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에 꽃등심이란 부위는 없다. 근내지방인 마블링이 얽히고설킨 모양을 두고 꽃이 활짝 핀 것에 빗댄 것이다. 그냥 다 같은 등심일 뿐이지만, '꽃등심'으로 부르는 순간 특별한 울림이 생기는 것이다.
새우 중에도 꽃새우가 있다. 온몸을 감도는 붉은 선이 영롱해서 '꽃'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울긋불긋 붉은 꽃이 만개해 "예쁘다"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정식 명칭인 '물렁가시붉은새우'라 불렀을 때는 말맛, 입맛 모두 살아나질 않으니 도리가 없다. 그래서 꽃새우는 도도하게 '꽃새우'라 불린다.
꽃새우는 독도 근해 청정해역에서 산다. 닭새우(가시배새우), 도화새우와 함께 잡혀 오는데, 이들은 봄철 미각의 으뜸인 새우계의 지존으로 꼽힌다. 마니아들에 따르면 이 '독도 새우 삼총사'들을 영접하고 나면 대하나 보리새우(속칭 '오도리')에 눈길을 주기 힘들단다. 동래의 꽃새우전문점 '해림'에서 그 귀하고 비싸다는 독도산 새우살의 물오른 맛을 음미했다.
차진 속살에 단맛 숨어 회로 일품
구우면 고소함이 터져 나오고
새우탕·새우라면 별미로 마무리
■독도 새우 삼총사, 봄을 기다렸다!
경북 울진 후포항과 포항의 새우잡이배들은 봄이 되면 만선의 꿈에 부풀어 독도 인근 수역으로 떠난다. 깊은 바닷속에 통발을 드리우고 새우를 잡는다. 짧으면 1주일, 그 이상도 예사다. 양식도 안 되니 모두 자연산이고, 그나마 바람이 불면 잡지도 못한다. 잡히는 양이 적다 보니 전문점들은 물량 확보에 사활을 건다. 선주에 공탁금을 걸고 입도선매까지 해야 겨우 물량을 댄다.
마니아들이 겨우내 오매불망하는 꽃새우, 닭새우, 도화새우는 이런 치열한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른다. 삼총사는 세트로 움직여서 '꽃새우'라는 간판을 걸고 있어도 항상 세 종류가 함께 나온다.
닭새우는 머리에 닭 볏 같은 게 붙어 있고, 꽃새우는 붉은 선이 가로로, 도화새우는 몸통을 감싼 차이로 구분한다. 물색 좋은 때때옷을 차려입은 듯한 색감이라 '꽃'이 핀 느낌은 삼총사들이 매한가지다.
새우는 가을, 겨울이 제철 아닌가요? 맞다. 대하와 보리새우는 찬바람이 불 동안 맛의 꼭짓점에 이른다. 대하와 보리새우가 들어가 버려 새우살의 단백질에 감질이 날 즈음인 3월이 되면 본격 등장하는게 독도새우들이다. '새우 맛의 진수'에 몸이 달아 이때만 기다리는 마니아들이 꽤 있다.
■달곰한 새우살, 고소한 새우구이
새우잡이배들이 후포항에 들어왔다는 전갈을 받고 KT동래지점 건너편 '해림'을 찾았다. 연산동 옛 KNN 앞에도 '해림'이 있는데, 조세은·은주 자매가 같은 상호로 운영하는 꽃새우전문점이다.
메뉴는 단출하다. 생물이라 회로 즐겨도 좋고, 소금구이도 좋다. 주문하면 회와 구이로 나눠 낸다. 이어 새우탕과 새우라면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취향따라 하면 된다.
독도새우들은 옥돌에 얹혀 횟감으로 나오는데, 그 존재감이 묵직하다.
"새우살이 이렇게 달곰할 수가…. 졸깃한 식감은 또 어떻고!"
꽃새우는 강렬한 맛이 자랑이다. 단맛이 강해서 날로 먹었을 때 일반 생선회에 비해 손색이 없다. 차진 살점을 씹는 것도 즐겁다. 게다가 구우면 속에 숨어 있던 고소함이 터져 나온다. 이게 굉장히 자극적이다! 그래서 마니아층이 형성되는 것이다. 보통 꽃새우와 도화새우를 회로 즐기고, 까서 먹기 어려운 닭새우를 소금구이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워낙 귀해서, 비싸다는 것이다. 두세 명 앉으면 기본 6만 원부터 시작하는데, 먹다 보면 높은 등급 소고기를 먹는 정도의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란 게 있어서, 맛있는 사과도 자꾸 먹으면 물린다지만 독도새우 앞에서는 이런 통념도 쉽게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비싼 음식을 즐길까? 동래 '해림'의 조은주 사장은 "학생이나 젊은 손님들도 많이 온다"고 귀띔했다.
맛블로거 A 씨 왈, "1차로 배를 불린 뒤 꽃새우를 먹으러 와야겠네요!" 블로거 B 씨가 반박했다. "빈속에 맛 있는 새우를 과하지 않게 즐긴 뒤 2차로 다른 걸 먹는게 좋지 않을까."
취향의 차이겠지만, 이날은 후자를 따랐다. 새우로 배 불리자고 덤빌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해림'에서는 숯불에 구워내는 붕장어(속칭 '아나고')가 별미다. 두툼하게 살이 오른 붕장어를 먹음직스럽게 장만해 낸다.
마무리는 꽃새우를 한두 마리 빠뜨린 새우라면이 추천된다. 입가심으로 별미다. 새우탕을 주문하면 포만감으로 마무리된다.
독도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해야겠다. 일본 시마네 현이 끊임없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제기하는 배경에는 어업권을 얻으려면 속셈이 자리하고 있다. 그 노림수에는 독도새우들도 포함되어 있을 터. 독도의 해림, 그 청정바다 깊은 '숲속'에서 독도새우삼총사들이 유유자적하고 있다. 우리는 그 독도새우들을 지켜야 한다!
※부산 동래구 명륜로 103번길 4. KT동래지점에서 부산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 3번 출구 가기 전 오른쪽 골목. 051-552-5521. 꽃새우 회·구이 소 4만 원, 중 6만 원, 대 8만 원, 특대 10만 원. 꽃새우탕 2만 원, 꽃새우라면 4천 원. 붕장어(2인분) 1만 8천 원. 연산동 '해림'(051-863-2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