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나사로를 살리신 예수 (요 11:1-44)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다
1.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16.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의 맞던 곳에 그저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의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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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암송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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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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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질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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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사로의 병에 대한 예수의 진단은 무엇이었나?(4)
2) 예수께서 이틀을 지체하시고 나사로에게 가신 이유는?(15)
3) 나사로의 죽음이 제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15)
4)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이라는 말씀에 대한 마르다의 이해는 무엇이었나?(24)
7110. 어떻게 병들게 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가? (11:4)
병 자체의 시련과 고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병의 마지막 결과에 의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라는 뜻이다. 즉 나사로가 단순히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뜻이 아니고, 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육체적인 병을 극복하고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게 될 때, 그 사실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이다(45절). 이런 의미에서 나사로가 병든 것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7111. 왜 예수님은 낮과 밤에 관해 말씀하시는가? (11:8-10)
유대인들은 하루를 12시간씩 둘로 나눠, 각각 낮과 밤으로 구분했다. 낮은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밤'은 해진 후부터 해가 뜨기 전까지로 보았다. 사람들은 낮에 다니면 빛이 있으므로 넘어지지 않고(9절), 밤에 다니면 빛이 없으므로 넘어진다(10절). 이를 영적으로 적용하면,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이 계실 때가 낮이고, 안계실 때가 밤이다. 이땅에서 예수님이 빛으로 계셔서 사역하실 동안에는 어떤 죽음의 위협이 있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안전할 것이다.
7112. 왜 예수님은 죽음을 잠에 비유하셨는가? (11:11-13)
No. 6367 왜죽은 자를 가리켜 '잔다'라고 말씀하시는가?
7113. 왜 많은 유대인들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나왔는가? (11:19)
전통적인 유대 풍습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상(喪)당한 집을 찾아가 죽은 자에게 존중과 애도를 표시하는 것 이상으로, 남은 유족들에게 위로의 뜻을 나타내는 것을 큰 미덕 중의 하나로 여겼다.
7114, 마르다는 부활에 관하여 무엇을 알고 있었나? (11:24)
마르다는 부활에 관해 암시하고 있는 구약 말씀에 관해 알고 있었을 수 있다(삼하 12:23:시 16:10-11: 73:24-26). 그중 가장 분명한 언급은 욥기에 나타나 있다(욥 19:25-27). 또한 마르다는 평소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부활에 관한 지식을 배웠을 수도 있다.
No. 6997 예수님의 부활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7115. 마르다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무엇을 이해하고 있었나? (11:27)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을 때(25절), 마르다는 그런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야)로 믿는 신앙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다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장차 부활의 때뿐만 아니라, 당장이라도 죽은 자를 살리시는 그런 능력 있는 분인 줄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7116. 나사로를 곧 살리실 터인데, 왜 예수님은 우셨나? (11:35)
죽은나사로의 유족인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온 유대인들은 당시의 유대 풍습에 따라 문상객으로서 큰 소리를 내어 울면서 자신들의 슬픔을 나타냈다. 유대인들이 울었다' (33절)는 표현은 이 같은 통곡의 울음을 의미한다. 반면 예수님의 울음(35)은 원문상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나타내는 울음이다. 그렇더라도 이제 곧 죽은 자들로부터 나사로를
살릴 터인데,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며 우셨다는 것은 의외의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나사로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오라비를 잃고 큰 슬픔에 빠진 친구들의 아픔에 동정적으로 깊이 동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사람으로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충만한 인성(人性)은 이처럼 '우셨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히 4:14-16: 5: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