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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륙사
몽골과 러시아 그리고 타타르스탄
현재의 보편적 역사에서는 중세에 유라시아를 휩쓸었던 몽골 제국의 몽골을 타타르와 병기해서 사용하고 있다. 몽골 제국 역사의 주체를 몽골 혹은 몽골 타타르 아니면 그냥 타타르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표기가 옳은 것일까? 그리고 몽골과 타타르가 동일한 것일까?
아니다. 몽골과 타타르는 다르다. 현재 몽골은 모두가 아시다시피 중화인민공화국의 정북 방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구성원인 몽골인은 몽골 어군의 몽골어를 사용하는 민족이다. 그에 반해 타타르인은 중앙아시아 국가의 여러 지역에 소수민족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또 러시아 연방 내에 타타르스탄이라는 자치국으로도 위치하고 있는데, 이 타타르인은 몽골인과 다르게 투르크 어군의 민족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몽골인과 타타르인은 지역과 언어, 족속 모든 것이 일치하지 않는 이질적인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보편적 역사에서는 완전히 이질적인 이러한 민족명을 왜 혼용하거나 병기하여 표기하였을까? 또 이러한 표기는 몽골 제국의 역사와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이를 알려면 몽골인과 타타르인의 실체가 필요한데, 먼저 몽골인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조선 정조 때 이갑이 쓴 기행문집인 ‘연행기사’의 ‘견문잡기’에 나타난 몽골인의 기록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몽고인은 청인과는 아주 다르게 생겼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 수염이 붉다. 그리고 모두 사납고 거칠며 집에서 살지 않는다. 아주 추운 때라도 단지 수레 위에 장막을 치고 길에서 자며 아침에는 눈을 털고 일어난다. 배가 고프면 다만 낙타의 고기를 먹을 뿐이고 또 개와 한 그릇에 먹는다. 강한하고 추악하기가 이와 같기 때문에 청인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천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꾸짖고 욕할 때, 그를 몽고 사람에게 비교하면 반드시 불끈 성을 내고 큰 욕이라고 하니, 몽고인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고서에 나타난 몽골인의 특성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몽골인의 특성과 매우 다르다. 청인과도 외형적·문화적으로 매우 다른 몽골인, 그 구체적 생김이 눈이 푸르고 수염이 붉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몽골인의 실체가 색목인(백인)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몽골인은 어떠한가? 그들에게는 그 어떤 색목인적 특성을 쉽게 찾을 수 없으며 오히려 그들은 오늘날의 그 어떤 지역의 황인종에 비해 북방계의 순혈적 황인종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다. 오늘날의 몽골인이 정말 위의 고서에서 말한 몽골인과 같은 족속인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계속해서 같은 서적의 기록을 살펴보자.
‘대비달자는 곧 아라사인데, 몽고의 별종으로 나라가 사막 바깥 지극히 먼 땅에 있다. 그들은 키가 크고 몸이 건장하여 상모가 극히 흉한 영악하다. 눈은 푸르고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코가 주먹같이 높고 붉은 수염이 텁수룩하게 났다. 그리고 모두 몇 사람을 합한 것 같이 힘이 세다. 사람이 있어도 오줌을 누며 부녀자를 피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데 입으로 연기를 뿜지 않고 코로 내보낸다. 모두 코가 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대비달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청인들은 극히 두려워하여 방수하기를 극히 엄하게 한다. 출입할 때에는 갑군이 반드시 따라다니나 오히려 제재하지 못한다.’
아라사는 러시아를 말한다. 그런데 러시아인의 특성을 푸른 눈과 광대뼈, 붉은 수염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앞에서 말한 몽골인의 특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 러시아인을 몽골인의 별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 이제 몽골인의 정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으시는가? 본래의 몽골인은 색목인이었으며 러시아인과 그 형상이나 습성에서 거의 일치를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몽골인으로 설정된 내외몽골 지역의 몽골인은 누구인가? 전형적인 북방식 황인종의 순혈적 형상을 지닌 현재의 몽골인은 샤머니즘과 융화된 티벳식 불교를 믿는데 티벳과 마찬가지로 ‘삼태극 문양’을 중시하고 있다. 샤머니즘에 융화된 불교와 삼태극 문양이란 것은 우리의 전통과도 거의 일치를 보인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몽골인은 외형적인 형상 뿐만아니라 그 내면의 문화적 전통까지 모두 전형적인 동방식이며, 색목인적 요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오늘날의 몽골인들은 서역인과 피를 섞은 이슬람교도인 투르크인들이 천산 산맥을 넘어 신강성 지역으로 넘어 오기 전까지는 티벳인과 문화를 깊이 공유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몽골 제국은 몽골인 제일주의로 유라시아대륙을 통치했으며 몽골인을 제외하고는 색목인을 가장 우대했다고 하는데, 색목인을 우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들 역시 색목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투르크계의 이슬람교도 역시 존중하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이야기들은 오늘날의 황인종의 불교도인 몽골인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일들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모순이 없으려면 오늘날의 몽골인이 색목인의 이슬람교도여야 한다.
현재 몽골인으로 설정된 민족은 전통적인 고려-조선의 지역인들 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렇다면 실제의 몽골인은 누구일까? 실제의 몽골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저 위의 ‘연행기사’에 나타난 청인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연행기사’는 청인을 색목인의 특성을 지닌 몽골인과 전혀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청인이 전형적인 황인종의 형상을 지녔음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또 청인들은 추악한 몽골인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매우 천시하고 있었음을 무척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몽골인과 그 형상과 생활 습성이 비슷한 러시아인에 대해서도 청인들은 비슷한 생각과 태도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의 내용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다른 사항은 청과 몽골, 러시아의 지리적 위치 관계인데, 청인은 몽골인이나 러시아인 같은 색목인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곳에 거주했던 것 같다. 보편적 역사대로 청이 오늘날의 현대중국 전신국가로 동아시아대륙에서 존재했었다면 청인은 색목인을 쉽게 목격할 수는 없다. 청의 실제 위치는 동아시아대륙이 아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현재의 보편적 역사대로라면 러시아 지역의 역사를 처음 열어간 이들은 고대의 스키타이인과 사르마티아인 등인데 이들은 오늘날의 러시아인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으며, 중세기엔 노르만의 지배에 이어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러시아인이 최초 독립한 시점은 1480년의 모스크바 공국 시기로 설명되는데 약소한 모스크바 공국은 얼마가지 않은 시점인 1610년 폴란드에 의해 멸망했다.
러시아가 완전히 독립한 것은 1613년 로마노프 왕조 이후의 일인데 러시아의 본격적인 역사의 시작은 짧게는 이 시점으로 잡을 수 있으니, 러시아의 역사는 400여년 정도 되는 셈이며 길게 모스크바 공국 시기를 역사의 시작으로 보아도 500여년을 넘지 못한다. 물론 17세기 들어 겨우 완전한 독립을 쟁취한 러시아는 모스크바 주변의 동유럽 일대에만 찌그러져 있던 소국으로 설명된다.
그러던 러시아가 18세기 이후에 로마노프 왕조의 4대 차르 표트르 대제에 의해 팽창하기 시작했으나, 어디까지나 당시 역사의 변방 지역인 유럽으로의 북진 정책과 서진 정책에 불과했다. 이후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로마노프 왕조의 8대 차르인 예가테리나 여제에 의해 겨우 동진 정책을 구사하게 된다. 그러니까 러시아인이 동방으로 이주해 온 시점은 아무리 빠르게 봐도 18세기 말엽 이후란 것이다.
‘연행기사’가 쓰여진 시기는 18세기 후반의 일인데, 당시 청이 동아시아대륙에 있었다면 청인들은 러시아인을 쉽게 목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청의 본영은 동아시아대륙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색목인의 몽골인과 러시아인을 흔히 볼 수 있었을 청의 위치는 어디일까?
이를 추정하기 위해서 1689년 청과 러시아가 국경선을 확정한 네르친스크 조약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다. 보편적 역사에서 네르친스크 조약을 오늘날의 만주(동북삼성) 지역의 흑룡강 부근에서 청과 러시아에 의해 국경선 분쟁이 일어나자 이를 정리한 조약으로 설명된다.
그런데 이 네르친스크 조약은 모순되는 부분이 큰 것이 앞에서도 말했지만 러시아가 동아시아 부근으로 진출해온 시점은 18세기 말엽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데 네르친스크 조약이 그보다 한 세기나 이른 시점에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체결되었다니?
이 모순을 분석해 보면 사실은 이러할 것이다. 17세기 후반 청과 러시아가 국경선을 확정한 조약을 체결한 것이 실사라면, 네르친스크와 흑룡강의 위치는 오늘날의 동북삼성 지역이 아니라는 것으로 지명 이식의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에 대한 방증을 러시아의 역사에서 찾아보면 러시아가 동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한 시점은 18세기 후반이지만 중앙아시아 부근으로 남하한 시점은 17세기의 일이라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투르키스탄 국가들에 러시아인 등의 슬라브계 민족이 최초로 이주한 시점은 17세기로 설명되며, 투르키스탄 국가 중에서도 러시아와 국경선을 마주한 중앙아시아 북부지역의 카자흐스탄에는 러시아인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전의 글에서도 누차 중앙아시아 북부지역인 카자흐스탄 일대가 실제의 만주며 청은 이 곳에서 일어났을 것으로 추론한 바 있다.
네르친스크 조약과 관련해서도 청을 카자흐스탄 등의 투르키스탄 지역에 있던 나라로 치환해 보면 저러한 역사의 모순도 쉽게 풀린다. 실제의 네르친스크와 흑룡강도 오늘날의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경계 지역에 존재했을 것이며, 대륙 그 자체였던 조선의 강역이 반도로 좁혀지면서 대륙의 조선 북부 지역에 있던 청-만주의 위치와 흑룡강 등의 위치도 반도의 북부지역으로 이동되었던 것이리라.
청의 역사 강역을 위처럼 놓고 보면 카자흐스탄 지역 등에 거주하던 청인들이 ‘연행기사’가 쓰여진 18세기 후반에 러시아계 색목인을 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참고적으로 살펴볼만한 역사적 사건이 보편적 역사에서 러시아와 우리가 최초로 충돌했다는 ‘나선정벌’이 될 텐데, 이 ‘나선정벌’의 경우도 실제의 역사와는 달리 상당히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선정벌’은 1650년대 효종 재위기 연해주 부근의 흑룡강 방면으로 남하하는 러시아를 조선과 청이 연대하여 격퇴시킨 사건을 말하는데, 그 전투 장소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러시아가 동방으로 본격적으로 진출해온 시기와 ‘나선정벌’이란 전투 발생 시기가 너무 크게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 사건 역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가 아닌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후에도 러시아와 청의 국경선 지대로 예상되는 남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북부 지역에서 지속적인 분쟁이 있었을테고, 이러한 분쟁들이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17세기 당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뻗어온 것이고, 이를 거점으로 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온 것일텐데 그 시점이 18세기 말엽이란 것이다.
‘나선정벌’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또 다른 역사의 진실은 조선과 청의 관계인데, 보편적 역사에서는 조선이 청에 종속되었던 국가처럼 설명되는데 실제의 역사는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청은 남하하는 러시아를 방어하기 힘겨워지자 조선에 출병 요구를 하는데 조선의 총수병 출병 즉시 러시아군을 두 차례나 격퇴시켰다는 것이다. 이 ‘나선정벌’만 봐도 17세기 당시 아시아의 패자가 누구였는지 쉽게 확인되지 않는가. 당시의 청은 조선에게 출병 요구를 한 것이 아닌 구원병 요청을 조아렸으리라 보는 것이 역사의 전후 관계를 봤을 때 타당하리라 여겨진다.
이렇게 청은 당시 실제의 만주인 카자흐스탄 등에 본영을 두고 러시아와 대치하며 러시아계 색목인을 목격해 왔으리라 보는데, 그렇다면 청인이 목격한 몽골계 색목인은 누구일까? 이해의 도움을 위해 현대중국의 학자 주학연의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의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말해 보겠다.
몽골족에 관한 중요한 저술인 <몽골비사>와 <집사>에서는 몽골과 달단(또는 타타르)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1253년 8월 볼가강에 도착한 서양 선교사 르부르크는, 칭기즈칸의 손자 발도를 알현하기 직전의 상황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
궁정의 일부 서기관들이 우리에게 말하였다 : “당신들은 우리 주인님을 기독교도라고 불러서는 안 되오. 그는 기독교도가 아니라 몽골인이시니까.” … 그들은 타타르인으로 불리는 것도 원치 않았다. 타타르인은 다른 종족이기 때문이다.
몽골어를 한자로 전사해 기록한 <몽골비사>에 등장하는 마아리혹 즉 마르크 역시 말갈로, 이와 발음이 유사한 것이 멸리걸 즉 미리키이다. 그리고 파아올은 족명 백악오와 대응된다. 따라서 칭기즈칸의 11대조는 붉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멸리걸-백악오 부족의 후예인 셈이다. 그의 선조는 아마도 힐일사(하카스) 지방 - 예니세이 강 상류 겸하 유역의 견곤국으로, <신당서>에 따르면, 그곳 “사람들은 모두 크고 머리칼이 붉으며 얼굴이 희고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으로 친출했다가 피정복 토착민들의 혈연에서 인도-유럽인종의 외모를 물려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위 글을 보면 원래의 몽골인과 몽골 제국의 칭기즈칸의 가계가 색목인이었음을 말해주는 문헌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몽골인과 타타르인은 처음부터 같은 족속은 아니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오늘날엔 몽골인과 타타르인은 거의 같은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데, 이는 후대에 몽골과 타타르가 서로 동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두에서 말했지만 오늘날 몽골 제국의 후예로 거론되는 국가로는 몽골과 러시아 연방의 자치공화국인 타타르스탄이 있다. 이들 중 몽골과 그와 동일한 의미로 쓰여지는 타타르 양자를 계승한 나라는 당연히 타타르스탄이다. 오늘날의 몽골은 역사 조작의 희생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리나 인종, 종교 등 그 어떤 부분에서도 문헌에서 말하고 있는 몽골 제국과 일치되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타타르스탄은 대부분의 면모에서 문헌에서 말하는 몽골과 상당수 일치한다. 타타르스탄은 16세기 이전까지 몽골 제국을 이어 실질적으로 러시아를 지배하였으며, 이슬람교를 믿는 색목인이다. - 몽골 제국은 이슬람교를 존중하였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종교적 색채를 담은 정책이었다고 생각된다. - 또 이 타타르스탄은 몽골 제국과 관련된 문헌에서 자주 언급되는 볼가강 유역에서 대대로 거주해왔으며 오늘날도 그 유역에 자치국을 세워 놓고 있다.
볼가강-카마강 유역의 타타르스탄은 지리적으로 자연스럽게 중앙아시아 지역과 연결 될 수밖에 없으며 그 북부인 카자흐스탄이 실제 역사 속 청의 전신 지역이라면, 청인들은 타타르스탄 지역의 몽골-타타르계 색목인을 아주 쉽게 목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주를 비정하는 것은 모든 동양사를 푸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는 해법이며, 중앙아시아 북부 지역인 카자흐스탄-남러시아 일대가 실제 만주임을 숙지하면 진실된 역사는 쉽게 보인다.
16~17세기 이후 비로소 완전히 독립하여 역사를 시작하는 러시아는 타타르스탄의 몽골-타타르인을 가혹하게 학살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후대에는 이러한 일들을 두고 러시아인이 타타르스탄의 타타르인을 몽골인으로 착각하여 저질러진 실수이며 헤프닝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러한 해명이 과연 진실일까?
몽골 제국의 역사는 실제로는 색목인의 역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몽골 타타르의 역사가 왜 황인의 역사로 각색되었을까? 찬란한 문화 대국 고려-조선의 역사에 비해서는 한 뼘의 역사도 되지 않던 몽골 타타르의 역사를 올려 세우고, 고려-조선의 역사를 조작하여 축소·은폐한 것 역시 서세동점, 색목인의 세계 지배를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