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은 중구 신창동 국제시장 부근에 있을 때 알았다. 특별히 뭘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제철 음식이 알아서 척척 나오는 게 신기했다. 여기저기 각종 요리책이 빼곡해 주인장의 음식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묵은지가 맛있다고 했더니 박옥희 대표가 "나중에 제대로 음식점을 할 생각으로 사둔 영도의 땅에 포클레인을 이용해 김칫독 10개를 파묻었다"고 말했다. 배포가 참 크다고 생각했다. 그 뒤 미정이 문을 닫아 아쉬워하다 영도에 새로 가게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혹시 여기가 그 김칫독 파묻던 자리?" 그랬다. 가게를 비워줄 수밖에 없어 새로 영도에 자리 잡았단다. 당장 오늘 먹고살기가 힘들어도 조금씩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겠다.
도다리쑥국을 참 잘하는 미정은 봄만 되면 생각나는 곳이 되었다. 쑥이 든 시퍼런 국물에 허연 도다리의 속살, 그 속에 빨간색 고추로 점을 찍은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였다. 도다리쑥국은 시원하고 깔끔했다. 먹고 나니 몸속에 봄의 기운이 들어와 생기가 돌았다.
저녁 시간에 술 한잔 할 장소를 고민하다 미정을 찾았다. 생선회 코스를 시키고 낮과 다른 모습을 기대했다. 겨울 바다를 대표해 광어, 도다리, 감성돔 회 3종 세트가 올랐다.
고기는 칼질에 따라 식감이 다른데, 이 집 칼질은 많이 달랐다. 도다리는 길게 썰고, 감성돔은 뭉텅이로 썰었다. 생선의 근육질에 따라 썰기를 달리한다. 여기 단골들은 듬성듬성 썰었을 때 씹히는 식감을 좋아한단다. 취향에 따라 이렇게 음식이 달라진다. 생선회는 매일 자갈치시장에서 쓸 것만 가져와 1시간가량 숙성시켰다. 초밥용 밥이 따로 나오는 것도 특징이다. 뭉툭하게 썬 회에 초밥을 직접 싸서 먹는 맛도 별미다.
새콤한 묵은지 맛은 변함이 없다. 묵은지 속 유산균 덩어리가 목구멍을 신나게 넘어간다. 일찌감치 10월에 육질이 단단한 고랭지 배추를 골라 담근 김치다. 이런 김치 1천 포기가 옥상 저온창고에서 잠을 자고 있다. 옥상에는 배추, 상추, 파는 물론이고 여름에는 수박까지 영도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랐단다. 어쩐지 파까지도 맛있다고 했다.
반찬으로 나온 가자미식해와 명태조림이 반갑다. 매실 장아찌는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부드러울까. 고소한 갈치구이와 달착지근한 가자미조림도 맛나다. 식사는 도다리쑥국과 생대구탕 중 선택인데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고민이 됐다. 겨울을 먹을 것인가, 다가올 봄을 먹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단골인 이정원 한의사는 "국이 짜지 않고 음식이 담백해 먹고 나면 속이 편해서 좋다"고 말한다. 생선회의 어종 선택이 괜찮고, 간은 슴슴해서 영도에 걸맞은 곳이다. 박 대표는 "영도에 처음 와서는 고생했지만 음식 만드는 게 즐거워 즐기면서 일한다"고 말한다.
생선회 코스 3만·4만 원, 점심 특선 2만 원. 가자미 구이·조림 1만2천 원. 매운탕 1만2천 원. 영업시간 12:00~22:00. 일요일 휴무. 부산 영도구 청학동 352-3. 부산항대교 영도램프 끝 지점. 051-242-6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