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선교여행을 포기하고 돌아가 버리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 회당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하나님의 약속을 전합니다.
17-31절 족장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출애굽과 광야 여정, 가나안 땅 정복과 사사들의 통치, 사울을 세워 시작한 왕정까지의 역사를 진행해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통치에서 희미하게 나타난 그 나라를 그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선명하게 성취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를 몰라보고 나무에 달아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살리시고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일이고, 그 예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자의 것입니다.
13절 버가에 이르자 바울과 바나바를 돕던 요한(마가)이 선교를 중단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이후 바울이 선교여행에 그를 다시 합류시키기를 반대하는 것을 볼 때(15:37-39), 타우루스 산을 넘어 행군하는 여정을 앞두고 지레 부담을 느끼고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교를 향한 열정도 좋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 합류하면 동역자들과 사역에 어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14절 요한은 떠났지만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은 계속됩니다. 남부 갈라디아 고원 지역에서의 바울은 육체의 약함(갈 4:13)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이지만, 그는 강도가 자주 출몰하는 (고후 11:26) 타우루스 산을 넘어 버가에서 북쪽으로 160킬로미터 떨어진 비시디아 안디옥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합니다. 이렇듯 성령은 우리를 꽃길로만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적인 연약함, 숱한 변수, 절망적인 환경과 기꺼이 맞서게 하시는 분입니다.
14-16절 비시디아 안디옥은 이방 지역이지만 유대인이 모이는 회당이 있었는데, 바울은 안식일에 그곳을 찾습니다. 바울이 랍비임을 알아본 회중들이 설교를 권하자 바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는 복음을 전할 곳이면 어디든 가는 순종의 사람이자, 전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준비된 일꾼이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못하는 것은 바울과 달리 순종하지 못할 핑계가 많고, 삶의 중심에 복음을 두지 않아서가 아닙니까? (매일성경, 2024.05/06, p.94-95, 마가의 이탈과 바울의 전진, 사도행전 13:13-31에서 인용).
① 요한이 선교여행을 포기하고 돌아가 버리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 회당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하나님의 약속을 전합니다. 족장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출애굽과 광야 여정, 가나안 땅 정복과 사사들의 통치, 사울을 세워 시작한 왕정까지의 역사를 진행해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통치에서 희미하게 나타난 그 나라를 그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선명하게 성취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를 몰라보고 나무에 달아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살리시고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일이고, 그 예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자의 것입니다.
② 버가에 이르자 바울과 바나바를 돕던 요한(마가)이 선교를 중단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이후 바울이 선교여행에 그를 다시 합류시키기를 반대하는 것을 볼 때(15:37-39), 타우루스 산을 넘어 행군하는 여정을 앞두고 지레 부담을 느끼고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교를 향한 열정도 좋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 합류하면 동역자들과 사역에 어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③ 요한은 떠났지만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은 계속됩니다. 남부 갈라디아 고원 지역에서의 바울은 육체의 약함(갈 4:13)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이지만, 그는 강도가 자주 출몰하는 (고후 11:26) 타우루스 산을 넘어 버가에서 북쪽으로 160킬로미터 떨어진 비시디아 안디옥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합니다. 이렇듯 성령은 우리를 꽃길로만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적인 연약함, 숱한 변수, 절망적인 환경과 기꺼이 맞서게 하시는 분입니다.
④ 비시디아 안디옥은 이방 지역이지만 유대인이 모이는 회당이 있었는데, 바울은 안식일에 그곳을 찾습니다. 바울이 랍비임을 알아본 회중들이 설교를 권하자 바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는 복음을 전할 곳이면 어디든 가는 순종의 사람이자, 전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준비된 일꾼이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못하는 것은 바울과 달리 순종하지 못할 핑계가 많고, 삶의 중심에 복음을 두지 않아서가 아닙니까?