어느 순간, 이게 다 나네. 그것을 느껴지면, 추리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아까 얘기 한 것처럼 “우주가 나를 돕고 있네.” 느낌이잖아. 그 순간을 다른 말로 하면, 행복 아닌가. 슬프냐, 기쁘냐는 감정이고. 아까 얘기했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emotion 이모베레라는 라틴어에서 왔대. 이머베레라는 것은 뭔 뜻이냐 하면, 혼란, 어지로움, 어지럽게 하는 것, 이런 뜻이래. 인간 감정은 평생 어지러워. 아주 변덕스럽고. 아침에 아주 기분이 좋았다가 저녁에 안 좋아지응 그런 감정에 너무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얘기하고 있거든. 감정에 휘둘리지 마라. 감정에 나를 일치시켜서, 생각에 일치 시키는 거나, 감정에 일치시키는 것은 똑같다. 어떤사람이 질문해. “그러면, 사랑이나 기쁨같은 것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이 사람 대답은 “그것은 내가 얘기하는 감정의 카데고리에 넣으면 안 된다. 사랑, 기쁨, 평화 세가지는 espelt라는 말을 쓰는데, 얼굴이라는 뜻이야. 국면, 얼굴, 하나가 여러 얼굴을 할 수 있다는 거지. 하나가 여러 얼굴을 가질 수 있어. 그 하나가 세 가지 얼굴을 하는데, 사랑, 기쁨, 평화 이것은 감정의 카데고리에 넣으면 안된다. 그것들 훨씬 너머에 있다.” 이 사람의 표현에 의하면, Being, 자기가 그래. 하나님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만,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너무 오염이 되어서 나는 Being 단어를 쓴다. 알기 쉽게 하나님이라고 보면 돼. Being과 연결된 상태,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세 얼굴이 사랑, 기쁨, 평화라고 해. 그래서, “사랑을 존재의 방식이다.” 라고 얘기해. 그때 말한 존재는 이런 존재가 아니라, 전체적인 하나님. 들쑥날쑥하는 감정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사랑과 기쁨과 평화는 저 깊은 곳에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부터 떨어져 살 수는 없는 거야. 내가 떨어져 있다라는 착각을 해서 그렇지. 원래 처음부터 다 나야. 내가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오래 되었어. 그래서, 이 착각이 깨어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거야. 이것이 깨어지면, “어, 우주가 나네.” 그 때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올 수가 없지. 존재 자체가 사랑이고 기쁨이고 평화인데, 그것을 누가 무너뜨리겠어. 그런 얘기를 하고 있어.
학생 :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성전이다.” 제가 체중이 많이 감소된 상태라서 “위장장애나 소화불량에 영향받지 않는 무한한 존재다. 나는 사랑이고, 평화고, 고요다.” 이것을 계속 기도해요.
선생님 : 아주 좋은 만트라다. 전도서에 말한 솔로몬이 “조물주를 기억하라.” 그 말이지. 하나님을 기억하라. 모르는 것은 기억 못 해. 한 번 보지 못한 것은 기억을 못 해. 이미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 그 하나님의 존재가 평상시에는 내 속에서 느껴지는 거야. 그 분이 사시는구나. 남한테, 밖에서 찾지 마라.
학생 :저번에 읽었던 내용 중에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직시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내 그림자를 직시할 것인가.
선생님 : 그림자라는 것이 뭘까? 나로 말미암아 생겨난 부정적인 모습, 감정. 그림자라고 하는 것이 나무는 그림자가 있어도 바람에는 그림자가 없지. 아무리 태풍이 물어도 바람에는 그림자가 없어. 나무는 조그만 소나무만 있어도 그림자가 있고, 왜 그럴까? (존재가 있으니까요?) 바람은 없냐? (보이지 않아서요?) 왜 그럴까? (머물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맨날 왔다갔다 해도 거기 있잖아. 바람은 빛을 막지 않아. 가리지 않아. 그러니 그림자가 없어. 투명해. 그러니까, 이런 물건은 투명하지 않지. 얘는 빛을 통과 못 시켜. 못 가. 빛은 가야 되잖아. 빛의 속도로. 이만한 나뭇가지 하나가 그것을 저항하는 거야. 못 간다.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는 거야.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빛을 가로막는 뭐가 있다는 거야. 내가 하나님의 빛을 막고 있어. 그래서, 그림자가 생기는 거야. “너를 투명 인간으로 만들어라.” 이런 거 책에서 안 읽어 봤어? 네가 투명 인간이 되면 세상에 어떤 비난을 해도 너는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그림자를 미워하지 말고, 비판하지 말고, 요지는 그거야. 비판하지 마라. 비난하지 마라. 그리고, 그냥 봐라. 그림자를 봐. 관찰자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지? 관조자, 관찰자가 되는 거야. 거울처럼, 내 허물을 감추려고 하지 말고, 드러내서 뭐 할려고 하지 말고, 비판하지도 말고, 변명하지도 말고, 판단 없이 그냥 봐라.
그것을 비판 없이 본다. 이것이 뭔 뜻일까? 나는 그것을 다른 언어로 바꾸면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 이런 얘기야. 허공의 눈으로 본다. 자기 견해가 없이 보는 거야. 그럼 뭔 뜻이야. 그림자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아무런 견해 없이 판단 없이 맑은 거울처럼 본다. 그 그림자에 빛이 닿는다는 얘기겠지. 그럼 없어지는 거야. 없어져. 그냥 이렇게 보고 있으면, 거기에 대해 내 견해나 내 생각이 들어가서 그것을 아까 얘기 한 것처럼 변명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뭣 때문에 그랬다고 이유를 대거나, 다 뭣 때문에 라는 얘기는 그 자체를 판단하는 거란 말이야. 그런 눈으로 볼 때, 자기의 허물 같은 것을 그렇게 보잖아. 또는, ‘너는 왜 그 모양이냐.’ 하고 자기 자신을 비판하기도 하고, 어느덧 감추고 싶은 자기 부정적인 모습이 사라져 갔더라. 그런 눈으로 사물을 보게 되면, 다른 사람의 허물도 그런 눈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학생 : 어디까지가 허물을 얘기하는 거예요?
선생님 : 그거야 그렇게 보면 허물이지. 나의 어떤 모습이라든가, 내가 하는 행동을 볼 때, 많은 사람 앞에서 들어내 보이고 싶지 않은 자기의 모습이 있잖아. 옛날 어른들이 ‘군자는 대로행이라. 골목으로 가지 않는다.’ 그 말이 뭔 말이겠어. 많은 사람들이 이목이 집중 되는 거기를 가는 거야. 캥기는 짓을 하지 않는다. 은밀하게 남들이 안 보이는 데에서 하는 그런 짓을 할 수가 없는 거야. 소인배는 숨어서 한단 말이야. 도둑놈이 다 밤에 하잖아. 안 보이게 하잖아. 사람도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으면 행동거지를 함부로 할 수 없지. 저절로 그렇게 안되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 그럴 때, 엣날 버릇이 나오는 거야. 다 공자님이 하신 얘기야. 열 개의 눈이 너를 보고 있다. 십목소지라.
학생 : 지금까지 하신 말씀이 다 쉽지 않으니까 저희가 공부를 하는 거잖아요.
선생님 : 하면 할수록 쉬워지지. 처음에는 좀 어렵다 하더라도 자기한테 억지로라도 자꾸만 하다보면 나중에 어느 정도 경지가 되다 보면 그때는 억지로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지. 칼질도 그렇지 않아? 처음에는 노력을 해야 되잖아. 경지에 오르면 다 되잖아. 다 그렇지 뭐. 악기도 그렇잖아? 처음에 할 때는 굉장히 노력을 해야 하잖아. 그 다음에는 손이 저절로 돌아가는데. 몸이 익히는 거지. 반복하는 수 밖에 없지. 반복 아니면, 그럴 방법이 없어. 뭐든지. 남들이 비난하고 책잡고 왜 잘되는지 알아? 우리가 피나게 수련을 했기 때문이야. 오랜 세월, 누가 시키지않아도 잘 돼. 어떤 사람이 그래. 모든 사람이 수도자다. 문제는 뭐를 수련하는 거지. (웃음)
어제 인도사람이 쓴 책을 번역하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었어. 자기가 식당에 갔는데, 이것은 상상하는 거야. 당신이 식당에 갔어. 음식이 많아. 당신한테는 이것을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 힘이 없어. 누군가가 떠먹여 주는 것을 먹는 것밖에 못 해. 가려서 먹는 능럭이 없어. 그래서, 누군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입에 넣어주면 먹어. 그런데, 계속 들어오는 것이 뭐냐니까, 피클이야. 피클만 자꾸 들어와. 그러다가 가끔씩 초가 들어와. 그런 상황을 한 번 설정해 보라는 거야. 재미있겠냐. 미치지. 지금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는 거야. 세상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있잖아. 그 많은 생각들 가운데는 자기한테 맞는 거,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거, 도음이 되는 생각들이 있어. 그런데, 이것을 골라서 먹을 실력이 다 없다는 거야. 닥치는 대로 생각한다는 거야. 누가 준 것인지도 모르는 것을 받아 먹는다는 거야. 비유가 재미있지? 내 생각이 아닌 누군가의 생각이 들어와. 그냥 먹어. 이것을 토해낼 실력도 없어. 언제까지 그럴 거냐? 그 사람의 말은 우리가 한 시간에 2500가지 생각을 한다네. 이것을 합하면 하루 종일 오만가지가 넘는 생각을 하는 거야. 그 많은 생각 가운데 지가 골라 먹는 생각은 몇 개 안 돼. (웃음) 전부 들어오는 생각들이 그렇게 많아. 생각을 좀 골라서 나한테 도움이 되는 생각은 받아먹고, 그렇지 않은 생각은 거절하고, 그럴 수 있는데, 왜 안 그러냐는 거야. 인도의 자기 선생한테 배운 방법을 일러 주는 거야. 어떻게 하면 자기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생각을 부려 먹을 수 있느냐. 같은 얘기야. 생각은 그 사람 말대로 에너지야. 생각 자체가 에너지야.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내 몸에 작용을 한대. 실제로. 생각만 가지고도 자기 몸의 병을 고쳐. 약 한톨 안 먹고.
학생 : 생각도 에너지다. 저의 에너지는 아시다시피 폭발적인 에너지잖아요. 저는 생각을 오히려 사랑, 고요, 평화 이것을 새기면 저의 에너지에 도움이 되나요?
선생님 : 물론이지. 폭발적이라고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야. 그것이 뭐가 폭발하는 것이 문제거든.
학생 : 제가 잠재우고 싶다는 것은 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나의 에고의 힘인 것 같아요.
선생님 : 에고가 폭발하면 고약한 거야. 그 기도를 그대로 해. 고요라는 것을 자꾸만 느껴. 정적. 어디에나 있어. 아무리 시끄러운 현장을 가도 있어. 그것을 자꾸만 느끼는 거야. 고요, 정적. 말하지 않아도 말과 말 사이, 틈, 거기엔 침묵이 있어. 내가 말을 하는데,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이 있어. 그 침묵이 길어지면 말이 드물어지는 거지. 바로 침묵이 하나님 땅이야. 침묵이 없으면 소리가 없어. 고요가 없는데 어떻게 소리가 있니. 없어. 어두움이 없는데, 어떻게 빛이 있니. 그러니까, 아까 얘기한 대로 자꾸 느껴. 느낌으로 가는 거야. 에너지기 때문에, 생각의 종류에 따라 파동이 달라진대요. 긍정적이고 밝고 좋은 생각은 아주 고주파로 파동이 나가고, 대신 우울하고 슬프고 분노, 증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아주 전혀 다른 주파수로 진동을 한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암말도 안 하고 있는대도 내 기운이 상대방에게 전달이 돼서 영향을 미치는 거야. 당신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 생각이 에너지란 말이야. 그 에너지가 전달해서 나한테 오는 거야. 나한테 포착이 돼. 아주 슬픈 사람이 있으면 나도 괜히 우울하고, 그러잖아. 자기도 모르게. 동물들은 현재의 인간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알고, 식물도 민감하게 알고. 안대. 요새 과학으로 다 증명이 돼. 동물들은 지진이 날 거 같으면 벌써 몇시간 전부터, 개미가 장 선다, 이럴 때는 비가 온다는 속설이 있어. 영락없이 와. 동물들은 민감하게 지구가 어떻게 움직인다는 것을 안다네. 배에 탄 사람들은 옛날에 쥐를 길렀다잖아. 태풍이 온다고 하면 쥐들이 난리야. 사람도 동물인데 왜 없겠냐. 있다. 원시인들은 그것을 너무 잘 알아서 자연과 하나가 돼서 살았는데, 문명인이 된 후로부터, 머리가 발달하고, 머리가 중심이 되면서부터 감각이 안 쓰니까 무뎌지는 거야.
인도의 어떤 사람이 히말라야 산에서 사는데, 그 사람이 사는 동굴 곁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대. 호수에 가서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하고 그러는데, 하얀 백조가 날라 온대. 손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그 거리에서 왔다갔다하면서 같이 논대. 그 백조가 멸종위기에 있다네. 조류학자가 가다가 그것을 봤대. “저 새가 여기에 있구나.” 그런데, 웬 사람이 앉아있는데, 그 근처를 왔가 갔다 하더래. 저것을 잡아서 연구도 하고 사람들에게 박제를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니 그 순간 날라갔대. 생각만 했는데. 그 다음 날, 그 성인에게 간곡히 부탁을 했대. “난 안 되니까 당신이 명상을 해서 가까이 올 수 있게 해 달라. 그러면, 내가 잡아 보겠다.” 하도 부탁을 하니까, 해 보자고. 아침에 명상을 했대. 이렇게 눈을 떠 보니까, 백조들이 30미터쯤 왔다갔다 하더래. 아무리 눈 감고 있어도 안 와. 소가 장에 갈 때는 앞장 서서 가. 그런데, 우시장에 가는 날은 어떻게 알았는지 안 간대. 그런 날은 끌고 가야 된대.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영향을 받는 거지. 영향을 또 끼치고.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향을 주고 받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골라서 해라. 아무 생각이나 닥치는 대로 들어오는 대로 먹지 말고.
전시회장에서 불러질 “관옥의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 하다.
선생님 : 꿈에 그런 기도문이 나왔어. “사랑이신 한님,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정결케 하시어 당신을 뵙고 당신을 보여주게 하셔서.” 내 꿈에 본 기도문이란 말이야. 깨면서 기도문이 바뀌었어. “사랑이신 한님, 우리의 정결한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당신을 뵙고 당신을 보여주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기도를 해야지. 왜냐면, 아직 정결하지 않거든.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이. 그러니, 이것을 정결하게 하셔서 내가 당신을 뵙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맞아 우리는 그렇게 기도해야 하는 거야. 그러나, 이렇게 바뀐 거는 미래형으로 기도하는 건데, 예수님이 뭘 기도할 때는 받은 줄로 믿고 기도 해라. 아직 안 받았었어. 그러나, 받은 줄로 알고 감사로 기도하는 거야. 달라. ‘저를 정결케 하시어’ 라고 하면, 나는 아직 정결하지 않다라는 뜻이 밑바닥에 깔려 있어. 그러면, 나는 지금 정결치 않다라고 얘기하는 거야. 지금 나는 다 나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야. 그런데, 원래 다 나야. 내가 본래 상태로 가면 뒤의 가사가 맞아. 그런데, 내가 거기를 떠나 있는 상태에서는 맞아. 이해가 되지? 그런데, 예수님은 뒤의 가사로 해라. 이런 얘기야. 넌 아직 아니지만, 이미 됐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라. 받은 줄로 믿고 기도 하라. 하는 얘기야. 그것을 혼동해서 받은 줄로 지가 착각을 해서 내가 하나님이라고 까부는 인간들이 있단 말이야. 그런데, 참된 스승을 모신 제자는 그것이 안 돼. 선생님이 안 내버려둬. 박살내버리지. 많아. 중간에서 어긋나가지고 지가 뭐 다 된 것처럼 제자들 거느리고 다니고, 그런 인간들 많아. ‘이건 내 제자야.’
“내가 길을 혼자 가는데, 가는 곳곳마다 그 분을 만난다. 그 분은 바로 나인데,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런 노래가 있어. “그 분은 나인데, 나는 그 분이 아니다. 이렇게 알고 가다 보면, 어느날, 홀연히 하나가 되어있을 것이다.” 아주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 해. 아주 오만한, 오만과 겸손이 하나로. 이 세상에 어떤 것에다가 고개 숙이지 않고, 그런 오만함, 동시에 풀 한 포기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그런 겸손함, 둘을 겸비하라. 무위당 선생님이 그런 면이 있어. 세상에 소위 잘 났다 라는 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들고, 한 번은 김대중 대통령이 되었을 때,인권운동 하던 사람이 올라 섰잖아. 그 중의 하나가 국회의원이 되었어. 민중운동 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었어. 나도 잘 알아. 그래도 원주의 장일순 선생님이 대부인데, 인사를 해야겠다. 해서, 왔대. 나는 그 자리에 없었는데, 그 자리에 있었던 친구한테 얘기를 들었어. 노란 금뱃지를 달고 왔단 말이야. 말로는 겸손하게 얘기했겠지. 첫 마디가, “까불지 마.” (웃음) 그렇게 해서 난다 긴다 한 사람들 앞에서는 그러셔. 아주 오만해. 그런데, 벌같은 사람들은 묘한 말로 자기를 설명해. “나는 하나님이 사조다. 종이다.” 하나님의 종이야. 하나님과 같은 동급이야. 하나님의 종인데, 어떤 놈한테도 고개를 안 숙이지. 그런데, 종이야. 소위 힘있고 권력있는 사람 앞에서는 기가 죽고 약한 사람들한테는 기가 살고, 이것이 보통 인간들이잖아. 그것과 반대.
내가 20대다. 30대 넘어갈 그 무렵에 내가 목사가 됐거든. 시골에 가서 목사 노릇하는데, 그 지역에 목사들끼리 모여서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를 해. 그것을 교역자회의라고 해. 젊은, 제일 어린 목사니까 서기하래. 서기석에서 있는데, 못 보던 사람이 저기 뒤에서 들어와. 몇 사람 데리고 들어와. 목사들이 아니야. 수행인을 한 서너명 데리고 들어와. 그런가보다. 몇몇 목사들이 알아보고는 절을 하고 그런단 말이야. 그러고 앉아. 누구를 시켜서 쪽지를 전해줘. 국회의원 누가 오셨는데, 인사할 수 있게 잠깐 시간을 내달라는 내용이야. 나는 사회자한테 줘야 돼. 그러면, 사회자가 보고 ‘국회의원이 오셨는데, 잠깐 우리가 인사 좀 들읍시다.’ 그런 짬을 내야 되잖아. 그런데, 국회의원을 보고 화가 나는 거야. 지가 국회의원이면 국회의원이지. 지가 뭔데, 남 회의하는데 와서 시간을 가로채서 인사하겠다는 건지. 선거철이야. 선거 운동하러 온 거야. 내가 무시해버렸어. 젊은 마음에 그랬겠지. 계속 회의를 진행하지. 그러니, 나를 통과하지 않고 직접 사회자한테 가서 뭐라 하니까, 국회의원이 왔다고 그러는 거야. 나는 정말 화가 언제 났냐면, 국회의원이 아니라, 목사들한테 화가 났어. 저것들이 시골 농부가 와서도 저럴까? 자기보다 힘센 놈 앞에서 고개 숙이고 약한 놈한테 고개 들고, 어떤 놈이 못 하냐. 같은 목사지만, ‘저런 정신 가지고 뭘 하겠다고. 못 배운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지.’ 예수님이 그러셨어. 빌라도 앞에서 당당했어. 헤롯에게는 여우같은 놈이라고 했어. 로마를 업고 지가 위세를 부린다고. 그런 분이 예수님인데.
각자 가지고 온 반찬으로 거하게 한상 차린다.
예수님 생일은 아무도 몰라. 원래 생일은 있겠지. 아무도 몰라. 예수도 몰라. 아무도 몰라. 한참 뒤에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힘이 생기고 그런, 12월 25일 태양절이야. 태양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태양을 숭배하는 사람이, 그 날을 뺏어 온 거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