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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피천득 다시읽기' 일 시: 2024년 10월 18일(금) 15시 장 소: 서초문화재단 1층 1교육실 사회자: 심미애 간사 인사말: 정정호 부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축 사: 이상규 이사 (에세이문학 발행인) 축 시: 김미자 이사 (수수문학회 부회장) |
금아의 청정한 사랑 시학
김철교(시인, 평론가)
사랑을 체화한 삶
“내가 시와 수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순수한 동심과 맑고 고매한 서정성, 그리고 위대한 정신세계입니다. 특히 서정성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시와 수필의 본령이 그런 서정성을 창조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천득 「시와 함께 한 나의 문학 인생」 『나의 사랑하는 생활』(범우사, 2022)” 금아의 수필 「만년」에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금아가 어떻게 사랑하면서 살았는지, 그의 문학론에 충실한 몇 편의 시를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필자가 1968년 1학년 때 피천득 선생님 수업에 처음 참여했는데, 영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과 그리스-로마 신화를 꼭 알아야 한다면서, 수업시간에 영어 성경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었었다.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내용으로, 사랑이 무엇이고 진정한 사랑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성경은, 영문학은 물론 서양예술 모든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전이다. 헬레니즘의 신화와 헤브라이즘의 성경은, 인간 삶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으므로,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답도 성경과 신화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랑의 모습도 인간사인지라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필자는 얼마만큼 순수한 사랑인가 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요즘 뉴스에는 오염된 사랑이 넘쳐나기 때문에 사회가 삭막해져 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금아의 시는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다.
플라톤이 정의한 사랑의 단계이자 종류는 총 4가지로 육체적 사랑(Eros), 도덕적 사랑(Philia), 정신적 사랑(Stergethron),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무조건적인 사랑(Agape)이다. 플라톤의 주장을 따르자면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서서히 발전해 간다고 한다. 금아의 시가 품고 있는 사랑의 모습은 어느 단계에 이르렀을까?
이 글에서는, 이미 정정호 교수가 오랜 기간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금아의 시 세계에 대해 탁월하게 정리한 결과물인 『시집 꽃씨와 도둑』(피천득 문학 전집 I, 범우사)에서, 소제목 “불을 질러라”, “어린 벗에게”, “금아 연가”, “생명”, “이 순간”, “만남”에 있는 시 가운데 내 마음에 와닿는 각 1편씩을 읽고자 한다. 이미 「너」, 「이 순간」, 「꽃씨와 도둑」, 「찬사」, 「이런 사이」는 다른 원고에서 자세히 언급했기 때문에 생략한다.
필자는 예술작품을 대할 때 항상 다음과 같은 전제하에 모든 작품을 경건한 자세로 대한다.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분신이자 자식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첫째, 언제나 주장하는 바이지만, 시(詩)는 한편한편이 추상화라고 생각한다. 수용미학과 독자반응이론에 의하면, 아무리 쉽게 썼어도 읽는 사람마다 달리 받아드리는 것이 용인된다.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사람은 무의식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인류의 역사가 축적된 집단무의식과 개인의 살아온 과정에 의해 형성된 개인무의식에 의해 세상만사를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한 편의 시를 대할 때, 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수용자는 자신의 무의식 인도에 따라, 각기 다른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심지어는 같은 시를 언제 어디서 읽느냐에 따라서도 그 받아들이는 이미지가 다를 수 있다.
둘째,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자식과 같은 존재다. 조금은 못난 놈도 있겠지만 모두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한 뭉크의 기획전에 “나는 내 그림들 이외는 자식이 없다(I have no children other than my paintings)”라는 구절이 크게 쓰여있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예이츠(W.B. Yeats)의 청혼을 거절하면서, 그의 평생 애인 모드곤(Maude Gonne)이 예이츠에게 쓴 편지에 “당신과 나의 사랑이 낳은 자식은 당신의 시”라는 말도 유명하다. 모든 시는 시인의 자식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비록 이 글에서는 내 마음에 와닿는 몇 작품만 이야기하고 있으나, 충분히 금아의 삶과 시 세계를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필자는 정신분석비평과 신비평을 주된 분석 도구로 삼는다. 물론 역사주의 비평은 물론 독자반응이론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작품은, 어떤 비평방법으로 접근해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예술가의 독특한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역사주의 비평과 신비평에서 작품을 해석하는 관점은 다르다. 역사주의 비평에서는 작품이 작성된 당시 작가의 의도와 작가의 생애 및 역사적 배경을 중요하게 여기며, 신비평은 작품 외부의 맥락(역사적, 사회적 배경, 작가의 전기 등)을 배제하고, 문학 작품 자체에 대한 엄밀한 텍스트 분석을 중요시한다.
2. 등단 작품: 「차즘」: 어머니에 대한 사랑
마치고 기다림도
못견딘다 하옵거든
말없이 찾는 심사
아는 이나 아올 것이
십 년은 더 살 목숨이
줄어든 듯하여라
모습이 그인가 하여
하마 그인가 따라갔더니
닥치니 아니로세
애꿎어 봣횡세라
아쉬워 정 가시랴만
굳이 미워합니다.
오늘밤 달 뜨거든
그 빛을 타고 올라
이 골목 저 거리로
두루두루 찾삽다가
살며시 님 자는 곁에
내려볼까 합니다
―「찾음」 전문
금아의 등단작은 1930년 4월 7일 자 <동아일보>에 발표한 「차즘」(‘찾음’의 옛말)이라는 시였다. 정정호는 이 시에서 피천득이 찾고자 한 것이 엄마라고 본 이유는, 금아의 아버지가 7살에, 어머니가 10살에 작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꼭 엄마에 대한 사랑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금아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라 해도 무방하고,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대상에 관한 노래라 해도 수긍할 수 있다. 산문과 달리 시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시인은 ‘기다림’에 못 견뎌 ‘십년감수’했다고 한다. 혹시 사랑하는 사람인가 따라가 맞닥뜨리고 보니 다른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굳이 생각했던 형세라는 것이다.
우리도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 닮았다고 보여 따라가 보고는 착각인 것을 알고 실망할 때가 적지 않다. 내가 어느 날 병원에 갔더니 옛날 깊게 사귀던 여성을 닮아서 유심히 보니 젊은 여성이었다. 그래서 다가가 혹시 누구의 딸이 아니냐고 물으려다 그만둔 적이 있다.
“오늘 밤 달 뜨거든/ 그 빛을 타고 올라” “이 골목 저 거리로/ 두루두루” 찾아내어 “살며시 님 자는 곁에” 내려앉고 싶다고 한다. 절창이다. 누구든 연애편지에 이 글을 쓰면 성공하지 않을 수 없겠다.
'애꿎어 봣횡세라'는 ‘내 일부러 굳이 보려 했던 형세라’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시적 허용’이란 시에서만 특별히 허용되는, 언어 규범에 어긋나는 표현을 의미한다. 시인이 의도적으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어긋나는 표현을 사용하여 문법적 일탈을 보이는 것이다. 시인의 실수든 조판할 때의 실수든 틀린 글자도, 필자가 이후에 수정하지 않는 한, 시적 허용으로 볼 수 있겠다.
3. 어린이 시편: 「구슬」: 어린이 사랑
비 온 뒤 솔잎에 맺힌 구슬
따다가 실에다 꿰어 달라
어머니 등에서 떼를 썼소
만지면 스러질 고운 구슬
손가락 거칠어 못 딴대도
엄마 말 안 듣고 떼를 썼소
-「구슬」 전문
어린아이가 어머니 등에 업혀 있는데 솔잎에 맺힌 이슬방울을 발견하고는 구슬처럼 실에다 꿰어 달라 떼를 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엄마가 못 딴대도 떼를 쓴다. 사랑하는 마음이 엄마와 아이의 대화에서 이슬 구슬처럼 맑고 밝다. 그냥 어린이와 엄마의 대화 장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를 짓기에 족하고, 즐겁다, 행복하다. 그것이 동요나 동시의 매력이다. 모든 예술작품의 존재 이유는 인간에게 행복을 주고, 삶의 질곡에서 구원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 가면, 어린이들의 그림 앞에 자주 서게 된다. 단순하지만 순수한 어린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어린이 그림에도, 때로는 분노가 때로는 슬픔이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오염된 분노나 슬픔은 아니다. 꾸며진 마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좋다. 어른들의 그림에는 많은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만, 아이들의 그림에는 단순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다. 동요와 동시에 무슨 해설을 붙인다는 것은 군더더기가 아닐까 싶다.
4. 금아 연가: 소극적 사랑과 정(情)
그리워 애달파도
부디 오지 마옵소서
만나서 아픈 가슴
상사보다 더하오니
나 혼자 기다리면서
남은 일생 보내리다
- 「금아연가 7」 전문
손광성 수필가가 「금아 피천득 선생의 생애와 문학」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정정호편, 샘터, 2014)에서 대담 때 밝히고 있는 ‘구원의 여인상’에는, 「유순이」에 나오는 간호부, 「구원의 여상(女像)」과 「빠리에 부친 편지」에 나오는 짝사랑했다던 ‘우리 애 미술 선생님’, 금아 시에 곡을 붙이신 ‘K라는 음대 교수’가 있다. 사랑을 위해 가슴앓이에 그쳤으니, ‘소극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엄마와 따님을 무척 사랑했으나 부인에 대해서는 웃으며 ‘사실 쌀 배급 타려고 결혼한 겁니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미루어, 아내에 대한 연가는 아닌 듯싶다. 금아의 시와 수필에 명시적인 부인의 이야기가 거의 없는 것은 금슬이 좋지 않아서가 아닐 것이다. 여기 있는 모든 분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시인들이 써대는 연가는 아마도 팔 할이 외간 남자나 외간 여자를 염두에 두고 썼을 듯싶다. 아무리 귀중한 존재라하더라도, 항상 곁에 있으면 그 귀중함을 자주 잊는 것이 인간심사라 하겠다.
<사랑의 유효 기간은 3년>이라는 프랑스 영화도 있다. 미국 코넬대학교 인간행동연구소에서 5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사랑의 유효 기간은 18~30개월이라고 했다. 사랑의 호르몬이 30개월이 지나면 더는 분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다.
부부가 결혼 후 3년이 지나면, 정(情)으로 산다고 한다. 어쩌면 정(情)이란 정제된 사랑, 승화된 사랑, 플라톤이 말한 아가페적 사랑이 아닐까 싶다. ‘정’(情)은 애착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추구하며, 이러한 유대는 신뢰와 안정감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부 사이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형성된 정서적 유대는 안정된 관계의 기초를 이루며, 서로에게 심리적 안정과 안전을 제공한다.
5. 「생명」: 살아 있음에 대한 사랑
억압의 울분을 풀 길이 없거든
드높은 창공을 바라보라던 그대여
나는 보았다
사흘 동안 품겼던 달걀 속에서
티끌 같은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을
실연을 하였거든
통계학을 공부하라던 그대여
나는 보았다
시계의 초침같이 움직거리는
또렷한 또렷한 생명을
살기에 싫증이 나거든
남대문 시장을 가보라던 그대여
나는 보았다
사흘 동안 품겼던 달걀 속에서
지구의 윤회와 같이 확실한
생生의 생의 약동을!
- 「생명」 전문.
생명의 신비. 아무리 AI 시대가 되어도 생명은 창조할 수 없다. 왜냐면 AI는 기존 정보를 근거로 해서 해답을 내놓는데, 완벽한 생명에 대한 정보는 존재할 수 없다. 우주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운행하고 있듯이 우리 몸은 작은 우주여서 수많은 세포가 우리가 알 수 없는 상호작용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아무리 의사가 수술을 잘해도 그것을 치유하는 것은, 우리 몸 자체, 즉 창조주의 영역이다.
억압의 울분을 풀 길이 없을 때, 실연을 했을 때, 살기에 실증이 났을 때, “사흘 동안 품겼던 달걀 속에서/ 지구의 윤회와 같이 확실한/ 생의 생의 약동을!”보라는 것이다. 무(달걀노른자와 흰자에 불과한 알)에서 유(21일 만에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를 창조하시는 창조주 앞에서 울분, 실연, 실증은 물론 그보다 더한 인생사인들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우리의 살아 있음 자체는 기적이며, 오직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할 따름이다.
6. 「어떤 유화」 : 예술작품에 담긴 사랑의 이미지
오래된 유화가 갈라져
깔렸던 색채가 솟아오른다
지워 버린
지워 버린 그 그림의
- 「어떤 유화(油畫)」 전문
유화는 오래되면 물감이 틈이 벌어져 밑그림이 보이게 된다. 우리 인간도 오래 살다 보면 참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솔직해지기 마련이다. 이 시를 읽고 나도 조심조심 곱게 늙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밑그림에 대한 일화가 있다. 밀레의 그림 <만종>에서 기도를 드리는 남녀 사이에 있는 감자 바구니 아래에, 관으로 추정되는 작은 나무상자가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어떤 정신이상자가 이 그림을 관람하다가 칼로 찢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밀레는 당시의 피폐한 농촌 현실을 그리려 했지만, 죽은 아이를 묻는 모습은 너무 사회적 충격이 크리라 생각되어, 현재 그림처럼 감자 바구니로 수정했다는 것이다. 밑그림의 죽은 아이를 넣었던 관이, 밀레의 진실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어떤 유화(油畫)」는 또 다른 금아의 시 「이런 사이」와 함께 읽으면 좋겠다. “한여름/ 색깔 끈끈한 유화(油畫)/ 그런 사랑 있다지만// 드높은 가을 하늘/ 수채화 같은 사이/ 이런 사랑도 있느니”(피천득, 「이런 사이」, 『꽃씨와 도둑』, 피천득 문학전집 1, 범우사).
수채화와 같은 사랑은, 아마도 투명하고 솔직한 감정을 지닌 사랑으로, 서로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진실하게 표현하는 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물과 색의 농도, 종이의 흡수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수채화처럼, 감정이 자주 변하고, 예측할 수 없는 모험과 같은, 사람 냄새 나는 사랑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덧칠이 허용되는 유화와 같은 사랑은, 완성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채화보다 꾸밈이 많으므로 산뜻한 맛은 수채화에 미치지 못할 듯 싶다.
7. 「만남」: 일상에 대한 사랑
그림 엽서 모으며
살아왔느니
쇼팽들으며
살아왔느니
겨울 기다리며
책 읽으며 -
고독을 길들이며
살아온 나
너를 만났다
아 너를 만났다.
찬란한 불꽃
활짝 피다 스러지고
찬물같은 고독이
평화를, 다시 가져오다.
- 「만남」 전문
“너를 만났다/ 아 너를 만났다.// 찬란한 불꽃/ 활짝 피다 스러지고// 찬물같은 고독/ 평화를, 다시 가져오다.”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멀리 미국에서 사는 따님으로 볼 수도 있다. 혹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잊고 지내던 첫사랑을 우연히 만났다가 헤어졌을 때의 감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누구든 오랫동안 간절히 보고 싶었던 사람이 틀림없다. 그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가 헤어지고 난 후 “찬물같은 고독”이 밀려와도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평화를 다시 가져다주는 “찬물같은 고독”이란 어떤 것일까? 금아는 「이 순간」에서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라고 하면서 ‘허무’도 언급하고 있다. 고독과 허무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고독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긍정적 감정이지만, 허무는 목표나 가치를 잃었을 때 느끼는 무기력과 불안감을 의미한다. 철학자들은 고독을 단순히 부정적인 경험으로 보지 않고, 고독을 통해 자신과 대면하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중요한 기회로 본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가 상실될 수 있다고 보았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는 고독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고독은 명상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한다.
이 시에서 ‘간절한’ 만남을 이룬 후에, 이제는 더욱 마음을 비우고 차분한 일상으로 회귀하는 시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8. 피천득 문학의 요체
금아 문학에 관한 연구가 많지는 않지만 중량감 있는 연구들이 있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피천득 시집 『생명』의 해설을 쓴 석경징에 의하면, “절약과 여유를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은 모순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언어의 절약과 정서의 여유가 공존할 수 없는 것이 아님을” 피천득의 시 세계가 보여준다.
김재홍은 「청빈과 무욕의 서정」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샘터, 2014)에서 “금아의 시 세계를 요약해 보면, 첫째 생명사상, 둘째 자유사상, 셋째 사랑의 정신, 넷째 평화주의”로 보고 있다.
이경수는 「피천득 시 세계의 변모와 그 의미」 『비평문학』(2012년 45호)에서 “피천득의 시에는 일관되게 생명의 추구라는 주제의식이 드러나지만, 최근의 시집으로 올수록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인식, 일상적 체험이나 인식,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시들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정정호는 “사랑의 실천이 궁극적인 목표였던 금아 문학에서 핵심적인 단어인 정(情), 사랑, 아름다움, 기쁨은 결국 그의 시 세계의 지배적 이미지들인 물, 여성, 어린아이를 통해 반복되고 변형하며 구체화한다. 이것들은 다시 충일한 생명의 노래가 되고 실천하는 사랑의 윤리학이 된다.”(정정호, 『시집 꽃씨와 도둑』 (피천득문학전집 1, 범우사, 2022)고 요약한다.
이를 뭉뚱그리면, 금아의 작품세계를 ‘언어의 절약과 정서의 여유가 공존하는, 생명과 사랑의 시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금아의 작품은 비교적 길이가 짧고, 서정성이 시와 수필의 본령이라는 그의 주장이 잘 나타나 있으며, 문장마다 그의 사랑이 촘촘히 배어 있다. 이 글에서 읽은 시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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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교(1948~ )
시인, 평론가, 소설가.
서울대 영어교육(68-76), 중앙대 경영학박사(1988), 중앙대 문학박사(2018)
(현) 배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심재문예원 대표, 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시집: 무제2018(시와시학, 2018) 등 11권
산문집: 영국문학의 오솔길(시문학사, 2012) 등 11권
홈페이지: www.christpo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