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5 행복한교회 주일설교
당신의 아기, 테바에 담아라
(출애굽기 2:1~10)
1. 총체적 난국과 우리의 소망
지금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는 총체적 난국의 상황입니다.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정치에는 관심 없이 평안히 살고 싶지만 정치란 우리의 자유, 경제생활, 그리고 신앙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에 그럴 수도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9월 9일에 조국씨를 법무부장관에 임명했습니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약칭 사노맹) 출신의 사회주의자를 법무부장관에 임명함으로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나라로 만들려고 한다는 강한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추구한다지만 그것은 인간의 죄성(罪性)을 간과한 엉터리 이념입니다. 오히려 사회주의는 국가 폭망의 지름길임을 북한이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조국씨와 그 가족은 수 없이 많은 비리의 의혹을 받고 지금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데 그런 사람을 버젓이 임명한 것은 대통령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 사건입니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젠더평등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지금 다양한 방법으로 젠더평등 실현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등이라는 허울 좋은 소리와는 달리 젠더평등은 분명한 기독교 탄압 정책입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여러 나라들에서 기독교가 어떻게 차별을 받고 있는지 우리가 뻔히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와 교인들 중에 현 정부의 기독교 역차별 정책에 동조하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는 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이단이 있고 이단에 속아서 동조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그 이단 중에 특히 두 이단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하나는 이만희를 보혜사라고 믿는 신천지교회입니다. 또 하나는 죽은 안상홍의 처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하는 하나님의교회입니다. 최근에 보라초등학교 입구의 한 건물에도 하나님의교회라는 간판이 달렸습니다.
초대교회의 문제점은 박해, 이단, 분열 세 가지였는데 오늘날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부패와 이단, 성평등 문제입니다. 이슬람이 2020년까지 대한민국을 이슬람화 하려는 정책도 여전히 문제이지만 지금은 동성애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아무리 심각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성도가 존재하는 한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시편 2편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시 2: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시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시 2: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그리고 시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시 2: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또 시편 2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예언합니다.
(시 2: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결국 이 시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시 2: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교회의 소망은 바로 주 예수님을 따르는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국교회를 총체적 난국에서 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3600년 전에 이집트에 살았던 한 부부에게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모세의 태어날 때의 이스라엘의 상황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애굽을 기근에서 건져냄으로 요셉의 가족이 애굽에서 번성한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그 형제들이 죽은 것은 후에 이스라엘이 점점 번성하는 것을 두려워한 바로는 이스라엘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며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 건축 현장에서 흙 이기기, 벽돌 굽기와 농사일을 시켰습니다.
(출 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출 1: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출 1: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출 1: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이 박해를 받으면서도 점점 더 번성하자 바로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에게 태어나는 사내 아기를 죽이라 명했는데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한 왕명을 어깁니다. 결국 바로는 이스라엘 부모가 직접 아들을 나일 강에 던지라 명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스라엘 남자는 점점 줄어 결국 멸종되겠죠.
온 민족은 강제노역을 하는 상황에서 태어나는 아들을 제 손으로 강물에 버려야 하는 이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습니다. 그런 총체적 난국에서 한 부부의 믿음이 이스라엘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3. 아기를 숨겨 기르는 담대함은 곧 믿음이었다.
아므람과 요게벳 부부는 원래 딸 미리암과 아들 아론이 있었는데 3년 후에 또 아들을 낳았습니다. 정부에서는 아들을 강에 던지라고 했지만 요게벳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2절에서는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겼다고 했는데 세상에 자기 아들이 예쁘지 않은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신약 성경은 좀 다르게 말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아이임을 알아 보았다는 말입니다.
(행 7: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아므람과 요게벳이 아들을 강에 던지지 않고 숨긴 것은 그들의 믿음 때문이었다고 말씀합니다.
(히 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발각되면 온 가족이 죽을 수도 있었지만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아들을 숨겼습니다. 그러다 더 이상 아기를 숨길 수 없게 되자 모세의 부모는 갈대(파피루스)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담아 그 상자를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가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이 상자가 어떻게 될지 이 소녀는 미리 알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소녀의 이름이 ‘미리암’이었거든요.
그때 바로의 딸 공주가 강에 목욕을 하러 왔다가 그 상자를 발견하여 열어보고 히브리인의 아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때 미리암이 겁도 없이 히브리 여인 중에 유모를 구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주는 허락을 했고 요게벳은 걱정 없이 아기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대본은 하나님께서 쓰셨지만 출연진들이 대단했습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의 믿음도 대단했지만 특히 이런 소녀 미리암도 보통 믿음의 소녀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미리암은 여성 지도자의 의미로 통용됩니다. 미리암(מִריָם)의 이름은 헬라어로 마리암(Μαριάμ)이 되고 영어로는 Maria 혹은 Mary 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바로 헬라어로는 마리암 즉 히브리어로는 미리암입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여러 명의 마리아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마리아/메리라는 이름을 찾으면 수천만 명도 더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시대의 아므람과 요게벳이 되고 또한 미리암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요게벳은 아기가 젖을 뗀 후에 공주에게 데려갔는데 공주는 물에서 건진 아기 이름을 모세라고 불렀습니다. 그때부터 40세가 될 때까지 이집트 왕자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80세에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암시가 있습니다. 갈대 상자는 히브리어로 테바(תֵּבָה)인데 테바는 상자 혹은 방주(方舟)를 뜻합니다. 노아의 여덟 가족이 들어가서 홍수로부터 구원받은 그 방주가 바로 테바(תֵּבָה)입니다. 요게벳이 모세를 담은 그 상자는 바로 구원의 방주라는 암시입니다. 요게벳이 석 달 동안 아기를 숨긴 것도 믿음의 행위였고 아기를 테바에 담아 갈대 사이에 가져다 둔 것도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4. 성도의 자녀를 신자로 기르지 못하게 하는 현실
성도가 자녀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기를 수 없게 하는 현실은 3600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정부는 나일 강 물에 자녀를 던지라고 했지만 오늘날의 세상은 자녀를 세속의 물결에 던지라고 요구합니다. 고리타분하게 신앙생활만 하도록 해서는 세상에서 성공도 못하고 출세도 못하고 죽을 테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편히 살려면 자녀를 하나님 자녀가 아닌 세상의 자녀로 살게 하라고 요구합니다.
3600년 전, 애굽의 요구대로 자기 아들을 나일 강물에 던진 부모도 있었듯이 오늘날도 세상의 요구대로 자녀를 세속의 물결에 흘려보내는 믿음 약한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의 자녀 중에 불신자가 많은 시대입니다. 그렇게 두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에서는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 없이 한 평생 살고나면 지옥의 영원한 형벌이 기다립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러나 믿음의 여인 요게벳은 석 달 동안 아들을 숨겨 기르다가 결국 그 아들을 나일 강에 내 놓아야 할 때에는 그냥 던진 것이 아니라 테바 즉 구원의 방주에 담았습니다.
오늘날 성도가 자녀를 담아야 할 테바 즉 구원의 방주는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의 자녀는 어차피 자녀를 세상에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자녀가 세속의 물결에서 구원받기 원한다면 이 구원의 방주 즉 교회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테바에 담으면 그 다음의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테바 즉 방주에 담을 수 있을까요? 이 시대의 테바, 구원의 방주는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만드신 유일한 구원 방주입니다. 테바에 담긴 모세가 구원받았고 테바에 들어간 노아의 가족이 홍수에서 구원받았듯이 교회에 속한 우리의 자녀가 구원받을 뿐 아니라 세상을 총체적 난국에서 구원하는 모세가 될 것입니다.
5. 믿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라.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볼 때 자기 자식이라서 예쁘게 본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자녀로 본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세속의 물결에 떠내려가지 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자녀들도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들입니다. 여러분이 그 자녀를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도록 잘 기르면 교회와 민족을 구원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말씀대로 살기로 작정하면 주께서 도우십니다. 자녀를 오로지 믿음으로 기르기로 작정하면 주님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여러분 스스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Identity)을 가지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자녀를 볼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잘 길러 달라고 여러분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은 물론이고 여러분의 자녀를 테바에 담을 때 그 자신이 구원받을 뿐 아니라 이 세상과 한국교회를 구원할 모세가 될 것입니다.
“요게벳의 노래”는 ‘흔들흔들 흘러 내려가는’ 부분에서 성경 내용과 잘 안 맞는 내용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은혜가 되는 CCM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