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맹아더.
닉네임: 체험삽입현장 (전북 군산시)
때는 바야흐로 1998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포항 해병 1사단 신병 교육 훈련단으로 향한 저는 무사히 빨간 명찰과, 팔각모를 쓴 햇병아리 해병이 되어 실무에 배치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자대배치를 받고 중대장에게 전입신고를 하던 때였습니다. 중대장의 첫 인상은 계급은 분명 대위인데 얼굴은 소령이나 중령삘이 충만했고, 또한 묵직한 말투와 다소 거만한 듯 한 표정은 권위주의와 나르시즘의 집합체.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신고를 마치고 내무실을 배정받아 더블백 옆에 끼고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던 때, 진짜 실명이 ‘홍길동’인 선임이 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습니다.
선임
“야! 뼝아리~! 너 우리 중대장 별명이 뭔지 아나?”
신병
“네네? 잘 모르겠습니다.”
선임
“너,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장군이 누구여?”
신병
“네! 맥아더 장군입니다.”
선임
“글치. 잘 아네. 근디, 우리 중대장은 생각하는 싸이즈는
그 양반과 동급인데, 뭔가 좀 부족해.
자신은 스스로를 맥아더급으로 생각하는데, 우리가 보면
좀 맹 ~해. 그래서 별명이 맹아더야. 맹아더.
내가 전설 같은 이야기 하나 해줄까?”
신병
“넵!! 듣고 싶습니다.”
선임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패기 넘쳤던 중대장은 평소 지론이 훈련은 실전처럼. 훈련에서 흘리는 땀은 전장에서 피와 바꾼다는 군사 교범에 실을만한 주옥같은 말들을 흘리고 다녔다 합니다.
대대 야외 훈련을 나가서 전설은 시작됐다고 합니다. 우리 부대는 특성상 군무원들과 같이 생활하는데, 한참 훈련을 하고, 점심시간이 되어 모두 배식과 식사에 여념이 없던 그 평화로운 시간. 어디서 날아왔는지 CS탄(화생방 교육시 터트리는 가스탄)이 날아와 터졌고, 아무 방비도 없이 즐거이 식사를 즐기던 군무원 및 간부, 그리고 대원들까지 먹던 식판을 집어던지고, 도망치고, 기침하고, 엎어지고, 군무원들은 비명을 지르고, 일대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되어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때, 저 멀리서 다스베이더의 거친 호흡소리를 내며 혼자만 방독면을 착용한 중대장이 나타나
중대장
“언제 어디서든 적의 기습에 대응하지 못하는 병력은
이미 작전에 실패한 것이다.
제군들은 이미 다 전사한거야!!”
라며 일장 훈시를 시작했고, 이 만행을 멀리서 지켜본 대대장님은 한숨을 깊이 내쉬며, 중대장을 조용히 자신의 벙커로 호출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당시만 해도 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솔직히 다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별명의 가치를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됐습니다.
제가 일병 때였습니다. 부대 환경미화를 한답시고, 중대 전 병력을 산으로 올려 보내 진달래를 캐게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중대장은 언제나 그랬듯 본인이 선두에 서서 직접 지휘를 했고, 몸소 진달래 샘플을 캐서 나눠주며
중대장
“자! 주목! 이것이 진달래다.
이거 샘플로 줄테니 4인 1개조로 캐온다.
대원들의 희생으로 부대가 아름답게 변하면,
그 얼마나 값진 땀방울인가!
모두 열심히 캐라! 알았나?”
그렇게 시작된 작업에 전 중대원들은 무장공비 비트 찾듯 온 산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우리 중대원들이 개고생하며 캔 육공트럭 가득히 실린 진달래를 부대 곳곳에 나눠 심고, 물도 정성스레 줬죠. 거기까진 좋았습니다. 그런데, 대대장님이 지나가시다 차에서 내리시더니…….
대대장
“이거, 뭐야? 무슨 부대 환경미화 하랬더니,
이상한 나무들만 심어놨어?
심을라면 진달래나 심던가 하지. 이거 뭐야~?
보기 흉한데 다 캐 내!”
그랬습니다. 중대장이 우리에게 준 샘플은 그냥 이름 모를 나무였습니다.
우리 불쌍한 중대원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권력을 가진 자가 그에 합당한 실력을 지니지 못한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몸소 배우고 느꼈습니다.
그 외에도 중대 주둔지 방어 훈련에서는 게릴라로 침투하신 중대장은 분명 초병에게 발각됐음에도 본인의 얼굴만 가리고 계급장은 가리지 못한 채 도주하시고는 끝내 자기는 걸리지 않았다는 말로 중대원들을 집단 패닉상태에 빠트렸습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대대 전술 훈련 중 대대장님의 지휘가 한창이던 야간에 갑자기 주둔지의 전력이 나가버린 것이었습니다. 모두 어리둥절했고 대대장님도 당황하며,
대대장
“어? 뭐야? 작전과장! 무슨 일이야?”
그때, 어디선가 패기에 가득 찬 중대장의 목소리가 훈련지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중대장
“적기출현! 적기출현! 모두 소등한다!
각개소등! 등화관제 실시한다!”
전 그때 대대장님의 표정과 다른 중대장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대대장님은 나지막하게 최대한 화를 누르며 말씀하시더군요.
대대장
“음, 그래. 대원들은 좀 나가 있고.
운용과장? 가서 저 새끼 잡아 와~!”
이 밖에도 그분의 행적은 실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만큼이나 놀랍고 다양했습니다.
야간사격 저수준자를 대리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몰래 사격한 그의 성적은 10발 중 2발이었고,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사격통제관은 쌍욕을 날렸습니다.
중대장
“두 발? 어떤 개새끼야~?!
야 이 개새끼야! 정신 똑바로 안 차려?
국민의 세금을 갉아먹는 식충이 같은 새끼!!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중대 전투체력 측정 때였습니다. 사단 전투 연병장을 크게 몇 바퀴 돌아야 하는 거린데, 우리 맹아더 장군께서는 중간에 잔꾀를 내어 정확히 은폐,엄폐를 시전하신 겁니다. 자기는 조금만 뛰고 우리 중대가 결승점에 다다를 때 합류하려던 계획이었죠. 대위라는 계급을 고스톱 쳐서 딴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그는 멋지게 작전을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계산하지 못한 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대장님의 등장이었죠. 인솔자가 없는 우리를 눈여겨 본 대대장님이 우릴 추격하기에 이르렀고, 중대장은 그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요. 우리 중대원과 같이 뛰는 대대장님. 그리고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던 중대장.
이 둘은 결승점 앞에서 매우 아름답게 견우와 직녀처럼 상봉하게 되었습니다. 대대장님의 눈에서는 레이저가 쏟아져 나갔고, 중대장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떨며, 이것은 꿈이 분명하다, 절대 현실이 아니다 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대대장의 호출에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은,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다 짊어진 한 마리 어린 양처럼 처연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말년에 중대 간부들이 하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나라가 해야 할 일중에 하나는 중대장 같은 사람을 군에서라도 케어해줘야 한다. 이것이 나라의 존재 이유다. 군대니까 이렇게라도 살지. 다른데 가봐라.”
나중에 대대장 전령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대대장님이 깊은 한숨을 쉬시며, 다른 영관급 장교들과 대화중에 우리 중대장을 지칭하며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대대장
“걔는... 후... 군 생활 계속 한다니..?”
다른 분들은 사연 들어보면 전우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하던데,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충분했기에 다시 만나고 싶진 않고요. 단지 어디서 뭐하고 사시는지는 간혹 궁금하긴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다 추억이 된다고. 그때는 정말 황당했는데 지금은 웃으며 이렇게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되네요. 이 외에도 더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큰 거만 간략하게 간추려 봤습니다. 사연을 쓰다 보니 줄인다고 줄였어도, 너무 길어진 거 같네요.
장용 병영일기 옛날 추억 돋는 방송 참 재밌게 잘 듣고 있습니다. 작으나마 도움되고자 쓴 것이니 기대에 못 미쳐도 너그러이 봐주시고,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해주세요.
반응이 좋으면 다른 사연들도 준비하겠습니다.
늘 응원합니다. 파이팅입니다~~~!!! 필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