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안천습지생태공원 >
해질 녘에 그것도 갈대가 말라버린 절기, 칼같이 억샌 기다란 잎 사이로 이는 날카로운 바람이 그대로 마음의 칼바람이 되어 불어온다. 최명희 <혼불>의 첫 장면 대실에 부는 바람이 이러했을까. 갈대도 대처럼 지 몸끼리 부딪쳐서 내는 소리가 깊고도 고즈넉하다. 늦가을 갈대잎이 슥슥 부딪치며 모대겨, 내 번민도 안아갈 듯하다.
그 소리가 그리우면 만추, 입동이라도 습지공원을 찾아보자. 인공으로 조성된 습지에 서려있을 법한 인위적이거나 어설픈 기운은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습지는 산과 물의 경계, 육지와 바다의 경계이다. 이쪽에서 추스리고 저쪽으로 건너갈 일 있으면, 무거운 거 던져버리고 가볍게 건너갈 일 있으면 이곳에 던지면 된다.
갈대숲은 정화의 주역이다. 온갖 오염물질도 다 걸러내어 깨끗한 물로 만든다. 안산갈대습지공원도 이런 갈대의 생태를 이용한 사례다. 온갖 찌든 인간 때 다 걸러주니, 새로운 출발하기에 최적의 정화 공간 아니겠는가.
명칭 : 경안천습지생태공원
소재지 : 광주시 퇴촌면 정지리 571-2
방문일: 2020.11.25.
2009년에 국내 처음으로 조성한 대단위 인공습지이다. 팔당호 유입하천 중 오염이 심했던 경안천 하류에 수질정화를 위해서 조성되었다. 약 2km에 이르는 산책로에는 소나무, 왕벚나무, 단풍나무, 감나무, 왕버들, 선버들 등이 우거져 있고, 갈대 군락과 부들 군이 조성되었다. 연밭 위로 목재 데크길이 들어져 있고, 곳곳에 철새조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7-8월에는 언덕에는 접시꽃, 연못에는 연꽃이 가득 피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역 명소가 되었다. 초중고생들의 생태탐방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산 교육장이기도 한다.
일본 홋카이도의 쿠시로습지, 남불 어디에선가 호수 사이로 한참을 이어지던 습지는 모두 기차여행의 깊은 정취로 다가왔었다. 기차 발 밑에, 창가에 두고 내려다보는 습지는 기차칸과 땅 밑의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더 멀었다. 쿠시로 습지는 가도가도 계속되는 거 같았다. 광활한 대자연의 깊은 수렁, 대자연은 빠지지 않고 힘을 얻는 수렁, 사람만이 빠지는 수렁같은 느낌, 사람이 범접하기에는 너무 깊고, 원시의 시원같은 아득함과 두려움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습지에는 연안습지, 내륙습지가 있다. 우리는 연안습지 7곳, 내륙습지 16곳이 람사르습지에 등록되어 있다. 연안습지는 갯벌을 말한다. 갯벌 외에 우리에게 알려진 우리 습지는 안산의 갈대습지, 창녕의 우포습지 등등이다. 이들 습지는 광대하고 철새가 많이 날아드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조류독감이 유행하면 어김없이 접근이 금지된다. 둘 다 좋은 곳이지만 가까이 있어도 맘먹고 가야 한다. 광활하여 습지 안으로 들어가면 한참은 시간을 내어 밖의 세상은 잊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습지는 다르다. 마을 안에 있고 길가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면 바로 습지 입구다. 생활속의 습지, 지역민의 습지다. 세계 5대 갯벌 중 우리 갯벌이 특별한 것은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내륙습지인 경안천습지도 그렇다. 내륙습지 중 생활 밀착도가 제일 높은 곳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덕분에 가장 편안하게 느껴지는 동네 습지가 되어 있다. 조성된 지 10년도 안 되어 동네 습지가 제대로 된 셈이다.
곳곳에 붙어 있는 일방통행 표지판. 코로나가 낳은 새로운 생활 풍속이다.
습지공원의 입구, 안내도가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데크길로 연결된다.
아마 왜가리인 듯. 오리떼와 왜가리가 눈에 띈다.
곤지암읍 열미리에서 태어난 구중서(1936~) 선생의 문학비가 2015년에 건립되었다. 비평가와 시인으로 활동했던 광주 출신의 문인이다. 인공습지에 이처럼 비중 있는 고향인사의 문학비가 서자, 생태공간에서 문화공간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2015년 9월 19일 너른고을문학 20주년을 기념하는 문학축전을 치르는 가운데, 문학비의 제막식도 함께 이루어졌다.
연못에 오리떼가 노닌다. 뒤로는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동네가 바로 담장너머다. 지역주민들은 습지 내에서 생산되는 연꽃 등 소득작물 채취·판매를 할 수 있다. 생활밀착형 습지다. 보기좋은 인간 자연 공생의 모습이다.
너댓 군데 조류관찰대는 모두 금줄을 쳐놓았다. 코로나, 전천후의 강력한 방해꾼이다.
황혼녘이라 황금빛 하늘을 만난다. 마른 갈대잎과 황혼의 황금색, 갈대숲이 다리임은 분명하다. 나를 딛고 건너면 신세계 엘도라도를 만나리라. 그러나 알고 보면 내가 선 땅이 엘도라도다. 저쪽에서 보면 나도 황금으로 빛날 터이니까.
다른 곳으로 건넌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으로 돌아온다는 말 아니겠는가.
습지는 자연의 휴식공간, 이완공간이다. 자연이 목욕하는 공간이다.
그럼 아까 본 것이 왜가리가 아니고 고니인가?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습지 언덕에는 자전거길, 걷는 길이 조성되어 있다.
새들이 제법 눈에 띈다. 새들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도 여럿 눈에 띈다. 습지와 주민, 야생조류, 작가가 얽혀 있다. 자연과 생활과 문화가 얽혀 있다.
이곳 광주는 토마토 산지다. 봄도 아닌 겨울 11월이 수확시기다. 길가 곳곳에서 토마토를 판다. 토마토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토마토 요리경연대회도 연다. 습지공원 정문 맞은편에서도 판다. 일부러 토마토 요리를 찾아 먹어보았다.
절반쯤 마른 빵에 토마도 조각을 함께 넣어 만든 샐러드다. 퇴촌 토마토를 넣었다고 주인은 자부심이 강하다. 먹을 만하다. 치즈를 잔뜩 뿌리고 소스를 끼얹었다. 바닥에는 양배추가 깔려 있다. 함께 섞어 먹으면 한끼 식사 대용도 가능하다. 남불 샐러드가 생각난다. 치즈 아닌 단백질이나 지방, 햄 부류면 괜찮겠지, 거기다 야채를 더 넣으면 남불샐러드다. 기차 탈 때 도시락으로 싸가기도 한다. 이 샐러드도 도시락 대용이 되지 않겠는가.
토마토 요리를 더 많이 개발하면 좋을 것같다. 과일로 여기는 인식을 넘어 채소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길을 찾는 것이 숙제다. 토마토는 튼실하고 맛도 꽉 차 있는 느낌이다. 찰토마토와는 또 다르게 사각거리는 맛이 강하다.
'퇴촌갈비밥'집에서 먹은 음식들이다. 메뉴가 엄청난 요리 실험을 한 결과로 탄생한 음식들인 거 같다. 그중 이 두가지가 토속적인 것과 얽혀 있어 소개한다. 감자가 오뉴월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눈같이 포곤거리는지, 아마 이 놀라운 식재료도 이곳 광주산일 듯하다.
멀지 않은 곳에 얼굴박물관이 있다. 허술한 외관에 놀라고, 꽈찬 전시물에 다시 놀라는 박물관이다. 어설픈 관주도의 공립 미술관보다 훨씬 실속있는 곳이다. 두 군데를 엮고 맛있는 밥 찾아 먹으면 하루가 풍성한 나들이 일정이 된다. 식당은 따로 소개한다.
얼굴박물관. 연극연출가 김정옥 선생님이 2004년에 개관한 박물관이다. 이곳은 꼭지를 달리해 따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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