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寒岡 정 선생鄭先生 숙야재夙夜齋 중건 상량문重建上梁文
참판參判 최헌중崔獻重을 대신해 지음.
삼가 생각건대, 도(道)는 융성하고 쇠퇴한 때가 있었으나 어진이를 높이고 덕을 숭상하는 기풍은 간단이 없었고, 사물이 폐(廢)하고 흥(興)함은 운수가 있었으나 미덕을 천양(闡揚)하는 일을 우선으로 하였다. 이에 옛터를 살펴 빛나는 중건(重建)을 하였다. 삼가 생각컨대, 한강 부자(寒岡夫子)는 실로 우리 영남(嶺南)의 유종(儒宗)이다. 연원(淵源)이 깊으니, 한훤 김공(寒暄金公 한훤은 김굉필(金宏弼)의 호)의 외손이고, 덕성(德性)을 훈도(薰陶)하였으니 문순 이자(文純李子 문순은 이황李滉의 시호)의 문인이시다. 절문의칙(節文儀則)의 세밀한 분석은 오복연혁도설(五服沿革圖說)이요,천인성명(天人性命)의 체험과 신회(神會)는 일부(一部)의 심경발휘(心經發揮)에 있다.첫번째의 아룀에서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 도리를 말한 것은 정 설서(程說書)의 등대(登對)요, 수만의 말로 당시의 폐단을 진술한 것은 주회암(朱晦菴)의 봉장(封章)이었다.
분예(氛翳)가 하늘을 메우자 격렬한 풍정(風霆)을 떨쳤고, 이륜(彛倫)이 땅에 떨어지자 소명(昭明)한 일성(日星)을 들어 걸었다. 비록 공의(公議)가 펴지지 못하여 아직까지 성무(聖廡)의 배향에는 지체되었으나, 사문(斯文)이 길이 힘입어 오히려 산원(山院)의 글소리를 듣게 되었다. 거룩하다, 이 땅에 이룩된 숙야재는 선생께서 만년에 거처하던 곳이다. 윤화정(尹和靖)은 초년에 잠깐 출산(出山)의 발걸음을 지었고, 사마광(司馬光)은 만년에 귀락(歸洛)의 뜻을 굳혔다. 찬 눈에 굽히지 않는 강경한 줄기는 정원 안의 수죽(脩竹) 1천 줄기요, 진속(塵俗)에서 뛰어난 신선의 모습은 창문 밖의 한매(寒梅)가 1백 그루다.치유(緇帷)를 늦게 열었으매 육예(六藝)를 통한 사람은 70명이요, 강장(絳帳)을 늦게 열었으매 백가(百家)의 서적을 수천 권이나 간직했다.자유로이 행동함은 동강(東岡)의 뜻을 지키었고, 한가롭게 읊조림은 서청(西淸)의 달빛 꿈을 끊었다. 두 글자(재호(齋號)인 숙야(夙夜)두 자를 말함)의 빛나는 편액을 깊이 음미해 보니, 일생 동안의 그 참된 공부를 징험할 수 있다. 닭의 울음이 새벽을 알리자 엄연히 순(舜) 임금과 도척(盜跖)의 길을 분간하고, 해가 지면 안식하여 복희씨(伏羲氏)와 문왕(文王)의 심오한 이치를 깨우쳤다.경태(敬怠 공경과 게으름)를 마음에 두니 서루(書樓)에는 서산마루의 해를 매고, 정원(貞元 봄ㆍ겨울 즉 사계절)으로 기후를 살피니 그림 벽에는 남당(南塘)의 잠명(箴銘)을 걸었다. 이래로 성상(星霜)이 여러 번 바뀌었고, 오래도록 풍우(風雨)를 제거하지 못했다. 무너진 담장과 깨어진 주춧돌엔 벽려(薜荔 줄사 철)가 얽혀 황량하고, 낡은 경쇠와 버려진 거문고는 송추(松楸 무덤)에 의지해 쓸쓸하다. 문정(文貞)의 집안에 후사의 전승이 없을 수 없어, 무이(武夷)의 산천은 문득 선비들의 흠모를 일으켰다. 이에 1백년의 옛터에 나아가, 3영(楹)의 옛 모습을 회복하였다. 후세로 하여금 증빙이 없게 할 수 없어 긍구긍당(肯構肯堂)하였고 감히 선인의 제도에 지나칠 수 없기에 아름답고 완전하게만 하였다. 대나무 창문과 소나무 기둥은 다시 예와 같건만, 어지러운 구름과 겹겹이 쌓인 눈에 선생의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없음이 한스럽다. 향당(鄕黨)이 우러르니 도서(圖書)는 선화실(善和室)에 간직하였고, 귀신(鬼神)이 놀라 들으니 금석(金石)은 궐리당(闕里堂)에 떨쳤다. 모(某)는 북방(北方)의 부유(腐儒)요 남군(南郡)의 적리(謫吏)이다. 일찍이 허미수(許眉叟 미수는 목(穆)의 호. 한강(寒岡)의 문인)의 풍범(風範)을 사모하여 도통(道統)의 전승이 있음을 알았고, 가까이 장여헌(張旅軒 여헌은 현광(顯光)의 호. 한강(寒岡)과 동문임)의 방휘(芳徽)를 보아 아망(雅望)의 짝이 있음을 우러러보았다. 공손히 짧은 글을 지어 상량의 일을 돕는다. 육위사(六偉詞) 이하는 생략한다.
* 여문(儷文) : 변려문(騈儷文)의 약칭. 수사(修辭)하는데 4자와 6자의 대구(對句)를 많이 쓰고 음조(音調)를 맞추며 고사에 많이 쓰는 한문체(漢文體). 과문(科文)에 주로 이 문체를 많이 썼다.
[주1] 절문의칙(節文儀則)의 …… 오복연혁도설(五服沿革圖說)이요 : 정구(鄭逑)가 오복연혁도(五服沿革圖)를 만들어 모든 예절에 관한 것을 상세히 설명하였는데, 곧 그 사실을 밝힌 것이다.《寒岡全書 五服沿革圖》
[주2] 천인성명(天人性命)의 …… 있다 : 정구는 《심경(心經)》 일부의 주석이 미진한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정자(程子), 주자(朱子)와 여러 선생의 설을 수집하여 구주(舊註)의 아래에 편집하였는데, 이것을 심경발휘(心經發揮)라고 하였다.《寒岡全書 心經發揮ㆍ寒岡先生行狀》
[주3] 첫번째의 …… 봉장(封章)이었다 : 정구(鄭逑)가 38세에 처음으로 선조(宣祖)를 면대했을 때 ‘근독(謹獨)’을 아뢰어, “제왕의 학문과 다스리는 근본이 모두 이에 들어 있다.”《寒岡全書 年譜》고 한 것은 송(宋) 나라의 정이(程頤)가 〈숭정전 설서(崇政殿說書)〉로서, “기질을 함양하고 덕성을 훈도해야 한다.”《二程全書 伊川年譜》고 아뢴 고사와 같고, 58세 때 산릉(山陵)에 관한 일로 상소하여 당시의 폐단을 논한 것은 송(宋) 나라의 주희(朱熹)가 효종(孝宗)에게 봉사(封事)를 올려 시폐를 논하고 시정책을 개진한 고사와 같은 의의임을 말한 것이다.
[주4] 분예(氛翳)가 …… 걸었다 : 정구(鄭逑)가 51세 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열읍(列邑)에 의병을 일으켜 토적하도록 격문을 보냈던 일과, 광해군 때 임해군(臨海君)과 영창대군(永昌大君)과 옥사가 일어나자 차자를 올려 고사를 인용하여 형제간의 의리를 밝혀 구원하려 했던 일을 말한다.《寒岡全書 年譜》
[주5] 윤화정(尹和靖) : 송(宋) 나라의 윤돈(尹焞). 정이(程頤)의 문인으로 평생 동안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정강(靖康) 초년에 불리어 잠시 경사(京師)에 나아갔었으나 굳이 사양하고 도로 환산(還山)하였다.《宋史 卷428》
[주6] 사마광(司馬光) : 송(宋) 나라 섬주(陝州) 사람. 신종(神宗) 때 청묘법(靑苗法)의 부당함을 극론하다가 왕안석(王安石)의 미움을 받아 서경 어사(西京御史)로 좌천되었다. 뒤에 철종(哲宗)이 즉위하자, 다시 낙(洛)으로 돌아와 재상(宰相)이 되었다.《宋史 卷336》
[주7] 찬 눈에 …… 그루다 : 창평(蒼坪)의 회연(檜淵)에 초당(草堂)을 짓고 정원에 대[竹]와 매화 1백 그루를 심어 백매원(百梅園)이라 이름하였던 것을 말한다.《寒岡全書 年譜》
[주8] 치유(緇帷)를 …… 간직했다 : 치유나 강장(絳帳)은 모두 사석(師席)이나 학자의 서재를 지칭하는 말이다. 《장자》 어부(漁父)에, “공자가 시서(詩書)를 강학하는 곳의 숲이 무성하게 휘장처럼 드리워 치유림(緇帷林)이라 하였다.” 하였고, 《후한서(後漢書)》 마융전(馬融傳)에, “마융이 붉은 휘장을 드리운 앞에서 생도를 가르쳤다.”고 하였다. 여기서는 정구가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백가의 서적도 많이 소장하였음을 말한다.
[주9] 자유로이 …… 끊었다 : ‘동강(東岡)의 뜻’이란 은일의 지취를 말함이고, ‘서청(西淸)의 달빛’이란 벼슬을 의미한 것으로서, 즉 벼슬을 사양하고 은일의 지취를 누렸음을 말한다.
[주10] 닭의 …… 분간하고 : 《맹자》 진심(盡心)에,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선행을 하는 자는 순 임금의 무리이며,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영리를 일삼는 자는 도척의 무리이다.”라고 하였다.
[주11] 복희씨(伏羲氏)와 …… 이치 : 역(易)의 이치를 가리키는 말. 복희씨(伏羲氏)의 선천 팔괘(先天八卦)와 문왕(文王)의 후천 팔괘(後天八卦)가 있다.
[주12] 경태존심(敬怠存心)하니 …… 걸었다 : "공경하는 마음이 게으름을 이기면 길하고, 그렇지 못하면 멸한다.”는 경계를 지키는 부지런함에 지는 해는 짧게 여기고, 송(宋) 나라의 남당(南塘 : 진백〈陳柏〉의 별호)이 지은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걸어두고, 언제나 몸가짐을 살폈다는 뜻이다.
[주13] 긍구긍당(肯構肯堂) : 긍구긍당은 선인의 업을 이어 완성한다는 뜻임. 즉 옛터에 옛 규모로 중건하였음을 말한다.
[주14] 도서(圖書)는 …… 떨쳤다 : 도서를 구택(舊宅)에 소장하고, 비를 옛날 거처하던 마을에 세웠다는 뜻.《당서(唐書)》 유종원전(柳宗元傳)에, “하사받은 서적 3천 권이 아직 선화리(善和里) 구택에 있다.”고 하였다. 궐리(闕里)는 공자(孔子)가 살던 곳을 말한다.
鄭寒岡先生夙夜齋重建上梁文 代崔參判獻重作。
伏以道之隆替有時。而尊賢尙德之風無間。物之廢興有數。而闡美揚徽之擧宜先。玆相舊基。重營華構。恭惟寒岡夫子。寔我大嶺儒宗。濬發淵源。寒暄金公之外裔。薰陶德性。文純李子之門人。節文儀則之縷析毫分。五服沿革圖說。天人性命之體驗神會。一部心經發輝。第一奏格君心。程說書之登對。數萬言陳時弊。朱晦菴之封章。氛翳塞天。振風霆而激烈。彝倫墜地。揭日星而昭明。雖公議未伸。尙稽聖廡之俎豆。而斯文永賴。猶聞山院之絃歌。猗玆土夙夜齋居。卽先生晚年棲息。尹和靖之初載。暫作出山之行。司馬光之暮齡。漸決歸洛之志。勁幹傲雪。園中脩竹千竿。仙標絶塵。牕外寒梅百樹。緇帷晚闢。通六藝者七十人。絳帳宵披。藏百家書數千卷。逍遙偃仰。志守東岡之陂。歗咏優游。夢斷西淸之月。緬懷二字華扁。可驗一生眞工。雞聲報晨。懍岐路於舜跖。燕息嚮晦。受契悟於羲文。敬怠存心。書樓繫西崦之景。貞元察侯。畫壁揭南塘之箴。邇來星霜之屢移。久矣風雨之未除。頹垣敗礎。綰薛荔而荒涼。古磬遺琴。傍松楸而蕭瑟。文貞屋宅。非無後嗣之傳。武夷山川。偏起儒林之慕。斯就百年遺址。爰復三楹舊規。不可使後世無徵。肯堂肯構。未敢踰先人之制。苟美苟完。竹牖松欞。溯襟期兮如昨。亂雲層雪。悼警欬之莫承。鄕黨聳觀。圖書留善和之室。神鬼警聽。金石振闕里之堂。某北方腐儒。南郡謫吏。夙慕許眉叟之風範。知道統之有傳。近挹張旅軒之芳徽。瞻雅望之維耦。恭疏短引。助擧脩梁。六偉詞以下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