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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비평선 002
도서명 : 백록시화
저 자 : 강인한
판 형 : 145*220mm
면 수 : 480쪽
가 격 : 25,000원
발행일 : 2023년 6월 15일
ISBN : 979-11-93169-09-4 03810
[출판사 서평]
시력 56년 강인한 시인, 오늘의 시를 말한다
시화는 시에 관한 온갖 이야기들이다
시화(詩話)는 우리나라에서 고려 말 이인로에 이어 조선 초 서거정의 『동인시화(東人詩話)』 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시화에는 첫째 시의 본질을 논의하는 시론(詩論), 둘째 시의 작법을 제시하는 작시론(作詩論), 셋째 시 작품이나 시인을 해설⸳평가하는 시평(詩評), 넷째 역대 시인들의 행적이나 시작 배경의 숨은 이야기를 서술하는 시 일화(逸話) 등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시 시론, 시 해설이나 비평 따위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장르가 곧 시화(詩話)다.
백록시화는 백록 강인한 시인이 쓴 시화다.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 카페지기 강인한
2002년 3월부터 시인은 자기만의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운영을 시작했다. 시인은 말한다. 그는 시인이며 동시에 시 독자라고. 김종해 시인은 스스로를 시 전문 독자라고 칭함에 동의하며 강인한 시인도 흔쾌히 시 전문 독자임을 내세운다. 여기에 현대 한국 시에 대한 신뢰와 권위가 담보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든든한 평가의 반석 위에 세워진 카페를 후배 시인과 시인 지망생들이 믿고 따른다. 그게 현재 4천여 명이다.
민족과 사회와 역사의 문제
고교 3학년 시절부터 시인은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을 응모하다가 동아일보 1966년 신춘문예에 당선한다. 「1965」라는 시였다. 그 해 내내 전 국민의 뜨거운 관심은 40년 동안 식민 지배를 한 일본과 식민 지배를 당한 대한민국이 도쿄에서 미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회담을 여는 문제였다. 일본에 대하여 굴욕적인 저자세 회담이 민족의 자존심을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군사정부의 자세에 대하여 전국의 반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급기야 한일회담 자체를 문제 삼아 반대의 표현을 하는 자는 체포 구금되었다. 군사정부는 전국의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고, 교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한여름 폭염 속에도 타오르는 들불처럼 한일회담의 민족적 요구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졸속한 결말을 마다하지 않은 군사정부였다. 한편으론 수렁에 빠진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하기도 한 것이 그해의 이슈를 한일회담으로부터 돌리진 못했다. 강인한 시인이 다룬 시의 주제는 슬픈 한민족의 문제였지만 에둘러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고 행간과 “그것은 일천구백육십오 년”이라는 후렴의 침묵 속에 감춰둘 수밖에 없었다 한다. 이 응모작은 동아일보에 당선되었다가 지방의 일개 대학신문에 발표된 이유로 당선이 취소되고 만다.
1966년 신춘문예의 좌절을 딛고 다시 1967년 시인은 1백행이 넘는 「대운동회의 만세 소리」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다. 민족의 문제, 사회의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한 시인의 초기 시는 이후 지난 역사의 문제들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유신의 암흑기에 시인은 상징의 기법으로 초현실주의적인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전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다룬 「밤 버스를 타고」 「검은 달이 쇠사슬에 꿰어 올린 강물 속에」 같은 시들이었다.
1967년 등단한 이래 오늘까지 56년 동안의 작품 세계를 시인은 말한다.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로, 공동체 사회에서 인류와 모든 생명체로 대상을 확대하여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시 세계는 마지막에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의 세계로 수렴하고 있다고.
시와 비시, 독자를 기만하는 자세에 대한 질정
백록시화(白鹿詩話)는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교직에 있으면서 시인은 해마다 학교 교지에 학생들에게 시에 관한 에세이를 발표하였다. 그 무렵 발표한 몇 편의 글이 1부에 포함되었고, 좀 더 깊이 있는 당대의 시 현실, 시와 비시에 대한 구분 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부는 오늘날의 시단 현실에 나타난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한 진단이다. 주목할 만한 시인과 개별 작품을 들어 비평하였고, 시인이 독자를 기만하는 잘못 된 태도에 대한 반성적 비판도 덧붙였다. 3부는 강인한 시인이 시력 50여 년 동안 써온 작업 가운데 짚어야 할 부분이나 독자에게 약간의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는 시 30편에 대한 시인의 해설을 볼 수 있다. 4부는 시인의 에세이, 그리고 20여 년 동안 카페지기로서 혼자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에 관한 대담을 실었다.
[차례]
1부 시의 표정
012 시의 언어에 대하여
019 현대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027 감동・상상・아름다움
043 역사 속의 시
052 현실 인식과 시 정신의 균형
063 올바른 주제와 올바른 아름다움
068 세상의 바보들을 보고 웃는 방법
085 코끼리가 그린 추상화 한 점
100 독자 없는 시대에 ‘불통’이 미덕인가
119 산문시가 산문이 아니라 시인 이유
126 패러디, 모방, 표절
136 기형도의 「물 속의 사막」 감상
141 은사시나무에서 들리는 물소리
149 나희덕, 푸르고 서늘한 언어의 감별사
161 불가해한 사랑에 바치는 연가(戀歌)들
168 즉물적(卽物的)인 시
174 극적인 정점에서 시작하는 시, 「레다와 백조」
2부 말의 몸짓
180 감각의 통로에서 바라본 시들
190 장시와 처녀시집과 시의 재미라는 것
201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아름다운 고통
207 정양의 시 감상
210 김기택의 시 감상
213 함기석의 시 감상
217 윤성택의 시 감상
222 전복과 함축된 여백
226 내가 감동한 한 편의 시
231 이기성의 시 감상
233 조정의 시 감상
236 김중일의 시 감상
239 이근화의 시 감상
242 안희연의 시 감상
246 이혜미의 시 감상
250 김경주의 시 감상
256 시는 모순과 오류의 발명인가
262 양안다의 시 감상
270 독자를 조롱하는 젊은 시인의 자의식 과잉
3부 자작시 해설
276 귓밥 파기
280 램프의 시
283 불길 속의 마농
290 밤 버스를 타고
299 대문에 태극기를 달고 싶은 날
302 하수구를 뚫으며
305 카인의 새벽
310 겨울 가로수
313 지상의 봄
316 우리가 만나자는 약속은
319 빈 손의 기억
323 스크램블드에그를 만드는 여자
326 병 속에 고양이를 키우세요
329 붉은 가면
332 강변북로
335 브릭스달의 빙하
338 신들의 놀이터
342 마리안느 페이스풀
347 봄날
350 거대한 손
353 리아스식 해안의 검은 겨울
359 가라앉은 성당
365 테셀레이션
368 아이즈 와이드 셧
372 장미가 부르는 편서풍
376 파리를 방문한 람세스 2세
383 희게 말하고 희게 웃는다
388 두 개의 인상
391 도스토예프스키를 위한 헌시(獻詩)
4부 에세이와 대담
398 음치가 부르는 노래
402 본명과 필명 그리고 호
407 「품바」와의 인연
409 서둘러 간 제자 원섭에게
412 조건 없는 사랑, 조건 없는 마음
416 가든, 가수, 공인
421 물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427 프레베르의 시 「밤의 파리」
430 버리고 사는 이야기
434 시인은 ‘장식’이 아니다
436 시참(詩讖), 혹은 순교의 길
444 1966년 신춘문예 어떤 현장의 이야기
451 폭풍 흡입과 폭풍 식음
453 소곡주에 덕자 회를 안주로
456 반려견(伴侶犬)이라는 말
460 강인한 시인과 나눈 시화(詩話)
[저자 소개]
강인한 시인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본명은 동길. 전주고등학교, 전북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이상기후』 『불꽃』 『전라도 시인』 『우리나라 날씨』 『칼레의 시민들』 『황홀한 물살』 『푸른 심연』 『입술』 『강변북로』 『튤립이 보내온 것들』 『두 개의 인상』, 시선집 『어린 신에게』 『신들의 놀이터』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시 비평집 『시를 찾는 그대에게』 『백록시화』. 37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2004년 2월 광주살레시오고등학교에서 명예퇴직. 2002년 3월부터 다음(Daum)카페 〈푸른 시의 방〉을 열고 2023년 5월 현재 좋은 시 읽기 12,800여 편을 실어 우리 현대시의 참되고 바른 길을 제시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음. 전남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시와시학시인상, 전봉건문학상 수상.
[책 속에서]
시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형식에만 집착하는 버릇이 있는 신인 지망생들의 작품을 여기에서 직접 들춰보긴 어려우므로 4천여 편의 예심을 마친 『중앙일보』 기사(2015.9.4.)를 읽어본다.
손택수 씨는 대뜸 “태양이 너무 눈부셔 그 너머를 볼 수 없는 상태와 같은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미지를 촘촘하게 배치해 화려한 느낌을 주지만 그런 경향이 지나쳐 정작 읽고 나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작품들을 그렇게 평한 것이다. 강동호 씨는 세련된 스타일이 대세로 느껴질 만큼 내용보다 기량이 승한 작품이 흔하다는 설명이다. 강 씨는 “특히 40대 이상 나이 든 사람들의 응모작 가운데도 모던한 느낌의 작품이 많았다.”고 했다. 대학 등에서 시를 가르치는 시 선생들이 주로 젊은 느낌의 모던한 시를 가르친 결과다. 그래서 위기에 몰린 건 전통 서정시다. 소수, 타자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강 씨는 “형식적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은 없는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P.103 「독자 없는 시대에 ‘불통’이 미덕인가」 중에서
기형도의 시 「물속의 사막」은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가슴 저리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시다. 여름 밤 장맛비, 빌딩 안, 밤 세 시. 도심 속의 한 점 섬인 양 완벽하게 단절되고 구원이 닿지 않는 시간과 공간 속에 그는 갇혀 있다. 제목에서의 '사막'은 막막한 절망의 심정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금지된다,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통과하지 못한다" 등 부정 어법에서 끼치는 절망감은 흑백의 대비적인 풍경 속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시 속에서 “밤, 석탄가루, 검은 유리창”과 함께 “흰 개, 비, 비닐집, 환한 빌딩, 와이셔츠 흰빛”의 흑백 대비는 어쩌면 죽음과 삶의 경계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밤 세시의 풍경 속에 유일하게 “푸른 옥수수잎”이 들어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과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을 뿐, '무정한' 희망이었을 뿐이다.
―P.140 「기형도의 ‘물 속의 사막’ 감상」 중에서
이 시에서는 축산농민과 소, 돼지의 위치가 전복돼 나타나 있다. 마스크를 쓴 소들이 우리에 갇힌 농민들을 끌고 나와 트럭의 짐칸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어 어디론가 사라지는 장면. 어디서 봤더라, 이런 장면을…. 아, 그건 1980년 5월 광주에서 본 그 장면 아닌가. “어둠이 검은 것은 슬픔 때문이다”라는 경구(警句)가 검은 상복처럼 낮게 깔리고, 다시 장면은 비록 비유의 몸을 입고 있으나 이라크 전쟁 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어진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진, 벌어지고 있는 이 끔찍한 살해의 연속. 깊이 파헤친 흙구덩이 속으로 한꺼번에 몰려 떨어지며 비명을 지르는 돼지들, 허우적거리는 돼지들의 모습, 그게 오늘 우리들의 다른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그렇게 묻는다.
―P.203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아름다운 고통」 중에서
…저 물고기/ 절 집을 흔들며/ 맑은 물소리 쏟아 내네/ 문득 절 집이 물소리에 번지네// 절 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 ―「풍경(風磬)」 부분
절 집의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 그 쇠로 된 물고기가 바람에 흔들리며 울려내는 맑은 물소리. 시인의 어법을 잘 드러내는 이 시의 묘미는 '뒤집기'에 있다. 절 집에 매달린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가 절 집을 물고 있다는 것. 세계를 뒤집어 생각하기에서 시인은 영감을 얻는 것일까. "갑자기,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저수지 전체를 한 번 들어올렸다가 도로 내립다 칠 때"라고 낚시터의 풍경을 묘사한 시 「저수지에서 생긴 일」도 바로 그런 식의 발상이다.
―P.224 전복과 함축된 여백, 서정춘 시집 『봄, 파르티잔』 중에서
내가 바라보는 왼쪽(東)에 동작대교가 보이고 관악산을 오른쪽으로 끌며 한강대교(西)가 서 있습니다. 그 옛날 초대 대통령이 전쟁이 터지자 남쪽으로 남보다 먼저 피신한 다음 한강 이북의 서울 시민들은 나 몰라라, 인민군들에게 떠맡기고 부숴버린 한강철교가 있던 곳. 더 아래로 마포 쪽입니다. 거기 있는 원효로 부근 강변3로 어딘가 자기 오빠에게 권총으로 살해당했다고 정부가 암암리에 뒤집어씌운 정인숙 여인 피살사건의 슬픈 현장이 있습니다. 정인숙 여인의 어린 아들의 귀가 마치 누구의 쪽박귀를 쏙 빼닮았더라는 풍문이 그 당시 국회 안에서 회자되던 뒤끝이었습니다.
졸시 「강변북로」는 관악구를 2011년 1월에 떠나 강 건너 용산구 이촌1동으로 이사한 그해 3월에 쓰고 격월간 《유심》 5/6월호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P.334 자작시 해설 「강변북로」 중에서
서울시 마포구 대흥로8길 26. 201호 T. 010-8945-2222 E. position2013@gmail.com
포지션 비평선 002
도서명 : 백록시화
저 자 : 강인한
판 형 : 145*220mm
면 수 : 480쪽
가 격 : 25,000원
발행일 : 2023년 6월 15일
ISBN : 979-11-93169-09-4 03810
[출판사 서평]
시력 56년 강인한 시인, 오늘의 시를 말한다
시화는 시에 관한 온갖 이야기들이다
시화(詩話)는 우리나라에서 고려 말 이인로에 이어 조선 초 서거정의 『동인시화(東人詩話)』 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시화에는 첫째 시의 본질을 논의하는 시론(詩論), 둘째 시의 작법을 제시하는 작시론(作詩論), 셋째 시 작품이나 시인을 해설⸳평가하는 시평(詩評), 넷째 역대 시인들의 행적이나 시작 배경의 숨은 이야기를 서술하는 시 일화(逸話) 등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시 시론, 시 해설이나 비평 따위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장르가 곧 시화(詩話)다.
백록시화는 백록 강인한 시인이 쓴 시화다.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 카페지기 강인한
2002년 3월부터 시인은 자기만의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운영을 시작했다. 시인은 말한다. 그는 시인이며 동시에 시 독자라고. 김종해 시인은 스스로를 시 전문 독자라고 칭함에 동의하며 강인한 시인도 흔쾌히 시 전문 독자임을 내세운다. 여기에 현대 한국 시에 대한 신뢰와 권위가 담보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든든한 평가의 반석 위에 세워진 카페를 후배 시인과 시인 지망생들이 믿고 따른다. 그게 현재 4천여 명이다.
민족과 사회와 역사의 문제
고교 3학년 시절부터 시인은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을 응모하다가 동아일보 1966년 신춘문예에 당선한다. 「1965」라는 시였다. 그 해 내내 전 국민의 뜨거운 관심은 40년 동안 식민 지배를 한 일본과 식민 지배를 당한 대한민국이 도쿄에서 미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회담을 여는 문제였다. 일본에 대하여 굴욕적인 저자세 회담이 민족의 자존심을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군사정부의 자세에 대하여 전국의 반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급기야 한일회담 자체를 문제 삼아 반대의 표현을 하는 자는 체포 구금되었다. 군사정부는 전국의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고, 교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한여름 폭염 속에도 타오르는 들불처럼 한일회담의 민족적 요구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졸속한 결말을 마다하지 않은 군사정부였다. 한편으론 수렁에 빠진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하기도 한 것이 그해의 이슈를 한일회담으로부터 돌리진 못했다. 강인한 시인이 다룬 시의 주제는 슬픈 한민족의 문제였지만 에둘러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고 행간과 “그것은 일천구백육십오 년”이라는 후렴의 침묵 속에 감춰둘 수밖에 없었다 한다. 이 응모작은 동아일보에 당선되었다가 지방의 일개 대학신문에 발표된 이유로 당선이 취소되고 만다.
1966년 신춘문예의 좌절을 딛고 다시 1967년 시인은 1백행이 넘는 「대운동회의 만세 소리」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다. 민족의 문제, 사회의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한 시인의 초기 시는 이후 지난 역사의 문제들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유신의 암흑기에 시인은 상징의 기법으로 초현실주의적인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전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다룬 「밤 버스를 타고」 「검은 달이 쇠사슬에 꿰어 올린 강물 속에」 같은 시들이었다.
1967년 등단한 이래 오늘까지 56년 동안의 작품 세계를 시인은 말한다.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로, 공동체 사회에서 인류와 모든 생명체로 대상을 확대하여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시 세계는 마지막에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의 세계로 수렴하고 있다고.
시와 비시, 독자를 기만하는 자세에 대한 질정
백록시화(白鹿詩話)는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교직에 있으면서 시인은 해마다 학교 교지에 학생들에게 시에 관한 에세이를 발표하였다. 그 무렵 발표한 몇 편의 글이 1부에 포함되었고, 좀 더 깊이 있는 당대의 시 현실, 시와 비시에 대한 구분 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부는 오늘날의 시단 현실에 나타난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한 진단이다. 주목할 만한 시인과 개별 작품을 들어 비평하였고, 시인이 독자를 기만하는 잘못 된 태도에 대한 반성적 비판도 덧붙였다. 3부는 강인한 시인이 시력 50여 년 동안 써온 작업 가운데 짚어야 할 부분이나 독자에게 약간의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는 시 30편에 대한 시인의 해설을 볼 수 있다. 4부는 시인의 에세이, 그리고 20여 년 동안 카페지기로서 혼자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에 관한 대담을 실었다.
[차례]
1부 시의 표정
012 시의 언어에 대하여
019 현대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027 감동・상상・아름다움
043 역사 속의 시
052 현실 인식과 시 정신의 균형
063 올바른 주제와 올바른 아름다움
068 세상의 바보들을 보고 웃는 방법
085 코끼리가 그린 추상화 한 점
100 독자 없는 시대에 ‘불통’이 미덕인가
119 산문시가 산문이 아니라 시인 이유
126 패러디, 모방, 표절
136 기형도의 「물 속의 사막」 감상
141 은사시나무에서 들리는 물소리
149 나희덕, 푸르고 서늘한 언어의 감별사
161 불가해한 사랑에 바치는 연가(戀歌)들
168 즉물적(卽物的)인 시
174 극적인 정점에서 시작하는 시, 「레다와 백조」
2부 말의 몸짓
180 감각의 통로에서 바라본 시들
190 장시와 처녀시집과 시의 재미라는 것
201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아름다운 고통
207 정양의 시 감상
210 김기택의 시 감상
213 함기석의 시 감상
217 윤성택의 시 감상
222 전복과 함축된 여백
226 내가 감동한 한 편의 시
231 이기성의 시 감상
233 조정의 시 감상
236 김중일의 시 감상
239 이근화의 시 감상
242 안희연의 시 감상
246 이혜미의 시 감상
250 김경주의 시 감상
256 시는 모순과 오류의 발명인가
262 양안다의 시 감상
270 독자를 조롱하는 젊은 시인의 자의식 과잉
3부 자작시 해설
276 귓밥 파기
280 램프의 시
283 불길 속의 마농
290 밤 버스를 타고
299 대문에 태극기를 달고 싶은 날
302 하수구를 뚫으며
305 카인의 새벽
310 겨울 가로수
313 지상의 봄
316 우리가 만나자는 약속은
319 빈 손의 기억
323 스크램블드에그를 만드는 여자
326 병 속에 고양이를 키우세요
329 붉은 가면
332 강변북로
335 브릭스달의 빙하
338 신들의 놀이터
342 마리안느 페이스풀
347 봄날
350 거대한 손
353 리아스식 해안의 검은 겨울
359 가라앉은 성당
365 테셀레이션
368 아이즈 와이드 셧
372 장미가 부르는 편서풍
376 파리를 방문한 람세스 2세
383 희게 말하고 희게 웃는다
388 두 개의 인상
391 도스토예프스키를 위한 헌시(獻詩)
4부 에세이와 대담
398 음치가 부르는 노래
402 본명과 필명 그리고 호
407 「품바」와의 인연
409 서둘러 간 제자 원섭에게
412 조건 없는 사랑, 조건 없는 마음
416 가든, 가수, 공인
421 물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427 프레베르의 시 「밤의 파리」
430 버리고 사는 이야기
434 시인은 ‘장식’이 아니다
436 시참(詩讖), 혹은 순교의 길
444 1966년 신춘문예 어떤 현장의 이야기
451 폭풍 흡입과 폭풍 식음
453 소곡주에 덕자 회를 안주로
456 반려견(伴侶犬)이라는 말
460 강인한 시인과 나눈 시화(詩話)
[저자 소개]
강인한 시인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본명은 동길. 전주고등학교, 전북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이상기후』 『불꽃』 『전라도 시인』 『우리나라 날씨』 『칼레의 시민들』 『황홀한 물살』 『푸른 심연』 『입술』 『강변북로』 『튤립이 보내온 것들』 『두 개의 인상』, 시선집 『어린 신에게』 『신들의 놀이터』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시 비평집 『시를 찾는 그대에게』 『백록시화』. 37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2004년 2월 광주살레시오고등학교에서 명예퇴직. 2002년 3월부터 다음(Daum)카페 〈푸른 시의 방〉을 열고 2023년 5월 현재 좋은 시 읽기 12,800여 편을 실어 우리 현대시의 참되고 바른 길을 제시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음. 전남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시와시학시인상, 전봉건문학상 수상.
[책 속에서]
시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형식에만 집착하는 버릇이 있는 신인 지망생들의 작품을 여기에서 직접 들춰보긴 어려우므로 4천여 편의 예심을 마친 『중앙일보』 기사(2015.9.4.)를 읽어본다.
손택수 씨는 대뜸 “태양이 너무 눈부셔 그 너머를 볼 수 없는 상태와 같은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미지를 촘촘하게 배치해 화려한 느낌을 주지만 그런 경향이 지나쳐 정작 읽고 나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작품들을 그렇게 평한 것이다. 강동호 씨는 세련된 스타일이 대세로 느껴질 만큼 내용보다 기량이 승한 작품이 흔하다는 설명이다. 강 씨는 “특히 40대 이상 나이 든 사람들의 응모작 가운데도 모던한 느낌의 작품이 많았다.”고 했다. 대학 등에서 시를 가르치는 시 선생들이 주로 젊은 느낌의 모던한 시를 가르친 결과다. 그래서 위기에 몰린 건 전통 서정시다. 소수, 타자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강 씨는 “형식적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은 없는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P.103 「독자 없는 시대에 ‘불통’이 미덕인가」 중에서
기형도의 시 「물속의 사막」은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가슴 저리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시다. 여름 밤 장맛비, 빌딩 안, 밤 세 시. 도심 속의 한 점 섬인 양 완벽하게 단절되고 구원이 닿지 않는 시간과 공간 속에 그는 갇혀 있다. 제목에서의 '사막'은 막막한 절망의 심정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금지된다,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통과하지 못한다" 등 부정 어법에서 끼치는 절망감은 흑백의 대비적인 풍경 속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시 속에서 “밤, 석탄가루, 검은 유리창”과 함께 “흰 개, 비, 비닐집, 환한 빌딩, 와이셔츠 흰빛”의 흑백 대비는 어쩌면 죽음과 삶의 경계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밤 세시의 풍경 속에 유일하게 “푸른 옥수수잎”이 들어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과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을 뿐, '무정한' 희망이었을 뿐이다.
―P.140 「기형도의 ‘물 속의 사막’ 감상」 중에서
이 시에서는 축산농민과 소, 돼지의 위치가 전복돼 나타나 있다. 마스크를 쓴 소들이 우리에 갇힌 농민들을 끌고 나와 트럭의 짐칸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어 어디론가 사라지는 장면. 어디서 봤더라, 이런 장면을…. 아, 그건 1980년 5월 광주에서 본 그 장면 아닌가. “어둠이 검은 것은 슬픔 때문이다”라는 경구(警句)가 검은 상복처럼 낮게 깔리고, 다시 장면은 비록 비유의 몸을 입고 있으나 이라크 전쟁 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어진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진, 벌어지고 있는 이 끔찍한 살해의 연속. 깊이 파헤친 흙구덩이 속으로 한꺼번에 몰려 떨어지며 비명을 지르는 돼지들, 허우적거리는 돼지들의 모습, 그게 오늘 우리들의 다른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그렇게 묻는다.
―P.203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아름다운 고통」 중에서
…저 물고기/ 절 집을 흔들며/ 맑은 물소리 쏟아 내네/ 문득 절 집이 물소리에 번지네// 절 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 ―「풍경(風磬)」 부분
절 집의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 그 쇠로 된 물고기가 바람에 흔들리며 울려내는 맑은 물소리. 시인의 어법을 잘 드러내는 이 시의 묘미는 '뒤집기'에 있다. 절 집에 매달린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가 절 집을 물고 있다는 것. 세계를 뒤집어 생각하기에서 시인은 영감을 얻는 것일까. "갑자기,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저수지 전체를 한 번 들어올렸다가 도로 내립다 칠 때"라고 낚시터의 풍경을 묘사한 시 「저수지에서 생긴 일」도 바로 그런 식의 발상이다.
―P.224 전복과 함축된 여백, 서정춘 시집 『봄, 파르티잔』 중에서
내가 바라보는 왼쪽(東)에 동작대교가 보이고 관악산을 오른쪽으로 끌며 한강대교(西)가 서 있습니다. 그 옛날 초대 대통령이 전쟁이 터지자 남쪽으로 남보다 먼저 피신한 다음 한강 이북의 서울 시민들은 나 몰라라, 인민군들에게 떠맡기고 부숴버린 한강철교가 있던 곳. 더 아래로 마포 쪽입니다. 거기 있는 원효로 부근 강변3로 어딘가 자기 오빠에게 권총으로 살해당했다고 정부가 암암리에 뒤집어씌운 정인숙 여인 피살사건의 슬픈 현장이 있습니다. 정인숙 여인의 어린 아들의 귀가 마치 누구의 쪽박귀를 쏙 빼닮았더라는 풍문이 그 당시 국회 안에서 회자되던 뒤끝이었습니다.
졸시 「강변북로」는 관악구를 2011년 1월에 떠나 강 건너 용산구 이촌1동으로 이사한 그해 3월에 쓰고 격월간 《유심》 5/6월호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P.334 자작시 해설 「강변북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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