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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문어세상>
대부분이 살아있다. 문어는 말할 것도 없고, 전복도 사정없이 움직인다. 식욕와 죄책감그리고 두려움 사이에서 잠시 방황한다. 문어가 멈추고 갈등도 멈춘다. 해물과 국물에 가득한 풍미가 갈등을 밀어낸다. 산 것을 어디까지 어떻게 먹을 것인가는 숙제로만 안고, 우선은 황홀한 맛에 빠져든다.
1. 식당대강
상호 : e-문어세상
주소 : 서울시 중구 중림동 400-7
전화 : 02) 363-0990
주요음식 : 문어, 해천탕, 연포탕
2. 먹은날
먹은 날: 2020.12.19.점심
먹은 음식 : 연포탕 80,000원(3인 가능)
3. 맛보기
하여튼 이제 완벽한 식재료가 된 피문어와 전복과 가리비와 홍합과 그리고 밑에 박혀 있는 여러가지 소라 전복류에 집중해보자.
1) 문어는 어떤 해물?
*피문어와 돌문어
여기서 먹은 문어는 피문어이다. 피문어는 동해에서 잡힌다. 삶거나 말리면 껍질이 붉은색을 띠므로 피문어라 한다. 피문어 외에 돌문어도 있다. 이것은 서남해에서 주로 나고 크기도 작다. 돌 사이에 숨어 살아서 돌문어인데, 왜문어라고도 한다.
부드럽고 먹기 좋고 커다란 문어는 피문어다. 값도 피문어가 1.5~2배 정도 더 비싸다. 피문어는 참문어, 꽃문어, 대문어라고도 한다. 색이 고와 꽃문어, 힘이 좋아 대문어다. 깊은 바다에 사는 피문어는 오래되면 아주 커지고 맛도 더 좋아진다. 보통 피문어 중 큰 것을 대문어라고 한다. 이 식당에서는 피문어를 취급한다. 참문어는 가을 겨울(9월~ 다음해 2월)이 제철이다. 지금이 제철이다
*문어는 경상도 음식이다. 홍어가 전라도 음식이라면 말이다. 전라도 잔치와 제사상에는 홍어가, 경상도에는 문어가 오른다. 작은 나라지만 오밀조밀 살뜰하게도 자연환경이 참 많이 다른 때문이다. 갯벌이 없이 깊고 차가운 바다를 낀 경상도, 들보다 산을 더 많이 낀 경상도는 문어와 방어를 많이 먹는다. 머슴이 아침에 지게 가득히 쌀을 지고 가면 저녁 해질녘에 지게가 넘치도록 큰 방어를 한짐 지고 왔다는 경상도 내륙에서도 문어를 많이 먹었다.
오늘 문어는 피문어다. 돌문어는 딱딱하고 많이 자라지 않고, 피문어는 부드럽고 크게 자라며 인근이 아닌 비교적 심해에 산다는 어종이다. 문어탕은 당연히 피문어란다. 싱싱한 데다 통통하여 맛은 압권이다. 육수는 국물에 풀었어도 맛은 탱탱하고 쫀득한 식감이 황홀하다.
*문어
문어(octopus, 文魚 ,ミズダコ)는 연체동물 두족류 문어과에 속한 바닷물고기다. 팔초어(八稍魚), 팔대어(八大魚), 물꾸럭이라고도 불린다. 수심 200m 내외의 온대와 열대해역에 분포하며, 바다 밑에서 생활하는 저서생물(底棲生物)이다. 게·가재 등을 주로 먹고, 밤에 주로 활동한다. 몸빛은 보통 자색을 띤 갈색이며 환경에 따라 변한다. 위험을 느끼면 먹물주머니의 먹물을 뿜어 포식자를 마비시키거나 후각을 무디게 한다. 입에는 1쌍의 날카로운 악판(顎板)과 치설(齒舌, 연체동물 입속의 줄 모양의 혀)이 있어서 연체동물의 패각에 구멍을 뚫어 마비시키고 살을 훑어먹는다. 문어가 먹고 난 소라 소개의 패각류를 보면 중심부에 아주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어 octopus는 라틴어 옥토(Octo) 여덟, 푸스(Pus) 발에서 온 말이다. 다리 여덟 개 달린 동물이라는 뜻, 완전히 외양의 특성만으로 이름을 붙였다. 중국에서는 章鱼ㆍ八带鱼, 일본에서는 文魚ㆍミズダコ(水蛸)라고 부른다. 동양에서 文魚, 章鱼 등으로 문장(文章)을 아는 물고기라 하는데, 내면의 특성으로 이름을 삼은 것이다. 동서양의 사물 인식 차이가 문어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사람들이 머리라고 하는 둥근 부분은 사실 머리가 아니라 몸통이고 머리는 다리가 갈라지는 부분이다. 머리(사실은 몸통)가 크고, 먹물을 뿜는 것은 먹을 갈아 공부하는 머리 좋은 선비의 모습과 상통한다고 보아, 이름이 문어(文魚)가 되었다. 똑같이 먹물을 뿜는 낙지와 주꾸미는 문어라고 하지 않으므로, 먹물만으로 붙은 이름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문어의 지능은 개나 고양이의 수준만큼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과의 교류도 가능하여 오래 접하여 익숙해진 사람을 알아보며 애완동물처럼 친근감을 표시한다.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다 가지고 있다. <오,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기록 영화를 보면 문어가 사람과 교류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상당수가 눈물로 감동하며 이제 문어를 먹을 수 없겠다는 말을 할 정도이다.
2) 문어 식문화
그리스, 스페인, 이태리 등 문어를 즐겨 먹는 남유럽 사람들과는 달리 북유럽 사람들은 문어를 괴물로 여겨 먹지 않는다. 괴물로 여기는 것은 다리 때문이다. 긴 다리에 붙은 수많은 흡착판으로 지나가는 배를 침몰시킨다고 여겼다. 노르웨이 등에서 특히 널리 퍼진 `크라켄(Kraken)`이라는 바다 괴물의 북유럽 전설이 바로 그것이다. 문어는 '악마의 물고기(devil fish)'라고 불릴 정도로 기피하는 대상이다.
북유럽에서 문어를 먹지 않는 것은 사실 문어가 없기 때문이다. 수온이 낮고 바다 염도가 낮아서 문어나 오징어가 거의 잡히지 않으므로, 식품으로 익숙해질 기회가 없는 것이다. 친숙하지 않은 데다 길고 여덟 개나 되는 다리에 2천개나 되는 강력한 빨판이 붙은 걸 보면, 거부감과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
문어가 잡히는 남유럽은 문어에 대한 거부감 없이 잘만 먹는데, 북유럽은 거부감이 커서 대조적인데, 자연환경이 문화의 형성에 얼마나 절대적인지 말해준다. 아로스 데 폴부(Arroz de Polvo)는 포르투갈의 유명한 문어 요리다. 일종의 문어밥으로 걸죽하게 나온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은 풀포 아 라 가예가(Pulpoa la gallega)가 대표요리다. 문어와 감자볶음 요리다. 그리스에서는 구이가, 이탈리아에서는 튀김이 인기 문어 요리다.
그런데 문어에 대한 거부감은 꼭 북유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어를 포함한 비늘 없는 물고기는 유대인들에게도 지느러미 없는 물고기와 함께 식용 금지이다. 북유럽인과 게르만 민족은 문어와 함께 오징어도 먹기를 꺼린다. 독일어에서 ‘크라케(Krake)’는 문어를 뜻한다.
이것은 종교의 영향, 구체적으로는 기독교 때문이다. 구약성서 레위기에 "물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 가운데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들은 모두 너희가 피하라"는 말이 있다. 흰두교의 소나 이슬람의 돼지처럼 종교마다 식용으로 금기시하는 동물이 있는데, 기독교 계통에서는 문어가 그 대상인 셈이다. 그러나 요즘은 유대교에서만 금기이고, 개신교나 카톨릭은 그렇지 않다. 불교도 육식은 물론이고, 심지어 채소 중에서도 오신채를 금한다.
문어 기피는 우리에게도 있다. 임산부에게는 비늘 없는 물고기인 문어는 홍어나 낙지, 오징어와 같이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임산부에게 필요한 칼슘 부족을 염려해서라는 설도 있다. 속신이라 뚜렷한 이유를 말하기 어렵지만, 그보다는 모양새가 주요 원인이 아닌가 한다. 임산부에게는 좋은 것, 바른 것만 보고 듣고 먹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를 낳으라는 의미에서 음식 속신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문명권별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자연환경과 종교의 영향, 생김새 등이 문어를 금기시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문어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가 생겨난 배경도 부위에 따라 정도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에서 文魚, 章鱼 등으로 문어 머리(몸통)을 보고 붙인 명칭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북유럽에서 갖는 악마나 괴물의 이미지는 다리에서 나온 것이다. 상체는 긍정, 하체는 부정한 것이다. 다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우리도 갖고 있다.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표현으로 대기업의 여러 사업 진출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고려조에도 백성을 괴롭히며 재물을 긁어 모은 관리를 철문어부윤(鐵文魚府尹)이라고(<음식으로 읽는 생활사>참조), 했다는 걸 보면 다리 부정적 이미지는 연원이 오랜 것이다.
문어는 먹이가 없으면 자기 다리를 잘라 먹기도 한다. 위 영화에서 보니 상어에게 잘린 다리가 100일 정도가 되니 완전하게 새로 자라났다. 독 안에 갇힌 문어는 제 몸을 먹으며 6개월을 생존한다. 수용소의 독방 ‘문어방’이란 말도 거기서 나왔다. 끔찍한 생명력이다. 이것도 다리가 하는 일이니, 다리 부정의 인식과 통한다 하겠다. 머리(몸통)는 긍정되고, 다리는 부정당하는 동물인 문어는 절반의 긍정과 절반의 부정 대상이다.
문어는 변신의 왕이다. ‘바다의 카멜레온’이라고도 불린다. 카멜레온은 색깔만 변하지만, 문어는 질감까지 변하며, 그것도 신경조직을 통해 순식간에 변화한다. 고동색은 아프거나 힘들 때이고, 하얀색은 거의 죽어갈 때이다. 위 영화에서 다리를 상어에게 뜯긴 문어는 하얀색으로 변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알을 낳아 부화시키고 생명이 다할 때는 하얀 솜처럼 나풀거리며 상어의 먹이가 되어 존재를 온전히 소멸시켰다. 자신의 보호를 위해 변신을 했지만, 번식을 위해서는 아예 생명까지 포기하고 변신없이 하얗게 바래간다. 이런 문어의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문어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겼다.
여기서는 상체 하체의 이미지 구분이나 절반의 부정도 없이, 인간에게 통째로 긍정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영화 속 나레이터이자 감독인 문어친구는 말했다. 이후 모든 동물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모든 생명이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3) 우리의 문어 인식
우리는 오래 전부터 문어를 먹어왔다. 예로부터 문어가 많이 잡혀서인데 「동국여지승람」에 경상도와 전라도, 강원도, 함경도 37개 고을의 토산품으로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피문어는 경상도 쪽 종이다. 그래서 경상도 강원도 등 동쪽 지역에서 많이 먹었으며, 제사상에 올리는 귀한 음식으로 취급되어 왔다.
전라도에서는 홍어와 낙지를 먹는다면, 경상도는 상어와 문어를 먹는다. 전라도에서 조기를 먹는다면, 경상도는 방어를 먹는다. 서해 생선과 동해 생선이 달라서다. 경상도에서 방어와 문어와 상어는 모두 제사상에 올랐다. 특히 문어는 제사상은 물론이고 잔치상에도 빠지지 않았다. 지금도 경상도 사람은 잔치나 모임이 있으면 문어부터 챙긴다.
마른 문어는 경상도 아니어도 어디에서고 먹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문어회(文魚膾)’는 신선의 음식으로 되어 있다. 회는 아무 데서나 먹을 수 없었다. 실록에도 지역별 특산품 문어는 주로 건문어로 올라 있다. 문어는 오징어만큼 흔하지 않아서 전라도에서 마른 피문어는 매우 귀한 음식이었다. 그래도 문어는 마른 거라도 먹을 수 있었는데, 방어나 상어는 먹어보기 힘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상어ㆍ문어ㆍ방어가 모두 보통 생회로 먹거나 삶아서 숙회로 먹는 식품이라는 거다. 아니면 간을 쳐서 구이를 해먹는 정도다. 일부 탕이나, 찌개를 끓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간단한 조리로 원재료의 특성을 보존한 채로 먹는다. 반면에 전라도 해물은 회로 먹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지가지 조리법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홍어처럼 발효를 시키는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낙지도 생물이 아니면 볶음으로 많이 먹는다. 조기는 대개 영광굴비 구이를 하거나 찌개로 먹는다. 중간 조리 과정을 많이 거치는 음식으로 먹는 것이다.
주로 먹는 해물의 종류 차이에서 오는데, 조리 공정의 유무나 조리 방식의 복잡성 차이가 전라도 경상도 음식 차이를 만들어 낸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소라의 침샘을 떼어낸다. 그냥 먹으면 마비 증상이 온다 한다. 여러마리 분을 먹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니 조금 아찔한 기분이다.
*두부 맛이 일품이었다. 찬이라고 나오는 것은 두부와 김치뿐이었는데, 용서가 된다. 두부도 김치도 맛이 그만이니까. 두부는 부드럽고 고소하며 두부향이 가득하다. 김치는 겉절이다. 두부는 물론이고, 연포탕 해물과 같이 먹기에도 좋다.
*칼국수는 온갖 진기한 국물을 다 빨아들여 끓인 것이다. 진기하고 신선한 각종 해산물이 다 들어갔으니 맛없으면 비정상이다. 호사다. 더구나 서울 복판에서 이런 걸 먹다니. 실록에 보면 진상한 문어도 대부분 건문어이던데, 이 정도는 조선조 황후의 찬보다 더한 호사다. 좋은 시절 사는 복이 이런 것인가.
4. 먹은 후
1) 문어음식
문어는 오랜 보양식이다. 고단백 저지방 식품으로 열량도 낮아 대표적인 웰빙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오메가-3 지방산과 타우린 함량이 높아서 동맥경화와 심장마비를 예방하고 시력감퇴, 빈혈, 항동맥경화, 항고지혈증, 비만, 당뇨병 등에 효과가 좋다. 또 간의 해독작용과 장시간 피로의 회복에 효과가 있고, 뇌기능 향상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연 함량도 높아 미각 장애에도 좋다.
문어는 담백하고 깊은 맛에 쫄깃한 식감까지 갖추어서 해산물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도 누구나 좋아한다. 비린내나 기름도 없어서 고등어나 장어 등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도 편한 음식이다.
문어는 주로 삶아서 숙회로 먹는다. 조선 후기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에서는 문어에 대해 "돈같이 썰어 볶으면 그 맛이 깨끗하고 담담하며, 그 알은 머리·배·보혈에 귀한 약인 고로 토하고 설사하는 데 유익하다."(정양완 역주, 82면)고 되어 있다.
문어를 건강식으로 식탁에 올리는 대표적인 전통음식에는 '건곰'이 있는데 문어와 명태, 홍합을 넣고 끓이다가 파를 넣은 국이다. 예로부터 노인이나 환자의 보양식으로 애용되어 왔다. 제주도에서는 돌문어로 여름 별미 문어죽을 쑨다. 돌문어를 가리키는 ‘문게’죽, 혹은 물꾸럭죽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문어 요리는 요즘 들어 본격적으로 개발되는 추세여서 여기저기서 다양한 문어 요리를 접할 수 있다. 갈비탕, 짬뽕, 보쌈에도 문어를 이용하며, 소위 해천탕이라는 이름으로 닭과 문어를 주재료로 하여 갖가지 해물을 넣은 음식이 요즈음 유행이다. 90년대부터 만들어졌다 하는데, 해천(海天)탕은 바다와 하늘의 대표주자 문어와 닭을 넣은 음식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닭은 생략한 연포탕으로 먹는다.
점차 확장되는 문어 음식에서 살기좋은 세상이 된 시대 변화를 역시 읽어낼 수 있다. 궁핍한 삶 속에서 음식 확장은 쉽지 않다. 음식의 다양성은 한류 음식을 견인하는 핵심이다. 문어 또한 한국의 문어음식이 대단하다는 명성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러기에 해천탕이나 해물탕은 1차원적인 음식이다. 원재료의 풍미를 간직하면서도 조리의 미학이 가미된 음식이 더 나와주기를 기대한다.
문어짬뽕, 해천탕, 해물탕 등등 음식 다양화는 모두 문어의 어획량 증대와 관련 있다 할 수 있는데, 최근 10여년간 다시 감소한 어획량 때문에 강릉시는 2020년 11월에 1년 동안을 대문어 포획금지기간으로 설정하였다. 문어 식욕을 조금 절제해야 할지 모르겠다.
2) 문어에 대한 인식 전환 및 문어로 보는 세상
최근 문어를 소재로 한, 눈에 띄는 두 작품이 나왔다. 하나는 저서 <문어의 영혼>(사이 몽고메리저 최로미 역, 글항아리, 2017)이고, 하나는 영화<나의 문어 선생님>(다큐멘터리, 남아프리카공화국, 2020)이다. 모두 문어를 관찰하고, 교감한 내용을 다룬 것이다.
특히 영화는 올해 나왔음에도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작가가 직접 잠수하여 찍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연안의 아름다운 바다를 주로 보여줘, 화면의 아름다움만으로도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우리에게는 주로 식품으로만 인식되는 문어를 다루고 있는데도, 빠져드는 것은 아름다운 화면 덕이 크다.
영화를 보면 처음에는 단지 화면에, 영리하고 진기한 문어의 모습에, 차차 감독과 교감을 나누어가는 인물(人物)의 관계에, 이어서 문어 자체에 감정 이입을 시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로 확대되는 인지의 대상은 우선 해저세계다. 육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람은 육지만이 가지의 공간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이곳도 생물이 사는 육지만한 공간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현실화되는 듯하다. 이어서 문어가 식품 이전에 하나의 동물이고,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인간과 같이 자연계에 1/n의 지분을 가졌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감독은 말했다. “모든 생명이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어가 상징하는 야생세계에서 더 많은 얘기 들려온다. 나도 자연의 일원이라는 소속감 생겼다.”
그러나 감독은 문어와 자신이 어떤 관계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역시 나는 인간이어서 우위에 있다는 건지, 아니면 동격에 놓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인간과 동물이 대등한 관계라는 데까지 생각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옛적부터 그렇게 생각해왔다. 박지원이 <여초책>(與楚幘)이라는 편지에서 한 말을 보자.
“그대는 신령한 지각과 민첩한 깨달음이 있다고 남들에게 교만하지 말고, 다른 생물들을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들도 신령한 깨달음을 일부라도 지니고 있다면, 어찌 스스로 부끄럽지 않겠나? 만약 저들이 신령한 지각이 없다면, 교만하게 굴고 멸시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 무리는 냄새나는 가죽 자루 안에 글자 몇 개를 싸 넣고 있는 것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많을 따름이다. 저기 매미가 나무에서 떠들썩하고, 지렁이가 구멍에서 우는 것이 또한 시를 외고 책을 읽는 소리가 아닌지 어찌 알겠느냐? ”
많이 알려진 <호질>의 구절을 더 보면 더 명백하다.
“너희는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하면서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하늘이 명한 바에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 같이 물(物)의 하나이다. ...범이 사람을 잡아먹은 수를 합쳐도 사람이 서로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다.”
사람은 도덕이나 지능에서 우월해 다른 생물을 마음대로 하고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차등론은 사람들 사이의 차등론의 근본을 이루는 더 큰 죄악이다. 더 큰 죄악부터 다스려야 한다.
이것은 볼테르의 이론보다 더 상위의 이론이고 진보적인 이론이라고 봤다. “볼태르는 강자는 우월해 무엇이든지 해도 된다고 하는 차등론을 배격하고,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대등론을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박지원은 사람은 특권을 누려 마땅하다는 차등론을 나무라고, 모든 생물은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더 큰 범위의 대등론을 제시했다.”(조동일, 세계문학문답) 볼태르는 사람 사이의 대등관계만 말했는데, 박지원은 사람과 동물, 모든 생물 사이의 대등론을 말했다.
인간과 교감하는 영리한 문어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본다. 개나 고양이는 인간과 지능이 비슷한 애완동물이라는 이유로 식용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다. 오랫동안 개를 식용해온 전통을 버리고, 서양의 문화를 추종하면서까지 보신탕 문화를 거부하고 있다. 지능이 좋은 문어에게도 그래야 되나? 바다 생물이어서 애완동물이기는 어려우므로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인가?
당장 이제부터 맛있는 낙지를 어떻게 하겠는가.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은 낙지의 감정 표현과 생물적인 일생을 보면서 더는 낙지를 먹지 못할 거 같다고 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 문제는 장을 달리 해 더 생각해보기로 한다. 우선 박지원의 <호질>을 낙지로 고쳐 말한다.
“너희는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하면서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하늘이 명한 바에서 본다면, 문어나 사람이나 다 같이 물(物)의 하나이다. ...문어가 크라켄으로 사람을 잡아먹은 수를 합쳐도 사람이 서로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다.”
*2021.5.3. 재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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