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의진열전(山南義陣列傳) 32
충효재에 걸린 제4차 진영의 조직표다.『대장 최세한(독립장․1968), 중군 권대진(애국장․1990), 참모장 정래의, 소모장 박완식, 도총장 이종곤, 선봉장 백남신(애국장·1990), 후봉장 최치환(애족장․2000), 연습장 김성일, 좌영장 김성극, 우영장 홍구섭, 좌포장 최기보(애족장․2014), 우포장 이규필(애족장·1996), 각 분대 및 여러 의사는 다 기록하지 못한다.』라고 적고 있다. 정환직 2대 대장 순국 후 일제의 의병 토벌이 더욱 강화됨에 따라 산남의진 4차 진영은 본진의 규모를 줄이고 소규모 유격전을 전개하게 된다. 아마도 이세기, 우재룡, 정순기 등 주요 인물들은 지역 부대장으로 활약하게 되어 본진의 조직표에서 빠진 듯하다.
양제안(梁濟安) 義士
자는 사언(士彦), 호는 벽도(碧濤), 관향은 남원(南原). 웅변을 잘하고 음양복서지학(陰陽卜筮之學)에 통달했다. 갑오년 이후로 제세안민(濟世安民:세상을 구원하고 백성을 편안케 함)에 뜻을 세우고 산남의진에 입진하여 손익선(孫益善)과 함께 상주, 선산지방을 책임지고 활약하였으며 여러 차례 기묘한 계책을 내어 진후(陣後)에서 협조하다.<山南義陣遺史 제5편 列傳 P541><山南倡義誌 卷下 P78>
이수인(李壽寅) 義士
영천 출신이고 관향도 영천(永川)이다. 성품이 쾌활하고 힘이 좋았다. 나이가 팔십여 세라 연로하여 종군하지는 못하고 처음에는 영천성중을 책임지고 소모하였고, 후에 부산 ․ 대구 간의 기밀을 맡아 연락하였다.<山南義陣遺史 제5편 列傳 P542><山南倡義誌 卷下 P78>
정치화(鄭致化) 義士
초명(初名)이 치열(致烈), 자는 예중(禮重), 정환직 대장의 사종제(四從弟)다. 가계가 부유하여 의진 초기에 여러 차례 물자로서 진후(陣後)를 원조하고 의진이 무너진 후에는 은신하다.<山南義陣遺史 제5편 列傳 P542><山南倡義誌 卷下 P80> 2016년 대통령표창 추서, 2017년 11월30일 영천항일독립운동선양회 주관으로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에 추모비 건립
정치석(鄭致錫) 義士
자는 진삼(晉三), 좌익장(左翼將) 정치우의 백형(伯兄)이다. 문행(文行)이 있어 병오‧정미 연간[1906~1907]에 기묘한 계책으로 산남의진을 보좌하고 의진이 무너진 후에는 은신하다.<山南義陣遺史 제5편 列傳 P542><山南倡義誌 卷下 P80> 2015년 대통령표창 추서, 2017년 11월30일 영천항일독립운동선양회 주관으로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에 추모비 건립
이준구(李濬久) 義士
자는 국보(國甫), 관향은 여강(驪江). 처음 병신(丙申:1896)년에도 창의하고, 후에 집포장(戢炮長)으로 진후(陣後)에서 원조한 것이 발각되어 경성옥(京城獄)에 수감되었는데 탈옥하여 고향으로 도망왔다.<山南義陣遺史 제5편 列傳 P542><山南倡義誌 卷下 P81>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정진영(鄭鎭英) 義士
자는 덕화(德化), 을축(乙丑:1865)년생. 정용기 대장의 족제(族弟)다. 처음에 영천지방을 책임지고 소모하였고 후에 은신하다.[창의지에는, 각지를 정탐하여 대구로 들어와 진중에 통모하다.] <山南義陣遺史 제5편 列傳 P543><山南倡義誌 卷下 P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