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시작은 혹독한 여름을 완전히 떨쳐내고 가을이란 천고마비의 계절로 들어선다는 의미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폭우였습니다. 10월 대부분 가을장마로 채워졌습니다. 이 또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기상이변이었습니다. 기상과는 관련 없이 국군의 날로 시작된 초하루 그리고 노인의 날, 개천절, 한글날, 독도의 날, 뇌졸중의 날로 이어졌습니다. 절기로는 한로와 상강을 지나 오늘로써 10월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 것입니다. 광폭의 발걸음을 옮긴 후 자연은 결실을 얻 듯 그렇게 살고 싶은 계절이 10월이었는데 이어지는 궂은 날씨 덕분에 반은 위축된 생활로 채워지지 않았나 합니다. 무엇이든 늘 시작하는 순간에 서게 되면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지요. 개인적으로 제 자신은 무엇인가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면 한결같이 점(點)과 선(線)과 공간(空間)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답니다. 꼭 점과 선으로 완성하는 건물설계도처럼 마음 깊은 곳에 늘 펼쳐 놓은 트레싱지에 생각으로 만들어진 시작부터 점, 선, 공간을 효율적으로 순서대로 활용하여 작업을 이어나가는데 바로 그 작업이 저에 개인적인 생활 계획이 되는 것입니다. 점에서만 머물면 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죽었다 깨어나도 있을 수 없습니다. 도전적인 방편으로 임의방향이라도 긋고 나가야 비로소 점을 벗어나 면을 발견하게 되고 여러 개의 면이 있어야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답니다. 봄이 오기 전 봄을 계획하고 그 계획들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야 좋은 가을 결실이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일상도 계획하고 실행하기를 반복해야 다 달이 성과들이 쌓여 큰 결실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익히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노년에 들어서게 되면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그렇게 라는 무미건조한 생각과 행위를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에 생긴 안주병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10월을 살아온 자신의 궤적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아무리 한 달의 삶의 흔적을 추적해 보아도 더욱더 무미건조한 시간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단 하루 남겨 놓은 31일 날자를 보다 영문으로 된 Diwali라고 거칠게 적어 놓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글씨를 읽으며 석가와 그의 제자 아난다가 떠올랐습니다. 석가가 열반에 들어간 후를 걱정하는 제자 아난다의 근심을 눈치챈 석가는 아난다에게 가르침을 줍니다. 스스로 등불을 삼아라!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그리고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을 의지해서는 안된다. 이 설법을 불가에서는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라 합니다.
디왈리(Diwali)
디왈리는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힌두교의 빛의 축제를 말합니다. 힌두달력의 카르티카월(Kartika, 10월-11월)에 수백만 개의 기름등과 전등으로 거리를 빛으로 밝힙니다. 축제는 인도의 블랙 프라이데이로 불려질 만큼 많은 행사와 유통업계의 대목기간으로 많은 소비가 발생합니다.
다왈리 기원은 인도의 두 가지 중요한 전설에서 시작됩니다.
1. 라마야나의 전설에서 라마가 오 년간의 유배에서 풀려 돌아오면서 어두운 시대를 끝내고 세상의 빛을 가져온 것을 뜻하고
2. 비슈누의 아바타인 라마가 라반을 물리치고 아요다야로 돌아오는 것을 축하한 날입니다.
다왈리는 고대인도의 다양한 문화와 관습에서 발전되어 왔으며 축제는 베다시대의 제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다왈리 기간 동안 수행되는 의식은 푸자와 불꽃놀이와 전통음식 준비가 포함됩니다. 푸자(Puja)는 다왈리 축제의 중요한 의식으로 신들에게 경배드리는 예식입니다. 락슈미 여신과 가네샤 신에게 기도드리며 부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식으로서 전날부터 집안을 청소하고 장식하며 신성을 기립니다. 다왈리의 중요한 전통은 불꽃놀이입니다. 어두움을 물리치고 빛의 승리를 기념하는 상징적인 행위의 축제입니다. 그리고 전통음식과 간식은 축제의 기쁨을 나누고 신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비지(도넛모양의 간식)와 자렐라 부르는 단과자와 라두라 부르는 밀가루와 설탕으로 만든 동그란 간식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탁상달력을 넘겨 11월을 찾았습니다. 오늘이 지나가면 내일은 음력 10월 1일과 함께 출발하는 양력 11월 초하루입니다. 가만히 NOVEMBER라고 읽으며 창문을 열었습니다. 싸늘한 바람이 물 밀려오듯이 방 안으로 찾아들었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숲을 내려 보자 눈에 익은 추색이 펼쳐졌습니다. 유난히 계절의 감각을 잃은 2024년 가을날도 계절의 혼란을 딛고 겨울 속으로 아주 천천히 기울어지는구나 하고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상이란 단어를 빌려 10월의 일상적인 면모를 들춰 보았습니다. 대부분 활기찬 일 보다 마음 시린 일들이 덕욱 많다는 사실에 흠칫 놀랬습니다. 그것은 노년의 후반으로 다가갈수록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신체적 환경의 영향으로 크고 작은 돌발적인 사고를 누구나 할 것 없이 경험한다는 사실을 주변 지기들을 통해 소식을 받고 충격을 받은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더 이상 마음시린 이야기가 안들려왔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여린 연둣빛으로 찾아온 봄날의 새싹들이 빛과 물을 머금고 바람에 흔들리며 뿌리가 더욱더 성숙해지는 만큼 푸르게 성장하다 가을에 너나 할 것 없이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기는 사실은 자연 안에서의 모든 생물들이 겪는 섭리를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 드려야 한다는 스스로의 고백를 경험하는 10월 마지막 날 아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육신의 흩어짐 그걸 우린 쇠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등불은 자신을 태워 불을 밝혀 어두움울 물리치는 것처럼 우리 개개인에게 주신 영혼에 깃든 사랑으로 나 이외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다짐을 해보며 새로운 달의 전례력을 살핍니다.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이군요. 다음 복음을 기억하며 초하루를 열어나갈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