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학교(Serotonin School)
차분한 교실 수업, 서로 듣는 학교는 소곤소근, 인기척, 숨결의 파동이 잔잔히 퍼지는 학교일 것입니다.교육은 자신의 책임력과 역능을 높이는 것이고, 학생의 성공수준은 ‘만족지연능력(인내력)이라고 봅니다. 자크 라캉이 말하는 ’자아‘는 거울단계의 완전한 자아상이라는 나르시시즘의 오인과 착각에서 비롯되는데, ‘나’라는 주체가 그렇게 완결된 존재가 아닙니다. 그때 그때 상황과 타자에 따라 변환, 변동되는 존재인데,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 ’뜻대로 하라‘, ’마음가는 데로 하라’고 해서는 세상 밖에 내보내서는 사회적 상업주의의 먹잇감이요, 살아갈 경쟁력이 없습니다.
'자아' '주체성'이 그렇게 확고하고 명확한 경계지어진 것이 아닌데, 진로지도나, 자기주도 학습이 서양의 주체성과 혼동되어, 떠들고 나대고 표현하고 핑계하고 타자와 구별된 자신을 드러내느라, 학교의 공공성은 실종되었습니다. 찬란한 보석같은 중간계층아이들이 신속히 사라지고, 하류화지향되 아이들의 습속이 학교를 점령하고 있는 것은 아타까운일입니다. '‘내가 최고다,원하는 대로 하라,다른 사람과 구별된 구별지어 개성을 드러내도록 부추김을 당하는 오늘날에 오히려 자기책임과 자기역능을 다하면서 공동체와 연결되어 함께하는 문화는 더욱더 중요해졌습니다. ,
쉬는 시간의 복도는 마치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나 혼자라는 듯이, 결코 자기집에서조차도 그렇게 내지르지 않을 고함을 쳐대고, 더 지르며 그래도 괜찮아서 계속적으로 소리지릅니다. 작년도 15학급훈 중 7학급은 급훈도 없고, '우리가 최고'라고 전해라'며 '나100%' 전성시대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저요, 저요, 열린학교 수준을 벗어나서 ‘나’만 주체요, 구별짓고, 표현해나는 자기표현, 자기주도, 진로교육이 교육의 철학없이 붕 떠서 강조되고 있습니다.탈근대적인 행위가 뭔가 진보적이고 진정한 교육자이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같아 보이는 요즈음 교육철학마저 겉도는 듯하여 아래글을 퍼왔습니다.
사토 마나부(교사의 도전,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의 차분한 학교를 실 구현해 낸 군산의 영광중학교 정은균 선생님의 어느 수업의 이상하게 차분하고 감동적인 수업이어서 퍼왔습니다.
학교폭력 발생 비율
1. 급별 : 중학교 63.1% 2015년 대비 초,고교 감소에 비해 중학교 대폭 증가)
2. 발생시기 : 9+10월 〉 4월 〉 3월
3. 유형 : 단순 60.9% 〉 성폭력 21.7% (특수교육 대상학생 연류 40% )
4. 장소 : 교내 45.7%
3월3일 <개학후>
진심어린 믿음과 따뜻한 시선과 소박하게 절제하며 배려하는 말 한 마디와 힘을 믿자. 학생들은 교사의 거친 언어와 날카로운 목소리와 과장된 몸짓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것들이다.
<우연한 책 읽기> 3월 8일
나는 책을 펼쳐들고 교실 중간에 섰다. 자리에 앉아 서로 장난치고 떠들던 학생들이 눈짓을 주고 받았다. 나는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교실 분위기가 찬찬히 조용해졌다.
여전히 엎드려 자거나, 다른 일을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마냥 그렇지 않았다. 내가 책을 읽어 나가자 어떤 학생은 중간에 일어나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학생은 하던 일을 멈춘 채 나와 한참동안 눈길을 마주쳤다.
한껏 차분해진 교실에는 여느 날의 수업과 다른 무엇가가 있었다. 여백의 시간과 침묵의 공간 사이사이에 절제와 배려가 가라앉아있었다. 나는 학생들의 눈에서 소박한 깨달음,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 평소에는 거의 떠올리지 않는 어떤 상상의 세계, 알 수 없는 열정 같은 것들을 보았다.
지난 해 학기 말 수업 몇 시간을 책읽기로 보냈다. 학기말에 생기는 약간의 ‘여유’를 그렇게 보낼 때가 많다. 조용한 교실이 낯설어진다. 그렇게 책을 읽고 있으면 설명하기 힘든 어떤 보이지 않는 영감과 불가해한 통찰의 느낌이 온 몸을 감싸고 돈다.
책을 읽다보면 어떤 ‘고조된’ 대목이 나온다. 그때 나는 목소리를 살짝 더 높이고, 어조를 뚜렷이 하기 위해 한 어절 한 어절 또박또박 읽으며, 중간중간 학생들과 눈을 마주친다. 누군가 종이 위에서 사각거리며 내는 연필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가 오롯이 들려온다. 옆드려 자는 학생의 고요한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책읽기는 호사스러운 수업이다. 참여와 활동, 소통과 협력이라는 멋진 말들이 지배하는 교실에서 단순하고 투박한 책읽기 수업은 불온해 보일수도 있다. 국가교육과정과 교과교육과정과 연간수업계획서와 교과서 진도가 나를 가로 막는다.
정은균 군산영광중(나는 우연히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다. 2017.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